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억의 끝에 (31)화 (31/131)

31화. Quelques Fleurs(3)

“……여기서 그러면 안 되죠.”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만 긴장의 끈을 늦추면 그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권이도는 내 말에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다가 나긋나긋 이야기했다.

“왜 안 됩니까?”

일부러 거리를 넓히지 않는 게 분명했다. 말할 때마다 입술이 스쳐서 아랫배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에게 풍기는 페로몬과 체온 따위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

아, 설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한 손으로 권이도를 밀어 냈다. 의외로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금세 거리를 넓혔다. 아직도 입술이 간질거렸으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몰라서 물으시는 거 아니잖아요.”

오늘 선물 받은 차에서, 대체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키스 정도야 로맨틱하게 넘어간다고 해도 그보다 더 나가는 건 내 이성이 용서하지 못했다. 만약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이성 자체가 마비되었을 테지만.

“몰라서 물은 건데…… 안 될 이유가 있어요?”

권이도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정말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새 차에서 뭐 하는 짓입니까.”

“그럼 새 차가 아니면 괜찮고?”

“…….”

입이 딱 다물렸다. 순간적으로 정말 괜찮겠다고 생각해 버린 탓이었다. 어색하게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자, 권이도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무언가 더 대답했다간 그의 페이스에 말려 버릴 것 같았다.

“……야경이 예쁘네요.”

그래서 겨우 운을 뗐건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어색한 화제 전환이었다. 그런데도 권이도는 한 번 봐주겠다는 듯 푸스스 조그만 웃음을 흘렸다. 똑바로 조수석 시트에 기댄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게요. 예쁘네.”

기분 좋은 음색이었다. 듣고 있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

멀거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둘러봤다. 길게 이어지는 교량 아래, 넓게 펼쳐진 강물 위로 도시의 불빛이 아스라이 흐트러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 가슴이 벅찰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총총히 비치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보였다. 야경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장면을 많이도 봐왔건만.

사실,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여름이면 같은 과 동기들이 한강에 가서 치킨과 맥주를 먹곤 했으니까. 내게는 단 한 번도 권하지 않았기에 함께 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물론 권했다고 해도, 내가 돌아다니는 걸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여긴 어떻게 아셨어요?”

권이도와 한강이라. 이보다 더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권이도는 차에서 강물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명성호텔 최상층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아무래도 더 자세히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여길 알려 준 사람과 같이 왔던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굳이 확인하진 않았다. 권이도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곧 선호그룹 창립 기념식이 있을 예정이에요.”

그러고 보니, 매년 이맘때쯤 소식이 들려왔다. 선호그룹의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열리는 기념행사. 관련 계열사에서도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온갖 이벤트가 열렸다. 여태까지는 대체로 이런 기념식엔 아버지가 홀로 참석하곤 했다.

“늘 그랬지만, 이번엔 행사를 더 크게 할 겁니다. 겸사겸사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타사 사람들도 부를 거고요. 당연히 여기저기 초대장을 보낼 텐데, 그중에 해신도 있어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해신’은 지나치게 낯선 단어였다. 그간 일부러 생각을 피했기에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묵묵히 눈을 내리깔자,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세진 씨도 참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그간 외면하고 있던 부분들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있었던 일, 내가 해야 할 의무, 아직 끝나지 않은 혼사와 우리 사이의 관계.

‘선호 측에서 기사를 막고 있어.’

아버지가 말하길. 권이도는 나와의 약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계약의 대가도 주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무시하고 있다고. 그런데도 내가 직접 협상을 시도하겠다고 말하자 원치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는 그렇게 운을 떼며 권이도를 돌아봤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그가 눈만 돌려 내 쪽을 바라본다. 주변이 어두운 와중에도 짙은 눈동자만큼은 또렷이 보였다.

“권이도 씨가 저와의 약혼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하면 피치 못하게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권이도의 가족이라든가, 혹은 선호그룹과 연줄 한번 놓아 보겠다고 안달 난 사람들. 거기서 내 역할이 약혼자일지 아니면 다른 것일지. 그 사실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왜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권이도는 잠깐 입술을 다문 채 나를 응시했다. 올곧게 향해 오는 시선이 참으로 권이도다웠다. 길게 음영 진 콧날 그림자 아래, 모양 좋은 입술이 서서히 움직였다.

“그건 내 약혼자로서 묻는 건가요, 아니면 해신그룹 맏아들로서 묻는 건가요.”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그의 약혼자인 건, 결국 해신그룹 맏아들이기 때문인데. 후자가 성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나란히 차 안에 있는 일도 없었으련만.

“……두 가지가 다릅니까?”

“다르죠.”

그는 단호하게 대답하고 픽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어린아이 다루듯 상냥한 말투로 덧붙였다.

“후자인 것 같아 말하는데, 나한테 약혼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 손에 들어온 오메가를 어떻게 하건, 그건 권이도가 정할 문제였으니까. 다만, 그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묘해져서 그렇지.

“굳이 안 알릴 필요도 없지 않나요.”

이 기분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목구멍에 조그만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들떴던 기분이 서서히 가라앉아서 종국엔 가슴 언저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급작스러운 변화였는데, 권이도는 엷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건 전자로서 묻는 것 같군요.”

어딘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목소리였다. 내가 불쾌한 티를 내는 게 마음에 든다는 듯이.

“나와 약혼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넌지시 묻는 말에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권이도와의 약혼 사실을 알리는 것. 해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내게는 번거로운 일임이 분명했으니까. 이번 창립 기념식에 갈 때도, 약혼자인 것과 아닌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저는 권이도 씨가 편하신 쪽이 좋습니다.”

그래도 일단 최선의 대답을 내놨는데,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번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깐 입을 다물었던 그는 이내 아무렴 어떠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정세진 씨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본부장을 관둔 것만으로도 정세진 씨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나와의 약혼 사실까지 알려지면 여러모로 더 번거롭겠죠. 정세진 씨가 그런 관심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가능하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었다.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는데, 아마 본부장을 관뒀단 것으로도 수없이 많은 말이 돌았을 터다. 실제로 얼굴을 보게 되면 직접 이유를 묻는 사람도 많겠지.

“약혼 사실을 알리는 건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정세진 씨가 자유로워질 때 해도 충분합니다.”

“……절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고.”

권이도는 그건 너무 아름다운 포장이 아니냐며 픽 웃음을 흘렸다. 가만히 눈을 내리깐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으로 보였다.

“이건 그냥 내 욕심이죠.”

지난번에,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이렇게 나란히 차에 앉아서.

“불확실한 무언가에 투자하고 싶지 않거든요.”

모든 걸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가 불안해하고 있단 생각은 들었다. 모자란 것 하나 없는 권이도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는데도.

그는 금세 그러한 표정을 지우고 비스듬히 시선을 보내왔다.

“뭐…… 이 정도면 대답이 된 것 같은데.”

“…….”

“설명이 더 필요합니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권이도가 그렇다면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마 창립 기념식 때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모르는 척 있어야겠지. 아버지는 불만이 많겠지만, 적어도 마음대로 움직이진 못할 테니.

“그럼 전날에 미리 본가로 가야겠군요.”

가족들과 함께 출발하는 쪽이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좋을 것이다. 여러 인사가 오는 자리니, 옷과 머리 역시 단정히 세팅해야 할 거고. 김 실장에게 연락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권이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필요한 건 내가 챙겨 줄 테니까 그냥 내 집에서 출발해요.”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특유의 완고한 어투로 말한 그는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정세진 씨가 어디서 출발했건, 그걸 기자들이 알진 못하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찬 시계와 자동차 따위엔 관심이 있을지 몰라도,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관심이 없을 터였다. 가족들과 따로 도착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한 자리도 아니었고.

“만약 참석하기 싫으면 그것도 편히 얘기해요.”

“…….”

“정세진 씨는 아무 의무도 없어요. 그냥 권리만 취하면 됩니다.”

퍽 달큼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머리 아프고 번거로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권이도에겐 내게 면죄부를 쥐여 줄 자격이 없었다.

“권이도 씨 약혼자는 그래도 되지만, 해신그룹 맏아들은 그럴 수 없어서요.”

“…….”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가 삐딱하게 눈가에 힘을 줬다. 그럼에도 반박할 말이 없는지 미묘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이내, 나직한 숨을 토해 낸 권이도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요, 그럼.”

강물에 부서지는 야경이 그의 눈동자에 그대로 담겼다. 고요히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권이도는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느릿느릿 입술을 달싹였다.

“온실에 조명을 달았더라고요.”

그가 흘긋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굴러오는 장면이 현실감 없이 신비로웠다.

“다음에 권이도 씨 바쁜 게 좀 끝나면…….”

“…….”

“그땐 거기서 차나 마실까요.”

한가로운 소리였으나, 나로선 진심이었다. 그를 위해 단 조명이었으니, 이 평화로움이 오랜 시간 지속되길 바랐다. 창립 기념식이 끝나고 권이도가 좀 한가로워진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러나 애매한 대답은 결코 긍정으로 들리진 않았다. 그 미묘한 뉘앙스에 미간을 좁히자 그가 대뜸 나를 보고 물었다.

“정세진 씨는 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하고 싶은 거요?”

하고 싶은 거라. 여태 갖고 싶은 걸 묻더니, 이번엔 또 색다른 질문이었다. 도통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 가느다란 실소가 나왔다.

“글쎄…… 출세?”

“그런 거짓말 말고.”

가볍게 받아친 권이도가 눈썹을 찌푸렸다. 장난기 어린 표정이었다.

“취미라든가…… 승마나 레이싱, 아니면 뭐 요트를 띄워도 좋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해 봐요.”

“……음.”

이건, 갖고 싶은 물건보다 더 어려웠다. 그가 예시로 든 모든 걸 민재가 하는데, 단 한 번도 재밌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한참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권이도가 나긋나긋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지난번에 말했죠. 나는 정세진 씨를 감금한 게 아니라고.”

언젠가 그가 차를 빌려주며 했던 말이었다. 탁 트인 도로를 보고, 내가 떠올린 말이기도 했다. 그는 너그러운 말투로 그리 이야기했다.

“나가고 싶을 땐 나가도 괜찮아요.”

“…….”

알고 있었다. 그가 나쁜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다만, 그럼에도 양심이 콕콕 찔려 와서 그랬지.

“……항상 어려운 걸 물어보시네요.”

그가 문을 열어 준다 한들, 나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본부장이라는 직급이 없는 이상 내게는 그럴 만한 구실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정원을 산책할 뿐.

“이번에도 일주일을 주시나요?”

엷은 웃음을 띤 채 묻자 권이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 허벅지에 얹은 손을 톡톡 두드렸다. 생각에 잠긴 것처럼 그대로 있던 그가 느릿느릿 물었다.

“향수를 만들어 보는 건?”

“……향수?”

어색하지만 익숙한 단어였다. 권이도는 그대로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까딱였다.

“조향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

“비슷한 걸 해보면 어떨까 하고.”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별거 아닌 이유였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말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버려서. 그 찰나의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그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정답이었나 보군요.”

정말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표정에 그리 티가 나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하고 싶으면 해야죠.”

어떻게 해줄 거냐고, 나는 그렇게 묻지는 못했다. 곧장 안전벨트에 맨 권이도가 시간을 확인하며 눈가를 찌푸렸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대화를 종결시켰다.

“늦었는데 그만 돌아가죠.”

“…….”

나는 묵묵히 목까지 차오른 말들을 꿀꺽 삼켜 냈다. 그리고 곧 헤어져야 할 야경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가슴이 벅찰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 잠깐 사이에 무척이나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단 생각이 들 정도로.

* * *

날짜는 빠르게 바뀌었다. 권이도는 여전히 바빴고, 얼굴을 보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는 늘 그랬듯 별거 없이 나날을 보내다가, 이따금 먼발치에서 불 켜진 서재를 바라보곤 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의 반복이었지만, 다행히 악몽을 꾸지 않아 버틸 만했다.

그가 내게 남겨 놨던 자국들은 이제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뺨도 다 가라앉았고, 입 안쪽도 완벽히 아물었다. 그날의 일이 꿈인 것처럼 과거를 기억할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집에서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금요일엔 선호그룹 창립 기념식이 있는데, 그 사실을 내게 알리지도 않았다. 권이도가 내게 알리리라 생각한 건지, 그게 아니면 이제 내게 그 정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어느 쪽이건 무책임한 처사가 분명했다.

“경호…… 말씀입니까?”

그리고 창립 기념식 당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온실에 따라온 이태성은 오늘 일정에 관해 이런저런 것들을 전달해 줬다. 가령, 권이도가 내가 입고 갈 옷을 준비해 놨다는 것. 차와 기사는 물론, 경호원까지 꼼꼼히 챙겨 두었다는 것. 그리고 그 경호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까지.

“예, 몇 명 더 붙겠지만, 제가 보좌로 있을 예정입니다.”

“뭐, 보좌씩이나…….”

본부장으로서 행사에 참석할 땐 항상 김 실장이 함께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래 왔으니,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누군가가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그 역할을 이태성이 한다니 무언가 어색하면서도 생소한 기분이라 그랬지.

“고생하시네요.”

너도 참 여기저기 바쁘구나. 존경하는 상사를 모시지 못하고 이런 일에나 불려 다니다니. 그런 의미로 말했는데 이태성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느리게 흘러나온 대답이 아무래도 영 어색했다. 원래라면 특유의 무표정 뒤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으련만. 인제 보니, 그다지 귀찮은 기색도 아니었다.

“특별 수당 받습니까?”

“…….”

장난처럼 말했는데, 이태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여간 숨기는 데 영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니까. 조용히 이어지는 침묵이 곧 긍정이나 다름없어서, 나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복지가 좋은 직장이네요.”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