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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끝에 (65)화 (65/131)

65화. Le Bon Choix(7)

위기감이라고 해야 할까.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숨이 막히는 이유가 그의 페로몬 때문인지, 아니면 내리누르는 체중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느리게 몰아쉬는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하아…….”

“…….”

러트 사이클이 온 모양이다. 그런데 억제제 먹을 타이밍을 놓친 거다. 이미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으니 약효가 들기까진 한참이나 걸리리라.

특이 형질의 주기는 약만 시간 맞춰 먹으면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 특히 권이도 같은 우성은 날짜도 규칙적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그의 집에 들어온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러트 사이클이 온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억제제를 어쩌다가…….”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등에 손을 댔다. 어찌나 몸이 뜨거우면 보드라운 가운 너머로 열기가 느껴졌다. 쿵, 쿵, 격하게 뛰는 심장이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

“깜박했어.”

“…….”

깔끔하게 돌아온 대답에 해줄 말이 없었다. 그사이 나풀나풀 흘러나온 페로몬은 점차 나까지도 물들이고 있었다. 피부로, 숨결로 느껴지는 페로몬이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로 피어올랐다.

“……하아.”

권이도는 계속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어린 짐승처럼 내게 얼굴을 문지르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끌어안았다. 딱히 저항할 생각은 없었지만, 벗어나고자 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세진아…….”

내 히트 사이클이 얼마나 남았더라. 페로몬을 뿌려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 권이도도 그 사실을 알기에 구태여 페로몬샘이 있는 자리를 야금야금 깨무는 거겠지.

“세진아, 흣…….”

나는 그의 이성이 점점, 점점 날아간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라면 족히 이틀 정도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바짝 밀착한 하반신에 위협적일 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느껴졌다.

“……권이도 씨.”

“응…… 얘기해.”

그리 대답하는 목소리가 억눌려 있었다. 으스러뜨릴 것처럼 나를 끌어안은 주제에 그는 곧장 행위를 시작하진 않고 하반신을 문지르기만 했다. 목울대를 울리는 신음은 머릿속이 아득할 만큼 외설스러운 것이었다.

“안 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뒷생각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나 또한 급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뜸했었지. 그런 생각으로 그의 머리칼에 입을 맞췄다.

“억제제 들으려면 몇 시간은 걸릴 텐데…….”

나는 억제제가 듣지 않지만, 먹어야 하는 타이밍은 알고 있었다. 권이도 정도의 우성은 타이밍을 놓치면 이미 요동치기 시작한 페로몬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도. 오히려 약 때문에 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어떻게 참으……흐읍.”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칠게 입술이 맞닿았다. 내 머리칼을 그러쥐었던 그는 이제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붙잡아 단단히 고정했다. 빈틈없이 맞닿은 입술 틈새로 뜨거운 혀가 숨결과 함께 침입했다.

“…….”

잡아먹히면 딱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아니 쪽쪽 빨아 먹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타액이건, 아니면 숨결이건, 그게 아니면 페로몬이건. 분명 넘겨주는 사람은 권이도인데 진이 빠지는 건 내 쪽이었다.

“흐…….”

그는 내 혀를 옭아매며 끝없이 페로몬을 쏟아부었다. 달큼한 감각에 취해 가운을 움켜잡자, 몸을 웅크려 나를 더 세게 끌어안는다. 혀는 물론 입 안쪽 여린 살까지. 빈틈없이 희롱하던 그가 다른 손을 허리 아래에서부터 티셔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맨살에 닿는 손길이 평소와는 달리 뜨거웠다. 그와 닿는 족족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끔거릴 만큼. 정확히는 체온이 아니라 페로몬 때문이겠지만, 어느 쪽이건 지나치게 예민한 건 사실이었다.

“……하.”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졌다. 내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도 그는 입과 뺨 언저리에 연신 입을 맞췄다. 등으로 들어온 손은 척추뼈 하나하나를 기억하듯 덧그리고 있었다.

“세진아.”

“……그만 좀.”

내 이름이 세진이라는 걸 백 번쯤 확인시켜 줄 생각인가. 괜히 민망함이 드는 바람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하자마자 그가 우악스럽게 머리를 고정했지만.

“왜 피해?”

“피하다니……. 방금까지 키스했으면서.”

“……그래?”

마주친 두 눈에 초점이 없었다. 이 정도로 정신이 나가서야, 제대로 대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와 한마디 한마디 대화를 나누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피하지 마…….”

아니, 이건 대화가 아닌가.

“……흣.”

목덜미로 내려간 그가 여린 살점을 입술로 물었다. 조금 아프다 싶을 만큼 빨아들이고는 혀끝으로 그 부분을 부드럽게 문지른다.

“아, 자국…… 거긴 안 돼요.”

한 번 정사를 치르고 나면 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울긋불긋했다. 그가 조금의 틈도 없이 나를 물고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개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였지만, 이번엔 목도리를 두르지 않는 이상 숨기지 못하는 곳이었다. 지금이 겨울이면 모를까. 한여름엔 그조차 불가능했다.

“안 된다니까.”

나는 다급히 그의 뒷머리를 붙잡았다. 머리채를 잡는 것과 비슷한 행동에, 그는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심술을 부리듯 조금 더 세게 목 언저리를 깨물어 버린다.

“아!”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보지 않아도 잇자국이 났으리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이제는 진정 내 살점을 먹을 생각인가.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 권이도 씨 잠깐…….”

그는 말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내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겨 냈다. 당황한 내가 다리를 오므리는데, 허벅지를 붙잡고 강제로 벌리기도 했다. 오금 아래쪽을 단단히 쥔 그가 내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 흐……!”

그는 순식간에 발기해 있던 성기를 한입에 물었다. 목구멍에 닿을 만큼 깊게 머금고는 혓바닥으로 기둥을 감쌌다. 쭙쭙 소리가 날 만큼 빨아들이는 감각에 눈앞이 깜박깜박 점멸했다.

“아, 안 돼, 흐…….”

다른 사람에게 받으면 받았지, 어디 가서 해보진 않았을 것 같은 권이도다. 그런 사람이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시각적인 자극이 장난이 아니었다.

“쌀 것, 같…….”

이대로라면 언젠가 그가 말했듯 토끼처럼 싸버릴 거다. 러트 사이클이 온 그는 지나치게 뜨거웠고, 그건 입 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용케 구역질 하나 없이 뿌리 끝까지 머금은 그는 목까지 조여 가며 내 사정을 재촉했다.

“……!”

끝내, 나는 그의 머리칼을 콱 붙잡으며 사정했다. 울컥울컥 정액을 토해 내는 동안에도 그는 내 성기를 입에서 빼내지 않았다. 마치 생명수라도 받아 마시는 양 아무렇지 않게 그 모든 걸 삼켜 버렸을 뿐이다.

“하으…….”

수치심, 그런 건 이제 들지도 않았다. 이성이 날아갈 것 같은 고양감과 쾌감의 여운이 찌르르 허리를 울렸을 뿐. 손까지 덜덜 떨며 아랫배에 힘을 주자, 권이도가 느릿느릿 입에서 성기를 빼내었다.

“…….”

새빨간 입술은 정액인지 타액인지 모를 액체로 젖어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 안엔 희뿌연 정액이 남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몽롱한 눈으로 흘긋 나를 바라봤던 그가 혀를 내어 반질거리는 귀두를 꼼꼼히 핥았다.

“으응, 흐…… 그만, 흣…….”

마침내 만족할 만큼 핥았는지, 그가 내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탓에 조물조물 만지는 손길에 지나치게 민감해졌다.

“진짜…….”

변태 같다고, 그리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권이도는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다리를 내려 주곤 내 윗옷까지 깔끔히 벗겨 버리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

“…….”

진득한 시선이 내 몸을 꼼꼼히 살펴봤다. 알몸을 보이는 게 처음도 아닌데, 이토록 적나라하게 구경거리가 된 건 처음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올려다보는 동안, 그는 느릿느릿 제 가운의 허리끈을 풀고 있었다.

벌어진 가운 틈으로 탄탄한 상체가 보였다. 너른 가슴이나 오밀조밀 짜인 복근, 배꼽 아래 은밀한 곳에 도드라진 핏줄과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까지.

“…….”

권이도를 변태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 자극적인 장면엔 나조차 넋을 놓고 말았으니까. 우성 알파면 기본적인 신체 능력부터 뛰어났지만, 권이도는 그보다도 더 우월한 무언가가 있었다.

“……구경 다 했습니까?”

한 타이밍 늦게 권이도가 물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이성이 날아간 눈빛이었으나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권이도가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곤 나긋이 얘기했다.

“다 했으면…… 입 좀 벌려 볼래요.”

“……입?”

별생각 없이 살짝 입술을 벌렸다. 그는 한 손을 내 입가로 가져오더니 검지로 아랫니를 꾸욱 눌렀다. 그게 조금 불편해서 눈가를 찌푸리자, 뒤이어 중지까지 입 안으로 들어왔다.

“뭐 하느…….”

그리고 그가 한 건, 다른 손을 제 다리 사이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큼직한 손으로 기둥을 감싸고는 여유롭게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쓸어내린다. 손이 큰 만큼 그곳도 커다랬기에 꺼덕거리는 움직임이 지나치게 잘 보였다.

“……읏.”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는 내 입 안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오른손으로는 제 성기를 매만졌다. 시선은 내 입술에 고정한 채, 눈가는 잔뜩 찌푸리고 있다.

“…….”

“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집요하게 내 입 안을 살피는 시선도, 마치 유린하듯 혀를 만지작거리는 손길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반찬 삼아 그가 자위를 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지.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혀를 움찔거렸다. 깊숙이 들어온 손가락이 혀뿌리를 지그시 눌렀다. 입술로 타액이 흐르는 순간에는 그가 미간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아.”

왜, 넣는 게 아니라 자위를 할까. 눈앞에 내가 있는데 구태여 제 손으로 해결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숨 쉬는 게 불편해서 혀로 살짝 그의 손가락을 밀어 냈다. 오히려 그 반응에 권이도는 더 흥분한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다 새는 발음으로 물었다.

“……안 너어요?”

권이도가 흥분한 만큼 나 또한 기대감에 젖은 상태였다. 뒤쪽은 잔뜩 젖었고, 의도치 않았는데도 하반신이 들썩였다.

“…….”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마주 보기만 했다. 움직이던 동작도 뚝 끊긴 상태였다. 숨을 고르는 것처럼 가슴께를 부풀렸던 그가 한껏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오늘은 정말 너 임신시킬 것 같아서.”

빈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진심 어린 경고였다면 모를까. 그다지 위협적인 목소리도 아니었는데,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니까…….”

“…….”

“손가락 좀 빨아 봐요.”

그는 당황해 말을 잃은 내게 뻔뻔히 요구했다. 그에 반사적으로 입술을 움찔 오므렸다. 입 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자 그가 만족스럽게 입매를 당겼다.

“…….”

“……후우.”

한동안 질척거리는 소리와 신음만이 들렸다. 내가 어설프게 혀를 감을 때면, 그는 관자놀이에 핏줄이 설 만큼 이를 악물곤 했다. 차라리 입으로 해준다고 할 걸 그랬지. 그 시선이 뜻하는 바를 모를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내 혀를 꾹 누르며 사정했다. 울컥, 터져 나온 정액은 드러난 상체에 난잡하게 흩뿌려졌다. 가볍게 목을 울린 그가 사정의 여운을 즐기듯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이며 손가락을 빼냈다. 입술을 깊게 맞물리곤 입 안을 부드럽게 탐닉했다. 그러면서 내 위에 엎어지는 바람에 여전히 발기한 성기가 내 성기와 문질러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성 알파인데, 그것도 무려 러트 사이클에, 고작 이 정도 수음으로 만족이 될 리가 없다.

나는 그의 혀를 받아들이며 한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자 그가 움찔하며 입술을 떼어 냈다.

그냥 하자고, 아니면 입으로 해주겠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권이도 씨?”

가물가물 감았다가 뜨는 눈엔 흥분감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는 내 부름에 답하는 대신 손바닥에 살살 뺨을 문질렀다. 나른하게 풀린 눈을 느리게 깜박이곤, 뺨은 물론 이제는 입술까지 손바닥에 문지른다.

“수면제…….”

그는 내가 떠올린 의문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자신이 왜 이렇게 다 풀린 눈을 하고 있는지. 그 눈에 왜 흥분이 아닌 졸음까지 담겨 있는지. 불분명한 발음으로 이야기해 준 것이다.

“……수면제 같이 먹었어.”

말문이 턱 막혔다. 특이 형질, 그것도 우성의 억제제는 다른 약과 함께 먹으면 위험할 정도로 독했다. 이미 진정제 계열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수면제까지 먹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왜…… 아니, 얼마나 먹었는데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물었지만 권이도는 답하지 않았다. 내 손목을 붙잡아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췄을 뿐이다. 정신이 영 들지 않는지,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눈을 감은 뒤엔 다시 눈을 뜨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권이도 씨, 내 말에 대답해요. 한 알만 먹은 거 맞죠?”

“…….”

한 알만 먹은 게 아니구나. 그 사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시선을 피하는 걸 봐선 내 생각보다 많이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퍽 무식한 방법이었고, 내가 생각하기엔 쓸모없는 짓이었다.

“왜…….”

서운함이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차오르던 욕구보다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실망감이 더했다. 기분이 착 가라앉아서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어요?”

나는 히트 사이클 때마다 권이도의 도움을 받았다. 아니, 처음엔 도움이었을지언정 근래에는 그런 일방적인 적선이 아니었다. 그와의 섹스는 오로지 성욕 해소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는데,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기분이었다.

“내가 임신할까 봐?”

설령 임신을 시킬까 봐 걱정됐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굳이 제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아도 러트 사이클을 넘길 수단은 꽤 많았단 말이다. 혼자 참거나 결론 내리기 전에 내게 의견을 구할 수는 없었을까. 그가 걱정되는 만큼 서운한 기분에 화가 났다.

“권이도 씨 대체…….”

“세진아.”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가늘게 뜨인 두 눈에 여러 감정이 일렁였다.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성욕, 밀려드는 졸음과 미미하게 피어오른 두려움 같은 것들.

“불안해서 그랬어.”

“…….”

숨이 턱 막힐 만큼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분명 기분이 더러웠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나 음울하게 가라앉은 페로몬이 내 감정도 함께 물들였다.

“뭐가…….”

“…….”

“뭐가 그렇게, 불안하길래.”

나는 떠듬떠듬 그에게 이야기했다. 모자란 것 없는 사람이 왜 이렇게 내게 매달리는지. 정체 모를 불안이 대체 어디서 시작됐는지.

“……뭐가 불안해요, 권이도 씨.”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목소리가 달래듯이 나갔다. 그가 너무도 작게 느껴져서,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얘기해봐요. 괜찮으니까.”

“…….”

그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나올 듯 말 듯, 망설임이 한가득 담긴 움직임이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눈을 맞추자, 느리게 입술이 움직였다.

“……너는 내 눈앞에서 죽었고.”

툭, 튀어나온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심장이 콱 조여들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됐다. 내가 아무 말 못 하고 숨을 멈추는 사이,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눈꺼풀을 떨었다.

“나는 너를 따라서 죽었지.”

그걸로 끝이었다. 그 한마디만 남기고 권이도는 기절하듯 내 품에 무너져 내렸다. 공기 중에 남은 페로몬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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