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94)화 (94/131)

94화. Retour des Saisons(5)

왜 나를 살피지 않았을까. 나를 억지로 제게 종속시켜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몰래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내게 배신감을 느낄 만큼 나를 사랑했다면, 내가 죽기 전에 조금만 더 온기를 나눠 줬어도 좋았을 텐데.

그 당시엔 호기심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서운함이었다. 그가 나를 막 대하던 순간보다 무시하고 외면하던 날들이 가슴에 더 사무쳤다. 왜 이제 와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 채,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

권이도는 말문이 막힌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설마하니 이런 질문이 나올 줄 몰랐던 모양이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는,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네가 날 너무 무서워해서.”

짙은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서서히 젖어 들어 가는 시선이 마치 설움처럼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두 눈에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말이다.

“네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어.”

“…….”

짧은 대답을 이해하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그를 무서워해서, 그래서 나타날 수 없었다니. 과거의 권이도가 내 두려움을 느낄 수단이 대체 뭐가 있었길래.

“……내가 무서워하는 걸 어떻게 알고?”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향한 공포를 들켰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아픈 와중에도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권이도는 무척이나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각인했으니까.”

“…….”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가 느릿느릿 뒷말을 보탰다.

“그래서 다 느껴졌어.”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권이도는 모든 걸 느꼈던 모양이다. 내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를 볼 때면 밀려들던 두려움까지.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환상통이 나를 얼마나 좀먹었는지까지도.

“물론 각인이 아니어도 알았겠지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했다. 눈앞의 권이도가 너무도 괴로워 보여서 나조차도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때를 떠올린 그의 표정이 가슴 언저리에 깊이 새겨졌다.

“……그럼 내가 안 자고 있는 것도 알았어요?”

그렇다면 그가 나를 찾아오던 밤, 그는 내가 깨어 있단 사실을 알았을까. 사실 구태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씁쓸히 내리깔리 두 눈이 열 마디 말보다 더한 대답이 되었으니까.

“미안.”

“…….”

사과를 받으려던 건 아닌데. 잠든 내게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만의 고해 성사를 이어 갔을 뿐이니. 그 순간들이 불쾌하지도 않았고, 그저 이제 와 새삼 궁금해졌을 뿐이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리고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미안해, 세진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이 들었다. 권이도는 마냥 죄인이었고, 나는 선고를 내리는 판사였다. 불쑥, 솟구치는 많은 말 중 정작 입 밖으로 흘러나온 이야기는 이 정도였다.

“……그만 일어나죠.”

* * *

퇴근길엔 병원을 찾았다. 일주일에 세 번, 정기적으로 있는 상담을 위해서였다. 한 번에 딱 30분씩만 갖는 상담은 잡다한 일상 얘기와 내 몸 상태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번에 약 줄이고 좀 어떠셨어요?”

심 교수와 무척이나 닮은 의사는 이런저런 질문을 건넨 뒤 차트에 간략한 기록을 남겼다. 잠은 잘 잤는지, 식욕에 이상은 없는지, 기분은 좀 어떤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다행히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기에 복용하는 약들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한 확인이 끝나고, 나는 그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편히 말을 꺼낼 수 있게 됐다. 밤중에 꾸는 악몽(내용은 말하지 않았다)부터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 감정들에 대해서 말이다.

“제가 내린 선택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면, 이렇게 대뜸 속에 있던 불안이 튀어나오곤 했다.

“선택이라면, 어떤 것들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냥 살면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그럴 때마다 확신이 안 생기더라고요. 이게 맞는지, 혹시 잘못되는 게 아닌지, 내가 이걸……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지.”

어떤 선택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콕 집어서 말하기엔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들이었으니까. 내가 그의 집을 나온 것, 지난번에 그를 놔두고 와버린 것, 그리고 이번엔 그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까지.

“제가 모든 걸 망쳤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권이도한테 과연 잘못이 있을까. 그는 주어진 상황에 노력했을 뿐인데 내가 모든 걸 그르친 건 아닐까. 기껏 마지막을 고해 놓고, 이제 와 내 일상에 그를 포함시키는 건 또 욕심이 아닐까.

욕심. 그래, 욕심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계속 오겠다는 권이도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를 끊어 내야겠다고 다짐한 주제에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에 안도했단 말이다. 그럼에도 억울함이 들었고, 그 억울함은 권이도를 향한 원망으로 돌아갔다.

‘왜 날 방치했어요?’

사람의 감정은 지나치게 복합적이라 하나의 이름으로 획일화시킬 수 없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종종 떠올랐다. 이게 원망인지 슬픔인지 서운함인지도 모른 채,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지도 못하고 속에 쌓이기만 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거예요.”

의사는 여상스러운 어조로 담담히 대답했다. 내가 눈을 들어 마주 보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고 그 선택을 내려야만 했던 이유가 있겠죠. 모든 선택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내린 선택을 존중해 주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어떻게 바꿔 나가냐는 거거든요.”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걸요. 저도 그렇고, 우리 환자분도 그럴 거고.”

권이도가 그랬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부터는 실수가 아니라고. 나는 과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있을까. 그 부분은 또 확신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그 또한 지금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 선생님.”

상담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을 떠올렸다. 원래는 당연히 안 되는 일인데 이번에 약을 줄였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남들은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니까, 원래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이 하나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가볍게 술 한잔해도 되나요?”

* * *

더는 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권이도는 매일같이 회사를 찾아왔다. 나는 늘 권이도와 미팅을 했고, 평소처럼 회사 업무를 보다가 남는 시간엔 향수를 만들었다. 부러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도맡아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더 손 볼 건 없겠네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권이도는 디저트를 사 오지 않았고 딱 해야 할 일만 끝내고 돌아갔다. 그게 조금 안쓰럽다가도, 마땅히 해줄 말이 없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 행사 론칭을 앞둔 금요일. ‘Sejin’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제품도, 홍보 수단도 마련됐으니, 남은 건 시간이 지나 순차적으로 오픈되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와, 드디어…….”

직원들은 감격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기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저들끼리 벅찬 한숨을 토해 내는가 하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대표님……!”

“……그렇게 힘들었어요?”

나는 가느다란 웃음을 흘리며 직원들을 쭉 둘러봤다. 조금 빠듯한 일정이긴 했지만, 가능하면 야근은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말이다. 역시나 직원들은 금세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헤실헤실 웃었다.

“사실 일은 많이 안 힘들었는데, 그냥 무사히 끝내니까 너무 좋아요.”

“맞아요. 실은 처음 기획할 땐 죽었구나 싶었거든요.”

“이번엔 대표님이 가장 고생하셨죠.”

한마디씩 건네는 말들이 살갑기 짝이 없었다. 대표님은 좀 쉴 필요가 있다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을 찡긋했다. 쉬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한 건데, 그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를 노릇이다.

“우리 오늘 회식해요. 회식!”

“대박, 회식 좋다!”

직원들은 잔뜩 신이 나선 떠들썩하게 회식을 추진했다. 재미없는 상사랑 놀아 주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회식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우리 직원들밖에 없을 터였다.

“행사 끝나고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끝나고도 하고 지금도 해야죠!”

뭐,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 사기를 북돋기 위한 회식도 좋을 듯했다. 가볍게 식사만 한 뒤에 들어갈 사람들은 들어가라고 하면 되니까. 혹시 소고기가 질렸을까 싶어 메뉴를 물어보는 와중에, 문득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식?”

그리 큰 소리도 아니었는데 그 두 글자가 또렷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퍼뜩 고개를 돌린 곳엔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서 있었다. 매일 이맘때면 회사로 찾아오는 권이도였다.

“전무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남들이 들으면 권이도가 우리 회사 전무라고 생각할 인사였다. 그간 매일 얼굴을 본 탓에 그를 향한 직원들의 태도가 참으로 친근했다. 권이도는 딱히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술 마십니까?”

권이도는 많고 많은 사람 중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애초에 대화를 나누는 건 항상 나밖에 없긴 했다. 술을 마시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고 답하려다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말을 고쳤다.

“네, 뭐……. 그럴 것 같습니다.”

의사가 그랬다.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가능하면 음주는 하지 않는 게 좋지만, 정 마시고 싶을 땐 수면제만 빼고 마시라면서. 딱 하루 정도는 괜찮다고 했으니 오늘은 마셔도 될 것이다.

“……그렇군요.”

한 타이밍 늦은 대답이 영 탐탁잖게 들렸다. 그는 느리게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다물었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그가 불만스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네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Sejin’의 첫 회식을 하던 날. 일찍 들어가겠다고 말해 놓고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가 귀가했던 그때.

‘출근은 정세진 씨가 했는데, 퇴근은 주정뱅이가 했나 보죠.’

그때까지만 해도 아마,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기약 없는 약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헤어질 미래를 그려 보진 않았던 것 같다. 일상의 행복에 푹 잠기는 바람에 그런 나날이 계속되길 은연중에 바라기도 했다.

“…….”

문득 시선을 떼어 냈다. 아무런 계기 없이 새삼 그립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가지 긁는 남편 같다며 농담을 건네고, 그가 나와 김 실장의 사이를 오해하던 그 당시의 일이. 지나치게 사소한 일상 속 그와의 추억들이 말이다.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묵묵히 서 있는 권이도를 지나쳐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뒤에선 여전히 직원들이 숙덕거리며 회식 메뉴를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립다고 한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일 텐데. 이런 기억의 편린에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제는 내가 술에 취한다고 해도, 권이도가 그 사실을 알 수조차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니.

* * *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

“…….”

시끌벅적한 내부는 온통 직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눈앞엔 해산물이 종류별로 세팅돼 있고, 날것을 못 먹는 이들을 위한 익힌 대게 따위도 있었다. 랍스터 회에, 복어 회에, 단체로 먹기엔 값비싼 음식들이 테이블마다 줄줄이 차려졌다.

“전무님,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내 맞은편에 앉은 권이도를 바라봤다. 권이도는 감흥 없는 눈으로 이런저런 감사 인사를 받고 있었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마, 오뚝한 코 아래 굳게 닫힌 입술까지. 이 정신 없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우아하기 짝이 없다.

“많이들 먹어요. 부족하면 더 시키고.”

기품 있는 목소리가 하는 말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모두에게 전해졌다. 직원들은 요란스럽게 기뻐하며 술잔을 돌렸고, 저마다 고급스러운 잔에 사케를 따라 마시기 바빴다. 나는 최 팀장이 채워 주는 술을 받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따 회식하는 거 말입니다.’

아까, 미팅을 마친 뒤에 권이도는 회의실을 나서며 대뜸 말을 꺼냈다. 퍽 갑작스러운 주제였고, 그 말을 할 때 권이도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단 의미로…… 내가 사고 싶은데.’

‘……예?’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그걸 권이도가 사줄 이유가 뭐가 있다고. 애초에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마침 밖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권이도의 말을 듣고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지 않았다면 말이다.

‘대표님만 괜찮다면 제가 대접하고 싶군요.’

‘……바쁘시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마침 금요일이기도 하고.’

마침 금요일은 무슨. 주말에도 안 쉬는 사람이 금요일이건 월요일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매일같이 회사에 출근하던 모습을 내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데.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그냥 어색하게 웃어야 했지만.

‘그래도 신세를 질 수는…….’

‘갑자기 맡긴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해냈으니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죠.’

이제 와 짐작하건대, 아마 일부러 모두가 보는 데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나와 둘만 있을 때 말했으면 내가 무조건 거절했을 테니까. 빠져나갈 구실을 모두 차단하려고 대놓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불쌍한 척까지 했겠지.

‘물론, 대표님이 불편하시다면 포기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권이도는 저녁 시간대에 맞춰 근처에 근사한 일식집을 예약했다. 그런 권이도의 행동에 이태성이 내게 어찌나 묘한 시선을 보내던지. 심지어는 김 실장마저 조금 짠하다는 눈을 해 보였던 것 같다.

“전무님도 한잔 받으십쇼!”

친화력 좋은 최 팀장이 권이도에게 술을 따라 줬다. 의외로 권이도는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술잔을 내밀었다.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으나, 이렇게 비싼 음식을 사주고 있으니 직원들에겐 상냥하게 보였을 거다.

“대표님, 건배사 해주세요!”

“아니지, 이런 건 돈 내는 사람이 해야지.”

“아, 그런가? 그럼 전무님 부탁드립니다!”

아직 술이라곤 한 방울도 안 마셔 놓고, 직원들은 벌써부터 분위기에 취한 모양이었다. 권이도가 건배사라니. 그 안 어울리는 조합에 직원들을 말리려는데, 권이도는 흔쾌히 잔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힘내 보죠.”

단조로운 말이었으나 직원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엔 충분했다. 저마다 건배를 한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간 권이도가 사 오는 디저트에 익숙해진 탓일까, 누구 하나 사양하거나 빼지 않았다.

“……우리 평소에 회식 자주 하지 않습니까?”

“에이, 대표님. 그거랑은 또 다르죠.”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메뉴를 좀 다양하게 할 걸 그랬나. 잘 먹는 걸 보니 좋긴 한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나랑 있을 때보다 더 신난 것 같아서,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대표님, 짠 해주세요. 짠!”

나는 의식적으로 권이도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다른 직원과 잔을 부딪쳤다. 알싸한 사케를 한입에 쭉 털어 넣고 그 낯선 알코올 향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두어 번 그렇게 잔을 주고받은 뒤엔 아무렴 어떤가 싶어 긴장도 누그러뜨렸다.

“대표님 정말 고생하셨어요.”

“맞아요, 이게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아뇨, 여러분이 잘한 거죠.”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본인이 대접하고 싶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으니까.

한 잔, 두 잔, 술잔이 오고 갔다.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고, 직원들도 서서히 취해 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들떠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빨리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었다.

“전무님, 저도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권이도는 의외로 겉돌지 않고 잘 어울리는 중이었다. 술을 따라주면 받기도 했고, 무언가 수다를 늘어놓으면 묵묵히(절대 대답은 하지 않았다) 들어 주기도 했다. 그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마냥 지켜보던 이들도 슬쩍 한두 마디씩 끼어들었다.

“전무님, 저도……!”

“저도 한 잔 드리겠습니다!”

적당히 거절해야 할 텐데……. 그리 생각했다가 휘휘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권이도라면 알아서 잘 처신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감히 술을 강권할 사람도 없건만, 쓰잘데기없는 걱정이었다.

“전무님 보면 볼수록 좋은 분 같아요.”

“……그래요?”

내 옆자리에 있던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그에게 술을 따라 주며 적당히 대꾸했다. 권이도가……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던가. 사실 딱히 나쁜 버릇은 없었던 것 같다. 제법 성실하게 일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리고 진짜 너무 잘생기셨어요.”

“와, 맞아요. 저 요새 안경 안 쓰잖아요. 전무님 보면 시력 좋아지는 것 같아서.”

그 옆에 앉은 직원이 맞장구를 쳤을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력이 좋아진 것 같다니……. 술기운이 오르니 속에 있던 말들이 툭툭 나오는 모양이다. 피식피식, 입가를 가리고 웃는 와중에 권이도의 시선이 내 옆얼굴에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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