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Hiver Rigoureux(6)
아주 오랜만에 걸린 열 감기였다. 아침이 되자마자 찾아온 온 김 실장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병원부터 가자고 이야기했다. 딱히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기에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아 권이도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오피스텔에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권이도가 돌아오려면 일주일이나 남았고, 괜히 몸 관리를 못 해 감기에나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시킨 일을 하려면, 권이도가 없는 지금이야말로 기회였다.
‘……정말 권이도 전무 집으로 가십니까?’
김 실장은 탐탁지 못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런 내 뜻을 꺾지는 못했다. 내가 그에게 건넨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시키신 일이 있습니다.’
아무렴 그 또한 이게 자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 명령의 내용까지는 몰라도 내 선에서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게 나는 좋지 못한 몸을 이끌고 권이도의 집으로 향했다. 약을 먹었음에도 뜨끈뜨끈하게 오른 열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를 괜히 맞았지. 김 실장이 하는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게 없었는데.
그의 집에 도착한 뒤에는 곧장 방에 틀어박혔다. 아픈 티를 내지 않기 위함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고용인과 마주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점심에는 달걀이 들어간 죽이 나왔고, 내 방 침대 옆엔 가습기까지 틀어졌다.
미안함이라고 해야 할까. 권이도에게 들지 않던 감정이 그들에겐 들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이 집에 파란을 일으킬 텐데. 커다란 위기가 되진 않더라도 들썩이는 수준의 문제로는 작용할 텐데 말이다.
‘모자란 널 지금까지 키워 준 게 누군지 알고 있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엔 끊임없이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깊은 웅덩이가 생긴 것처럼, 눈을 감으면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눈밭 속에서 죽었을 테니. 가까스로 연명하는 남은 삶은 아버지가 뜻하는 대로 써야만 하는 게 아닐까.
‘역시 내 아들이야.’
우습게도 나는 그 한마디에 가까스로 목을 축였다. 메마른 땅에 고작 한 방울 뿌려진 단비였기에 그 갈증이 얼마나 간절한지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식으로밖에 얻지 못할 애정이지만, 이깟 애정이나마 아버지가 아니면 얻을 수 없었다.
딱 사흘을 감기로 앓았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회사에 나갔는데, 아버지는 매일 나를 회장실로 불렀다. 평소엔 하지도 않던 안부 인사를 건네며 이미 받아야 할 자료였으니 너무 괘념치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끝내 내 좋지 못한 몸 상태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
집에 돌아오면 기절하듯 쓰러지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다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비몽사몽 침대에서 일어났다. 머리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고 눈앞은 흐리멍덩하게 초점이 잡히질 않았다. 밤인지, 아니면 새벽인지. 그런 것조차 모른 채 내 방을 빠져나갔다.
어두컴컴한 복도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권이도가 돌아오지 않은 데다, 이 시간대엔 고용인들도 모두 자리를 비우기 때문이다. 맨발에 닿는 카펫은 무척이나 부드러웠으나, 발바닥이 따끔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향한 곳은 2층 끝자락에 있는 서재였다. 권이도가 일을 할 때 늘 머무는 장소. 집에 있을 때면 제 방보다 오래 머무른다는 곳.
‘너밖에 없다, 세진아.’
사실 그런 생각도 했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내 능력이 부족해 알아낼 수 없었다고. 그렇게 핑계를 대며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다. 무능한 녀석이라며 욕은 좀 먹겠지만, 그거야 늘 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문고리를 내리는 순간에는 염치없게도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자료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또 이왕이면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게 내가 살아갈 방법 중 하나라면 살아갈 길이 또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고.
내 바람이 신에게 닿았을까. 서재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달칵, 열린 문틈으로 옅게 남은 페로몬이 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번과 전혀 바뀌지 않은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책장, 벽에 장식된 총, 단정히 정리된 책상과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서류 뭉치.
“…….”
아버지가 내게 요구했던 자료였다.
* * *
또 3일이 흘렀다. 권이도 없는 저택은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낄 만큼 고요했다. 평소에 그가 시끄럽게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그의 부재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감기가 다 나은 이후, 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내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에 남은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리고 김 실장에게 수면제를 비롯한 다른 약들을 부탁했다. 이번엔 감기약이 아니라 위장약과 소화제로.
이 집에 들어와서 속을 게워 내는 일이 꽤 잦지 않나 싶다. 어린 시절엔 배가 고파서 토를 했는데, 이제는 멀쩡한 음식을 먹고도 소화를 못 시켰다. 배가 한참이나 불렀지. 몸이 편안한 삶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뭐, 구역질의 이유가 체기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전자의 이유조차 후자가 원인이겠지만, 나는 애써 그 모든 사실을 외면했다. 현실과 직면하는 순간, 버틸 수 없으리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본부장님 정말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직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내 몸 상태를 걱정했다. 내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해 보였나 보다. 혹시 무슨 일 있냐며 진지하게 묻기에 비를 한 번 잘못 맞았더니 된통 감기에 걸렸다고 대답했다.
“비를 왜 맞으셨어요!”
“하하…….”
그러게, 왜 그랬을까. 비가 내린다고 가만히 맞고 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건만. 물론 과거로 돌아가도 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겠지만 말이다.
몸이 좋지 않아서일까, 퇴근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어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그의 집으로 가는 걸 ‘돌아간다.’라고 불러도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그가 내어 준 공간은 내 방이 맞건만, 언제든 떠나야 할 장소처럼 정이 붙질 않았다.
그날, 나는 저녁을 먹지 않고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권이도는 내일모레에나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는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 없던 척, 그를 맞이할 준비 말이다.
잠이 드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각한 불면증조차 몸이 한계까지 약해진 순간엔 조금 너그러워지나 보다. 나는 꿈조차 꾸지 않는 단잠을 취했고, 잠에서 깨어난 건 어슴푸레한 여명이 떠오르는 새벽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예정에도 없던 히트 사이클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 * *
“흐으…….”
몇 시간을 열기 속에서 몸부림쳤다. 초인적인 힘으로 김 실장에게 연락을 넣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분명 며칠 전까지 열 감기로 고생했는데, 또 이렇게 열이 오른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흐, 흡…….”
최 교수가 그랬다. 권이도에게 맞춰 히트 사이클이 앞당겨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중이라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치면, 만약 회사에 나가 있을 땐 어떻게 하라고.
온갖 억울함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욕구는 끊이지 않았다. 아플 정도로 발기한 성기에선 이미 프리컴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앞이고 뒤고 죄 젖는 바람에 나를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수치심이 들었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무도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숨기면서도 이유 모를 눈물이 줄줄이 나왔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즈음에는 내가 있는 곳이 권이도의 집인지 아니면 오피스텔인지조차 헷갈렸다. 이 성욕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이 누구일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김 실장님……?”
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들이마신 숨결에 짙은 나무 냄새가 섞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냉랭한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비서랑도 붙어먹나 보죠.”
“…….”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헐떡이는 숨조차 뚝 하고 끊겨 버렸다. 이불 속에서 머리를 내밀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권이도가 보였다.
“감기에 걸렸다더니…….”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서늘한 눈으로 나를 살펴봤다. 누에고치처럼 둘둘 싸여 있길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추잡한 아랫도리 사정을 그대로 보여 줄 뻔했다.
“……페로몬 갈무리도 못 합니까?”
“흣…… 그게 마음대로…….”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억제제 제약 회사는 진작 망했겠지. 그러는 저 또한 러트 사이클을 생으로 버티지는 못할 거면서.
“하아, 흐…….”
그냥 나가 버렸던 지난번과 달리,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시선은 나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에게서 풍기는 페로몬에 실낱같던 이성이 점점 날아갔다는 것 정도.
“으응…….”
기듯이 권이도 쪽으로 다가갔다. 사실은 꾸물꾸물 손을 내민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러면 안 되는 상대라거나, 내 행동이 혐오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페로몬 좀…… 제발…….”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 마구 튀어나오는 페로몬을 그에게 흘려보내며 내게 자비를 베풀길 간절히 애원했다.
의외로 그는 내가 붙잡는 대로 손가락을 내어 줬다. 서늘한 손바닥에 입술을 문지르자, 비웃듯 코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맨 살결에서 풍기는 페로몬은 녹진하게 풀린 이성을 아득히 멀어지게 했다.
“흐, 좋아…….”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각도 없었다. 한 손은 권이도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다리 사이로 가져가 문질렀다. 요령이라곤 없는 손길로 사정을 재촉하며 혀를 내어 그의 손가락에 감기도 했다.
“꼬시는 게 아주 자연스럽군요.”
그는 이성적인 말투로 차분히 이야기했다. 여유롭게 페로몬의 양을 늘려 차근차근 나를 적시기도 했다. 내가 몽롱한 얼굴로 손가락을 빨아들이자, 그가 내 아래턱을 꾸욱 눌러 왔다.
“정세진.”
“흐으…….”
“나랑 자고 싶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이 페로몬을 더 느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짐승 같은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짐승 같이 굴면 안 된다는 판단 따위는 하지 못했다.
“나랑 자도 그쪽한텐 아무 이득도 없을 텐데.”
“……으응.”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그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열심히 페로몬을 뿌리고, 그가 넘겨 주는 페로몬을 받아 마셨다. 비를 맞은 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우듯 공기 중에 어우러진 페로몬이 입 안을 달큼하게 만들었다.
“바라는 게 그냥 씹질인가…….”
그리 중얼거린 권이도가 넥타이를 끌어 내렸다. 내게 붙잡힌 손은 가져가지 않고 다른 손으로 버클까지 풀었다. 훅 짙어진 페로몬과 함께 코앞에 무언가 가까이 다가왔다.
“빨아 봐요. 잘 빨면 넣어 줄 테니까.”
“…….”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커다란 성기였다. 단정하고 금욕적인 외모와 달리 핏줄이 도드라진 모양새에 긴장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망설일 틈도 없이 그가 명령처럼 재촉했다.
“얼른.”
나는 홀린 듯 입술을 벌려 귀두를 머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떠나 버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혀로 선단을 문지르자, 권이도가 눈가를 확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흐웁!”
쿡, 밀려 들어온 성기가 입 안을 억지로 파고들었다. 아직 다 발기한 게 아님에도 턱이 빠질 것처럼 거대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려는 순간, 그가 뒤통수를 강하게 붙잡았다.
“입으로 받아 본 적은 없나 보지.”
“……흡.”
귀두만 겨우 머금었는데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페로몬이 아니었다면 진작 구역질을 했을 터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권이도가 성기를 쑥 빼내었다.
“관두죠.”
그는 금세 옷매무새를 고치고 등을 돌렸다. 김이 샌 것처럼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가 완전히 떠나기 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래로는, 흣…….”
“…….”
“넣을 수 있…….”
시야가 휙 뒤집혔다. 권이도가 나를 내던지듯 침대에 내리누른 것이었다. 잔뜩 짜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에게 하반신을 비비적거렸다.
“제발, 흐으…….”
“얼마나 대주고 다녔길래…….”
그 중얼거림이 왜 그리 불쾌해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라도 한 걸까. 남의 손을 탄 오메가는 혹시 권이도의 취향이 아닌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경험이 없단 사실을 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세진.”
페로몬 실린 음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겨우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시야가 눈물로 흐렸지만, 그 수려한 얼굴만큼은 또렷이 들어왔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
“권…… 이도, 흣…….”
“알고도 이래, 지금?”
그는 억눌린 목소리로 묻곤 짓씹듯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내가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어리광을 부리듯 품에 밀착하는 나를, 그는 별반 힘들이지 않고 뒤집어 버렸다.
“……잠, 깐.”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이 한 번에 벗겨졌다. 드러난 맨살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굳게 닫힌 입구에 무언가 툭, 닿아 오고 큼직한 손이 억지로 엉덩이를 벌렸다.
그리고 푹.
“……!”
비명조차 내뱉지 못할 만큼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기도 했고, 내장이 납작 짓눌리는 기분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암전될 만큼 충격적인 감각에 숨이 턱 틀어막혔다.
“아, 아…… 아…….”
나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끊어지는 신음만 흘렸다. 권이도가 몸을 숙이며 가쁜 숨을 토해 냈다. 생리적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자마자, 그가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누르며 허리를 움직였다.
“……아흑!”
“그렇게…… 넣어 달라고 조르더니.”
“아, 아흣, 흑, 아, 안 돼…….”
“힘을, 큿, 이렇게 주면…….”
“……아윽!”
“움직일 수가 없잖아.”
아래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흥건히 젖은 내벽이 단순히 애액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적응할 시간 없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온 성기가 억지로 아래를 넓히는 게 느껴졌다.
“아흐으……!”
그런데도 나는 본능적으로 페로몬을 분출했다. 권이도의 페로몬 덕분인지, 아픈 와중에도 열기가 계속해서 들끓었다. 그는 성의 없이 허리를 움직이며 좁은 내벽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하읏!”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쾌감이 일었다. 내가 아랫배를 납작하게 집어넣자, 권이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 그가 같은 부분을 크게 쳐올렸다.
“헉, 으, 흐윽, 아……!”
침이 질질 새어 나올 만큼 강렬한 쾌감이었다.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희열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배 속이 엉망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하윽……!”
지잉,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였다. 정신없이 신음을 내지르던 나와 달리, 권이도는 그 작은 소리를 정확히 알아챘다. 내 뒤에서 상체를 숙인 그가 손을 뻗어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가져왔다.
「정민재」
화면에 나타난 이름이 마치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내가 핸드폰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그가 전화를 받는 게 더 빨랐다. 숨을 흡, 들이마심과 동시에 스피커폰으로 돌린 핸드폰에서 민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정세진.
“…….”
순간, 맨정신이 돌아왔다. 발기했던 성기가 일순 가라앉을 뻔할 정도로. 혹시 민재가 허튼소리를 하진 않을까. 가뜩이나 빠르게 뛰던 심장이 이제는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씨발…… 대답 안 하냐?
“…….”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제발 전화를 끊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권이도는 전화를 끊는 대신 오히려 내 가까이로 가져왔다.
-어디서 뭘 처하길래 출근도 안 하고…….
“……하응!”
푹, 깊이 삽입된 성기가 안쪽을 건드렸다. 하릴없이 터진 신음이 전화 너머로도 또렷이 전해졌을 거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는 또 한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하읏, 흐…… 흐응……!”
-…….
전화 너머에선 정적만 흘렀다. 권이도는 자비 없이 계속해서 삽입을 이어 갔다. 내가 혀를 꾹 깨물자 억지로 내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기도 했다.
“하으, 흐, 우응…….”
-…….
숨을 터뜨리는 소리가 또렷이 전해졌다. 온몸으로 나를 내리누른 권이도가 핸드폰에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어디서 뭘 처하는진 알았을 텐데.”
-…….
“더 들을 생각 없으면 끊어.”
뚝, 전화가 끊겼다. 민재가 아니라, 권이도의 손에 의해서. 혀를 누르고 있던 손이 빠져나가고 그가 거칠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으으……!”
그렇게 이어진 행위는 하루가 꼬박 지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 안에 총 세 번이 넘게 사정했고, 그렇게 배출한 정액은 고스란히 배 속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민재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