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Raison d'etre(4)
“…….”
“…….”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눈물이 날 만큼 간절했다. 지독한 갈증을 느낄 때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감격스러운 기분에 가슴께가 벅찼다.
그는 말없이 문을 닫고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내 페로몬으로 가득하던 공간에 권이도의 존재감이 섞였다. 뭉텅뭉텅 흘러나왔던 페로몬이 단숨에 비를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 들어갔다.
“권, 이도…….”
내가 두 번째 불렀을 때, 그는 미묘하게 눈가를 움찔거렸다. 깊게 숨을 토해 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기도 했다. 가볍게 방 안을 둘러본 그가 예의 그 고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다행이군요.”
“…….”
“이번엔 그게 내 이름이라서.”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눈꼬리에 맺혔던 눈물이 뺨을 따라 힘없이 흘러내렸다. 권이도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응시한 채 나긋이 운을 뗐다.
“정세진 씨.”
권이도 특유의 페로몬이 넘실넘실 흘러내렸다. 나는 몸을 꾸물거리며 그에게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노력했다. 탐스럽게 익은 과실을 코앞에 둔 것처럼, 간절히 손을 뻗으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페로몬 좀…….”
“…….”
겨우겨우 건넨 손은 그의 옷자락에도 닿지 못한 채 떨어졌다. 색색 숨을 몰아쉬는 내게 권이도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얼핏 보이는 눈빛이 평소와는 달리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힘듭니까?”
그걸, 말이라고. 저 또한 우성이면 주기가 올 때 얼마나 힘겨운지 알고 있을 텐데. 물론 그는 주치의가 처방한 억제제를 복용해서 이렇게까지 한계로 내몰린 적은 없겠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까요.”
권이도는 그리 물으며 내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눈물을 닦으려던 건지, 엄지가 눈 밑을 살짝 쓸어내렸다. 그대로 멀어지려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
할 수만 있다면 손가락을 씹어 삼키고 싶었다. 비정상적인 충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 끝을 입술에 물어 볼 정도였다. 권이도는 지그시 내 아랫니를 내리누르며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얘기해 봐요. 해달라는 대로 해줄 테니까.”
자상한 말씨였다. 그런데 왜, 그가 화를 내고 있단 생각이 들었을까. 표정도 목소리도 멀쩡한데 그의 기분이 상했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나 좀.”
나는 운을 떼놓고도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꾸만 알 수 없는 기분이 샘솟아서 문장을 만드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여전히 입술 틈엔 권이도의 손가락이 물려 있는 상태였다.
“제발…….”
말이라기보단 신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숨결 섞인 음성은 잔뜩 억눌린 데다 쉬어 빠지기까지 했다.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쉰 나는 양손으로 그의 손을 움켜쥐며 애원했다.
“어떻게든…….”
페로몬이 훅 풍겨 왔다. 내 얼굴 옆에 손을 짚은 그가 잡혀 있던 손으로 턱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상체를 숙인 채 깊숙이 입술을 맞물린다.
“…….”
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가 숨을 불어 넣는 순간, 정말 인공호흡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한가득 넘어온 페로몬이 폐부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온몸 구석구석 퍼져 나가는 듯했다.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닿기 위해 고개를 비튼 채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조심스레 혀를 밀어 넣으며 헐떡거리는 나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흐으.”
절로 신음이 터졌다. 조심스럽고 섬세한 키스였지만, 그저 닿아 있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였다. 더 진하게, 깊은 곳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권이도와 섞이고 싶었다.
그래서 입 안에 들어온 혀를 쪽쪽 빨아들였다. 누구 것인지 모를 타액을 생명수처럼 받아 마시고 그가 움직이는 대로 하릴없이 혀를 움직였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능숙한 입맞춤 뒤엔 그를 원하는 마음 하나로 비 오듯 페로몬을 쏟아 내기도 했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깃털처럼 스쳤다. 달큼하게 섞인 숨결이 머릿속을 녹진하게 녹여 내는 듯했다. 권이도는 한참 그대로 머물다가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숨을 멈췄다.
“…….”
“…….”
한 번, 경험한 적 있는 상황이었다. 신호가 통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타이밍이 맞았다고 해야 할까.
“흐읍…….”
아까보다 깊게, 그가 입술을 맞물렸다. 아예 침대 위로 올라와서는 나를 덮치듯 위에서 내리눌렀다. 타액이 섞이는 소리가 질척거리며 울리고, 숨을 쉬는 게 버거울 만큼 그가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키스가 이렇게 아찔할 수 있는 거구나. 입 안쪽 예민한 점막을 건드릴 때마다 오싹 소름이 끼치는 듯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느 틈엔가, 그는 벌어진 가운 깃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목덜미와 쇄골, 그리고 어깨 따위를 매만진 그가 맨살이 드러난 상체를 따라 손바닥을 문질렀다.
“……흣.”
이미 달뜬 몸뚱이에 비해 그의 손은 지나치게 서늘했다. 그가 닿는 순간순간마다 움찔거리며 어깨가 떨렸다. 한동안 빗장뼈 부근을 맴돌던 손은 감질날 만큼 느리게 아래로 내려갔다.
넓은 손바닥이 가슴 언저리를 매만졌다. 의도한 건지, 손가락 사이사이에 꼿꼿이 선 유두가 툭 툭 걸렸다. 두어 번 그렇게 장난을 치던 그는 이번엔 손등으로 제가 건드리던 부분을 느긋하게 쓸어내렸다.
“으응…….”
타인의 손이 닿은 적 없던 부위는 권이도의 손길 하나에 지나치게 반응했다. 허리가 움찔움찔 떨리는 게 차마 신음을 참지 못할 정도다. 뭐라도 잡아야겠단 생각에 옷깃을 쥐려는데, 힘이 들어간 손끝은 정장 재킷을 긁어내리기만 했다.
딱, 미칠 것만 같았다. 아까보단 훨씬 나았지만, 오히려 성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혼자 견디는 히트 사이클이 고통이었다면 이쪽은 오히려 고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비틀며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이 욕망을 해소해 줬으면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애걸했다.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설마하니 내가 알파에게 목을 매는 날이 올 줄이야. 매일 수면제 대용으로 쓰던 그의 페로몬이, 이토록 온몸을 열에 들뜨게 할 줄이야.
“……하아.”
권이도는 살짝 입술을 떼어 내고 잠시 숨을 골랐다. 조금 더 가까이 상체를 숙인 그가 얼굴을 내 귓가에 파묻었다. 그리고 귓불을 잘근거리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는 끝까지 할 생각인데.”
“…….”
“멈추고 싶으면 지금 얘기해요.”
늘 생각하지만, 권이도의 목소리는 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발음이 정확해서일까, 아니면 울림이 독특해서일까. 듣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푹 잠겨 버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해도 돼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옷가지가 마구 구겨졌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 따위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딱 하나의 생각만이 온 머릿속을 가득 뒤덮었을 뿐.
“아니…… 해주세요.”
“…….”
“하고 싶어요.”
권이도와 자고 싶다. 더 닿고, 더 섞이고, 조금 더 체온을 공유하고 싶었다. 넘칠 것처럼 차오른 성감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단 욕구가 치밀었다.
“……하.”
그는 달뜬 호흡을 터뜨리며 내 귓바퀴를 콱 깨물었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고, 몽롱한 머리에 잠깐 정신이 돌아올 정도. 이내, 깨물었던 부분을 혀로 핥은 그가 뺨에 입술을 문지르며 이야기했다.
“내 이름 불러 봐요.”
“……권이도 씨?”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짙은 페로몬이 와르르 쏟아지고, 그가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묻기까지. 가슴께를 맴돌던 손가락이 가운의 허리끈을 풀고 앞섶을 풀어 헤친 것도.
“아, 흣…….”
커다란 손은 망설임 없이 바짝 발기한 성기로 향했다. 나조차 잘 만지지 않는 부분을 그는 가볍게 그러쥔 채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별거 아닌 동작이었지만, 한참 전부터 흥분한 터라 성기는 금세 정액을 사출했다.
“흡……!”
절정에 내달리는 감각은 언제 느껴도 참 적응이 되질 않았다. 내 손으로 직접 한 것도 아니고, 준비되지 않은 과정이라 더더욱 그랬다. 허리를 잘게 떠는 나를 보며 그는 무심히 제 손에 묻은 정액을 살펴봤다.
“양이 적은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듯했다. 이미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만, 저런 감상평을 듣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한 말인지, 그는 대충 이불에 손을 닦아 내고 내 목 부근에 입을 맞췄다.
“세진아.”
“흐으…….”
쪽, 민망한 소리가 들렸다. 높은 콧대가 턱과 목이 이어지는 언저리를 건드렸다. 말캉한 입술은 그 아래 맥이 뛰는 자리를 베어 무는 중이었다. 정확히 페로몬샘이 있는 부분. 그곳에 입술을 문지른 그가 하반신을 바짝 붙였다.
“…….”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상대가 권이도이기 때문이라거나, 이러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시시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바지 너머로 느껴지는 감각이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해서였지.
“……이게.”
권이도가 다 벗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었다. 허벅지에 닿는 부피감이 내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아니, 단순히 그뿐이 아니라 평균보다 훨씬 커다랗다는 사실도.
내가 멍하니 있는 걸 알아챘는지, 그가 흘긋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겨 주며 여유롭게 눈을 내리깐다. 쪽, 목덜미에 한 번 더 입을 맞춘 그가 허스키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
“작을 줄 알았어?”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었다. 그리 묻는 목소리가 너무도 야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넋을 놓은 사이, 그가 상체를 일으킨 채 옷을 벗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대충 풀어냈다. 방해만 되던 재킷을 벗은 뒤엔, 베스트 단추를 풀어 마찬가지로 침대 아래로 치워 버렸다. 넥타이에 손가락을 걸어 끌어 내릴 때는, 목을 좌우로 까딱이며 후, 숨을 내뱉었다.
“옷 벗는 걸 구경하는 취미가 있나 보죠.”
“…….”
가볍게 건넨 말에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실제로 무슨 영화라도 보는 양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듯,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취미가…… 없어도 생길 것 같은데요.”
가끔 움직이는 게 신기할 만큼 잘생긴 사람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현실감이 아득히 멀어질 정도로. 정장을 차려입으면 그걸 입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은데 반대로 벗는 모습은 또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여유 부리긴…….”
권이도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느른하게 미소 지었다. 느릿느릿 풀어낸 넥타이마저 툭 떨어뜨린 뒤엔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긴……. 나도 몰랐던 취향을 아는 중이라.”
그의 시선은 앞섶이 다 벌어진 내 몸뚱이를 향하고 있었다. 아래쪽은 반쯤 가려졌지만, 상체는 벗느니만 못한 상태로 드러났다. 언제 이렇게 엉망이 됐지. 그런 의문을 가져 봐야 이제 와선 달라지는 것도 없다.
“남은 건 하면서 벗죠.”
권이도는 옷을 다 벗지 않고 다시 내게 입을 맞춰 왔다. 아까처럼 혀를 섞은 건 아니었고, 도장을 찍듯 가볍게 내리누르고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목 안쪽 여린 살을 잘근거린 그가 오른손으로 내 허리께를 문질렀다.
“앗…….”
크게 소스라치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얇은 셔츠 너머로 단단한 몸이 만져졌다. 조심스럽고 감질나는 손길이 납작한 배를 타고 와 배꼽까지 간지럽혔다.
“흐읍…….”
그는 내가 밀어 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양껏 만지고 싶은 부분을 어루만졌다. 목덜미에 머물던 입술은 어느샌가 가슴으로 내려와 톡 튀어나온 돌기를 머금었다. 혀를 세워 꾹꾹 짓누르는 감각에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몰랐던 사실인데, 내가 간지럼을 꽤 타는 체질이었나 보다. 권이도가 건드리는 모든 부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운 걸 보면. 더 정확히는, 간지러운 게 아니라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읏.”
발가락을 오므라뜨리며 어금니로 혓바닥을 깨물었다. 아주 잠깐 사그라졌던 성욕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사이 권이도는 내 골반을 만지다 말고 다른 손을 입술로 가져왔다.
“깨물지 마.”
기다란 손가락이 입술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혀를 깨물고 있던 걸 어떻게 알았는지. 보지도 않아 놓고 익숙하게 혓바닥을 내리누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입술로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갔다.
“하으…….”
가슴이, 이토록 예민해질 수 있는 부위인지 몰랐다. 말캉한 혀가 스칠 때마다 찌릿한 쾌감이 명치께에 고였다. 골반을 건드리던 손은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와 여린 살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중이었다.
분명 손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미묘하게 익숙해 보였다. 가령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을 살살 쓸어내리는 손길 같은 것들이. 그리고 가슴으로 모자라 갈비뼈가 있는 곳을 깨무는 행동까지도.
“긴장 풀어요. 안 아프게 할 테니까.”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조금 더 깊숙이 들어왔다. 다른 손은 거추장스럽게 치대는 가운을 옆으로 벌리는 중이었다. 회음부를 지나 은밀한 부분에 닿은 손가락이 꽉 닫힌 입구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흣…….”
이미 젖을 대로 젖은 덕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조금 빠듯하다 싶을 만큼 길어서 그랬지. 반사적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자, 권이도가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흐, 으…….”
분명, 낯선 감각이었다. 누군가 건드리긴커녕 나조차 써본 적 없는 곳이었으니까. 남자 오메가가 알파를 어디로 받아들이는지는 알았지만,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전엔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흐으, 읏.”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모든 행위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가 조심조심 내벽을 넓히는 것도, 내가 습관적으로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는 것도. 하나였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나서, 권이도가 안쪽 어딘가를 꾹 짓누르는 것도.
“아흣!”
허리가 파드득 경련했다. 엉덩이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나도 모르게 새된 신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낸 소리에 내가 놀라는 사이, 권이도는 아무렇지 않게 건드렸던 부분을 다시 자극했다.
“잠까, 아, 흣, 흡…….”
“잠깐이 어디 있어.”
“아니, 권이도 씨, 하으…….”
잔뜩 흘러나온 애액이 질척거리며 민망한 소리를 냈다. 손가락을 빙그르르 돌린 그가 내가 느끼는 곳을 은근하게 자극했다. 내가 다시 혀끝을 깨물려고 하자, 그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쥔 채 입술을 겹쳐 왔다.
“……흐읍.”
넘쳐흐르던 신음이 목울대를 울리고 사라졌다. 권이도의 혀가 침입한 탓에 무언가를 깨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래를 헤집을 때마다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되는데 혀와 혀를 문지르는 행동은 마냥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아무리 비교 대상이 없다지만, 그가 퍽 능숙한 축에 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의 손이 닿는 모든 부분이 성감대였고, 호흡으로 넘겨주는 페로몬조차 오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응…….”
마치 가을비를 맞은 나무에 꽃이 피는 듯했다. 늘 묵직하고 고상한 페로몬이 지금은 취할 것처럼 화려하고 달콤했다. 내가 흘리는 페로몬 반, 권이도가 뿌리는 페로몬이 반. 온 피부로 누구 것인지 모를 흥분이 전해졌다.
한참 혀를 섞은 뒤에야 그는 손가락을 빼내고 입술까지 떼어 냈다. 얼핏 마주친 시선은 욕망과 열기가 한데 뭉쳐 득실거리는 중이었다.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는 사이, 권이도는 내 다리를 어깨에 걸치며 이야기했다.
“못 하겠으면 얘기해요.”
툭, 아래쪽에 무언가 닿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짜 하면서 벗었네. 그런 생각도 잠시, 그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덧붙였다.
“일단 참고는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