97화. Retour des Saisons(8)
권이도가 잘생겼다는 생각은 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직원들의 말을 빌려 시력이 좋아지는 기분이 들 만큼 수려한 외모였으니. 그런데 그 금욕적인 얼굴에 몹쓸 짓을 하고 나니, 배 속이 뻐근할 정도로 배덕감이 들었다.
“…….”
그 와중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질척거리는 정액이 발간 혀를 따라 입 안으로 사라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색정적인 장면에 머리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그걸 왜.”
“그냥.”
“…….”
“맛있을 것 같아서.”
권이도는 얼굴에 묻은 정액을 닦아 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젖은 속눈썹을 가늘게 떨며 미미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을 뿐이다. “역시 맛은 없네.”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젖어 있는 성기에 제 뺨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얼굴에 싸는 게 좋아요?”
“…….”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은 전에 없던 취향이 생길 만큼 자극적이었으니까. 얼마나 그대로 있었을까. 방금 사정한 탓에 예민한 귀두를, 그가 혀를 내어 문질렀다.
“흣…….”
나한테 창부처럼 굴라고 했으면서, 정작 이 사람이 그러고 있지 않나. 비위가 상할 법도 한데 젖은 성기를 아무렇지 않게 핥고 있다. 그가 다시금 귀두를 입에 넣으려고 하기에 화들짝 놀라 붙잡은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그만…… 그만 해요.”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의도치 않게 머리채를 움켜쥔 꼴이었으나, 권이도는 전혀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왜 말리냐는 듯이 아쉬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왜?”
“왜냐니…….”
한 번 했으면서 설마 또 할 생각인가.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그러다 무심코 시선을 내렸는데, 팽팽하게 당겨진 정장 바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내 거 빨면서 섰어요?”
허벅지 위로 두드러진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 원체 크기가 커다란지라,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얼굴은 흥건히 젖어서는, 무릎을 꿇은 채로 아랫도리를 세우고 있다니. 아연해하는 나를 두고 그는 입맛을 다시기까지 했다.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네.”
왜 아니겠는가. 누누이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진짜 변태 새끼 같다는 생각이 드는걸. 잠깐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이 사람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하아…….”
머리가 어질어질 정신이 없다. 이제 깨달았는데, 권이도는 눈까지 풀려 있다. 아까 입을 맞췄을 때처럼 몽롱하게 흐려진 눈동자에 정욕이 가득했다.
“……세진아.”
어떻게 하지. 권이도도 권이도지만, 저 부름에 반응하는 나도 미친 것 같다. 허벅지를 짚었던 손이 살금살금 올라와서 허리 뒤쪽으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이내 꼬리뼈 아래로 미끄러진 손가락이 젖은 입구를 꾸욱 눌러 왔다.
“흣…….”
아랫배가 납작하게 들어갔다. 권이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좁은 입구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내벽을 더듬으며 파고드는 손길에 머리카락을 붙잡았던 손에 힘이 풀렸다.
“……하.”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내 성기에 입술을 문질렀다. 빳빳하게 발기한 기둥을 아래에서 위로 핥고는 반질거리는 귀두를 입 안에 머금었다. 키스라도 하듯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뗀 그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라는 대로 다 해줄게.”
아…… 그냥 될 대로 되라지.
* * *
어떤 정신으로 침대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바닥에 옷가지가 툭 툭 떨어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권이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어린아이 들 듯 나를 달랑 들어 올린 권이도가 입을 맞춰 가며 나를 침실로 데려온 것이다.
“하아, 흐…….”
숨은 쉬어도 쉬어도 모자랐다. 둘 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빈틈없이 몸이 겹쳐졌다. 권이도는 집요하게 내 몸을 끌어안고, 나를 어르고 달래 가며 온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아……. 권이도 씨 심장이…….”
“…….”
“너무, 뛰는데…….”
그가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자욱하게 쏟아진 페로몬도 그랬고,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도 그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온전히 전해지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고양된 상태였다.
“흣, 흐…….”
말랑한 입술이 가슴께를 간지럽혔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깨물었다가 톡 튀어나온 유두로 위치를 옮긴다. 잘근잘근, 앞니로 장난을 치던 권이도가 다른 손으로는 내 허벅지를 문질렀다.
“하아…….”
그가 닿을 때마다 온몸이 움칠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권이도가 그 무엇보다 커다란 기대가 되었다. 유독 질척거리는 애무까지도 앞으로 이어질 행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 그만…….”
이제, 넣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 즈음에야 그가 몸을 살짝 떼어 냈다. 그리고 내 허벅지를 붙잡아 좌우로 벌렸다.
그런데 온기가 멀어지는 찰나의 순간, 벼락처럼 뇌리를 강타하는 기억이 있었다.
‘다리 똑바로 벌려.’
“…….”
냉랭한 목소리가 호된 매질을 하는 듯했다. 이 침대 위에서, 지금과 비슷한 자세로, 그가 내게 했던 폭력적인 섹스가 떠올랐다. 나를 개처럼 내리누르고 덜 풀린 내벽에 삽입한 채, 온갖 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며 이어 갔던 그 행위가.
‘권이정이 박아 줬을 때도 이랬어?’
“허윽…….”
순식간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달아올랐던 몸이 단숨에 식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흥분으로 뛰던 심장이 이번엔 다른 이유로 뛰기 시작했다.
“…….”
이상함을 느꼈는지 권이도가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멍하니 나를 내려다봤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는 와중에, 권이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미안.”
심장이 터질 것처럼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조그맸다. 죄책감으로 물든 얼굴이, 그리고 덜덜 떨리는 시선이,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미안해, 세진아…….”
그는 내 다리를 놓아주고 느리게 내 품으로 무너져 내렸다. 뜨거운 열기가 으스러뜨릴 것처럼 나를 꼭 끌어안았다. 온몸을 감싸는 온기는 페로몬과 함께 따사롭게 나를 덮쳐 왔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턱을 간지럽히고, 목덜미에 새근거리는 숨결이 닿았다.
“내가 잘못했어.”
“…….”
“내가 미안해…….”
내가 그의 감정을 느끼는 만큼, 그 또한 내 감정을 느꼈을 터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몰라도 지금 그를 보며 무슨 기분을 느끼는지는 알아차렸겠지. 분명 좋았던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죄인이 되어 버린 걸 보면.
“미안…….”
“……하.”
취기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던 모양이다. 멀쩡하던 시야가 점점 뿌옇게 뒤덮이기 시작했다. 하긴,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벌써 맨정신이 되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흑.”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아무런 전조 없이 일어난 일이었으나, 이미 터져 버린 설움을 멈출 방법은 없었다. 그가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지금이, 미안하다며 내게 애원하는 목소리가, 그 모든 것들이 안타까운데, 그럼에도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 흐윽…….”
‘너 같은 걸 믿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다. 점점 잊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잿더미에 뒤덮인 기억이었나 보다. 찰나에 불과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 안에 사그라들었던 감정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왜…….”
“…….”
“왜 그랬어요, 나한테.”
한 번 살아난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화르륵 타오른 감정이 오로지 권이도를 향해 쏟아졌다. 속이 마구 끓는 기분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어…….”
나한테 그러지 말지.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여태껏 외면하고 있던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삐쭉삐쭉 날이 선 가시들이 내가 막아낼 새도 없이 권이도를 공격했다.
“내가…… 내가 얼마나 맞았는지 봤잖아요. 권이정이 나를…… 흐, 날 강간한 걸 알았잖아.”
한눈에 보기에도 엉망이었을 몰골을 권이도가 몰랐을 리가 없다. 실제로 그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어떤 새끼가 이랬냐며 화를 냈다. 내가 억지로 당한 걸 알아차려 놓고,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해서 불같은 분노를 쏟아 냈단 말인가.
“근데 나한테 똑같은 짓을 하면 어떡해…….”
나는 그때 두 사람에게 강간당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만큼은 아직까지도 흉이 진 상태였다.
“권이정이, 흑, 박아 줬을 때도 그랬냐고?”
“…….”
“하, 씨발…….”
울컥, 밑도 끝도 없이 화가 났다.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은 내 얼굴을 적시고 그의 어깨까지 적셨다. 본능적으로 마주 안았던 그의 몸에 그리운 기분이 들면서도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기분으로 그 순간을 버텼는지 알아요? 뒤가 찢어져서 피가 나는데, 나는 그것보다 당신한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더 아팠어. 권이정이…… 그쪽 형이 날 선물이라고 불러서…….”
말을 하면 할수록 목이 멨다.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권이도가 더 세게 끌어안았다. 까득, 이 가는 소리와 함께 전해진 감정엔 미안함과 함께 분노도 섞여 있었다.
“딴 새끼랑 붙어먹은 게 그렇게 화가 났어요?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대했어?”
“…….”
“그럴 거면 날 찾으러 오지 말았어야지!”
그는 왜 오피스텔까지 나를 찾으러 왔을까. 내가 그 집에서 나온 게, 권이도에게 변명조차 못 한 게, 그가 나를 짓밟고 망가뜨릴 일이었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길래.”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인지, 그걸 끝도 없이 고민했다. 고용인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면, 애초에 권이정이 있는 현관으로 가지 않았다면, 아니 그보다 먼저 권이도에게 모든 걸 사실대로 말했다면.
“나라고 훔치고 싶어서 훔친 게 아니란 말이에요. 나도 당신한테 말하고 싶었어. 미안하다고, 그냥, 아버지가 시킨 거라고…… 흐, 근데 그게 너무…….”
“…….”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러나 다시금 시간이 돌린대도 그날의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터였다. 버림받을까 무서워서 몸을 사린 채 최후의 순간이 올 때까지 숨죽이고 있겠지. 그게 나를 얼마나 좀먹을지 하나도 모른 채로, 등신같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됐는데요……. 거기서 뭘 더 해야 됐는데. 그쪽도, 그쪽도 잘한 거 없잖아…….”
내 모든 행동은 딱 한 가지 두려움에서 나왔다. 타인을 실망시킬까 봐, 그래서 결국 버림받고 말까 봐, 다시 그 추운 눈밭으로 돌아가 마침내 혼자 남아 버릴까 봐.
“……미안해.”
“흑…….”
“미안해, 세진아.”
권이도는 나를 놓아주지 않은 채 몇 번이고 속삭였다. 내 머리칼에 얼굴을 묻은 채로 시근덕거리는 숨을 몇 번이나 삼켜 냈다. 배 속이 난도질당하는 듯한 죄책감은, 그 또한 감정이 벅차오르고 있단 사실을 알려 줬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
“미쳐서 그랬어.”
말을 이을수록 권이도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하, 씨발 등신같이 너를 몰라서…….”
그 말엔 또 한 번 눈물이 터졌다. 엉엉 소리를 내며 흐느끼다가 끌어안은 등을 퍽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왜, 흐…… 왜 욕을 해!”
“…….”
“뭘 잘했다고 당신이 욕을 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이렇게 목놓아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부끄럽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그가 나를 달래려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붙잡히지도 않는 등을 밀어 내려고 하기도 했다.
“당신 처음부터 그랬잖아. 나한테 막 대하더니, 흑…… 주제 파악, 흐끅, 주제 파악하라고…….”
착한 척을 하면 뭘 한단 말인가. 이제 와 반성하고 후회하면 대체 뭐가 바뀌냔 말이다. 우리는 이미 헤어졌고,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할 텐데.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만큼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만신창이가 되었건만.
“그쪽은 뭐가 그렇게 잘났어요? 왜 맨날 혼자만 알고, 흐, 기회를…… 두 번 줄 수도 있으면서, 다 끝났다고, 나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권이도의 어깨에 이마를 콩콩 박다가 억울함을 참지 못해 버둥거리기도 했다. 얄밉게도, 권이도는 그런 나를 놓아주는 대신 사과를 건네기만 했다.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면 어쩔 건데…… 그럼 어떡할 건데!”
떼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사과를 건네는 권이도조차 목소리가 젖어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서럽게 토해 낸 감정은 내가 아닌 권이도까지 적시고 있었다.
“다 싫어, 이제……. 흐엉, 맨날 나한테만…….”
마지막엔, 숨을 헐떡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제법 아프도록 움켜쥐었음에도 권이도는 내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살짝 고개를 들고는 울지 말라는 듯이 내 뺨에 입을 맞췄을 뿐.
“흐윽, 흑…….”
따뜻한 입술이 눈두덩을 문질렀다. 그대로 아래로 내려온 그가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누구 맘대로 입을 맞추냐고 화를 내려는 순간, 권이도가 내 뺨에 가만히 제 뺨을 가져다 댔다.
“미안해, 세진아.”
우는 데도 지구력이 필요하단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비처럼 쏟아지던 눈물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고, 대신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딸꾹질이 나왔다.
“흐끅, 흐…….”
권이도는 내 상체를 받쳐 안고 우는 아이를 달래듯 등을 쓸어줬다. 우스운 건, 그 손길에 실제로 진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를 밀어 내려다가도 온기가 그리워져서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권이도를 노려봤다.
“…….”
“…….”
눈이 마주쳤다. 짙은 눈동자에 여러 감정이 일렁였다. 왜 이런 상황에서조차 이토록 사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볼까.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다 받아 줄 것처럼.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시근덕시근덕 숨을 몰아쉬다 말고 그를 내 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억지로 입술을 맞물렸다.
“…….”
의사가 그러지 않았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옳은 거라고.
하도 화를 내며 울었더니 무언가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그게 술기운이건, 아니면 생떼와 비슷한 충동이건. 지금 이 순간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으응.”
당연한 말이지만, 권이도는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해달라는 대로 혀를 섞고 잔잔히 페로몬을 넘겨줬을 뿐. 숨이 모자라서 혀를 물고 빠는 동안, 그는 차근차근 숨과 페로몬을 불어 넣었다.
와르르 쏟아졌던 설움은 이제 다른 감정으로 뒤덮였다. 그를 향한 욕망, 약간의 흥분감, 그리고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대까지.
“하아…….”
쪽, 입술을 떼어 낸 권이도가 턱 언저리에 입을 맞췄다. 뺨과 코, 눈 할 것 없이 뽀뽀를 하다가 다시 입술로 돌아와 한참을 머무른다. 어느새 가슴 위로 올라온 손은 심장 박동을 느끼려는 것처럼 가만히 왼편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하.”
나는 그때, 권이도가 탄식한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짙은 안도감과 함께 울 것처럼 표정이 무너졌다는 사실만 알았지. 스르륵, 미끄러진 입술이 목으로 내려가고 맥박이 뛰는 부위를 야금야금 깨물었다.
“아, 흐응…….”
누구 것인지 모를 페로몬이 공기 중에 섞였다. 권이도의 페로몬이 뻗은 나무에 향긋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그는 간절히 매달리는 나를 한 품에 안은 채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프면 얘기해.”
기다란 손가락이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이미 한차례 풀어 놓은 곳이었기에 두 개까지 머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세 개부터는 조금 빠듯했으나, 이미 한참 전부터 기대감으로 인해 열린 몸이었다.
삽입은 아주 천천히 이뤄졌다. 먼저 다리를 벌린 쪽은 나였고, 권이도는 몇 번이나 조심조심 내 반응을 살폈다. 굵은 귀두를 지나, 기다란 기둥이 쑥 밀려 들어올 때도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아, 거기…….”
오랜만에 받아들이는 행위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버거운 기분과는 달리 통증만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공들여 풀어 놓은 데다, 봉사하듯 아주 천천히 움직였으니까.
“하아, 응, 흐…….”
여유로운 행위였다. 다정했고, 따뜻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상냥했다. 다시는 날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무섭게 굴지 않겠다는 듯이.
그날, 우리는 그간 못다 한 대화만큼이나 오래 몸을 섞었다.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췄고, 그러다 절정에 다다르면 간절히 서로에게 매달렸다. 오로지 권이도와 나 둘만 남은 것처럼. 그 모든 과정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