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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끝에 (96)화 (96/131)

96화. Retour des Saisons(7)

회식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파했다. 원래라면 적당히 마무리시켰을 텐데, 오늘은 내가 함께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은 한껏 흥이 올라 고주망태가 되었고, 그건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차에서 대기하던 김 실장은 회식이 끝나자마자 나를 데리러 왔다. 내 어깨에 외투를 걸쳐 주고 비틀거리는 나를 정중히 부축했다. 권이도의 비서 역시 그를 데리러 왔는데, 권이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대표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전무님!”

“2차 갈 사람?”

“오, 노래방 가요! 노래방!”

직원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몽롱하게 멀어졌다. 찬바람이 뜨거운 얼굴을 조금 가라앉혔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가만히 김 실장에게 기댄 채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술 많이 드셨습니까?”

“네, 좀…… 취하는군요.”

알딸딸한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내뱉는 숨결에 알코올 향이 섞이는 건 조금 별로였지만 말이다.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리자, 권이도의 페로몬이 잔잔히 느껴지는 듯했다.

“차로 모시겠습니다.”

김 실장은 곧장 나를 차로 데려가려고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취한 건 처음이라 내심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마 나를 뒷좌석에 태운 뒤엔 늘 그랬듯이 잠깐 눈을 붙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잠시만요.”

나는 겨우 자세를 바로 하며 그런 김 실장을 만류했다. 김 실장이 주춤,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권이도에게 말을 걸었다.

“전무님.”

“…….”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게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아마 절반은 노래방을 가고, 절반은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 내일이 주말이라 다행이지, 실컷 놀고 휴일에 푹 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되었다.

“혹시…….”

나는 느릿느릿 운을 떼며 눈을 깜박였다. 그의 페로몬이 남은 오른손을 두어 번 쥐었다가 폈다 하면서. 술기운이 아니었다면 절대 건네지 못할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이후에 일정 있으십니까?”

권이도의 눈동자가 덜컹 흔들렸다. 의도를 가늠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가를 찡긋했다.

“바쁘면 뭐…….”

“아뇨.”

“…….”

“안 바쁩니다.”

거짓말은.

진짜 안 바쁘면 옆에 있던 비서가 사색으로 질릴 이유가 없건만. 이름이 박경석 씨였나. 김 실장이랑 이미지가 비슷해서 유독 기억에 남았다.

“얘기해요. 안 바쁘면?”

권이도가 고개를 까딱했다. 그 또한 술을 좀 마셨을 텐데, 흐트러짐 없이 멀끔한 차림이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모습조차 무슨 화보처럼 보였다.

“별건 아니고…….”

살짝 김 실장을 밀어 냈다. 취하긴 취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눈치 빠른 김 실장이 한 발짝 물러나고, 나는 권이도를 향해 뭉개지는 발음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오늘…… 수면제를 못 먹거든요.”

의사가 그랬다. 술을 마시면 수면제는 먹지 말라고. 이렇게 많이 마셔도 된다고는 안 했지만, 어쨌든 양심상 그 부분만큼은 지킬 생각이었다.

“근데 아시다시피 제가 불면증이 심해서요.”

권이도는 마저 말하라는 듯이 지그시 시선을 맞춰 왔다. 이 말을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모르긴 몰라도 제법 이기적인 말인 건 사실인데.

“잠을 좀 푹 자고 싶은데, 그러려면 권이도 씨 도움이 필요합니다.”

“…….”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페로몬으로 숙면을 취한다는 건 권이도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과거에도 그랬고, 그리고 현재에도 그렇고.

“어떻게 할래요?”

그는 의외로 곧장 대답하진 않았다. 비서에게 무언가 지시하고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왔을 뿐이다. 김 실장 역시 차에서 기다리겠다며 우리 근처에서 멀어진 뒤였다.

“나는 괜찮지만…….”

권이도는 그렇게 운을 떼며 나를 내려다봤다. 가끔 그의 시선을 받으면 지나치게 관찰당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혹은 지나치게 고양된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전자가 아닌 후자였다.

“괜찮겠어요?”

“……뭐가요?”

“정세진 씨 내일…….”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그런 생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권이도는 여전히 담담한 눈으로 딱 한마디를 덧붙였다.

“히트 사이클일 텐데.”

“…….”

머리가 더듬더듬 날짜를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술기운에 잠깐 망각했는데, 내일이면 다시 주기가 돌아왔다. 마침 주말이라서, 그래서 평소보다 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자고 갈 생각부터 하네.”

나는 툭, 성의 없이 대꾸했다. 권이도가 눈썹을 삐쭉 들어 올렸다. 그 반응이 재밌어서 괜히 삐딱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는 권이도 씨도 내일 러트 아닙니까?”

내가 내일 히트 사이클이라는 건, 결국 권이도도 러트가 온다는 말이었다. 이 또한 각인의 여파였는데, 서서히 맞아 가던 주기가 이제는 완벽히 일치하게 됐다. 원치 않게 서로의 주기를 속속들이 꿰게 되었다는 말이다.

“너 억제제 안 듣잖아.”

권이도는 딱 한마디로 내 입을 막아 버렸다. 유치하게 구는 걸 보니 그 또한 술을 마시긴 했나 보다. 나는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체질 바뀌어서 듣습니다.”

“…….”

“……조금.”

뒷말은 소심하게 덧붙였다. 아직 완벽히 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 히트 사이클이 폭주하던 건, 평소에 페로몬 배출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로몬샘이 안정되면서 조금씩 억제제가 듣기 시작했다. 의사가 그러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보내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했다.

“싫으면 관둬요.”

자고 가라고 붙잡은 것도 아니고, 섹스를 하길 바란 것도 아니다. 술자리 내내 손을 잡고 있었더니 새삼 그의 페로몬이 고파졌을 뿐이었다. 그래, 어쩌면 히트 사이클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를 향한 감정과 우리의 상황을 배제해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선 권이도를 바라게 됐으니까.

“싫다고 안 했습니다.”

등을 돌리는 순간, 권이도가 억세게 내 팔을 붙들었다. 그 또한 반사적으로 잡은 건지 아차 싶은 얼굴로 손에 힘을 풀었다. 스르륵 흘러내린 손이 이번엔 손과 가까운 손목을 그러쥐었다.

“같이 가죠.”

* * *

“흣, 으응…….”

덜컹, 현관문이 닫혔다. 커다란 손이 내 뒤통수를 감싸고 다리 사이에 단단한 허벅지가 끼워졌다. 나를 문으로 밀어붙인 권이도가 고개를 기울인 채로 빈틈없이 입술을 맞물렸다.

“흡…….”

타액과 함께 짙은 페로몬이 훅 밀려들었다. 원체 술기운 탓에 정신없던 머리가 이제는 완전히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를 밀어 내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었지만, 오히려 그게 불을 붙이는 매개체가 된 모양이다.

“……흐으.”

말캉한 혀가 입 안 곳곳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입 안쪽 여린 살을 훑다가 입천장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쪽, 쪽, 소리가 날 만큼 혀를 빨아들이고 열띤 페로몬이 뭉텅뭉텅 넘어왔다.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우리는 분명 김 실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내 오피스텔로 왔다.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고, 대화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단지 꾸벅꾸벅 졸던 내가 그의 어깨에 몇 번 머리를 기대는 일만 있었을 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전히 권이도에게 기대어 있었다. 술기운 반, 잠기운 반.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차에서 내리는 나를, 이번엔 김 실장이 아닌 권이도가 부축했다. 김 실장은 영 불안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무어라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페로몬 나온다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는 권이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게 너무 잘 느껴져서, 일부러 더 느슨하게 힘을 풀었던 것까지는 기억난다.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됐더라.

“하아…… 흐읍…….”

생각이 자꾸만 뚝뚝 끊겼다.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권이도가 단단히 붙잡은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권이도의 목에 팔을 감은 상태였다.

“하으…….”

그래, 그냥 뜬금없이 불이 붙었다. 눈이 마주쳐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서로의 페로몬이 진득이 얽혀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든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왔을 땐, 이미 갈구하듯 그가 나를 탐하기 시작했으니.

“……흣, 잠깐.”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고 왼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 냈다. 그래봤자 다른 팔은 목에 두르고 있는 터라 그다지 저항처럼 보이진 않았겠지만.

“이러려고…… 하아, 이러려고 부른 거 아니에요.”

“…….”

그의 시선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권이도가 흥분했다는 사실이 눈으로, 피부로, 그리고 연결된 감정으로 느껴졌다. 내가 그를 느끼는 만큼, 그 또한 나를 느낄 텐데. 그 사실을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우리 아직 이럴 사이 아니잖아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나직이 건넨 말에 권이도의 눈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짙게 물든 눈동자가 집요하게 내 눈을 들여다봤다.

“……아직?”

허스키하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소름 끼칠 만큼 외설스러웠다. 등줄기에 소름이 끼쳐서 머리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었다.

“세진아, 나는…….”

권이도는 거리를 넓히지 않고 그대로 내게 얼굴을 문질렀다. 높은 콧대로 뺨을 건드리고 목덜미로 입술을 미끄러뜨린다.

“난 고작 그딴 말에도 기대가 생겨.”

“…….”

내가 지금, 아직이라고 했나. 머리가 어지러워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허락할 생각이 없었는데, 은연중에 대체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권이도 씨.”

뜨거운 숨결이 쇄골 언저리에 닿았다. 와이셔츠로 가려져 있었지만, 얇은 천 쪼가리는 열에 달뜬 숨을 막아내지 못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나한테 미안해요?”

조용히 이어지는 침묵은 곧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지끈거리며 전해지는 통증 역시 내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냐는 질문에, 권이도가 정말 죄책감을 느껴 버린 것이었지.

“그럼…….”

머리가 팽팽 돌았다. 이대로 본능에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반. 품에 안긴 권이도가 안쓰러운 반면에 울컥 솟구치는 낯선 감정도 있었다.

“그럼 무릎이라도 꿇어 볼래요.”

뒤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이 하필 정확히 떠오르는 바람에. 그 당시엔 아무렇지 않던 순간들이 이제 와 새삼 억울한 마음으로 남는 바람에.

“미안하면 그 정도는 해야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화풀이였고, 억지였다.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 이제 와 이런 말을 들으면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애초에, 권이도 혼자만의 잘못도 아니었고.

“…….”

역시나 권이도는 예의 그 담담한 얼굴로 품에서 벗어났다. 불쾌한 기색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해본 소리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권이도가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힘없이 움켜쥔 손길이 그토록 조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자세를 낮춘 그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는 내 손등에 이마를 댄 채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라, 그냥 바짝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할까, 세진아…….”

가늘게 흘러나온 음성은 권이도답지 않게 기죽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입을 맞추던 상대에게 무릎을 꿇어 놓고, 그 높은 자존심에 흠조차 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내 손에 이마를 문지르고, 더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겠지.

“내가 뭘 해야…… 그래야 네가 안 아플까.”

가만히 현관문에 뒤통수를 기댔다. 조용한 와중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현관에서 무릎을 꿇은 그의 모습이, 미처 들지 못하는 고개가 마음 한구석을 따끔하게 만들었다.

“하라는 대로 다 할게.”

“…….”

“그러니까…….”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용서를 해달라는 건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바람만큼 이루기 어려운 것도 없건만.

“……왜 이렇게까지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런 질문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괜찮아지고 있는데, 권이도는 아직도 그 슬픔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내게 모든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자신이 헤어날 발판은 단 한 개도 남겨 놓지 않은 사람처럼.

“뭐든지 하겠다니…….”

내가 비슷한 말을 했을 때, 권이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혹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충동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서 그랬던 걸까.

“뭘, 어디까지 할 수 있길래.”

비이상적인 욕구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시험하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가엾게 느껴지는 만큼 원망스러웠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갈 곳 잃은 분노가 삐뚤어진 방향으로 표출됐다.

“……권이도 씨.”

그는 내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또한 내 의도를 알아차렸으리라고 생각한다.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가 뜬 그가 내 손을 놓아주고 내 허벅지를 붙잡았다.

벨트가 풀렸다. 뒤이어 그는 앞니로 지퍼를 물어 내렸다. 얇은 속옷 너머로 뜨거운 숨결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중심을 잃을 것 같아서 문에 등을 기대자, 권이도가 이번엔 속옷을 끌어 내렸다.

“……흣.”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을 때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기하지 않은 성기를 입에 물었다. 뜨겁고 축축한 입 안이 예민한 부위를 섬세하게 자극했다. 혀로 기둥을 감싸는 감촉에 목덜미가 홧홧 달아오르는 듯했다.

“아…….”

성감이 확 고조되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권이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뒤통수를 가볍게 그러쥐었다. 아랫배가 뻐근하게 조여드는 감각과 함께, 권이도의 입 안에서 성기가 점점 커다래지기 시작했다.

“하아…….”

먹먹한 귓가에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살짝 눈을 찌푸린 채 입 안 가득 기둥을 머금었다. 혀로 귀두를 문지르다가 조금 무리다 싶을 만큼 목구멍 안쪽으로 깊게 밀어 넣기도 했다.

“……흡.”

아, 이건 좀…… 위험한데.

다 가라앉은 줄 알았던 술기운이 서서히 올라왔다. 머리칼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허리가 움찔거렸다. 좀 더 깊이, 큰 자극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그를 단단히 고정한 채 허리를 움직였다. 푹, 목구멍 깊은 곳을 건드리자 권이도가 잠깐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아무렇지 않게 내 움직임을 받아 냈다.

“……읏.”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기분이다. 그가 입으로 해준 게 처음도 아닌데,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사실만으로 훨씬 흥분됐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권이도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고, 서늘한 줄만 알았던 체온이 무색하게도 그의 입 안만큼은 델 것처럼 뜨거웠다.

“하아, 흣…….”

좁고, 뜨겁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목구멍을 억지로 여는 게 분명한데, 구역질을 하지 않으니 내가 그를 막 다루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그래서 양껏 허리를 움직였고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뒷머리를 꾹 내리눌렀다.

“……!”

사정감이 몰려오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권이도를 확 밀어 냈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입 안에 싸는 것만은 안 된다고 말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타이밍이 어긋나는 바람에, 성기를 빼내는 순간 울컥 파정하고 말았다.

“하아, 하아…….”

“…….”

가물가물한 시야로 인상을 찌푸린 권이도가 보였다. 그는 한쪽 눈을 감은 채로 눈가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희뿌연 액체가 기다란 속눈썹에 맺혀다가, 매끄러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단언컨대, 얼굴엘 쌀 생각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코 나는 그런 모습에 흥분하는 변태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일까. 새빨간 입술에 묻은 정액을 보는 순간, 다시 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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