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86)화 (86/131)

※ 본 회차에는 강압적 성관계 등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86화. Hiver Rigoureux(14)

그날의 일이 있고도 권이도와 내 사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여름은 점점 무르익는데, 반대로 우리 관계는 혹독한 계절에 멈춰 섰다. 그는 여전히 날 무시했고, 나는 그에게서 관심을 구걸하길 포기했다.

권이도의 것을 입으로 받은 뒤, 며칠간은 뜨거운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목구멍이 잔뜩 부어서 누군가와 대화할 일이 없다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운 좋게 식사는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것들로 준비됐고 후식은 대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부었던 목도 가라앉았다. 그날의 일은 되풀이되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먼발치에서 권이도를 바라봤다. 가만히 있는 날들이 너무도 불안해서, 차라리 그가 날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비정상적인 바람까지 들었다.

사고에 장애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가 내게 한 짓이 폭력임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고 싶었다. 이미 무너진 가족의 울타리 대신 또 다른 허울이라도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계속 이런 삶이 이어지는 걸까. 매일 방에 틀어박혀 그런 생각만 했다. 권이도는 왜 나를 내보내지 않는 건지, 그렇다면 나는 그가 나를 버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지.

그나마 유일한 기대는 그에게 내게 아직 쓸모 있을지도 모른단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끝까지 사용했듯 권이도도 그때까진 나를 두고 볼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때까진 이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된단 말이겠지.

그러던 어느 날, 주방장이 차려 준 점심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려던 즈음이었다. 두 숟가락도 뜨지 못한 채 주방을 나왔는데, 이른 시간부터 출근했던 권이도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마주치자마자 굳어 버렸지만, 그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가 내려온 건, 5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원래 입고 있던 정장이 아닌 새카만 정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원래도 채도 낮은 색을 입긴 했지만, 오늘은 어디 장례식장이라도 가는 것 같다.

“권…….”

권이도 씨.

그렇게 부르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그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뒷모습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지. 근래엔 늘 뒷모습밖에 보질 못했는데 새삼 그 단정한 걸음걸이에 사무치는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

권이도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먹은 게 올라올 것 같았다. 가슴 언저리가 무겁게 내려앉고 속이 잔뜩 뒤집혔다.

나는 황급히 1층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를 부여잡은 채 속을 게워 내려 했으나, 정작 튀어나온 건 토기가 아닌 눈물이었다.

“흐윽…….”

저항 없이 터진 흐느낌은 도무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멈춰지질 않았다. 권이도의 뒷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보고 웃어 주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흑, 흐읍…….”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언가 잘못됐단 사실은 알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바로잡으면 좋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는데, 이제 와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현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거다. 멍청하고 무능한 머리로는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겠지.

“……흑, 흐윽.”

차라리 나를 원망했으면 좋겠다. 화를 내고 미운 소리를 하며, 그날처럼 나를 괴롭히길 바랐다.

대놓고 드러내는 적의보다 불확실한 감정이 두렵단 걸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 바람에 권이도와 나눴던 감정들조차 흐릿해졌다.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따뜻함이라는 걸 알기에 더 뼈를 발라내는 것처럼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긴 시간, 화장실에 주저앉아 설움을 토해 냈다. 머리가 핑핑 돌 만큼 운 뒤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허윽.”

폐부가 납작 짓눌리는 듯했다. 정체 모를 꽃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랫배에 열기가 차오르고, 터지듯 페로몬이 분출됐다.

“흡…….”

히트 사이클이었다.

* * *

권이도가 무슨 지시를 내린 건지, 고용인들은 내가 어디에 있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전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살갑게 무언가를 챙겨 주지도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식사를 차려 주고 내가 식사할 때마다 방을 치워 놨을 뿐.

“허억, 헉…….”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있건 그들이 나를 찾을 일은 없었다. 적어도 저녁을 먹기 전까진 이렇게 화장실에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 정말 온갖 볼품없는 짓은 다 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숨을 헐떡이던 때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으니, 아마 상대는 권이도일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아마 누군가가 보면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을 거다. 내가 그에게 가려는 이유는 차라리 다리를 벌리겠다고 애원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영영 외면받을 바에는, 그런 방식으로나마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받을 게 있어서…….”

그런데 현관으로 향했을 때,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권이도가 아니었다. 권이도와 마찬가지로 새카만 정장을 입고, 고용인을 향해 짜증스럽게 지시하던 사람. 회장인 권상미가 아닌, 그의 남편인 이석인을 닮은 남자.

“어?”

“…….”

“뭐야, 그 재수 없는 권이도 새끼 오메가 아니야.”

권이정이었다. 온화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인상을 팍 찌푸린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귀찮다는 듯이 고용인을 물리고 저벅저벅 내 쪽으로 걸어오기도 했다.

“정세진? 그런 이름이었지, 아마.”

“…….”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본능적인 위기감이 불쑥 엄습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흣.”

권이정이 내 팔을 덥석 붙들었다. 밀어 낼 생각이었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으나 오히려 더 안기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와, 페로몬이…….”

그는 뒷말을 뭉뚱그리며 나를 조금 더 세게 품에 안았다. 표정엔 여전히 의아함이 가득했지만, 이내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픽 웃음을 흘렸다.

“아…… 그런 거였어?”

“흐, 이거 놓으…….”

“씨발, 페로몬 질질 흘리면서 어디서 내숭이야.”

그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그는 힘없이 늘어진 나를 끌어안고 고용인들을 둘러봤다. 그들에게 도와 달란 시선을 보내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야, 얘 방 어디야?”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3층으로 올라왔다. 아무리 열성이어도 알파는 알파인지, 그는 늘어진 나를 부축하는 게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히트 사이클이 온 몸으로는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하여튼 그 새끼도, 결혼까지 해 놓고 존나 구석에 처박아 놨네.”

“하아, 하…….”

“조금만 참아. 너도 이왕 하는 거 침대가 좋을 거 아니야.”

권이정은 방문을 열며 연신 느물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제가 섹스 매너는 좋다느니, 그 새끼랑은 다르게 만족할 거라느니, 그가 지껄이는 말만 들어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상상됐다.

“흣, 아, 안 돼……!”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래서 권이정을 확 밀어 내고 방 안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핸드폰을 찾아 권이도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나보단 권이정이 훨씬 빨랐다.

“씨발, 뭣도 아닌 오메가가…….”

“악!”

머리채가 붙잡혔다. 권이도가 붙잡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권이정이 나를 휙 넘어뜨려 몸으로 내리눌렀다.

“싫다는 소린 아까 걔들 있을 때 했어야지.”

“아, 안 돼…… 이거 놔……!”

“아니면 페로몬이라도 갈무리하든가. 씹, 속 보이는 새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바지가 벗겨졌다. 속옷까지 모두 벗긴 뒤에 권이정은 이미 젖은 아랫도리를 보며 비웃음을 참지 않았다. 딱딱한 바닥에 나를 눕힌 채로 양다리를 벌려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벗기면 식을 줄 알았더니…… 여기 색이 씨발…….”

“이거 놓으…… 하지, 하지 마……!”

온 힘을 다해 거부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니, 페로몬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오히려 유혹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적당히 반항하면 더 꼴리니까.”

“안 돼, 싫어…… 아흑…….”

“하, 이런 건 또 처음인데…….”

권이정이 내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벌레가 기어가듯 미끄러진 손길이 간신히 오므렸던 양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동시에 아래쪽에 무언가 닿아 왔다.

“아악……!”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긴장으로 인해 수축된 내벽을 굵은 성기가 억지로 파고들었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처럼 끔찍한 고통이었으나, 권이정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 아…… 흐윽…….”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이도가 비슷하게 삽입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적당히 페로몬에 취해 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히트 사이클이 왔음에도 전혀 몸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싫, 악…… 아파, 아……!”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어깨를 밀어 내고 붙잡힌 다리를 마구 버둥거렸다. 몸으로 나를 내리누르던 권이정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 목을 콱 붙잡았다.

“씨발, 가만히 안 있어?”

“캑…….”

알파의 완력은 기본적으로 성인 남성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권이정은 우성이 아니었지만, 오메가인 나와 비교할 바는 못 되었다. 폐가 쪼그라드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바람에, 손톱으로 그의 손목을 확 긁어내는 순간이었다.

“……!”

짝! 커다란 파열음이 울렸다. 눈앞이 번쩍이며 점멸하고 머릿속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권이정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어마어마한 힘으로 내 뺨을 갈긴 탓이었다.

“아…….”

“별것도 아닌 게, 씨발.”

억지로 욱여넣었던 성기가 쑥 빠져나갔다. 자꾸만 머리가 어지러워서 눈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권이정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나를 뒤집고는 날개뼈 사이를 꾹 누른 채 다시 삽입했다.

“악……!”

입 안에선 온통 피 맛이 느껴졌다. 뺨을 맞으며 안쪽이 터지고, 신음을 참으며 또 한 번 혀를 깨문 탓이었다.

“헉, 허억…….”

벌어진 입으로 타액이 줄줄 흘렀다. 바닥에 떨어진 침에는 역시나 새빨간 피가 섞여 있었다. 내 머리통을 붙잡아 바닥에 처박은 권이정이 귓가에 역겨운 숨결을 흘렸다.

“……하, 그 새끼랑 잔 거 맞아? 구멍이 씹, 아다 같은데.”

“아, 흑…….”

“괜히, 헉, 힘이나 빼게 만들고…….”

쾌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아프고, 괴로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핸드폰을 향해 기어가려고 했으나 권이정은 별반 힘들이지 않고 나를 짓눌렀다.

“악, 아흑…… 싫, 흐, 허억……!”

푹, 푹, 밀려든 성기가 잘 벼려진 칼과 같았다. 목을 졸리고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숨을 쉴 수는 없었다. 지나친 고통이 밀려들 때마다 바닥을 긁었더니, 어느 순간부턴 손톱 틈새에 피까지 맺혀 있었다.

“걸레 같은 새끼……. 봐, 너도 좋으니까 이렇게 조이는 거 아니야.”

“허윽, 악……!”

“페로몬도…… 후, 끝내주네.”

권이정이 내 목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페로몬 역시 나를 녹일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반응하긴커녕, 그냥 연신 욕지기만 솟구쳤다.

“제발…… 그, 흑…… 우욱…….”

끝내, 위장이 뒤집히는 것처럼 헛구역질이 나왔다.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것도 없었지만, 시큼한 위액이 목으로 역류했다. 토할 것처럼 몸을 들썩이는 나를 보고도 권이정은 익숙하게 허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욱, 우욱…….”

“허억, 씹…… 존나 조여…….”

푹! 밀려 들어온 성기가 배 속을 난도질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고, 몇 번이나 구역질을 해야만 했다.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은 채 달뜬 숨을 토해 낸 권이정이 키득키득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권이도가 말한 선물이 이거였을 줄은…….”

“…….”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통증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권이정의 한마디만 계속해서 되풀이됐을 뿐.

“……아.”

권이도가 말한 선물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나를 제 형에게 넘긴 것이었다. 이제 쓸모를 다했으니, 새로운 쓰임새를 찾기로 한 걸까. 제 손으로는 건드리기도 싫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긴 걸 수도 있었다.

“진작 이럴 것이지.”

무력감이 밀려들었다. 저항할 의지 역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가만히 있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권이정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아, 흑, 윽…….”

“하아, 씹…….”

목덜미에 코를 문지르는 감촉이 생생했다. 원래라면 소름이 끼쳤을 텐데, 지금은 그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권이도가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했을 뿐.

“흐윽…….”

심장을 통으로 들어내면 이럴까.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더 끔찍했다. 눈물이 쉼 없이 흘러서,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숨조차 쉬어지질 않았다.

“……크흑.”

퍽, 깊숙이 처박힌 성기가 부풀기 시작했다. 이미 너덜거리는 배 속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배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데도, 그에게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권이정은 결국 내 안쪽 깊은 곳에 사정했다.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노팅한 그대로 한가득 정액을 토해 냈다.

“하아…….”

“……흡.”

“후, 처음부터 얌전하게 굴었으면 좋았잖아.”

그의 손이 내 뱃가죽 위로 올라왔다. 삽입된 성기를 느끼려는 것처럼 꾹꾹 누르더니 키득키득 징그러운 소리를 내며 웃는다.

“어차피 내 애나 그 새끼 애나 비슷할 텐데…….”

오메가의 임신 확률은 형질의 우열과 주기, 그리고 노팅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권이정보다 훨씬 우성이었지만, 히트 사이클에 노팅까지 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쯧,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천천히 빠져나간 성기가 엉덩이에 문질러졌다. 찢어졌을 게 분명한 입구에선 주르륵, 묽은 정액이 흘러내렸다. 가물가물 흐려진 시야로, 허벅지에 흘러내리는 피가 또렷이 보였다.

“가끔 붙어먹자고. 응?”

“……흐.”

모든 게, 끝난 기분이었다. 그에게 억지로 당해서가 아니라, 그게 권이도가 사주한 일이라는 부분이. 미처 놓지 못했던 희망을 이제는 정말 놓아 버려야 한다는 점이.

권이정은 금세 옷차림을 갈무리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그가 빠져나가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나를 두고 떠나던 권이도와 겹쳐 보였던 건 왜인지.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래서였다. 이 집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도 더는 누워 있을 수 없었던 건.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으로 기어갔다. 다 찢어진 옷가지가 자꾸만 무릎에 걸렸다. 핸드폰은 액정이 깨져 있었지만 다행히 전화를 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뚜르르, 신호음이 흐르는 동안 속으로 몇 번이나 빌었는지 모르겠다. 제발 전화를 받길.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를 도와주길.

뚝, 신호음이 끊겼다. 그 사실에 절망하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아…….”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서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손을 내밀 곳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면서도, 그게 나를 내버려 둔 사람이란 사실엔 허탈함이 들었다.

“저 좀…….”

-……

“저 좀 도와주세요.”

내가 들어도 처참한 목소리였다. 다 쉬어 빠진 데다 덜덜 떨리기까지 했으니. 한참 침묵하던 김 실장은 내가 커다랗게 숨을 내쉴 즈음에야 대답했다.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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