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90)화 (90/131)

90화. Retour des Saisons(1)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대표님!”

“조심히 들어가십쇼!”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 온통 어두컴컴해진 하늘엔 덩그러니 뜬 달 하나만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서늘한 기온 탓에, 나는 코트 깃을 여미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

직원들은 꾸벅꾸벅 인사를 건네고 저마다 택시를 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소고깃집도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고기가 정말 맛있었네, 오늘 술이 잘 받았네, 다음엔 뭘 먹어야겠네, 하는 말들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나는 대기하고 있던 김 실장에게 다가가 그가 문을 열어 주는 대로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미리 히터를 틀어놓은 건지 내부엔 따뜻한 공기가 가득했다. 여몄던 코트 깃을 놓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자, 운전석에 올라탄 김 실장이 얘기했다.

“한숨 주무시면 도착해서 깨워 드리겠습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차만 타면 꼭 나를 재우려고 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게 막 퇴근한 자식을 보는 듯한 안쓰러움이라는 걸 안다. 그러는 본인도 나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면서 말이다.

“아뇨, 집에 가서 자려고요.”

나는 느릿느릿 이야기하며 가만히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따듯한 내부와 달리 차갑게 식은 창문이 바깥 공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의사가 가능하면 쪽잠은 자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김 실장은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출발했고, 조용한 귓가엔 윙윙거리는 기계음만 들렸다.

“…….”

반짝이는 야경이 창밖을 스쳤다. 가물가물 눈을 감았다가 뜨자, 뽀얗게 김이 서린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더 추워지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Sejin’의 겨울 컬렉션을 내놔야 한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그걸 요새 들어 새삼 느끼곤 한다. 언제 날씨가 더웠냐는 듯, 이제 여름의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으니까. 푸르른 녹음은 이제 단풍잎으로 바뀌었고, 아이스크림 따위를 팔던 길거리에 슬금슬금 붕어빵 트럭이 나타났다.

가을, 겨울의 초입에 선 계절. 권이도의 집에서 나온 지도 벌써 석 달째였다.

* * *

‘당신을 많이 좋아했어요.’

그에게 건넸던 마지막 고백, 그 후로 석 달이 지났다. 그간 많은 게 바뀌었고, 많은 게 그대로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가령 밤이면 먹는 수면제라든가, 내가 다니는 회사 같은 것들.

그의 집에 모든 물건을 두고 나왔지만, 딱 하나 버리지 못한 게 ‘Sejin’이었다. 권이도가 마련해 준 회사였으나 내게는 소중한 터전이고 안식처였다. 그간 정이 든 직원들과 내 손으로 일군 프로젝트를 미련 없이 버리기란 불가능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Sejin’은 이미 완전한 내 소유였다. 권이도는 투자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회사 지분을 모조리 넘겨준 걸 보면 그의 일 처리가 얼마나 빈틈없는지 알 수 있었다.

‘전무님께서 대표님 말씀대로 하라고 그러셨습니다.’

이태성은 완전히 내 고용인이 되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팀장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던데, 왜인지 그건 죽어도 싫어 보였다. 그는 권이도와 내가 헤어졌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내가 계속 경호원으로 일해 달라고 말하자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혹시 주말 보장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희나와의 연애 전선도 뭐, 순조로운 듯했다.

‘축하드려요, 세진 씨. 이제 정말 조향사라고 해도 되겠어요.’

나는 그 석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중 가장 큰 성과가 바로, 한 단계 높은 등급의 조향 자격증이었다. 이희나의 말에 따르면 웬만한 회사엔 취직도 할 수 있을 거라던데, 어차피 나와는 무관한 얘기였다. 나는 제품개발팀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향수를 만들어 봤고, 그중 몇 개는 아직도 개발 중이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그런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괜찮냐는 걱정을 끝도 없이 들었다. 보란 듯이 평소 같은 삶을 살려고 했는데, 남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 실장은 물론, 이태성과 최 팀장, 끝내 윤 팀장까지 나서서는 내 안부를 물어 왔다.

‘뭔가…… 더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요.’

사실,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조금만 멍하니 있으면 죽는 순간이 떠올랐고, 끝내 마지막에 보았던 권이도가 그려졌다. 모든 게 지난날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따금 헤아릴 수 없는 공허함이 내 모든 걸 앗아 가는 기분이었다.

‘정세진 님, 들어오세요.’

그래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하직원들의 대화(아내가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를 듣고 알아본 것인데, 반복적인 상담이 생각보다 도움이 된단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다 보면 정신적인 문제도 감기처럼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괜찮은 의사를 만날 때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섣불리 동정하지 않되, 너무 말이 많지 않고, 적당히 거리감 있는 태도가 중요했다. 내 이야기를 너무 캐묻지 않는 대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경험도 필요했다.

다행히 병원을 네 번쯤 옮기자,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개인 병원이었는데, 의사의 성씨가 ‘심’ 씨였다. 혹시 선호병원 심 교수를 아느냐고 물으려다, 굳이 알은체하지 말자는 생각에 관두었다.

‘대개 수면 중에 일어나는 문제는 수면의 질을 개선하면 좋아지거든요.’

상황은 나아졌지만, 악몽은 아직까지도 꾸곤 한다. 불면증도 완전히 낫진 않았고, 그럼에도 전처럼 수면제를 몇 개씩 씹어 먹는 일은 없었다. 우울증 약을 먹는 건 좀 귀찮았는데, 먹고 나면 몽롱하게 고양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꾸준히 노력하시니까 금방 나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결핍된 부분이 있고, 그걸 어떻게 채워 나가는지에 따라 상황이 바뀌기 마련이다. 석 달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소한 부분을 바꾸기엔 또 충분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죽을 때의 통증을 떠올리면 지금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보다 살만했다. 아니, 괜찮았다. 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차츰 안정되고 있다고 느꼈다.

어딘가에 속하길 포기했더니, 사실은 이미 많은 곳에 속해 있더라. 나는 ‘Sejin’의 대표고, 직원들의 상사였으며, 다니는 병원의 환자이자, 이희나에겐 사업 파트너였다. 비록 가장 최초의 바람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외에 많은 것들을 이룰 테니 괜찮지 않을까.

“와, 이게 무슨 일이야.”

회식이 있고 다음 날, 느지막이 출근한 사무실은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직 모든 직원이 출근한 건 아니기에 자리는 반 정도 비어 있었다. 직원들은 내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다.

“대표님 이거 보셨어요? 선호그룹 해체된다는 거?”

그들이 보여 준 건 선호그룹 전략기획실의 공식적인 해체를 예고하는 기사였다. 최근에 있던 대규모 구조 조정과 관련하여 그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나로선 놀랍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직원들이 보기엔 그렇지 못했나 보다.

“이러면 주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에이, 그런 걸로 안 떨어져요.”

“맞아요, 선호는 뭘 해도 안 망하지.”

숙덕거리는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적당한 타이밍을 골라 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선호그룹의 해체라. 언론이 떠들썩해질 소식이었으나, 모두가 예상하듯 그 규모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각각의 계열사가 부피를 키워 결과적으로 더 높은 자리에 우뚝 서겠지.

그리고 아마, 그중 대부분은 권이도의 손에 들어갈 테고.

‘부사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이거든요.’

얼마 전, 앞서 예고한 대로 권이경이 부사장 자리를 내려놨다. 권상미가 권병욱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와중에, 차기 부회장 후보로 꼽히는 게 바로 권이도였다. 권이경과 어떤 협상을 한 건지, 그는 물산 쪽 지분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싸웠기 때문일까. 그리 짐작했지만, 금세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권이도라면 과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집에 잡혀간 이후, 기업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

“일정 브리핑해 드리겠습니다.”

김 실장은 간결히 오늘 있을 일정을 알려 줬다. 오전엔 별거 없었으나, 점심엔 투자처와의 미팅이 잡혀 있었다. 장소는 선호 계열사의 한정식집인 의선당이었고, 상대는 당연히 선호 측 사람이었다.

“오후에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들어가셔도 되는 일정입니다.”

회사에 복귀할지 말지, 그건 시간을 봐서 정해야 할 것 같았다.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일찍 끝나면 돌아와서 개발하던 향수를 마저 만지는 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

“감사합니다. 나가 보셔도 돼요.”

꾸벅, 인사한 김 실장이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들고 있던 펜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렸다. 선호와의 미팅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참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 기분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다른 이의 기분이.

“……아침부터 난리네.”

눈을 떴을 때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권이도가 느껴졌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날 맺은 각인은 아직까지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꾸만 뒤숭숭한 감정이 드는 것처럼. 이따금 권이도가 느끼는 절절한 설움이 전해지곤 했다.

내가 각인의 문제점을 실감한 건, 그의 집에서 나온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종일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하루를 꼬박 잠들었던 나는, 눈을 뜨자마자 이유 모를 슬픔에 잠식되어야만 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한 감정이 물밀듯 가슴 언저리에 밀려들었다.

‘…….’

권이도의 감정이었다. 카드를 보며 울었을 땐 헷갈렸지만, 그 당시에 느낀 건 분명 권이도의 것이었다.

나는 각인이 두 번째였지만, 감정이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지는 몰랐다. 첫날엔 조금 얼떨떨했을 뿐인데 둘째 날부터는 그의 모든 게 적나라하게 구분됐다. 지금 슬퍼하고 있다는 것,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는 것, 금방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괴로워한다는 것.

처음엔 어땠더라. 조금은 통쾌한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그 완벽해 보이던 사람이 끝내 나를 놓치고 후회한다는 게, 내게는 마냥 이기적인 만족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의 얘기지. 내가 그를 느끼는 만큼, 그 또한 나를 느낄 텐데. 그렇다면 최소한 제 마음을 다스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나는 서서히 바로잡고 있는데, 반대로 그는 점점 망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이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파도가 몇 달이 지나도록 점점 거세지기만 하는 걸 보면. 혹시 감정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건지, 그는 내가 가라앉힌 슬픔마저 가져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는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어.’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이럴 거면 나를 놓지 말지. 그렇게 다정한 척 내게 자유를 안겨 주지 말지. 더 욕심을 내서 나를 끝까지 가진 뒤에, 내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곁에서 노력했어야지.

나를 거슬리게 할 생각이었다면 성공이다. 그러나 동정심을 느끼게 할 계획이었다면 실패였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아주 조금도 권이도가 안쓰럽지 않았으니까. 그가 미워서가 아니라, 감히 그 감정을 동정할 수 없을 만큼 이해가 돼서.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떤 생각이건 오랜 시간을 떠올리면 마침내 고민이 된다고 했다. 생각이 더 깊어져서 고민이 되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잡념을 떨쳐 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정말 널 사랑했어.’

“…….”

탁, 펜을 내려놓고 의자를 뒤로 끌었다. 넓은 통유리 너머로 넓은 찻길이 보였다. 여전히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고, 그의 감정 역시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쁘게 움직이면 무시할 수 있는 정도였으나, 지금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손을 가슴에 대고 가만히 숨을 죽였다. 이마를 콩 창문에 기대자 차갑게 식은 유리가 느껴졌다. 얼굴에 열이 올랐었나 보네. 그 사실은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세진아.’

두근거리는 박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오로지 권이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정과 기분이 전해진다고 해서 두근거림까지 전염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건, 반 정도는 내 몫이라는 거다.

“……권이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이름이 가슴에 응어리졌다.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은 내가 죽기 전 그를 불렀을 때와 비슷했다. 그의 손을 놓은 게 석 달, 그리고 그를 보지 못한 게 석 달,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던 것도 벌써 석 달.

인정해야 했다. 나도 가끔, 권이도가 그리웠다.

* * *

만들던 향수를 계속 손보다 보니 오전 시간대가 지나갔다. 프로젝트 하나가 갓 끝난 참이었기에 다른 직원들은 드물게 한가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 어제의 회식으로 출근도 늦었던 터라 점심시간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카드를 쥐여 주고 의선당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권이도의 카드로 사줬지만, 이제는 내 사비로 사줘야 했다. 사실 식사는 알아서 챙기도록 둬도 될 텐데, 습관이 되어 버린 이상 굳이 그만둘 필요도 없었다.

“정세진 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의선당은 마당이 있는 넓은 한옥으로, 일반 손님들을 받는 본채와 귀빈들을 모시는 별채로 나뉘었다. 서울과 제주도, 딱 두 곳밖에 없는 한정식집이었고 하루에 받는 예약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차부터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곱게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빠져나가고 드르륵, 장지문이 닫혔다. 약속 시간까진 10분 정도가 남아 있었으니 곧 있으면 미팅 상대도 도착할 터였다. 나는 괜히 시계를 한 번 만지작거리고 넥타이와 재킷 깃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내 것이 아닌 기대감을 느끼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침엔 우중충하던 권이도의 기분이 지금은 조금 괜찮아 보였다. 적어도 지금 당장 눈물을 쏟을 것처럼 처참하지는 않았다. 근 몇 달간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반대로 내 기분은 조금 가라앉았다.

뭐…… 그래, 괜찮아질 때가 되긴 했지. 당신도 언제까지고 나를 그리워만 할 수는 없으니까.

“실례합니다.”

문밖에서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억지로 입매를 가다듬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차가 나오면 그거나 마시면서 속을 진정시켜야지. 그리 생각하며 “네.” 하고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둔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일까. 그 짧은 찰나에 몇 번이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나한테 이 정도면…… 권이도는 일상생활이 안 될 텐데.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 장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무 냄새가 났다. 은은하고 묵직한 향기가 들이마신 숨결에 섞여 들었다. 예민해진 촉각이 그 모든 공기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순간적으로 넋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누구 것인지 모를 두근거림이 온몸에 퍼지는 바람에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까먹은 기분이었다.

“……아.”

무려 석 달 만에 보는 권이도였다.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늘 그랬듯 완벽한 차림새를 한 권이도. 정장 바깥에 걸친 트렌치코트조차 화보에 나올 것처럼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권이도. 한층 수척해진 얼굴로,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권이도.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가만히 눈을 깜박이는 권이도.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