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89)화 (89/131)

89화. Muguet du Bonheur

시간을 돌리는 게 가당키나 할까. 이미 한 번 지나온 순간을 다시 마주하고, 잘못된 선택을 돌이킬 수 있다는 게. 곧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내게 닥칠 위험을 미리 방지한다는 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차곡차곡 정리된 기억들은 열 마디 말보다 더한 증거가 되었다. 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순간들이 권이도와의 추억을 낱낱이 보여 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기억들은 모두 사실이고 나는 권이도와 두 번의 만남을 겪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치채지 못한 사이 조금씩 달라진 현재를 살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늦은 새벽이었다. 그때까지도 내 곁을 지키던 권이도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소는 더 이상 서재가 아니었고, 부서질 것처럼 아프던 몸도 더는 아프지 않았다.

‘세진아.’

그는 가물가물 눈을 뜬 나를 보며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불렀다. 나지막이 가라앉은 음성은 사무치는 후회로 얼룩져 있었다. 유독 선명하게 느껴지던 페로몬조차 그의 기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왜 그랬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많았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다 지난 지금에야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왜…….’

그러나 돌이킬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고, 그걸 놓친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변명하지 못했지만, 권이도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무언가 잘못됐단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모든 걸 그르치고 말았다.

‘나한테 그러지 말지…….’

나를 무시하지 말지. 내 말을 조금만 더 들어 주지. 끝없는 이해를 바라는 게 이기적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미안해.’

‘…….’

‘미안해, 세진아.’

권이도는 내 손을 붙잡고 제 얼굴에 가져다 댔다. 마지막에 보았던 그의 얼굴처럼 짙은 눈동자에 처연한 빛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고개를 숙인 그가 숨결처럼 속삭였다.

‘내가 너무 큰 잘못을 했어.’

맞닿은 손을 통해 그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와 각인한 탓에 마치 한 몸처럼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가진 후회, 그리고 과거에 대한 원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했던 나를 향한 애정까지.

‘내가 너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졌다. 모자란 거 없던 권이도가 사실은 누구보다 두려운 눈을 하고 있다는 것. 늘 여유로워 보였던 그가 사실은 누구보다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

‘너를 망쳤어.’

참담한 한마디는 그가 가진 가장 큰 미련이었다. 나를 망쳐서 사지로 내몰았다는 후회. 나라는 사람을 끝내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죄책감.

우리는 한참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그 또한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터였다. 이미 한차례 지나간 폭풍이었기에, 내 기분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왜 나한테 권이정을 보냈어요?’

그래서 물을 수 있었다. 내가 모든 걸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내가 권이도의 선물이라던 권이정의 한마디를.

각인으로 전해지는 기억은 어렴풋이 데자뷔를 느끼는 정도였다. 사물에 대한 부정적 감정, 혹은 좋은 느낌,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 기억으로 뭉뚱그린 것이다. 그가 아팠다는 사실은 알아도, 왜 아팠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보낸 게 아니야.’

그는 내 손을 꽉 붙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간헐적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그의 감정을 느끼는 만큼, 그에게도 내 감정이 전해지고 있을 터였다.

‘나는 정말 널 사랑했어.’

‘…….’

이 말을 이제야 듣게 됐다.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건 굳이 각인으로 연결된 마음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집에 들어온 이후 내게 보여 준 다정함, 그리고 온기 따위의 것들이 모든 걸 보여 줬으니까.

‘……그래도 죽지는 말지.’

권이도가 그랬었다. 나는 그의 눈앞에서 죽었고, 그는 나를 따라서 죽었다고. 내 세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그냥 거기서 아파하지.’

그러나 내가 죽은 뒤에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잘해 준다고 해서 과거의 기억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 들켜 버릴 진실이었다면 애초에 숨기지조차 말았어야지.

‘결국 날 또 버릴 거면서…….’

그 말을 했을 때도 권이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온전히 전해지는 마음이 내게도 저릿저릿한 통증을 안겨 줬다. 그가 내 말에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어.’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꿈을 꾸는 것처럼 달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가 시간을 돌아 다시 나와 마주쳤을 때, 그때 느꼈을 감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리가 다시 만나서, 다시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까.’

약혼식 날, 권이도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그래서 내 손을 잡는 순간엔 눈물을 흘릴 것처럼 벅찬 표정을 지었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보며 모든 걸 되돌릴 기회라고 여겼을까.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길게 늘어진 말꼬리가 울음을 참으려는 것처럼 들렸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 또한 그러지 못했으니 원망할 수 없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말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근데 내가 널 망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간간이 내비치던 애틋함이 그런 종류였을까. 다가올 듯 다가오지 않았던 그 미묘한 선은 권이도 스스로 만들었던 방어 체제일지도 모른다.

‘나한텐 널 행복하게 해줄 자격이 없으니까…….’

‘…….’

‘그래서 널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화가 났던 건, 그가 내게 또다시 선택지를 주지 않았단 점이었다. 잘못을 밝히는 게 두려워 사실을 숨겼고, 모든 걸 덮어놓은 채로 나를 내치려 했다. 그게 나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한들, 내 손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세진아.’

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 그리 애원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말로는 자신을 떠나라고 하면서,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애원.

‘너는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어.’

‘…….’

‘향수를 만드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서는 것도, 그리고 이 집을 나가는 것도.’

그의 말대로였다. 과거를 떠올리고 나니 나를 속박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버림받는 게 두렵지도 않았고, 혹시나 그가 나를 싫어할까 괴로워하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나를 떠나는 것까지.’

그는 내게 모든 발판을 마련해 줬고, 내게서 딱 두 가지를 빼앗아 갔다. 이미 곪은 관계였던 가족들과 미처 보답받지 못할 마음. 버리고 말고를 정하는 건, 권이도가 아니라 사실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약혼은, 없었던 일로 해요.’

무어라 더 따지지 못한 건 자꾸만 괴로운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신체 일부분을 똑 떼어 놓은 것처럼 권이도가 아파하고 있어서. 금방 숨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라.

‘권이도 씨도 그럴 생각이었을 거고…….’

‘…….’

‘나도 당신 얼굴을 볼 자신이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었다. 손가락을 움찔 떨면서도, 그는 차마 나를 붙잡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공기 속에 흔들리는 그의 시선만 또렷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잘 있으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는 그를 보며 눈을 내리깔았을 뿐.

‘당신을 많이 좋아했어요.’

‘…….’

이렇게 아픈 감정을 알려 줄 거라면 나와 각인하지 말았어야 했다. 감정의 전염성이 이토록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더 신중할 걸 그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억을 되찾은 걸 후회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나는 그와의 약혼을 마무리했다. 그의 집에 들어갈 때처럼 작은 캐리어 하나만 들고 권이도를 떠났다. 그와의 추억이 남은 물건은 전부 그대로 둔 채로, 내 모든 기억을 그에게 버리고서.

“……정말 괜찮으십니까?”

주말 아침부터 나를 데리러 온 김 실장은 귀찮은 기색 없이 내 안위부터 살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대신 아픈 데는 없냐고 세 번이나 물었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괜히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제가 김 실장님한테 많이 의지하긴 하나 봐요.”

“예?”

“그 상황에서도 김 실장님 생각이 먼저 나더라고요.”

권이정과의 일이 있던 날,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김 실장이 떠올랐다. 그 또한 아버지와 한패라고 생각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하진 못했나 보다.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볼 수가 없네.”

이번엔 아버지를 배신해 놓고 왜 과거엔 그러지 못했을까. 권이도는 그러한 과거를 알면서도 왜 선뜻 김 실장과 손을 잡았을까. 내가 도와 달라고 연락한 뒤에 김 실장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어보면 안 되는 겁니까?”

“아뇨, 그걸 답해 줄 상대도 대답을 모를 거라서.”

그는 의아한 눈으로 백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봤다. 아마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는데, 나로서도 더 해줄 말이 없었다. 과거의 당신이…… 아니, 정확히는 과거도 아닌 당신이 내게 등을 돌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병원으로 먼저 가주세요. 주말에도 여는 데 있죠?”

나는 오피스텔로 가기 전에 우선 병원부터 들렀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난밤, 그가 내게 노팅한 채 제 존재를 확실히 남겨 놨으니까.

“…….”

김 실장은 내가 말하는 병원을 듣고도 한참을 침묵했다. 차를 돌리긴 했지만 납득 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내게 한마디를 물었다.

“……경찰엔, 연락 안 하셔도 되는 겁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습니다. 거기에 별로 안 좋은 기억도 있고.”

괜히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수갑이 채워졌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무섭지 않은 건, 그 후로 또 많은 기억이 쌓였기 때문이겠지.

“김 실장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

김 실장은 이번에야말로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내 표정을 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가만히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것도 끼우지 않은 약지를 만지작거렸다.

* * *

오랜만에 찾은 오피스텔은 여전히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사람을 시켜 청소하는 덕에 내가 손봐야 할 곳도 많지 않았다. 나는 캐리어를 한쪽에 세워 두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기껏 간다는 게 그 조그만 오피스텔이면서.’

“……이 집이 작진 않은데.”

권이도가 뭐라고 했더라. 도망치기엔 적당한 장소가 아니라고 그랬던가. 그가 여길 어떻게 알았는지, 그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그런 것들은 좀 물어볼 걸 그랬다.

넓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침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둘러본 뒤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로지 나 혼자만 남은 공간. 그 정적인 침묵 속엔 여태껏 잊고 있던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이 침대에서, 권이도와 내가 각인했다. 그에게 도망친 뒤에 고작 이틀 만에 잡혀간 곳도 여기였다. 이제는 기억에만 남은 일이었지만, 그것만큼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잊지 못할 것이다.

“각인…….”

그와 멀리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권이도가 느껴졌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는데, 그냥 그가 울고 있단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진 않더라도, 속에선 계속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칠 거다.

“……별거 없네.”

반대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오랜 꿈을 꾼 것처럼 그동안 일어났던 일이 모두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달라진다던데.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모든 일에 초연해졌다. 이전처럼 죽고 싶진 않았고, 그냥 마냥 남 일같이 느껴졌다. 막상 깨어나면 별거 아닌 악몽처럼, 이미 지나간 일이라 무덤덤해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왜 이번엔 히트 사이클이 안 왔을까. 권이정이 집으로 찾아왔던 날은 권병욱 회장이 별세한 날일 텐데. 날짜까지 겹치는진 모르겠지만, 그 언저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만약 건너뛰지 않았다면 권이도의 러트 사이클과 겹쳤을 거다.

“몸이 기억하나…….”

머리가 모든 걸 잊었을 때도 나는 총을 보면 두려움을 느꼈다. 권이정을 향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이따금 권이도를 보면 눈물이 났다. 어쩌면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은 것도, 본능이 모든 걸 기억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세진아.’

“……하아.”

계속 생각이 깊어지는 바람에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앉아 있다간 권이도의 감정에 동화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선 캐리어부터 열어서 가지고 온 옷을 몽땅 꺼내 드레스룸에 정리했다.

드레스룸에서는 약혼식 날 입었던 예복과 다른 정장들을 발견했다. 내가 입고 다니던 옷들과 단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옷. 민재가 딱 내 수준이라고 말했던 기성복이 그것이었다.

‘저게 네 수준이지.’

이 새카만 정장을 살 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모든 걸 잊어버린 사이, 권이도는 나를 기억하고 있던 걸까. 결혼을 약혼으로 바꾸고, 삭막한 식장을 꽃으로 채우면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자꾸 궁금했다.

“…….”

애써 고개를 젓고 드레스룸을 나왔다. 세수라도 해야겠단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로션 따위가 놓인 선반에서 눈에 익은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립스틱 크기의 조그만 병은 약혼식 날 뿌렸던 향수였다.

‘회장님께서 주신 겁니다.’

페로몬 향수였지, 아마. 향은 퍽 좋은 편이었으나 권이도는 그 조잡한 페로몬을 가릴 생각이냐며 한심하단 시선을 보냈다. 아무튼 성격 참 대단하지. 초면인 상대에게 보통 그렇게까지 말하진 못할 텐데.

“……아.”

퍼뜩, 정신을 차렸다. 또, 권이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조금만 멍하니 있으면 떠오르는 게 온통 그와의 기억이었다. 원래는 하나여야 할 시간이 두 개가 되는 바람에 내가 곱씹어야 할 순간까지 늘어나고 말았다.

‘나와의 각인이 정세진 씨한테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각인을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던가. 나를 묶어 놓기 위한 일종의 장치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그다지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으니, 참으로 모순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한 번 맺은 각인은 상대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는 이상 누구 하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될 터였다. 물론, 그 수명마저 같아졌으니 중간에 끊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나는 차오르는 한숨을 삼키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는 와중에 문득 시야에 무언가 걸렸다. 공병 옆에 가지런히 놓인 무언가가.

「정세진」

약혼식 날, 꽃다발과 함께 받은 작은 카드였다. 홀린 듯 반으로 접힌 카드를 펼치자, 자필로 적은 은방울꽃의 꽃말이 보였다. 그 당시엔 단순히 로맨틱하다고 여겼던, 미처 그 의미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던 한 문장이.

「다시 찾은 행복」

“…….”

아무래도, 권이도의 감정에 동화되어 버린 모양이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카드 위에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미처 참아 내지 못한 설움이 눈 깜박할 새에 후두둑 떨어지고 말았다.

“……하.”

네게는 내가 다시 찾은 행복이었을까. 나는 널 악몽으로 기억하는데, 너는 그 악몽마저 놓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끝내 나를 울리고, 내게 잊지 못할 흔적을 남겨 놨다.

“흑…….”

눈물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흘렀다. 그게 권이도를 향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원망인지, 혹은 과거를 향한 후회인지도 모른 채. 내 슬픔이 오로지 나의 것인지, 아니면 그의 슬픔이 옮은 건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의 약혼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너에게 행복을 찾아 주지 못했고, 마침내 홀로서기를 다짐했다. 긴 시간을 돌아 되찾은 기억은 그렇게 하루 만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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