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48)화 (48/131)

48화. Bonheur quotidien(1)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자 눈에 띄게 날씨가 바뀌었다. 곧 장마가 오리란 소식이 들렸고, 숨을 깊게 들이쉬면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듯, 전체적으로 채도 낮은 하늘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오전 6시 반. 알람 하나 없이 눈을 뜬 나는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드레스룸 앞에 섰다. 단조로운 디자인의 정장과 무난한 색감의 넥타이. 출근할 때면 늘 입고 다니던 차림이었는데 오랜만에 입으니 제법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거울 앞에 서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표정을 한 내가 보였다.

“후…….”

상태는 괜찮았다. 잠을 잘 잔 덕에 눈이 붓지도 않았고, 다크서클이 내려오거나 하지도 않았다. 유일한 흠은 단추를 풀면 목덜미 아래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흔적 정도. 물론 그마저도 넥타이를 잘 동여매면 보일 걱정은 없었다.

나는 줄지어 진열된 손목시계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골라 손목에 찼다. 부담스러울 만큼 비싼 브랜드의 시계였으나,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브랜드였다. 그 때문에 민재는 이곳의 액세서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민재가 여길 보면, 눈이 돌아갈 만큼 좋아하겠지.

빼곡히 채워진 장식품은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정확한 사이즈의 옷들, 이름 모를 보석이 박힌 넥타이핀, 내 손목에 꼭 맞는 손목시계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구두까지.

처음엔 쓸데없다고 생각한 물건들을 어쩌면 앞으로 매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챙겨 온 짐에는 오늘 같은 날 입을 만한 옷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몸만 오면 된다던 말대로 나는 최소한의 짐만 꾸려 권이도의 집에 들어왔다.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지…….”

오늘은 다름 아닌 첫 출근 날이었다. 권이도가 내게 마련해 준 향수 브랜드의 대표 자리. 자격증을 따기 전까지로 약속했다가, 그에게 향수를 만들어 줄 때까지로 기한이 변경된 내가 다닐 직장.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냥 조금 긴장이 된다면 모를까. 언젠가 처음으로 해신에 출근하던 그때처럼, 눈을 뜬 순간부터 미묘하게 비현실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했다. 드레스룸에서 나왔을 땐 협탁 위에서 은방울꽃과 향수 두 개를 발견하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 하나는 권이도에게 받은 향수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공방에서 만들어 온 우디 계열 향수였다.

“…….”

별생각 없이, 그가 선물한 향수로 손을 뻗었다. 전체적으로 하늘하늘한 디자인의 향수는 그 향 또한 병의 생김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 섞인 풀 냄새, 장미와 자스민이 섞인 은은한 향기. 은방울꽃 특유의 청량함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 건, 약혼반지를 빼내 협탁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사적인 장소면 모를까,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끝도 없이 마주칠 터다. 약혼 사실을 알리지 않길 바라는 권이도이니, 내 선에서 조심하는 게 좋겠지.

반지 자국이 남은 손을 괜히 쥐었다가 폈다 했다. 시계는 어느덧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아래층으로 내려갈 시간이었다.

* * *

“…….”

“…….”

권이도와 아침 식사를 하는 내내 그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끔히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가, 텅 빈 손을 보며 말끔한 눈썹을 살짝 찌푸렸을 뿐이다. 보일 듯 말 듯 미미한 변화였으나, 그간 권이도를 살펴본 내게는 또렷이 보였다.

아침 메뉴는 향긋한 쑥죽과 독특한 소스를 뿌린 연두부,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과 떡갈비였다. 이 집에 들어온 이후 꼬박꼬박 식사를 챙겼더니 아침에 먹는 양이 조금 늘어난 기분이었다. 원래는 한 공기를 다 비우는 게 살짝 거북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됐다.

“……기분은 좀 어떻습니까?”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권이도가 넌지시 이야기했다. 무려 정적 속에 밥을 먹었지만, 그 침묵이 예전처럼 머쓱하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 역시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나쁘지 않습니다. 조금 긴장도 되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권이도가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그는 예의 그 짙은 눈동자로 꼼꼼히 내 얼굴을 살폈다. 적나라한 시선이 내 얼굴을 만지는 것만 같았다.

“긴장한 얼굴이 아닌데.”

“그런 건 티 내지 말라고 배워서요.”

장난스럽게 권이도의 말을 받아쳤다. 눈을 맞춘 채로 미소 짓자 반대로 그의 입술이 다물렸다. 그는 다시 한번 내 손가락을 내려다봤다가 묵묵히 식사를 마저 이어 갔다.

늘 권이도를 배웅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오늘은 둘이 함께 현관을 나서야 했다. 그때까지도 권이도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나는 괜히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안 좋은 건지, 그렇다면 왜 갑자기 안 좋아졌는지. 그러한 것들을 묻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

먼저 안쪽에 올라탄 권이도가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안 타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남몰래 입맛을 다시며 안에 들어서자, 그가 망설임 없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차고가 있는 층을 누르지 않은 터라 우리를 태우고도 잠깐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그가 조금 억세다시피 내 손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시…….”

휙, 몸이 돌아갔다. 내가 말을 잇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나를 벽으로 밀어붙인 채 다짜고짜 입술을 부딪쳤다.

“……!”

화들짝 놀란 시야로 곱게 감긴 두 눈이 보였다. 내 팔과 어깨를 단단히 붙든 그가 각도를 바꿔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아차 하는 사이 입술 틈새를 파고든 혀는 방심하고 있던 내 혀를 부드럽게 옭아맸다.

“…….”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늘 키스만큼은 상냥한 그였는데, 지금은 녹아내릴 것처럼 뜨겁기만 하다. 혀와 혀를 문지르며 입 안 곳곳을 탐닉하던 그는 왼손으로 내 뺨을 감싼 채 귓가를 은근히 문질러 왔다.

반사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를 붙잡았으나, 그는 힘들이지 않고 내 왼손에 깍지를 껴 벽으로 내리눌렀다. 저항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기에 목덜미를 딱딱하게 굳힌 채 숨을 멈춰야만 했다.

쪽, 입술이 떨어졌다. 내가 모자란 숨 때문에 버거워할 즈음이었다. 마찬가지로 달뜬 숨을 내뱉은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숨 쉬어.”

“…….”

그와의 잠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만 하고, 그는 다시 깊게 입술을 맞물렸다.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이고 이번엔 아까보다 느리게 입 안에 혀를 밀어 넣는다.

코끝에 권이도의 페로몬이 스쳤다. 내가 뿌린 향수 냄새에 묵직한 나무 냄새가 섞여 들었다. 역시 공방에서 만든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고, 감히 향수 따위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존재감이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안달을 내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위태로운 감정이 전해졌다. 내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농밀하기 그지없었으나, 그래서 더 그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붙잡히지 않은 손을 권이도의 허리에 감았다. 내가 자신을 끌어안자 그가 움찔하며 깍지를 낀 손에 힘을 풀었다. 나는 붙잡은 손을 내 목에 둘러 주고 양팔로 그의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

쪽쪽거리는 소리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에게 몰입해 열심히 페로몬을 받아먹기 바빴다.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할 때는, 그가 내 허벅지 사이에 제 다리를 끼워 넣어 온몸으로 나를 받쳐 왔다.

“……흣.”

탄탄한 허벅지가 은근슬쩍 중심부를 눌렀다.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렸는데, 큼직한 손이 내 턱을 단단히 고정했다. 혀 아래쪽을 간지럽게 쓸어내리는 감각엔 허리를 파르르 떨며 그에게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양껏 입을 맞추고, 내가 정말 흐물흐물 녹아내릴 즈음에야 나를 놓아줬다. 힘없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흐리멍덩한 시야 너머로 진한 고동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엄지로 내 아랫입술을 덧그린 그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빨아들이길 반복했다.

“으응, 잠시만…….”

이러면 입술이 부을 텐데. 그런 생각으로 그를 밀어 냈지만, 역시나 권이도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씹어 삼킬 것처럼 아랫입술을 괴롭히다가 느릿느릿 빨아들이며 고개를 떼어 냈을 뿐. 한껏 예민해진 입술을 앞니로 깨물자, 그가 가만히 이마를 마주 댔다.

“세진아.”

가라앉은 음성이 외설스러웠다. 그는 숨결처럼 갈라지는 목소리로 상냥히 제안했다.

“그냥 집에 있을래?”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는 지그시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내 뺨에 제 뺨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귓가로 입술을 가져와 귓불에 입을 맞추며 사근사근 속삭인다.

“밖에 내놓으려니까 내 방에 가둬 두고 싶은데…….”

“…….”

“어떻게 생각합니까?”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그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가 지나치게 낮게 내리깔려서. 정말 진심이라는 듯, 페로몬 실린 음성이 등허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억지를 부리시네요.”

그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흥분감이 가시지 않은 탓에 아직까지도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일자리를 준 건 권이도 씨면서.”

딱히 탓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그가 보여 주는 모순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어째서인지, 그렇게 말을 해도 그는 절대 나를 가둬 둘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지금이라도 다시 가져가셔도 되고요.”

장난처럼 건넨 말에 권이도는 들릴 듯 말 듯 웃었다.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내 귀 아래쪽에 입을 맞춘 것이다. 목과 이어지는 부분을 입술로 문지른 그가 마찬가지로 장난스레 말했다.

“줬다 뺏기엔 모양새가 좀 그렇죠.”

딱히, 상관없지 않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별다른 미련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권이도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것도 첫 출근이라고 각방까지 쓴 사람한테.”

“…….”

각방이라니. 어감이 좀 그렇지 않나.

“……원래 방은 따로 쓰지 않았습니까.”

어제, 언제나처럼 권이도와 시간을 보낸 나는 분위기가 무르익자마자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냥 눈이 마주친 순간 느낀 건데, 그대로 있었다간 다른 의미로 밤을 새우게 될 것 같아서. 그래도 일을 나가는 건데 컨디션 조절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게. 내가 생각을 잘못했지.”

권이도는 그 사실이 썩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를 보낼 때도 미련 넘치는 시선을 보내더니, 오늘까지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안 어울리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서, 괜히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잘 어울리네요. 옷 입은 거.”

“옷 사준 사람 센스가 좋아서요.”

조그만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잠깐 나를 안고 있던 권이도는 그제야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우리 두 사람을 태운 승강기가 우웅 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갔다.

차고엔 권이도와 내가 각각 타야 할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가 내게 선물한 차 대신, 권이도가 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까만 세단이었다. 역시나 운전은 이태성이 할 예정이었기에 그는 나를 보자마자 차 뒷문을 열어 줬다.

“조심히 다녀와요.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자신이 투자하는 사업이면서, 권이도는 뻔뻔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반드시 저녁을 먹기 전엔 돌아오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정말 바쁘게 일하던 게 누군데, 이제 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굴고 있다.

“이따 뵐게요.”

나는 그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네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태성이 뒷문을 닫아 주고 운전석에 오를 때까지 권이도는 못이 박힌 것처럼 제자리에 서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내가 대표로 일하게 될 향수 회사는 엄밀히 따지면 향수 하나만을 다루지는 않았다. 우선은 선호와 연계해 여러 방향제 따위를 납품하고, 더 나아가면 코스메틱 브랜드로서 여러 화장품도 개발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스타트업 수준의 소규모 기업이지만, 선호의 투자를 받는 한 성장은 금방일 것이다.

며칠 전 권이도가 건네준 사업 계획서엔 이러한 내용들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나는 그가 제안한 최소 투자금을 듣고 놀랐다가, 손익 분기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투자’의 기본은 수익률일 터인데, 이렇게 되면 권이도가 하는 건 그냥 기부가 되지 않는가.

나는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Sejin’이라고 쓰인 사업 계획서를 다시 훑어봤다. 휘갈겨 쓴 필기체 로고는 S와 j 부분을 볼륨 있게 적어 포인트를 준 모양이었다. 대표란에 적힌 내 이름 세 글자가 회사 로고와 어우러져 두 배로 민망한 기분이 든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영인으로서 생각하면 이런 리스크가 큰 사업 따위 하지 않는 게 옳다. 그리고 그냥 평범한 시각으론 타인에게 덜컥 이런 회사를 맡기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선호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괜히 전문 경영인을 이사로 따로 두는 게 아니었다.

“세진이라니…….”

회사 이름을 세진이라고 지어 놓고, 마음에 안 들면 레이블을 바꾸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론칭될 상품의 이름은 바꿀 수 있더라도 사명을 바꾸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건만.

“이태성 씨, 향수 브랜드가 ‘세진’이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운전을 하던 이태성이 백미러로 흘긋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사업 계획서를 허벅지에 내려놓고 괜히 콧잔등을 찡긋했다. 무어라 질문하는 것조차 멋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가 출근할 회사 이름이 ‘세진’인데, 제가 보기엔 영 이상해서요.”

으레 명품 브랜드들이 디자이너의 이름을 땄다는 건 알고 있었다. 회사명을 대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드문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않나. 조향 경력이라고는 이희나에게 배운 2주가 전부인 내게 너무도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볼 땐…… 그냥 평범한 것 같습니다.”

이태성은 퍽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내가 “그래요?”라고 되묻자 핸들을 돌리며 한마디 덧붙이기도 했다.

“예, 그냥 본인 성함이라 어색하게 느끼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덜컥 만들어진 회사라 더욱 그랬고. 게다가 가장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것.

“날 위해 만든 것 같아서 그렇지…….”

원래 추진하던 사업에 그냥 내 이름을 붙인 것과 애초에 내게 주기 위해 사업 자체를 기획한 것엔 많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억지로라도 납득이 가능했지만, 후자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내게 바라는 게 있어도, 내게 환심을 사야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품을 들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이 회사가 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름부터 내용, 그리고 지나치게 좋은 조건까지. 마침 추진하던 사업에서 한자리 내어 준 게 아니라, 내게 한자리를 주기 위해 회사 하나를 통으로 차린 것처럼.

“본부장님.”

“본부장 아니라고 얼마나 더 말해야 합니까?”

갑갑한 기분에 괜히 이태성에게 딴지를 걸었다.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니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항상 저 호칭을 고집한다. 이태성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대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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