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51)화 (51/131)

51화. Bonheur quotidien(4)

너무 놀라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뒤로 주춤 물러났다. 마침 닫히려는 문을 권이도가 성의 없이 한 손으로 붙잡았다. 덜컹, 멈춘 엘리베이터가 다시 스르륵 좌우로 열렸다.

“……왜 여기 계세요?”

권이도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 홈웨어 차림이었는데, 정장을 다 차려입은 것보다 더 박력 있었다. 한참 그대로 있던 그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왜일 것 같습니까?”

“…….”

뒷덜미가 서늘하게 식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페로몬이 그의 기분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했다. 권이도는 대답 없는 나를 보고 상냥히 운을 뗐다.

“모르겠으면 보기를 주죠.”

까딱, 고개가 움직였다. 한쪽 눈썹을 추켜 올린 그가 나긋나긋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찍 들어온다던 동거인이 이 시간까지 안 들어와서.”

“…….”

“술을 안 마신다던 약혼자가 회식 내내 연락 한 통 없어서.”

“…….”

“정세진 씨 경호원이 나한테 따로 연락을 넣어서.”

“…….”

“대답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너그럽게 선택지를 주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고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답이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요.”

모양 좋은 입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분명 미소를 그리고 있는데 그다지 기분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권이도 특유의 기품 있는 목소리가 다정하게 칭찬을 건넸다.

“똑똑해서 좋군요.”

“하하…….”

멋쩍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슬그머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권이도가 붙잡고 있던 문을 놓아줬다. 스르륵, 문이 닫히기 무섭게 고요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는 묵묵히 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중문을 열며 잠깐 비틀거리자 나를 대신해 문을 잡아 주기도 했다. 고맙다는 의미로 눈을 맞췄는데, 그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얘기했다.

“출근은 정세진 씨가 했는데, 퇴근은 주정뱅이가 했나 보죠.”

“……그 정도로 많이 마시진 않았습니다.”

조금 알딸딸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주정뱅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권이도의 기분이 상한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그는 내 손에서 재킷을 가져가며 담담히 대꾸했다.

“그렇겠죠. 보통 취한 사람들은 본인이 취했다고 안 하니까.”

“권이도 씨 되게…….”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마저 말하라는 듯 나와 시선을 맞췄다.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아서, 잠깐 눈을 굴린 다음에야 뒷말이 흘러나왔다.

“바가지 긁는 남편 같네요.”

“…….”

뻔뻔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맨정신이었다면 입 밖에 내지도 않았을 거다. 가만히 눈으로 웃는 나를 보고 그가 한결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아직 내가 남편은 아닐 텐데.”

권이도의 페로몬이 부드럽게 풀렸다. 내내 술 냄새로 가득한 공간에 있던 탓에 청량한 나무 냄새가 반갑게 느껴졌다. 배 속 가득 만족감이 차올라서, 푸스스 가느다란 웃음이 흘러나왔다.

“약혼자면…… 남편이나 마찬가지죠.”

“…….”

“안 그래요, 여보?”

뒷말은 반쯤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분위기도 풀 겸, 권이도의 기분도 조금 풀어 줄 겸. 그런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시선이 짙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아차 하는 사이,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부드럽게 뒤통수를 감싸 쥐고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한 그가 방심하고 있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말캉한 혀가 입술 틈새를 간지럽히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잠깐 멈칫한 권이도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손으로 내 턱을 붙잡았다. 억지로 제 쪽을 보게 하는 손길이 사뭇 강압적이었다.

“왜 피합니까?”

지그시 내려다보는 시선이 음습하게 가라앉았다. 목소리 역시 화난 것처럼 허스키하게 갈라졌다. 나를 위협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차오른 흥분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가까웠다.

“……조금 전까지 술 마시고 왔습니다.”

나는 눈가를 찌푸리며 그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얇은 티셔츠 너머로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권이도가 곧장 대꾸했다.

“많이 안 마셨다면서요.”

“그래도 마신 건 마신 거죠.”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종일 밖에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권이도답지 않게 조급한 느낌이었다. 키스를 조르듯, 말을 하면서도 연신 입술을 가져다 댄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그를 꾹 밀어 냈다.

“……씻고.”

“…….”

“씻고 올게요.”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가늘게 길어진 시선에 불만스러움이 가득했다. 본인은 퇴근하면 늘 샤워부터 하면서. 내가 씻고 오겠다는 말에 뭘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는데.”

권이도는 그렇게 말하며 능청스럽게 허리에 팔을 감았다. 바짝 밀착한 그가 내 귓바퀴를 살짝 깨물었다. 흠칫 놀라 목을 움츠러뜨리자, 나긋한 목소리가 감미롭게 속삭였다.

“씻으면서 하죠.”

* * *

“흣…….”

샤워기에서 떨어진 물이 자욱한 수증기를 만들었다. 뜨겁고 습한 공기 속에서 나는 너른 품에 매달려 연신 숨을 헐떡였다. 쏴아아, 물이 쏟아지는 소리에 질척질척 민망한 소리가 섞여 들었다.

“아……. 흐응…….”

굵은 손가락이 세 개까지 들어와 내벽을 넓히기 시작했다. 아래가 빠듯이 벌어지고, 간신히 서 있는 다리에 힘이 풀리길 반복했다.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신음을 흘리자, 권이도가 내 허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낮은 목소리가 샤워 부스 안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이 녹진하게 풀릴 만큼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물론, 그 기분은 단순히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안이 엄청 뜨겁네.”

‘씻으면서 하죠.’

씻으면서 하자는 말대로, 권이도는 정말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와서는 제 방으로 들어와 거의 찢듯이 내 옷을 벗겨 냈다. 다짜고짜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선 뒤엔 제 옷을 벗어 던지고 따뜻한 물부터 틀어 버렸다.

“씻고…… 읏, 씻고 하자니까…….”

“씻고 있잖아.”

그는 뻔뻔하게 대답하며 등허리에서 손을 미끄러뜨렸다. 오른손은 좁은 구멍을 헤집고, 왼손으로는 엉덩이를 꽉 움켜잡는다. 내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끼운 그가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 내가 느끼는 부분을 꾹 자극했다.

“아흣……!”

허리가 절로 튀어 올랐다. 바짝 발기한 성기가 권이도의 것과 문질러졌다. 귀두에서 흐르는 액체가 프리컴인지 아니면 샤워기에서 나온 물인지 알 수 없었다.

“흐…… 그만…….”

“부탁을 확실하게 해야죠.”

차분히 대답하면서도 그는 손가락을 멈추지는 않았다. 성교를 하듯 넣었다 빼길 반복하다가, 빙그르르 돌리며 얼마나 넓어졌나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으응, 흐…….”

“그만하라는 건지, 아니면 이제 그만 넣으라는 건지…….”

“아…… 거기, 흐읏…….”

“전자는 아닌 것 같네.”

그는 나지막이 이야기하곤 손가락을 빼내었다.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내벽이 바짝 오므라들었다. 내 한쪽 다리를 잡아 제 허리에 감게 한 그가 양손으로 엉덩이를 잡아 양쪽으로 벌렸다.

“……!”

푹, 굵은 성기가 뿌리 끝까지 삽입됐다.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전조가 있지도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거칠게 꿰뚫는 감각이 숨이 턱 막힐 만큼 묵직했다.

“아…….”

그는 낮게 탄성을 흘리며 내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고, 날아갔던 정신이 돌아올 정도는 되었다. 아래가 한가득 들어차는 바람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랫배가 납작해지도록 힘을 주고, 온 힘을 다해 권이도의 몸을 끌어안았다. 선 채로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버거운 일이었다.

“……착하지.”

쉬이, 달래는 음성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다. 내가 진짜 힘들어하는 걸 알았는지, 권이도는 깊숙이 삽입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잠깐 머물렀다. 꼬리뼈 부근을 은근하게 어루만진 그가 다른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줬다.

“입 벌려 봐요.”

“……흐읍.”

맞닿은 입술에서 페로몬이 넘어왔다. 뭉텅뭉텅 전해지는 숨결이 성감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아팠던 감각 대신 찌르르한 쾌감이 그 빈자리를 채워 갔다.

“아흐응……!”

권이도는 귀신같은 눈치로 내가 괜찮아졌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긴장이 조금 풀리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허리를 움직인 것이다. 가장 느끼는 부분을 툭 건드리는 바람에 자지러지듯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아, 안 돼…… 흐…….”

“왜 안 돼, 응?”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릴수록 삽입만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기본적인 신장 차이 탓에 내가 자세를 낮추면 그가 조금 더 깊이 들어왔다. 그 거대한 쾌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발뒤꿈치를 한계까지 들어 올리는 게 최선이었다.

“싫, 너무, 깊어, 흣…….”

푹, 푹, 내벽이 계속해서 자극됐다. 내가 아무리 저항해 봤자 한 발로 선 상태에선 별반 의미가 없었다. 그는 내 허벅지를 단단히 고정한 채 계속해서 내가 느끼는 부분만을 자극했다.

“권이도 씨……. 제발, 흐읏…….”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간절히 애원하기도 했다. 이건 너무 힘들고, 자세도 불편하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우는소리를 하자 그가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하.”

달뜬 숨을 터뜨린 그가 성기를 쑥 빼내었다. 고개를 숙여 내 뺨에 입을 맞추고 붙잡았던 다리도 놓아줬다. 웬일로 금세 물러서나 했는데, 그는 내 몸을 돌려 벽을 짚고 서게 만들었다.

“아흑……!”

뒤에서, 묵직한 물건이 단숨에 밀려 들어왔다. 이번에야말로 다리가 풀렸지만, 그가 양팔로 내 허리를 감싸 단단히 고정했다. 벽에 바짝 밀착한 채 도망가려고 하자, 그가 어림없다는 듯이 하반신을 빈틈없이 밀착했다.

“아, 아아…… 흐……!”

“힘 빼야지. 배 결리겠네.”

그는 뿌리 끝까지 삽입한 그대로 비비적거리며 안쪽을 헤집었다. 한 손으로는 아랫배를 감싼 채 배앓이 하는 아이를 달래듯 살살 그 부분을 어루만진다. 그러다 한껏 예민해진 내 성기를 붙잡고는 뒤에서부터 내벽을 크게 쳐올렸다.

“아흐으……!”

찌릿찌릿한 절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울컥 터져 나온 정액은 욕실 벽면에 기다란 자국을 남기고 흘러내렸다. 권이도는 막 사정한 성기를 조물조물 만지며 서서히 속도를 높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흐, 흣, 흐응!”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손끝을 세워 벽을 긁는 나를 보고 권이도가 내 상체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하자, 이번엔 나를 일으켜 세우는 대신 순순히 바닥에 앉도록 도와줬다.

“흐, 잠깐, 잠깐만…….”

그런데 바닥에 무릎이 닿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말았다. 벽면 가까이 밀착하는 바람에 도망칠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허벅지를 세운 채로 다리가 벌어지고, 뒤에서는 권이도가 빈틈없이 나를 내리눌렀다.

“이거, 아…… 흣!”

양손으로 벽을 짚고 상체를 밀착했다. 권이도는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른 손은 가슴께로 가져온 그가 꼿꼿이 선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문질렀다.

“하아, 흐, 으응…….”

엎드려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으려고 하면 삽입이 깊어지고, 그렇다고 몸을 일으키자니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벽과 권이도. 그사이에 낀 채로 그가 주는 쾌감에 하릴없이 휘둘려야만 했다.

“아흐, 흣…….”

“무릎 아프면…… 후, 얘기해요.”

“흐…… 으응…….”

그는 느릿느릿 성기를 빼내어 푹, 깊숙이 삽입했다. 아까처럼 빠르게 몰아붙이진 않았지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쾌감이 쏟아졌다. 뒤에서 어깻죽지를 깨문 그가 꾸욱 성기를 밀어 넣었다.

“흣……!”

또 한 번 묽은 정액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벽이 아닌 권이도의 손안이었다. 내가 싸지른 정액을 모두 받은 그가 아랫배에 받아 낸 모든 걸 펴 발랐다.

“아, 흐응!”

큼직한 손이 배꼽 아래를 꾹 눌렀다. 그대로 안쪽을 쳐올리는 바람에 배 속을 쳐올리는 감각이 한껏 극대화됐다.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늦어서건, 아니면 술을 마셔서건. 나를 못살게 구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였다.

“…….”

크게 허리를 움직인 권이도가 까득 이를 사리물었다. 으스러뜨릴 것처럼 나를 끌어안고 내 온몸에 한가득 페로몬을 쏟아붓는다. 동시에, 안쪽에 머무르던 성기가 울컥 정액을 사출했다.

“하으…….”

배가 볼록하게 부푼 것만 같았다. 긴 사정이 이어지는 동안 권이도는 벽을 짚은 내 왼손을 제 손으로 덮었다. 스르륵 깍지를 낀 손에는 나와는 달리 약혼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진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권이도는 그런 나를 칭찬하듯 내 입술에 살짝 입술을 마주 댔다. 쪽,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은 이번엔 조금 더 깊게 맞물렸다.

“후응…….”

터져 나오는 신음은 권이도에게 온통 잡아 먹히고 말았다. 그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곧장 뒤이은 행위를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쾌감이, 긴 밤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권이도와의 섹스는 무척이나 좋았지만, 하루가 지나면 체력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첫 출근을 앞뒀을 땐 구태여 그를 두고 내 방으로 가서 잔 것이었다. 일을 쉴 때야 늘어지게 잠을 잤다지만, 출근을 하는 이상 제시간에 맞춰 눈을 떠야 했으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내가 대표로 출근하는 두 번째 날. 평소처럼 눈을 뜬 나는 익숙한 온기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숨이 막히도록 꼭 끌어안은 상대는 굳이 페로몬을 느끼지 않더라도 권이도였다.

“…….”

그래서…… 지금이 대체 몇 시지.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몸을 옆으로 돌아누웠다. 허리가 아픈 건 둘째치고 목에서 어깨까지 죄 안 결리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끄응, 앓는 소리를 냈는데 곤히 잠든 줄 알았던 권이도가 뒤척이던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

풀썩,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번에는 그와 나 모두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욕실에서 긴 정사를 나눈 후에 권이도가 나를 깔끔히 씻겨 침대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안 일어나도 돼.”

권이도는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게 얘기했다. 문제는, 방이 이렇게 환할 정도면 슬슬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 정도.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속아 넘어가 주고 싶었다.

“숙취는?”

기다란 손가락이 가만가만 뒷머리를 매만졌다. 나는 그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다시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권이도가 조금 더 세게 내 몸을 끌어안았다.

“그 정도로 안 마셨습니다.”

“그래요?”

조금 취해 보였을 수는 있어도 정말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남들이 봤을 땐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을 거다. 그냥 기분이 유독 이상해서 술기운에 생각이 조금 느슨해졌을 뿐.

그런데 권이도는 픽 웃음을 흘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근데 왜 또 그 사람을 불렀지…….”

“…….”

가라앉은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분명 여상스러운 말투였는데, 왜 그리 오싹 소름이 끼쳤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참 대답하지 않자, 그가 가만히 정수리에 턱을 괴었다.

“생각을 해봤거든요.”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권이도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긋나긋 이야기했다.

“만약 정말 취할 정도로 마신 게 아니면, 맨정신에 다른 남자를 찾았다는 건데…….”

“…….”

“그렇다고 술김에 연락했다고 하면 그건 또 그거대로 기분이 나쁘고.”

어감이 참 미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실장이 ‘다른 남자’라고 칭해질 상대는 아닌데 말이다. 권이도는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넌지시 물어 왔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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