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Retour des Saisons(6)
“선호 다니는 사람들은 전무님 얼굴이 복지라니까요.”
“근데 이제 우리한텐 대표님이 있는 거지.”
“맞아, 맞아.”
한 번 느껴진 시선은 직원들이 몇 마디 덧붙일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복지라뇨…….”라고 웃어넘길 때도 그대로였고, 어색하게 술을 한 잔 더 마실 때도 그대로였다. 특유의 짙은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올곧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한 잔 더 드릴까요?”
다행히 이미 취한 직원들은 권이도가 누구를 보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텅 빈 술병을 발견하곤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사케를 한 병 더 시켰을 뿐이다. 그러다 다른 직원이 새우를 까주겠다며 소매를 걷기에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여러분 많이 드세요. 저 배부릅니다.”
“에이, 대표님은 좀 많이 드셔야 해요.”
“맞아요, 살이 더 빠지신 것 같던데.”
종종 있는 일인데, 회식만 하면 직원들은 유독 내게 음식을 챙겨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고기를 구워서 앞에 놔준다거나 반찬을 내 앞에 끌어 놓는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처음엔 아첨을 떤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이젠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표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그러고 보니까 대표님 되게 날 거 못 먹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회 잘 드셔서 다행이에요.”
“……그건 무슨 이미지예요?”
나는 애써, 필사적으로 권이도의 시선을 모르는 체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눈이 마주칠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직원들만 바라봤다. 누군가 발라 준 대게 다리 살을 한 입 먹고, 또 다른 직원이 따라 준 술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저 진짜 ‘Sejin’에 뼈를 묻을게요…….”
그러다 대뜸, 한 직원이 감격한 얼굴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양손에 얼굴을 묻곤 입사하길 잘했다며 벅차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 역시 회식을 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가느다란 웃음을 흘리며 장난처럼 대꾸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퇴사하던데.”
“진짜라니까요, 대표님!”
“그래요, 믿을게요.”
알겠다는 의미로 직원의 어깨를 다독였다. 푸근한 체형을 가진 직원이 우는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폭 안긴 게 아니었음에도 품이 가득 차는 듯했다.
“대리님 또 이러시네.”
“그런 거 받아 주지 마세요.”
“어리광 부리는 거 버릇 든다니까요?”
직원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실 주정을 부리는 모습이 꽤 귀여웠기에, 나도 웬만하면 다 받아 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토닥토닥 직원을 달래 주는데, 딱 한 명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권이도의 감정이 전해졌다. 조금 전부터 내리막길을 타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대리님 진상이에요!”
“그러지들 마. 원래 다니던 회사가 많이 힘들었나 보지.”
“확실히 우리 회사가 복지가 좋긴 해요.”
‘복지’라는 말엔 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슬슬 술기운이 오르는 터라, 부정적인 감정 따위는 모르는 체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하는 건 늘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이성이 흐려지는 게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으, 화장실 다녀와야겠어요.”
한참을 어르고 달래자, 그제야 직원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직원 하나가 그런 건 말로 하지 말라며 질색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면서 또 내게 술을 권하기에 그냥 흔쾌히 술잔을 내어 줬다.
“오늘 대표님 술 잘 받으시나 봐요.”
“사케 좋아하세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오늘은 그냥 잘 들어가네요.”
그만 좀 쳐다보지. 아무리 다들 취했다고 해도, 슬슬 남들 시선을 의식할 때가 됐건만. 설마, 이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동상처럼 저러고 있을 셈인가.
“전무님, 술 더 안 드세요?”
“……아, 잠깐 전화 한 통만 하고 오죠.”
마침내 권이도는 누군가 말을 건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쪽으로 사라지는 권이도를 보고, 뒤늦게 빳빳하게 긴장했던 어깨가 풀리는 듯했다. 암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중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게 권이도였으니까.
“근데 저희 너무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이게 돈이 얼마람.”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돼요.”
아무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이도인데.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사준다고 해놓고 다른 말을 하진 않을 것이다. 암만 많이 먹어 봤자, 권이도의 씀씀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일 테니까.
“권 전무님 천사일지도 몰라…….”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이 최고라는 법칙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얼핏 보기에도 권이도를 향한 직원들의 호감도가 쑥쑥 자라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원래는 좋은 분이었다면, 이제는 착하고 배려심 넘치는 분 정도로.
그 후로 술을 얼마나 더 마셨을까. 비어 있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원래 있던 직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엷게 풍기는 페로몬이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피부로, 호흡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이 목까지 올라왔던 취기를 가라앉히는 기분이었다.
“…….”
권이도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차지한 거였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서 페로몬을 풍길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대리님 화장실 다녀오셨어요?”
“그런 거 말로 하지 말라면서요…….”
때마침 돌아온 직원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원래 권이도가 앉아 있던 자리로 향했다. 한결 울음기가 가신 얼굴이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휙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흘긋흘긋 눈치를 살피는 게, 왜인지 잔뜩 고양된 표정이었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설마 그게 내 옆에 앉았기 때문일까. 지나치게 넘겨짚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권이도가 저 직원을 따라가서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닐까 하고.
“어? 전무님 언제 이쪽으로 오셨지?”
“뭐 어때요. 전무님, 한잔 따라 드릴까요?”
권이도는 이번엔 직원들이 주는 술을 받지 않았다. 술잔을 건드리지도 않았고, 앞에 놓인 젓가락 역시 손도 대지 않았다. 아마 제 것이 아니라 직원이 쓰던 물건이라 그런 듯했다.
“저희 이번에 출시하는 향수 진짜 잘될 것 같아요.”
“특히 플로럴 머스크가…….”
맞은편에 있을 땐, 그래도 모르는 척할 수 있었는데. 바로 옆에 앉은 터라 조금만 움직이면 권이도와 팔이 스쳤다. 일부러 가까이 앉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대표님 사케 더 드실래요?”
직원이 술병을 내밀었다. 기분이 자꾸만 이상해서 나는 한 손으로 술잔을 가린 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배 속이 간질거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술기운 때문인 게 분명했으니까.
“저는 이제…….”
“그만 마시지 그래요.”
그런데 내가 거절하려는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태껏 묵묵히 있던 권이도였다. 더디게 고개를 돌리자,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다.
“혼자 거의 한 병을 마시더군요. 술도 잘 안 하는 사람이.”
“…….”
그러니까, 대놓고 광고하지 말래도. 나도 모르는 내 음주량을 왜 권이도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권이도는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나와 눈을 맞췄다. 이 술자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가 남들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세진 씨한테 지금 꽃향기 나는데.”
“…….”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언뜻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고, 더 깊이 들어가면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향수도 뿌리지 않은 내게, 그 비슷한 향이 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괜찮은 겁니까?”
권이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끈, 가슴 언저리가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간신히 그에게서 눈을 돌리며 느릿느릿 대답했다.
“네.”
“…….”
“좋아진 겁니다, 오히려.”
별로…… 권이도한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페로몬샘이 많이 안정됐네요.’
각인의 효과일까. 예전과는 달리 평소에도 페로몬을 낼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정상적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거나 하면 조금씩 피어오르는 정도였다. 물론 굉장히 미미한 수준인 데다, 일부러 내보낼 만한 일이 없어서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다행이고.”
권이도는 그리 말하면서도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어차피 이젠 내가 타인의 페로몬을 느끼지도, 타인이 내 페로몬을 느끼지도 못할 텐데. 권이도를 제외한 모두가 베타나 다름없었고, 그건 권이도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김 대리님, 저 한 잔 더 따라 주세요.”
“오, 더 드시게요? 잠시만요. 새거로 따라 드릴게요!”
손으로 막았던 술잔을 직원 쪽으로 내밀었다. 그만 마실 생각이었는데, 속이 복잡해지는 바람에 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의사가 들으면 기함할 생각이 머릿속 가득 떠올랐다.
“자자, 대표님 받으세요.”
권이도는 이번엔 그런 나를 말리지 못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물끄러미 내 안색을 살폈을 뿐. 잔뜩 심란한 기분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 * *
눈앞이 자꾸만 뿌옇게 변했다. 몸이 계속 한쪽으로 기울고,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기분이 들뜨고 있었다. 입매가 느슨하게 풀리는 바람에, 직원이 한마디 할 때마다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하하…….”
“진짜, 그때 장난 아니었어요.”
직원이 하는 말은 반 정도만 이해됐다. 무언가 웃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말을 하는 직원도 혀가 잔뜩 꼬부라졌다. 너 나 할 것 없이 취한 와중에, 나는 스르륵 옆에 앉은 사람에게 몸을 기댔다.
“그걸 제가 봤어야 하는데…….”
“대표님 보셨으면 일주일은 웃으셨을걸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취기가 올라서 한 행동이었다. 내가 기댄 게 벽인지 아니면 사람인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직원 역시 불콰하게 들뜬 얼굴로 웃기만 했다.
“그러게요. 웃겼겠다.”
내가 웃으며 맞장구를 치자, 누군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기대어 있던 벽이 움직인단 생각이 들었는데, 금세 자세가 편안해졌다. 나는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살짝 털어 냈다.
“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헉, 속 안 좋으세요?”
“아뇨, 그건 아니고…….”
내가 지금, 술을 얼마나 마셨더라. 주는 족족 마셔 댔으니 살면서 가장 과음한 순간일 게 분명했다. 주량도 정확히 모르는데, 아마 확실히 넘어서긴 했겠지.
“심장이…… 너무 뛰는데.”
길게 숨을 내뱉으며 한 손을 가슴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박동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정도. 이상하다. 분명 조금 더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다.
“원래 술 마시면 그러잖아요.”
“……그래요?”
“그럼요.”
그렇구나. 또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원체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머리끝까지 취기가 오르는 게 이런 기분인 줄은 몰랐다.
“또 재미있는 얘기 없어요?”
“와, 많죠. 기다려 보세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익숙한 페로몬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알딸딸하게 취한 머리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술이 들어간 속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기분이 좋으니 다 괜찮았다.
“학교를 재밌게 다니셨네요.”
“대표님은 대학 때 어떠셨는데요?”
“저는 뭐 그냥 공부하고…….”
나는 느릿느릿 대꾸하며 오른손으로 의자를 짚었다. 자세가 무너지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몸을 바로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주섬주섬 손을 움직이자, 약지와 소지가 옆에 앉은 이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재미있었던 건 글쎄…… 유학 다녀온 거?”
“오, 유학 어디로 가셨는데요?”
사람 허벅지가 참 단단하네. 내 손이 닿자마자 무슨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다. 맨정신이었다면 금세 손을 치웠으련만, 평소와는 다른 사고는 신기하단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꼼지락꼼지락 손가락을 움직였고, 촉감 좋은 바지가 손끝에 감겼다.
“어디더라, 프랑스였나…….”
동시에, 서늘한 손길이 손등에 닿았다. 조금 다급히 붙잡힌 손은 금세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감촉에 문득 입을 다물자,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프랑스요?”
“……아, 네. 프랑스 다녀왔어요.”
손을 빼내지 않은 건, 그 손길이 지나치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큼직한 손도, 나와는 달리 서늘한 체온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은은하게 전해지는 페로몬까지.
“경영 쪽으로 배우긴 했는데…….”
붙잡힌 손이 의자에 내리눌렸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영 불편해서 빼내려고 했는데, 역시나 취한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저는 유학 못 다녀온 게 한이에요. 학교 다닐 때 교환 학생 같은 거라도 가볼걸.”
스르륵, 맞닿은 손이 손등 위에 미끄러졌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 손길이 점점 대담하게 바뀌었다. 내 손을 꼭 쥐었다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의자와 손바닥 사이를 파고든 것이다.
“그럼 불어도 잘하세요?”
“…….”
손을…… 잡아도 된다고는 안 했는데.
어느샌가 그는 내 오른손에 깍지를 끼고 있었다. 얼기설기 엮인 손가락이 족쇄처럼 내 손을 꽉 붙들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세게 쥐었다가, 망가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천천히 힘을 푼다.
“……대표님?”
“아…… 불어, 불어 잘하냐고 했죠?”
“네, 불어 잘하세요?”
“그냥 기본적인 정도만…….”
심장이 쿵, 쿵, 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직원과의 대화에 제대로 집중도 되지 않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정말 술기운인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리털이 삐쭉 서는 것처럼 온몸의 신경이 잔뜩 예민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멋있어요. 대표님 못하시는 게 없네요.”
“하하…… 그 정돈 아니에요.”
손을 마주 잡지는 않았다. 굳이 빼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옆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가만히 힘을 뺀 채,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뇨, 이제 그만 마시려고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가지 긁는 남편 같다니까. 잔소리를 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고, 비어 있던 왼손으로는 괜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많이 드시긴 했어요. 저도 지금 막…… 어우 취기가…….”
술을 마시길 잘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빨개진 얼굴을 들켰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못했을 테니. 아니, 애초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되지 않았으려나.
손가락에서도 맥박이 뛴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는 권이도의 체온으로도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손 역시 서서히 온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윤 팀장님이…….”
이렇게 좋아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게 이상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이건 다 술기운 때문이라고, 애써 그렇게 변명까지 해가면서.
우스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보다 더한 스킨십을 해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입을 맞추고 그보다 더 깊이 몸을 섞는 날도 많았건만.
긴장한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온전히 느껴지는 설렘 역시 오로지 권이도만의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한참 그의 손을 모르는 척했고, 그는 기꺼이 지금의 상황을 만끽했다. 그렇게 얽힌 손가락은 꽤 오랜 시간 그대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