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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끝에 (25)화 (25/131)

25화. Raison d'etre(5)

느릿느릿, 굵은 성기가 대가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아래가 빠듯이 벌어지는 감각에, 나는 화들짝 놀라 권이도의 팔뚝을 붙들었다. 셔츠 자락이 손끝에 걸리고 그가 조금 더 깊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 아흑…….”

손가락을 넣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충분히 풀어 놨을 텐데, 그럼에도 버겁단 생각이 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밀고 들어온 귀두가 가장 굵은 부분만 넣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흐, 으, 아, 안 돼…….”

“……안 된다는 말을, 지금 하면 안 되지.”

“으응, 잠깐…….”

나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옆으로 뒤틀었다. 다리가 달랑 붙잡힌 탓에 멀리 도망가는 건 할 수 없었다. 물끄러미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권이도가 느른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뭐가 안 돼, 세진아.”

“잠깐, 흣…….”

눈물이 아롱아롱 눈꼬리에 맺혔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대로 내 허벅지를 단단히 고정한 채, 인정사정없이 아래를 꿰뚫은 것이다.

“……!”

너무 놀라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푹, 밀려 들어온 성기가 내벽을 빠듯하게 채웠다. 순식간에 뿌리 끝까지 삽입한 그는 상체를 납작하게 숙인 채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 좁아.”

“아…… 아, 읏…….”

과장 하나 없이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벌어진 내벽이 아파서가 아니라, 그가 삽입한 성기가 목까지 들어올 것처럼 길게 느껴져서. 뒤늦게 밀려든 현실감에, 배 속이 경련하듯 덜덜 떨렸다.

“못 하겠…… 흐, 못 하겠는…….”

“못 하기는.”

그는 고개를 젓는 나를 보며 여유롭게 허리를 움직였다. 조금의 틈도 없이 내벽을 채운 기둥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했다. 마치 적응할 시간을 주려는 것처럼 그가 삽입한 채 안쪽을 쿡 쳐올렸다.

“항상 잘만 해놓고.”

“……아흣!”

내가 언제 항상 잘했냐고. 그리 물을 수는 없었다. 약간의 통증과 함께 밀려든 쾌감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탈색했기 때문이었다. 허리가 둥글게 말리고, 여전히 깊게 들어온 권이도가 서서히 내벽을 문질렀다.

“흐…… 하으…….”

그래, 일단 참고는 하겠다고 했지, 빈말로도 멈추겠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자신은 끝까지 할 생각이니, 멈추고 싶으면 지금 이야기하라고도 했다. 그 말이, 그때를 놓치면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였을까.

“이건, 너무…….”

풀풀 페로몬이 흘렀다. 내 것인지, 아니면 권이도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하나처럼 뒤섞인 향내는 입 안에 침이 고일 것처럼 달큼한 것이었다.

“……너무?”

“아, 너무…….”

벅차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겁다고 해야 할까. 안쪽이 열리는 느낌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간 꿔 온 악몽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견디긴 힘들었다.

“너무 큰, 데, 흐으…….”

겨우겨우 그 말 한마디를 내뱉자, 권이도가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내 다리에 뺨을 문지르며 여유롭게 눈을 깜박인다. 짙은 눈동자엔 여태껏 보지 못한 욕구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침대에서 그런 말을 해봤자…….”

“흣, 으응, 으…….”

“조르는 걸로밖에 안 들리는데.”

느릿느릿, 성기가 반쯤 빠져나갔다. 몽롱한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해롱거리는 나를 보고, 그가 다시 한번 깊숙이 성기를 쳐올렸다.

“아……!”

허리가 파르륵 튀어 올랐다. 바짝 조여든 내벽이 움찔움찔 굵은 기둥에 들러붙었다. 잠깐 미간을 좁힌 그가 아랫도리를 밀착한 채 한 부분을 꾸욱 짓눌렀다.

“하읏!”

새된 신음이 목울대를 울렸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손가락으로 만졌던 그 부분. 내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자극한 그가 허리를 크게 쳐올렸다.

“……아, 아!”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몇 번인지 모를 절정에 내몰렸다. 왈칵, 정액을 토해 낸 성기가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뒤에 힘이 들어갔는지, 권이도가 고개를 숙인 채 소곤거렸다.

“힘 빼요, 정세진 씨.”

“그게…… 흣…….”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였던가. 이미 힘이 빠진 몸뚱이는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건만.

“아, 잠깐…….”

그는 사정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금세 허리를 움직였다. 반쯤 물렸다가 깊숙이 삽입하고, 뿌리 끝까지 박아 넣은 채 아래를 비비적거렸다.

“흐, 읏, 흐응…….”

푹, 내리찧는 감각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찌릿한 희열도 함께였다. 호흡으로, 그리고 피부로, 열에 달뜬 페로몬이 나를 흥분시켰다.

“거기, 흣…….”

“……여기?”

나직이 되물은 권이도가 내가 느끼는 부분을 쿡 쿡 건드렸다. 사실, 굳이 거기가 좋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 주던 중이었다. 그는 어깨에 걸쳤던 다리를 내려 주고 푹, 내벽을 쳐올리며 상체를 숙였다.

“하으응……!”

그냥 습관처럼 권이도의 목을 끌어안았다. 양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를 받아들였다. 어느새 흥건하게 젖은 아래쪽에서 질척이며 난잡한 소리가 들렸다.

“아아…… 흐…….”

“못 하겠다더니, 여긴 이렇게 조이는데.”

“흐, 으읏…….”

살짝 고개를 저으며 권이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욱한 페로몬 틈에서 익숙한 은방울꽃 향기가 느껴졌다. 물을 탄 것처럼 말간 향기가 묵직한 나무 냄새에 섞여 폐부 깊숙한 곳에 스며들었다.

그는 대롱대롱 매달린 내가 무겁지도 않은지, 내 등 뒤로 손을 넣어 상체를 끌어안았다. 그러다 문득 여전히 반쯤 입고 있는 가운을 보며 혀를 차기도 했다. 코끝을 내 목덜미에 문지른 그가 드러난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하으…….”

고통인지, 아니면 쾌락인지 모를 신음이 흘러나왔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흐르고 있었다. 푹, 푹, 안쪽이 꿰뚫릴 때마다 이성이 날아가는 것처럼 의식이 아득해졌다.

“하으, 흐…….”

좋아도, 너무 좋았다. 바보가 된 것처럼 더 해달라고 조르는 것밖에 못 할 정도로. 그래서 바짝 하반신을 밀착하고, 허벅지를 조이며 아랫배에 힘을 줬다.

“세진아.”

“…….”

“숨 쉬어.”

그는 손가락을 밀어 넣어 억지로 입술을 벌리게 한 채 아래턱을 고정했다. 할딱거리며 숨을 몰아쉬자, 상체를 따라 말캉한 입술이 가슴께로 내려갔다. 가슴 윗부분을 쪽쪽 빨아들인 그가 꼿꼿이 선 유두를 앞니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 흐…….”

온몸을 벅벅 긁고 싶은 기분이었다. 모든 부위가 성감대가 된 것처럼 그가 건드리는 곳들이 죄 예민하게 곤두섰다. 권이도가 몸을 밀착할 때마다 발기한 성기가 그의 아랫배에 꾹꾹 뭉개졌다.

“하…… 정세진.”

낮게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는 깨물었던 부분을 혀로 핥으며 가운 속에 넣은 손으로 등을 매만졌다. 다른 손은 뒤통수를 받친 채로, 그가 벌떡 내 몸을 일으켰다.

“……아흣!”

힘없이 허벅지 위에 푹 주저앉았다. 무게가 실린 탓에 음모가 스칠 만큼 권이도가 깊게 들어왔다. 잠깐, 그 상태 그대로 나를 끌어안은 그가 내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엮은 채로 귓불을 깨물었다.

“아…… 귀, 그거…….”

“하지 마?”

“응, 흐, 읏…….”

기껏 물어 놓고, 권이도는 대답을 듣지 않고 귓바퀴까지 깨물었다. 씹어 삼킬 것처럼 잘근잘근 문 뒤엔 혀를 내어 여린 부분을 핥기도 했다. 아릿한 귓불을 입술로 물었을 땐, 쪽쪽 소리가 날 만큼 내 귀를 잔뜩 빨아 놓았다.

“하아, 빨리, 흣…….”

그는 잠깐 멈췄을 뿐인데, 안달 난 몸이 들썩이며 권이도를 졸라 댔다. 귀가 빨리는 것도 좋았지만, 조금 전처럼 더 강한 쾌감을 얻고 싶었으므로. 그래서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는데, 그가 내 엉덩이를 붙잡아 위에서 아래로 푹 주저앉혔다.

“흐읏……!”

찌르르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파들파들 어깨를 떠는 동안, 그는 오로지 팔 힘으로 나를 들었다가 놓길 반복했다.

“아, 흐, 좋아, 흣…….”

“……그만 보채, 응?”

“으응, 흐, 응…….”

권이도는 바르작거리는 나를 끌어안고 두어 번 입술을 내리눌렀다. 쪽, 쪽, 맞닿은 입술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졌다. 그와 닿은 모든 부분에서 홧홧 데일 것처럼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답삭 목을 꼭 끌어안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마자, 그가 내 쇄골 부근에 연신 입술을 문질렀다. 그러다 도드라진 뼈를 따라 이를 세우곤, 귓불에 그랬던 것처럼 세게 빨아들인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발갛게 자국이 남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입느니만 못한 가운을 손쉽게 벗겨 내던지곤 조금 더 편안하게 내 몸을 끌어안았다. 떡 주무르듯 엉덩이를 움켜쥐며 위에서 아래로 쾅 쾅 내리누르기도 했다.

“거기, 흣, 아……!”

“…….”

그가 무어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단 생각이 들었다. 큼직한 손으로 등허리를 쓸어내린 그가 나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양다리를 어깨에 걸친 채 몸을 숙여 손바닥으로 침대를 짚었다.

“……아흑!”

퍽! 굵은 성기가 배 속을 거칠게 내리찧었다. 언제 여유롭게 굴었냐는 듯, 허리 짓이 서서히 빨라졌다. 푹, 푹, 몇 번 더 삽입한 그가 귀두만 남기고 빼내었던 성기를 단숨에 밀어 넣었다.

“……!”

전립선이 길게 자극됐다. 찰방, 차오른 쾌감은 단숨에 파도처럼 내 온몸을 뒤엎었다. 이미 한계까지 내몰렸던 성감이 풍선이 터지듯 펑 하고 터지는 듯했다.

“……큿.”

그는 내가 사정함과 동시에 안쪽 깊숙한 곳에 파정했다. 내벽을 가득 채운 성기가 움찔움찔 뜨듯한 액체를 한가득 내뱉었다. 배가 부를 만큼 길게 이어진 사정은, 내가 달뜬 숨을 터뜨릴 즈음에야 끝이 났다.

“하아, 하아…….”

“후…….”

권이도는 사정을 마치고도 곧장 성기를 빼내지 않았다. 이어지는 여운을 즐기듯 배부른 사자처럼 은근히 아랫도리를 문질렀을 뿐. 내 다리를 옆으로 내려 준 그가 한 손으로 셔츠 앞섶을 성의 없이 뜯어냈다.

투두둑 단추가 떨어졌다. 새하얀 셔츠는 잔뜩 구겨진 데다 내가 싸지른 정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나는 흐려진 시야 너머로 탄탄한 상체가 드러나는 모습을 멍하니 관찰했다.

“정말 그런 취미가 있나 봐요.”

“…….”

그가 중얼거리는 말에 대답할 겨를은 없었다. 떡 벌어진 어깨나 굴곡진 복근 따위가 신이 빚은 피조물처럼 완벽해 보였다. 자세가 바르니 몸의 균형도 바른 건지. 배꼽 아래에 도드라진 핏줄마저 아름답다 여겨졌다.

“……그거 압니까?”

픽, 권이도가 웃음을 흘렸다. 내가 꿀꺽, 침을 삼키는 그 타이밍이었다. 그는 내 골반을 단단히 붙잡은 채 가볍게 허리를 움직였다.

“한 번 하면.”

“……흐읏.”

“여기가, 잔뜩 젖어서…….”

“아, 잠깐…… 흣…….”

“더, 부드러워지는 거.”

분명 방금 사정했는데, 그는 여전히 발기한 상태였다. 커다랗고 단단한 성기가 젖은 내벽을 여기저기 문질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찌걱, 찌걱, 안에 있는 정액이 뭉개지는 듯했다.

“……내가 싼 걸로만 젖은 것도 아니네.”

그 말과 동시에 권이도가 느릿느릿 성기를 빼내었다. 내벽이 그를 따라 딸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정액과 이미 뒤를 적셨던 애액 따위가 뻐끔거리는 구멍을 따라 함께 흘러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는 반쯤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의아함에 시선을 맞추자, 권이도가 나를 똑바로 응시한 채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단숨에, 빠져나갔던 성기를 푹 밀어 넣었다.

“하으응……!”

푹, 푹, 연신 삽입하며 그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우스운 건, 나 역시 히트 사이클이 끝나지 않아 금세 몸이 달아올랐단 사실이지만.

“아, 흐, 으응…… 거기…….”

“벌써, 후, 조일 줄도 알면서…….”

이미 한 번 적응한 몸은 권이도가 드나들 때마다 적절히 조이길 반복했다. 안쪽을 넓힐 땐 힘이 빠졌고, 그가 빠져나갈 땐 아쉬운 듯 입구가 조여들었다. 이미 그에게 맞춰 놓은 것처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본능이 알아서 움직였다.

“아, 아……!”

분명 처음인데, 처음 같지 않았다. 매일 강간 당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일까. 그 행위는 섹스가 아닌 폭력이었을 뿐인데도. 권이도와 하는 행위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어느 순간, 그는 자연스레 입을 맞춘 채 느긋이 속도를 늦췄다. 지나친 쾌락 탓에 내가 목이 쉬도록 신음할 즈음이었다.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을 주려는 듯, 그는 부드럽게 혀를 섞곤 입으로 직접 페로몬을 넘겨줬다.

“……흐읍.”

시기적절하게, 진 빠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행동이었다. 꼴깍꼴깍 받아 마신 페로몬은 명치께에 고인 성욕에 불을 지피는 매개체가 되었다. 녹초가 되었던 몸이 욕구로 뒤덮여서, 내가 힘들었단 사실도 잊은 채 다시 그를 바라게 만들었다.

“하아, 조금만…… 흐, 천천히…….”

“천천히 할게.”

흥분으로 가라앉은 목소리엔 다정함과 애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비록 그 말과는 반대로, 권이도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지만 말이다. 너른 등판에 손톱을 세운 채로, 나는 뒤통수를 베갯잇에 문지르며 미치도록 차오른 희열에 몸부림쳤다.

“아흐으……!”

딱, 죽지 않을 만큼 좋았다. 아니, 죽어도 괜찮을 만큼 좋다고 해야 하나.

이대로 열락에 취한 채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늘 원망스럽기만 했던 히트 사이클이 오늘처럼 황홀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내가 오메가고, 그가 알파라서, 꼭 맞아떨어지는 몸뚱이가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세진아.”

권이도는 행위 중간부터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대답을 바라는 게 아니라, 단순히 부르기만 했다. 내가 신음을 흘리며 매달리면 그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러붙는 식이었다.

“정세진.”

그러다 그가 목소리를 내리깐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터졌다. ‘정세진’ 세 글자가 낯설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몰아치는 쾌감이 밖으로 흘러나온 거였을까. 어느 쪽이건 지독한 설움이 물밀듯 밀려들었단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흐으…….”

“왜 그렇게 서럽게 울어.”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으며 뺨 언저리에 입술을 문질렀다. 그렁그렁 차오른 눈물은 권이도가 입술을 눈가로 옮겨 오면서 사라졌다. 한가득 맺힌 눈물을 핥아 낸 그는 나를 달래려는 것처럼 땀에 젖은 머리를 넘겨 줬다.

“흐윽, 흡…….”

드러난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귓가에도 가볍게 입을 맞춘 그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작게 속살거렸다.

“세진아.”

“…….”

“나 봐.”

마치 명령 같은 말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 한마디엔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자, 흐르는 눈물을 응시하던 그가 욕지거리를 짓씹으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흑!”

퍽, 밀려 들어온 성기가 사정할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낮은 신음과 함께 으스러뜨릴 것처럼 나를 꼭 끌어안았다. 넘어갈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찰나, 여러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널…….”

그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말하려고 했던 뉘앙스만 전해졌을 뿐. 미안함과 미련, 그리고 사무치는 후회가 담긴, 권이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많은 감정의 찌꺼기들.

“…….”

권이도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아주 잠깐 떠오른 의문은 금세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방금 사정한 권이도가 또다시 내 몸을 고정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더 몸을 섞었다. 그는 내게 노팅하지 않았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다정하게 나를 안았다.

조심스러운 손길, 그리고 한가득 풍기는 페로몬과 따사로운 체온. 그 모든 것들이,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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