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Origine du parfum(6)
잠에서 깨어난 건 바깥이 어두워질 즈음이었다.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뜨자, 캄캄해진 방 안이 나를 맞이해 줬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옆으로 누웠던 몸을 뒤척여 천장을 향해 누웠다.
“…….”
흐린 시야로 높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팔은 이마에 얹고, 다른 쪽 팔은 배에 얹은 채로. 한참을 그렇게 천장만 바라봤다. 너무 푹 자고 일어난 탓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디기만 했다.
여기가 어디더라. 내 방이라기엔 뭔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다른데. 결정적으로 이렇게 아늑한 페로몬이 느껴질 리가 없건만.
포근한 이불이 마치 요람처럼 느껴졌다. 다시 눈을 감으면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태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게 꿈이라도 되는 양, 그간 자지 못했던 만큼 졸음이 밀려들었다.
다시 잠을 청하지 못한 이유는, 문 쪽에서 달칵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희미하게 스며든 빛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기다란 인영이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려던 상대는 나와 눈이 마주치곤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
“…….”
편한 홈웨어 차림에 머리를 차분히 내린 권이도였다. 어두운 와중에도 수려한 이목구비만큼은 그려 놓은 것처럼 똑똑히 보였다. 한 번, 두 번, 눈을 깜박이는 동안 권이도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깨웠나 보네.”
커다란 손이 내 이마로 다가왔다. 열을 재는 것처럼 그 언저리를 만졌다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 준다. 눈썹 뼈를 따라 간질간질 움직인 손가락은 뺨을 타고 찬찬히 턱까지 흘러갔다.
“깨어 있었어요.”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타이밍이 좋았지. 눈을 뜨자마자 권이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다니. 내 대답에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얼굴을 만지던 손을 거둬들였다.
“더 자요, 어차피 저녁 먹긴 글렀는데.”
시간이 그렇게 늦은 건가. 몽롱한 머릿속에 아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공방에 다녀와 혜율이를 만난 것, 함께 그림을 구경하고 온실에서 차를 마신 것, 그리고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권이도의 침대에 누운 것까지.
“혜율이는요?”
“아까 집에 갔어요.”
“아…… 인사도 못 했는데…….”
“괜찮아요. 조만간 또 놀러 온다고 했으니까.”
민망하게, 어린아이를 옆에 두고 곤히 잠들고 말았다. 이불을 덮고 있는 걸 봐선, 아마 누군가 잠자리를 봐준 모양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그 상대는 권이도겠지.
“혜율이가 정세진 씨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권이도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다리를 꼬았을 뿐인데, 그 모습이 퍽 고고해 보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오빠라고 불리는 기분은 어땠습니까?”
“…….”
멋쩍게 눈가를 찌푸렸다. 푸스스 실없는 웃음도 함께였다.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라니까. 끝내 호칭을 정정해 주진 못했다.
“좀…… 양심이 아프긴 했죠.”
“그래요?”
권이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나는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며 담담히 덧붙였다.
“네, 안타깝게도 제가 여동생이 있어서요.”
서영이와는 거의 대화가 없었지만, 그래도 호칭만큼은 오빠였다. 그마저도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바람에 어설프게 존댓말을 섞어 썼지만 말이다. 그런데 혜율이는 그런 서영이보다도 열댓 살이 더 어리지 않던가.
“다음엔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해주시겠어요.”
“아저씨라니…….”
작게 중얼거린 권이도가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별 소릴 다 한다는 듯 실없이 중얼거린다.
“혜율이도 눈이 있을 텐데.”
지나치게 민망한 말이었다. 나는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그냥 눈가를 찡긋하고 말았다.
“…….”
“…….”
그러고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나는 멀뚱히 어둠 속에서 권이도를 응시했다. 그런 날 확인했는지, 그가 잠투정하는 아이를 대하듯 목소리를 부드럽게 누그러뜨린다.
“더 자야지.”
살랑이며 풍기는 페로몬이 기분 좋았다. 알파 페로몬을 많이 느껴 본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권이도는 독보적으로 좋은 페로몬을 가지고 있었다. 내 취향에 꼭 맞는 것이, 가끔은 나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오늘도 바쁘세요?”
나는 그렇게 물으며 살며시 권이도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잠기운이 무심코 손을 움직이게 했다. 권이도는 느릿느릿 시선을 내려 붙잡힌 제 소매를 바라봤다.
“만약 시간이 남으면…….”
“…….”
“잠들 때까지만 옆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가물가물 눈앞이 흐려졌다. 금세 잠이 들 만한 상태였으나, 권이도가 가버린다면 맨정신이 될 게 분명했다. 내가 지금 곤히 잘 수 있는 건, 오로지 그의 존재 때문이었으므로.
“겸사겸사 페로몬도 뿌려 주시면 더 좋고요.”
“…….”
“물론, 바쁘지 않으시다면 말이죠.”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여유롭게 입매를 당긴 권이도가 스르륵, 붙잡힌 소맷자락을 빼냈다. 아, 바쁜가 보네. 그런 서운함을 애써 내리누르던 때였다.
“가만 보면…… 졸릴 때 어리광이 늘더군요.”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반쯤 감고 있는 눈두덩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뒤이어 콧잔등과 뺨에도 입술을 문지른 그가 마지막으로 귀 옆쪽에도 쪽, 입을 맞춘다.
“좋다는 말이에요. 나한테만 이러는 거니까.”
정말, 애정을 듬뿍 담은 행동 같았다. 섹스의 전희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을 아껴 주는 것처럼. 가슴께가 몽글몽글 설레는 바람에 눈가에 열이 몰리려고 했다.
권이도는 그대로 이불을 걷어 내 옆으로 들어왔다. 몸을 움직여 그가 누울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데, 그가 어딜 가냐는 듯 내 팔을 붙잡는다. 그리고 머리 아래 팔을 넣어 주며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리 와야지.”
“…….”
이렇게…… 안아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릴없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짙은 나무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권이도는 내 목덜미에서부터 등허리까지를 쓸어내리고, 내 정수리에 가만히 턱을 기댔다.
사람의 체온이 이토록 기분 좋은 것인 줄 몰랐다. 넌지시 전해지는 심장 박동이 막연히 남아 있던 불안감을 모두 녹여 버렸다. 큼직한 손이 날개뼈 부근을 다독이고, 얼굴을 파묻은 목덜미가 가늘게 떨렸다.
“내일은 일찍 들어올 테니까…….”
“…….”
“정 힘들면 전화라도 해요.”
내가 힘들 만한 일이 뭐가 있으리라고.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밀려드는 잠기운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의 페로몬과 따사로운 온기에 취해 눈을 감자마자 의식이 아득히 멀어졌다.
그간 못 이룬 잠을 다 자려는 거였을까. 나는 수면제 한 알 없이 그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기 직전, 코끝에 옅은 꽃향기가 느껴진 것도 같았다.
* * *
잠결에 주변이 너무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선선한 날씨에 해가 뜨기 전까지는 바람조차 차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뜨거운 공기가 주변을 가득 채운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하아.”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잠을 자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머리가 팽팽 도는 것도 같았고, 배 속이 바짝 조이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 지독한 갈증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땐, 밀려드는 열기를 참지 못해 숨을 크게 토해 내야 했다.
“하…….”
주변 풍경이 서서히 또렷해졌다. 이제는 완전히 환해진 방 안엔 권이도의 페로몬 대신 짙은 꽃향기만 가득했다. 자욱하고 밀도 높은 페로몬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것이었다.
“……흐으.”
또 주기가 돌아왔구나. 그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슬슬 찾아오리라고 생각했으니 새삼 당황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다만 한 가지, 권이도와 나눴던 대화가 벼락같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일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어차피 내일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을 거라던 말투가, 이제 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어떻게…….”
벌써 세 번째였다. 온실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을 때 한 번, 이태성을 출근시키지 않았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오늘까지 총 세 번.
권이도는 내 히트 사이클 주기를 알고 있다. 가정을 확신으로 바꾸는 증거는 충분했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의사마저 알 수 없다고 대답한 주기를 어째서인지 그는 정확히 꿰고 있는 것이다.
“흣…….”
간헐적으로 생각이 끊겼다.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에 관한 의문과 끝없이 차오르는 욕망이 서로 충돌했다. 그러다 끝내 승기를 든 건 후자였다.
“하아…….”
그가 뭘 어떻게 알았건 지금 내 상황을 해소하는 게 중요했다. 터질 것처럼 들끓는 열기와 숨이 막히도록 자욱해진 페로몬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권이도의 페로몬이 필요했다. 이 넘치는 모든 걸 사그라뜨릴 수 있는 건, 오로지 권이도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엉금엉금 몸을 움직여 이불을 끌어모았다. 그대로 품에 안자, 권이도의 페로몬이 한가득 밀려들었다. 나무처럼 고요하고 묵직한, 우성 알파 특유의 감미로운 페로몬. 비 오는 날 그와 입을 맞췄던 기억처럼, 잔잔히 감겨드는 차분한 향기.
“……흐.”
아랫배에서부터 열기가 퍼져 나갔다. 나는 이불에 얼굴을 푹 파묻고, 덜덜 떨리는 손을 바지춤으로 가져갔다. 이미 한껏 부풀어 있던 성기는 약간의 자극만으로 묽은 정액을 사출했다.
정액이 이불과 손을 엉망으로 더럽혔다. 여기가 권이도의 침대라거나, 그에게 못 할 짓을 한다거나 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불가능했다. 그저 눈앞에 있는 페로몬에 취해 본능대로 욕구를 해소하고자 했을 뿐.
“아…….”
만취할 때까지 술을 퍼부은 기분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취할 때까지 술자리를 가진 적도 없으면서. 이성을 잃으면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곳곳에 남은 그의 흔적이 마냥 좋기만 했다. 편안하고, 안온하고, 그리고 또 안락하다. 히트 사이클이 오면 늘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러한 와중에도 그다지 외롭지는 않았다.
“…….”
아니, 이 모든 배경에 부작용이 있던 모양이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페로몬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말도 안 되는 부작용이.
“하아, 권이도…….”
이불에 하반신을 비비적거렸다. 짐승 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머리로는 그가 날 만져 주는 감각을 상상하며 손으로는 어설프게 그의 손길을 따라 했다.
그러나 이미 흥분에 젖은 몸뚱이는, 진짜와 가짜를 기가 막히게 구분했다. 내가 아무리 재주 좋게 자위를 한다고 해도 권이도가 내게 안겨 줬던 쾌감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하아, 하아…….”
바짝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움찔움찔 떨렸다. 발기한 성기를 한 손에 쥐었다가, 아무래도 영 부족하단 생각에 몸을 움츠렸다. 원래는 뭐가 부족한지도 몰랐을 텐데, 지금만큼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떠올랐다.
“…….”
뒤를 만져 줬으면 했다. 굵은 손가락이 비좁은 내벽을 벌리고, 그보다 더 굵은 성기가 안을 빠듯하게 채워 줬으면 좋겠다.
간당간당하게 짧아진 이성의 끈은 수치심의 역치를 놀라울 만큼 높여 줬다.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앞을 만지던 손을 뒤로 가져간 것이다. 이미 흠뻑 젖어 버린 뒤에선 허벅지를 타고 흐를 만큼 애액이 흐르고 있었다.
“흐으…….”
팔을 뒤로 젖혀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중지를 엉덩이골에 미끄러뜨리자, 꽉 닫힌 입구가 만져졌다. 그대로 꾹 밀어 넣었더니, 손가락 하나가 밀려 들어가듯 쑥 삽입됐다.
“흣, 으…….”
나는 권이도가 그랬던 것처럼 내벽을 꾹꾹 문질렀다. 그러나 상상과 현실엔 좁히려야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단숨에 내가 느끼는 부분을 찾았던 그와는 달리, 나는 불편한 자세와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손가락을 가지고 씨름해야 했다.
분명,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으로 약지를 함께 밀어 넣었다. 이보다 더 굵은 걸 아무렇지 않게 삼켰었으면서, 지금은 고작 손가락 두 개가 빠듯하게 느껴졌다.
“……으.”
하나부터 열까지 죄 엉망진창인 행위였다. 분명 내 몸이 맞는데, 나조차 어디를 만져야 제대로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령 없이 뒤를 풀어 주다가 혀를 내민 채로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권이도…….”
둥글게 모아둔 이불에 코를 폭 파묻었다. 어렴풋이 남아 있던 권이도의 체취에, 내가 흘린 존재감이 서서히 섞여 들기 시작했다. 나무에 꽃이 피듯 자연스럽게 엉겨든 페로몬은 처음부터 한 사람의 것인 양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이렇게 달뜬 몸도, 페로몬처럼 섞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권이도가 내 다리를 벌리고 깊숙이 삽입해 주면 바랄 게 없을 텐데.
“……하아.”
달뜬 호흡이 허공에 흩어졌다. 이렇게 요령 없이 움직였는데도 빠듯하게 조였던 내벽이 어느 정도 풀려 있었다. 좀 더 굵고, 긴 무언가. 그래, 배꼽까지 닿을 것 같던 그의 성기가 안을 채워 줬으면 했다.
“흣……!”
마침내, 나는 내가 느끼는 부분을 찾아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내벽 어딘가를 무식하게 손끝으로 꾹꾹 자극했다. 찌릿찌릿한 쾌감이 간헐적으로 터지고, 이불에 문지르고 있던 성기에서도 희뿌연 액체가 흘러나왔다.
“흐읏…….”
아무래도 영 부족하다. 조금만 더, 더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었다.
아프다는 생각도 없이 손가락을 세 개까지 늘렸다. 권이도가 할 땐 능숙하기만 했는데, 정작 내가 하려니 자꾸만 입구에 틱 틱 걸렸다. 나도 손이 작은 편은 아닌데, 그의 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기다랗고 곧은 손가락을 떠올렸다. 여리여리한 생김새는 아니었으나 손톱 끝까지 단정한 모양이긴 했다. 그럼에도 뼈마디는 굵었고, 손등엔 볼록하게 핏줄 따위가 도드라져 있었다.
“으응…….”
그 손이 마구잡이로 나를 주무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톡 튀어나온 유두를 꼬집고 드러난 상체를 매만지며 아래로 향하던 손길을. 그리고 삽입을 위해 뒤를 풀던 그 감각까지.
어느샌가, 나는 손가락 세 개를 모두 넣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움직이는 건 불편했지만, 당장 그의 성기를 삼킬 수 있을 만큼 풀리긴 했다. 억지로 배에 힘을 풀며 손을 움직이자 질척거리는 액체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아…… 하아…….”
손목을 움직여 안쪽을 넓혀 갔다. 다른 손으로는 침대를 더듬어 가며 권이도에게 연락할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전화하라고 했으니, 핸드폰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다행히 내 핸드폰은 정말 베개 옆에 놓여 있었다. 나는 뒤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잔뜩 발기한 성기 끄트머리가 여러 체액으로 반질반질 젖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권이도의 번호를 눌렀다. 등록된 번호를 찾은 것도 아닌데, 손이 익숙하게 열한 자리 숫자를 기억했다. 뚜르르, 신호음이 두 번쯤 흘렀을 때 전화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
명치가 확 조여들었다. 단순히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그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성감이 고조됐다. 나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발기한 성기를 감싸 쥐었다.
“흣, 권이도 씨…….”
-……정세진 씨?
“언제…… 언제, 오세요?”
정액인지, 아니면 오메가의 애액인지. 미끄덩거리는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금방 갈 거예요. 지금 거의 다 왔고…….” 전화 너머로 권이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한 채 기둥을 살짝 쓸어내렸다.
-5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흣, 네.”
-정확히는 한 3분 정도면 올라갈 텐데…….
“흐…….”
-……근데 정세진 씨.
기분 탓일까.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귓가를 파고든 음성이 심장을 콱 붙들고 흔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음산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직이 질문했다.
-설마 지금, 내 목소리 들으면서 자위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