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Quelques Fleurs(2)
정말 지금 온다는 말이었을까. 그 의문은 정확히 30분 만에 해결됐다. 전화를 끊은 내가 집안을 서성일 즈음, 차고에 차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하필 고용인이 내 몫의 식사만 식탁에 올렸을 때였다.
나는 곧장 현관으로 나가 곧이어 들어올 권이도를 기다렸다. 그가 중문을 열고 들어오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내가 철없이 한탄한 게 아니라, 그냥 의미 없이 한 말이라고 변명할 요량이었단 말이다.
“…….”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드물게 흐트러진 차림새여서가 아니라, 그의 손에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들려 있어서.
“……이게 대체.”
새빨간 장미와 안개꽃으로 만든, 화려하고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온통 생화였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온 순간 자욱한 꽃향기가 훅 풍겨 왔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사이, 권이도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왜 여기까지 나와 있어요?”
“…….”
차마 꽃을 받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드물게 흐트러진 차림새의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급해 보이는 분위기가, 가슴 언저리가 저릿할 만큼 미묘했다.
“저 주시는 겁니까?”
그래서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자, 그가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러곤 엷은 미소를 띤 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살짝 말려 올라간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내가 가지려고 사진 않았겠죠.”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그다음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지만.
“내 집에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세진 씨밖에 없지.”
“…….”
나는 홀린 듯, 그가 내민 꽃을 받아들었다. 찰나의 순간 스친 손끝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권이도에게 받는 두 번째 꽃다발이라니. 비록 첫 번째는 직접 받은 게 아니었지만, 양쪽 다 새삼스러운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
입술을 달싹였지만,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약혼식 날엔 이런저런 감사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벅찬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예쁘네요.”
겨우겨우 내뱉은 말은 미처 닿지 못할 만큼 조그맸다. 권이도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지나가듯 가벼운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러게요.”
왜, 그 한마디에 목덜미가 홧홧할 만큼 부끄러워졌을까. 권이도의 시선이 꽃이 아니라 내 얼굴에 따라붙었기 때문일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지나쳤지만,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았다. 권이도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다음이었고, 내가 고용인에게 부탁해 꽃다발을 화병에 꽂은 다음이었다. 한참이나 장미꽃을 안고 있던 탓에 식탁에 앉을 때도 온몸에서 꽃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주방장은 갑작스러운 권이도의 퇴근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새 식사를 차렸다. 천혜향 소스를 넣은 새우와 조금 이른 감이 있는 여름 나물무침이었다. 본식으로 나온 오리고기는 속살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식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제 입 안 좀 괜찮습니까?”
밥을 절반쯤 먹었을 때, 권이도가 넌지시 물었다. 입 안이 터졌던 첫날, 식사를 하며 몇 번이나 인상을 찌푸렸던 걸 기억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혀끝으로 다쳤던 부분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아직 제대로 나은 건 아니었지만, 음식을 먹는 데 불편하진 않았다. 처음에 꽤 아팠을 때도 대체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만 먹은 덕에 괜찮았다.
“다행이군요.”
권이도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묵묵히 식사를 이어 갔다. 별거 아닌 한마디였는데, 그리 말하는 눈빛이 정말 안도하는 기색이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매사 무뚝뚝하게 대하는 사람이, 가끔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요새 많이 바쁘신 것 같던데…….”
나는 느리게 운을 떼며 젓가락을 내려놨다. 꽃향기에 중독되기라도 한 걸까. 자꾸만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무리해서 퇴근하신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철없이 어리광을 부려서 권이도를 집으로 불러온 것만 같았다. 마침 퇴근할 시간이었다고 합리화하기엔 누가 봐도 나 때문에 돌아온 사람이었다. 손수 꽃다발까지 사 온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글쎄, 내가 왜 바쁜지 알면 그게 얼마나 괜한 걱정인지 알게 될걸요.”
권이도는 픽 웃음을 흘리며 수저를 내려놨다. 식사를 다 마친 건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괜찮으면 잠깐 같이 내려가죠.”
데자뷔가 느껴졌다. 전에 한 번, 권이도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며 식사 자리를 뜬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그가 내게 차 키 두 개를 쥐여 줬던 날이던가.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그가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정세진 씨 차가 왔거든요.”
* * *
권이도가 내게 주겠다던 자동차는 M사에서 새로 출시한 새하얀 세단이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라인이었고, 자사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 클래식하게 다시 뽑은 스테디라고 했다. 국내에 한정판으로 들여왔기 때문에 아마 몇 대 있지도 않은 걸 권이도가 가져왔을 터였다.
“검수를 마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검사할 게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기껏 선물한 차에 문제라도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는 차 키를 손에 든 채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에 M사가 새로 적용한 기술이나, 운전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안전 시스템 같은 것. 차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답게 전문 딜러가 할 법한 설명을 유창하게 이어 갔다.
“옵션은 내가 알아서 달았고, 내부 디자인은 마음에 안 들면 얘기해요. 다시 바꿔 줄 테니까.”
자동차에 문외한이 내가 봐도 이번 디자인은 썩 예쁘게 뽑히지 않았나 싶다. 흰색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데도, 보는 순간 혹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얼핏 앞 유리로 들여다본 내부는 여타 자동차와는 달리 베이지 계열의 밝은 색감으로 꾸며져 있었다.
“잘 쓰겠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권이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차 키를 내밀었다. 브랜드 로고가 은색으로 박힌 차 키는 이제 정말 그에게 돌려주지 못할 내 것이었다. 이거 하나 받는 게 왜 그리 고되었는지. 새삼 감회에 젖는 와중에 권이도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내뱉었다.
“차 한 대 주기가 이렇게 어렵군요.”
“……하하.”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다. 뒤늦게 고맙다는 말까지 덧붙이자,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내가 쥐고 있던 차 키의 열림 버튼을 누르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어온 차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시승해 볼래요?”
차 내부는 온통 상아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가죽이었다. 핸들과 콘솔, 그리고 천장과 카시트까지 같은 재질이었는데 핸들 너머에 있는 계기판까지도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나는 운전석에 앉고, 권이도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늘 뒷좌석에 앉는 모습만 봐왔기에 참으로 낯선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안전벨트를 하고 의자 위치를 조정하는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잘 어울려서요.”
대답은 더할 나위 없이 산뜻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특유의 기품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내가 고른 차에, 정세진 씨가 앉아 있는 모습이 좋아서.”
참으로 가감 없는 표현이었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며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제가 걸친 모든 게 권이도 씨가 준 물건일 텐데.”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신고 있는 신발과 핸드폰도. 전부 권이도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하물며 샴푸 하나를 써도 그의 것이었는데, 차 하나 탔다고 좋아할 건 뭐란 말인가.
“전부 정세진 씨 마음에 들어야 말이죠.”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몰랐던 취향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가구는 화사한 색을 좋아한다거나, 과일 계열의 향보단 자연스러운 꽃향기를 선호한다거나 하는 것. 혹은 에세이보단 소설을, 그중에서도 주인공에게 큰 갈등이 생기지 않는 류를 좋아한다는 것.
“제 취향을 잘 아시는 것 같더라고요.”
“뭐…… 관심이 있으면 자연스레 아는 것도 많아지기 마련이니까.”
그가 하는 말은 어쩐지 항상 모호한 느낌이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싸한 대꾸 같은데, 정작 모순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약혼식 날 처음 만났는데, 권이도는 그때부터 이미 내가 들어올 방을 준비해 놓지 않았던가.
“면허는 몇 살에 땄습니까?”
이런 것도, 화제를 돌리려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다.
“면허는 스무 살 때 땄고, 운전 시작한 건 스물다섯부터입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차가 있었지만, 대학교에 다닐 때 자차를 끌고 다니지는 않았다. 애초에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있어도 늘 기사와 경호원 따위가 따라붙곤 했다.
“혹시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 운전 잘합니다.”
일단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했는데, 권이도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운전 잘하는 거.” 그 짧은 대답에 나도 모르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는 여전히 느긋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입매를 말아 올렸다.
“그런 건 그냥 차 만지는 것만 봐도 압니다.”
“…….”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냥 군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누가 새 차 아니랄까 봐, 첫 시작부터 움직임이 아주 매끄러웠다.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며 예의상 권이도에게 물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세요?”
한강이나 한 바퀴 돌고 올까. 그 중간에 차를 대고 구경할 장소도 있는 것 같던데.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강물에 야경이 비치는 모습이 제법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한강이나 한 바퀴 돌고 오죠.”
“…….”
핸들을 쥔 손이 움찔 떨렸다. 권이도가 내가 생각한 장소를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원래부터 무난한 드라이브 코스긴 하지.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나긋나긋한 뒷말도 들려왔다.
“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중간에 잠깐 차를 대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요.”
“…….”
“강물에 야경이 비치는 모습이 예뻐서, 아마 정세진 씨도 좋아할 겁니다.”
이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만들어 낸 운명일까. 만약 후자라면 권이도는 대체 어떻게 저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위화감과 함께 드는 기시감은 이따금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느끼던 것이었다. 정확히 따져 물으면 좋으련만, 내가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가보셨나 봐요.”
그래서 그냥, 가장 무난한 대답을 내놓았다. 막상 말하고 나니, 그의 과거를 질투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염려스러웠지만 말이다. 권이도는 아주 미미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한 번 가봤습니다.”
누구와 가봤냐고, 나는 거기까지 묻지는 않았다. 그 질문까지 꺼내면 정말 마음 좁은 연인처럼 보일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는 연인 사이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차고를 나와 도로에 오르자, 이게 얼마나 좋은 차인지 실감 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세단보다 제로백이 훨씬 짧다던데, 브레이크를 밟는 감각부터 차이가 났다. 핸들이 돌아가는 것도 부드러웠고, 차체 내부의 흔들림도 적었다.
딱히 안 좋은 차를 타 본 적이 없는데도,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승차감이었다. 만약 스포츠카였다면 절대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을 거다.
“……차가 정말 좋네요.”
그에게 차를 받은 이후,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감탄이었다. 역시 안목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내 옆얼굴을 바라보며 고저 없이 차분히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 정세진 씨는 차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차를 못 만난 거예요.”
운전 중이라 돌아볼 수는 없지만, 아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보일 듯 말 듯 눈매를 접고 시원스레 입꼬리를 올렸겠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이 그려졌다.
운전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한강에 다다르는 건 금방이었다. 노을이 지던 하늘이 어둠에 뒤덮였지만, 내게는 모든 게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자의적인 외출이었다. 늘 아버지에게 불려가기만 했는데, 내가 내 손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있었다. 그래 봤자 스쳐 지나갈 순간이었지만, 탁 트인 도로를 보는 순간 기분이 상쾌해졌다.
‘난 정세진 씨를 감금한 게 아닙니다.’
왜 하필 지금 권이도의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단 한 번도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집에만 있는 일상이 조금은 답답했던 모양이다.
조수석에 앉은 권이도는 차가 움직이는 내내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얼굴이 따끔거릴 만큼 집요한 시선이었으나, 나는 끝내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강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을 때야,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뿐.
“…….”
“…….”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권이도는 가만히 있는데, 나를 꽁꽁 옭아매는 기분이었다. 유독 짙은 눈동자는 가로등 불빛이 담긴 이채마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이게 했다. 느리게 감은 테이프처럼, 그가 더디게 운을 뗐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고요한 차 안엔 오로지 권이도의 목소리만 들렸다. 주변 소음이 모두 차단된 공간, 그와 나 둘뿐인 공간. 느껴지는 건 그를 닮은 페로몬뿐이었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이런 기분이군요.”
그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느리게 뻗어온 손길은 부어오른 왼뺨이 아닌 오른쪽에 닿았다. 엄지로 살살 눈꼬리를 매만진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뒤통수로 옮겨 머리카락 사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해도 됩니까?”
그게 뭐에 대한 허락인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느릿느릿 다가왔으니. 갈증이 날 만큼 긴 시간 동안, 나는 권이도와 눈을 맞춘 채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
“…….”
살포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누구 것인지 모를 숨결에 페로몬이 짙게 섞이기 시작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나무 냄새, 그를 닮아 차갑지만 다정한 향기. 그 모든 것들이 알싸하게 나를 취하게 했다.
뒤통수를 붙잡았던 손은 조심스럽게 목덜미까지 내려갔다. 고개를 살짝 비튼 그가 입술 틈새를 혀로 간지럽혔다. 허락을 구하듯 입구에서 맴돌았다가, 내가 저항하지 않자 조금 더 깊게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는 뺨에 난 상처를 확인하겠다는 듯, 내가 다쳤던 쪽을 혀로 덧그렸다. 움찔거리며 눈가를 떨자 나를 달래려는 것처럼 뒷덜미 아래를 다독이기도 했다. 살살 혀를 문지른 그가 맞닿은 입술로 살살 페로몬을 흘려 넣었다.
“…….”
흥분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애정 표현, 아니면 영역 표시 그 비슷한 것. 내게 제 흔적을 남기려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그를 각인시키는 행위.
권이도는 키스를 잘한다. 몇 번의 입맞춤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용조용한 입맞춤에 아랫배에서부터 열기가 고일 리 없으니까.
“흣, 잠시만…….”
살짝 그에게서 입술을 떼어 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눈이 뒤집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히트 사이클은 이미 끝났는데, 그가 주는 쾌락을 알아 버린 몸이 벌써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권이도는 멀리 떨어지지 않고 입술을 붙인 채로 이야기했다. 소리 없이 두어 번 입맞춤을 건넨 뒤엔 뒷덜미를 감싼 손으로 귀 뒤쪽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새끼손가락으로 귀 아래 움푹 파인 부분을 문지르는 감각이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간지러웠다.
“하고 싶어서?”
“…….”
두말할 것 없이 정답이었다. 그는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집요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친 두 눈에, 나와 비슷한 욕망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