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Quelques Fleurs(1)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척박한 땅에 돋아나는 새싹이나 삭막한 나뭇가지에 움트는 꽃봉오리 같은 것. 살랑이는 바람에 찬기가 가시고 이르게 찾아오던 밤이 서서히 늦어지는 시기.
약혼식을 올릴 땐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밤이 되면 외투가 필요했고, 바람이 불면 코끝에 시린 느낌이 남았다. 권이도와 함께 걸었던 산책로 역시 내게는 조금 서늘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후 한 달하고도 절반. 계절은 눈 깜박할 새에 바뀌었다. 원래도 화사하던 정원에 하나둘 처음 보는 꽃들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굳이 온실을 가지 않아도 정원에서 테이블을 펼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날씨였다.
“날이 많이 풀렸네요.”
나는 온실 천장 너머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오늘 고용인이 내어 준 꽃차는 비취처럼 맑은 색감을 띠는 붓꽃 차였다. 은은하게 달큼한 향내가 풍겨서, 한입 머금었을 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이태성은 흘긋 나를 바라보곤 “예, 그렇군요.”라며 성의 없는 대답을 건넸다. 금세 책에 시선을 고정한 걸 보니, 이번 소설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방해하지 말자 싶어 차나 마시려는데, 그가 불쑥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인공 죽습니까?”
“…….”
픽, 웃음이 나왔다. 각인 효과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가장 처음 빌려준 책이 너무 강렬했던 모양이다. 매번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걸 보면.
“안 죽습니다.”
깔끔하게 대답하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정말 몰입할 모양새라, 나도 멀거니 다시 온실 천장을 올려다봤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구름이 참으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쓸모없는 새끼…….’
“…….”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던가.
시간이 참 여러모로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영영 복구되지 않을 것 같던 마음도 어느 순간 괜찮아지기 마련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던 모든 게, 아직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울지 마, 세진아.’
그날,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돌아온 나는 권이도의 품에서 서러운 눈물을 토해 냈다. 아주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없는데. 뭐에 씐 것처럼 참았던 감정을 모두 토해 냈다. 권이도는 가만히 날 달래 줬고, 내가 눈물을 멈춘 뒤에야 딱 한마디를 건네왔다.
‘왜 그랬어요?’
그의 시선엔 여러 억눌린 감정이 가득했다. 걱정이나 미련, 혹은 미미한 분노. 그가 늘 보여 주던 권이도 나름의 상냥함 같은 것.
USB를 건네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료를 건네주고 왔더라면 나는 권이도를 아무렇지 않게 마주칠 자신이 없었을 테니.
‘……별로 가지고 싶지가 않아서요.’
감정을 표출하는 데도 체력이 필요했기에, 나는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회피했고, 최대한 고분고분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는 말이다.
‘권이도 씨가 그랬잖아요. 갖고 싶은 걸 골라 보라고.’
그러니 이번 행동은 내가 처음으로 결정한 나 혼자만의 선택이었다. 비록 그 결과는 처참할지언정, 체념 비슷한 확신은 생겼다. 만약 내가 자료를 건네줬어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지 못했으리라는 확신.
‘……그래서 갖고 싶은 걸 골랐습니까?’
가족이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그런 욕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쥐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갖기에,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요구하진 못할 터였다.
‘글쎄…… 우선은 권이도 씨와의 시간을 가지고 싶군요.’
내가 장난처럼 건넨 말에 그는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부어오른 왼뺨을 만지며 살짝 눈을 내리깔기도 했다. 이내 맞닿은 입술은 깃털처럼 아주 조심스럽고 가벼웠다.
그냥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함께 저녁을 먹고, 그의 방에서 대화를 나눈 뒤에, 내 방으로 돌아와 수면제 없이 잠이 들었다. 그가 내게 선사하는 평화가 마음에 들어서, 굳이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MRI부터 찍어보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그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말했으나, 워낙 강건한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말리지 못했다. 소문이 나면 어떡하냐는 걱정에는, 입막음을 시키겠다는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향한 선호병원에서 나는 과하게 친절한 의사에게 고막에 천공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권이도는 무섭게 표정을 굳혔으나, 사람의 고막은 생각보다 자연 치유가 잘 되는 기관이었다. 처음엔 종종 이명이 들리던 귀가, 며칠이 지나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멀쩡해졌으니.
정작 문제가 되었던 건, 뺨 언저리에 크게 자리 잡은 울긋불긋한 자국 정도.
‘……와, 심하네.’
처음 거울을 보는 순간, 나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모습에 놀라야 했다. 왼뺨이 팅팅 부은 건 그렇다 치고 얼룩덜룩 실핏줄이 터진 자국이 가득했으니. 입 안이 너덜너덜하게 헤질 정도였는데 그 바깥이 엉망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온실로 가는 길을 따라온 이태성은 그런 내 얼굴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보통은 조금 머뭇거리기라도 할 텐데 상당히 호쾌한 질문이었다. 그게 또 이태성다워서, 나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더랬다.
‘길바닥에 넘어졌습니다.’
‘…….’
그가 보내던 눈빛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설마 믿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만큼 황당하단 시선이었다. 그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가 지극히 평범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조심하셨어야죠.’
그러게, 조심할 걸 그랬지. 대체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굴었을까.
‘다음부턴 조심하려고요.’
덤덤히 대꾸하자, 이태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넌지시 물어 오기도 했다.
‘……길바닥은 어떻게 됐습니까?’
참으로 시적인 질문이었다. 길바닥이 사람이라는 걸 그도 모르지 않으면서.
‘뭘 어떻게 됩니까. 길바닥이 길바닥이지.’
내가 뺨을 맞은 건, 아버지에겐 별거 아닌 일이었을 거다. 어디 가서 말할 곳도 없으니, 상처가 나으면 없었던 일이 되겠지. 애초에 화가 나지도 않았고, 이제는 감흥조차 없었다.
‘……전무님이 가만히 계십니까?’
이태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영 뜬금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권이도 씨가 왜 나옵니까?’
‘그거야…….’
곧장 운을 뗐던 그는 이내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고개를 휘휘 저으며 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아닙니다.’
뒷말이 궁금하긴 했지만, 무어라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와 관련된 주제는 나 역시 불편했으니까.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영위했다. 오전엔 온실에서 책을 읽었고, 오후엔 가볍게 정원을 산책했다. 권이도의 서재는 무척이나 넓어서, 내가 몇 년을 더 지낸다고 해도 읽을 책이 부족하진 않을 듯했다.
달라진 건, 권이도가 이상하리만치 바빠졌다는 것 정도.
‘당분간은 좀 늦을 겁니다.’
늘 저녁은 함께 먹던 그였는데, 얼굴을 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내가 깨어나기 전에 출근해, 잠이 든 이후에 퇴근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오나 싶어 복도로 나와보면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2층 서재에 불이 켜진 모습만 보이곤 했다.
섭섭한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허전해서 그랬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애매한 관계였다. 분명 약혼을 했는데, 이 모든 건 결국 계약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몸은 섞었고, 또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은 밝힌 적이 없다.
권이도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보여 주는 애정을 모를 만큼 나는 무지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그에게 품은 감정을 헷갈릴 만큼 멍청하지도 않았고.
“이태성 씨.”
“예.”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예?”
이태성은 내 질문을 듣자마자 날벼락이라도 맞은 양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상처받은 눈빛이라 오해하지 말란 의미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물어보는 겁니다. 이태성 씨 정도면 인기도 많을 것 같아서.”
뒷말은 립서비스였지만, 그렇다고 빈말은 아니었다. 표정이 좀 딱딱해서 그렇지, 이태성 정도면 무척 잘생긴 축에 속했다. 경호원이라는 직업답게 체격도 좋았으니, 인기는 제법 많을 터였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이었다. 그냥 호기심에 물어봤을 뿐이니 대답을 듣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태성은 여전히 퉁명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만나는 사람 없습니다.”
결코 나쁘지 않은 눈치로 보건대, 연애할 생각까지 없는 건 아닌가 보다. 괜히 물어봤다 싶어 주제를 돌리려는 찰나, 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
“……뭐, 그냥.”
찻잔을 톡 톡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따듯한 기운이 남은 찻물은 하늘색과 청록색이 섞인 오묘한 빛을 띠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내려다봤다.
“이태성 씨는 매일 제 경호를 하니까, 데이트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권이도가 주말 없이 일하는 만큼 이태성도 쉬는 날 없이 내 경호를 맡았다. 정작 하는 일은 독서였으나, 어쨌든 그게 자유시간은 아니었다. 연인에게 하루를 고스란히 내어 주는 게 어려웠을 거란 말이다.
“만약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나는 연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로 바쁜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몰랐다. 얼마나 허전한 티를 내도 되는지, 그에게 어디까지 간섭해도 되는지 이런 것들. 권이도에게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막연히 홀로 생각해 본 것이었다.
“서운하지 않게 해야죠.”
이태성은 퍽 당당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뭐 그렇게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덧붙이기도 했다.
“원래 연애는 시간을 내서 하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라 그랬지. 다만, 뒤이어 흘러나온 말만큼은 무척이나 자조적이었다.
“그러다 정 엇갈리면 헤어지겠지만…….”
“…….”
바빠서 헤어진 연인이 있었나. 원체 숨기는 데 재능이 없는 건 알았지만, 여러모로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저렇게 씁쓸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나 보다.
“연애 경험이 많은가 보네요.”
“남들만큼은 있습니다.”
그는 담담히 대꾸했고, 나는 무어라 더 물어보지 않았다. 더는 궁금한 것도 없으니 그와의 사담은 거기서 끝이었다. 사실, 원래는 책만 읽다 헤어지기에 오늘은 좀 친근한 하루에 속했다.
붓꽃 차에서 풍기는 향내가 달짝지근하게 코끝에 맴돌았다. 나는 다 읽은 책을 훑어보다 말고 문득 궁금했던 사실 하나를 더 떠올렸다. 이번에도 답해 주지 않으면 굳이 캐낼 생각은 없는 질문이었다.
“……근데 이태성 씨,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 * *
침대 옆 협탁엔 유리돔을 씌운 은방울꽃이 놓여 있었다. 꽃을 가지런히 모아 받침 위에 세워 놓고 하얀 리본으로 줄기를 둘둘 감아 놨다. 뚜껑을 분리할 수 있나 본데, 괜히 건드리면 잘못될까 봐 따로 열어 보진 않았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 옆에 놓인 향수병을 매만졌다. 방울방울 달린 큐빅을 건드릴 때마다 천으로 만든 꽃잎이 함께 흔들렸다. 권이도에게 뿌려준 이후 사용한 적이 없기에, 아직도 내용물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괜히 뚜껑을 열어 허공에 향수를 뿌려 봤다. 안개처럼 분사된 향수는 장미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풀 냄새가 났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차츰 자연스럽고 희미한 향으로 변해 갈 거다.
“오늘도 늦으려나…….”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식사 때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권이도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아마 오늘도 식사는 혼자 해야 할 터다. 꼬박꼬박 늦는다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유독 바쁘면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한번 걸어 볼까.
그런 생각으로 핸드폰을 들어 홀린 듯 권이도의 번호를 찾았다. 괜히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하나 싶었는데, 그리 생각했을 땐 이미 통화 버튼을 누른 뒤였다. 귓가에 가져다 댄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세진 씨?
“…….”
고작 이름 하나 불렸을 뿐인데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뛰었다. 반가운 기분이 드는 한편, 내심 품었던 섭섭함에 양심이 따끔거렸다. 잠깐 숨을 가다듬는 사이, 건너편에서 한마디가 더 들렸다.
-여보세요?
“……아, 네. 듣고 있습니다.”
그와 전화할 때마다 느끼는데, 목소리가 실제로 듣는 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둘 다 비슷하게 듣기 좋지만, 이쪽이 조금 더 나직하다.
권이도는 어쩐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사근사근 이야기했다.
-듣지 말고 얘기를 해야죠. 전화는 정세진 씨가 건 건데.
“…….”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아무 일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늘 하던 통화인데 오늘따라 더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핸드폰 보고 계셨어요?”
-네, 마침 연락하려던 참이라.
바빠서 까먹은 게 아니었구나. 연락하려고 했다는 걸 보면 아마 오늘도 늦는 모양이었다.
“…….”
-…….
잠깐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얕게 들이마신 숨에 권이도가 선물한 향수 냄새가 섞였다. 공기 중에 엷게 스며든 향기는 조금만 더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정세진 씨는 뭐 하고 있었습니까?
“저야 뭐…… 그냥 평소랑 똑같습니다.”
내가 집에서 하는 것들은 뻔한데, 그는 늘 뭘 하고 있었냐고 물어봤다. 그마저도 처음엔 바쁘냐고 물었다가 내가 어이없어하자 바뀐 질문이었다.
-평소랑 똑같으면…… 낮에 온실에 갔다가 지금은 방에 있겠네요.
“…….”
집에도 잘 안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잘 아는지 모르겠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는데, 권이도가 넌지시 물었다.
-오늘도 이 팀장이랑 차 마셨습니까?
권이도가 뭐라고 했더라. 저와 공유한 적 없는 공간을 남과 공유하는 게 싫다고 했던가. 그래서 온실에 조명까지 달았는데, 정작 권이도와는 한 번을 가보지 못했다.
“이태성 씨가 저랑 동갑인 거 알고 계셨습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대신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아까 몇 살이냐고 물은 질문에 이태성이 돌려줬던 대답이 생각나서.
‘스물아홉입니다.’
설마하니, 동갑이었을 줄은 몰랐다. 못해도 나보다 한두 살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리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권이도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 팀장이 아직 서른이 안 됐다고요?
“…….”
풉, 웃음이 나왔다. 이태성의 이름조차 모르는 권이도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역시, 이태성에겐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 풍채가 20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권이도 씨.”
-네.
나는 느리게 운을 떼며 이불깃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바로 전까지 웃고 있었는데 괜히 또 기분이 이상했다. 이 전화를 끊으면 권이도의 목소리를 듣는 건 또 내일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분명 한 집에 살고 있는데도 며칠째 머리카락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퍽 어색해서.
“요즘 늦으시네요.”
그래서 그냥, 별생각 없이 이야기했다. 특별한 반응을 바란 건 아니었고, 그냥 그게 사실이니까. 일이 얼마나 바쁜지는 궁금했지만, 그걸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한참, 침묵만 흐르던 전화 너머에서 권이도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지금 갈게.
뚝, 전화가 끊겼다. 당황한 내가 미처 그를 부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방 안 가득 정적이 내려앉고, 뒤늦게 권이도의 말이 이해됐다. 멍하니 바라본 핸드폰 화면엔 그와의 통화 시간만이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