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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끝에 (12)화 (12/131)

12화. Petit a Petit(2)

그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고 싶었다. 총알이 없는 총 따위, 결국엔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진짜 총을 처음 보거든요.”

철컥, 서랍이 잠기는 소리는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누가 꼼꼼한 사람 아니랄까 봐, 그는 잘 잠긴 서랍을 두 번이나 당겨 봤다. 서랍이 열리지 않는단 걸 확인한 뒤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방으로 가죠. 몇 시간 못 잤을 텐데.’

상냥하게 말했지만, 결국엔 축객령이었다. 왜 왔냐고 묻지도 않는 걸 보면 용건이 없다는 것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군말 없이 권이도를 따라나섰고, 그는 뒤늦게 나를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맨발?’

‘아, 슬리퍼가 없길래.’

때마침 서재 문이 닫히는 바람에 복도는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가느다란 빛줄기에 의지한 시야는 권이도가 내민 손을 놓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운 행동에 내가 화들짝 놀라 버렸단 점이었다.

‘…….’

‘…….’

탁, 권이도의 손을 쳐내 버렸다. 서재에서 총을 들고 있던 왼손이었다. 분명 무례한 행동이었고 반사적으로 밀쳐 낸 나조차도 당황하고 말았다.

‘아, 그게…….’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뒷덜미가 오싹해서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어젯밤엔 분명 위로가 되었던 손길이, 그때만큼은 나를 위협하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나는 들릴 듯 말 듯 사과를 건네고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갔었다. 내 옷으로 갈아입은 뒤엔 곧장 침대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 1층에 내려왔을 때, 권이도는 내게 그 어떤 잘못도 묻지 않았다.

“정말 권이도 씨가 무서운 건 아닙니다.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목이 막히는 기분이라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권이도가 직접 대화를 시작했으니 나 또한 그에게 해줘야 할 말들이 있었다.

“여러모로 실례 많았습니다.”

권이도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두 눈은 열 마디 말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해야 하는 변명을 읊었다.

“여태껏 이런 경우가 없어서 그렇게 갑자기 히트 사이클이 올 줄 몰랐습니다. 미리 대비해야 했는데 책임감 없게 굴었어요.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못 볼 꼴을 보일 때면 아버지에게 꼭 해야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대놓고 탐탁잖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꾸했었다.

‘모자란 놈. 다음부턴 똑바로 처신해.’

“조심이라…….”

권이도는 그리 중얼거리며 미미하게 눈가를 찌푸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있다가 가만히 입매를 당기기도 했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조심할 겁니까?”

비웃음…… 아니, 어이없음이라고 해야 할까. 온실이 아닌 방에 틀어박혔다면 나았을 거라고, 그렇게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내가 건넨 사과를 단조롭게 반박했다.

“그게 조심해서 해결되는 문제인지 몰랐군요. 정세진 씨 말대로 갑자기 찾아온 거면 달리 방법이 없을 텐데.”

비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예의 그 기품 있는 말투로 느릿느릿 말을 이었을 뿐.

“잘못한 사람이 없어도 사고는 생깁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갑작스레 들이닥친 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였다. 물론 그의 입에서 이러한 말들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권이도는 금세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내게도 먹으라며 권했는데, 이미 사라진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약지에 낀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볍게 운을 뗐다.

“……억제제가 안 듣는 체질입니다.”

진작 이 얘기를 해줬어야 했다. 사실은 약혼 전부터, 아버지가 그에게 알려 줬어야 할 부분이었다.

“의사 말로는 페로몬샘이 기형이라 그렇다던데, 평소에 페로몬이 없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히트 사이클이 올 때만 어제처럼 되고요.”

담담한 척 이야기했으나, 사실은 긴장한 상태였다. 가족들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내 하자를 고백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아니, 가족들에게도 내 입으로 말한 게 아니니 그냥 처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군요.”

권이도는 생각보다 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고, 무언가 더 물어볼 생각도 없는 듯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은 약혼식 날 이 말을 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정세진 씨 페로몬이 꽃향기랑 비슷하거든.’

“…….”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들었건, 아니면 홀로 눈치챘건.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으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대신 나는 미뤄 뒀던 고마움을 전하기로 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을 가득 담은 인사였다. 물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권이도의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텅 빈 옆자리를 보며 서운함을 느꼈다. 찰나처럼 스친 감정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굴었는지 알아차리는 계기가 됐다. 더 긴장감을 잃기 전에, 적당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신기한 일이죠.”

생뚱맞게도, 권이도는 나직이 중얼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가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으로 보였다.

“처음엔 편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제는 걸림돌이 될 줄이야.”

걸림돌이라니? 그렇게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가만히 눈을 내리깐 그가 다시금 시선을 들어 올리며 이야기한 것이다.

“물어보지 않길 바란 것들이 있는데, 정말 안 물어보니까 내 입으로 말하고 싶어지는군요.”

“……어떤 부분이 그러십니까?”

글쎄. 그는 낮게 침음하며 테이블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아무래도 무언가 깊이 생각할 때면 나오는 특유의 버릇 같았다.

“예를 들면…… 내가 온실에 어떻게 알고 왔는지.”

가벼운 예시는 이미 한 번 질문한 적 있는 것이었다. 권이도도 ‘아, 이건 물어봤던가.’라며 눈가를 찌푸렸다.

“아니면, 정세진 씨 옷을 누가 갈아입혔는지.”

“그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데요.”

반사적으로 이야기하자, 권이도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말하려다 내뱉기 직전에 삼킨 모양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물어 왔다.

“왜?”

“그거야…….”

왜냐니. 당연히 누구건 별로 상관없으니까 그렇지. 고용인이 그렇게 많은데 설마 뒤치다꺼리할 사람 하나 없으리라고.

“……궁금해야 합니까?”

한가득 의문을 담은 질문에 권이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픽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요.”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가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정세진 씨 속옷을 누가 벗겼다는 건데, 궁금해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

옷 하나 갈아입힌 게, 그런 뉘앙스로 말할 건 아니지 않나. 그것도 저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별로 상관없…….”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일순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내 쪽을 향하는 시선에 불쾌함이 서렸기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이도 씨가 갈아입혔습니까?”

“…….”

이어지는 침묵은 곧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권이도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지그시 눈을 맞춰 왔다. 그 모습을 보자, 아주 당연한 의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왜 다른 사람한테 안 시키고…….”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면 굳이 권이도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고용인 중 하나를 골라 적당히 지시만 내려 두면 그만인 것을. 온갖 체액으로 엉망인 옷가지를 뭐하러 직접 건드린단 말인가.

“번거로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예의상 인사를 건넸으나, 권이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한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봤을 뿐.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쉰 그가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핸드폰은 오후에 비서가 가져올 겁니다.”

“…….”

핸드폰? 그 말을 듣자마자 퍼뜩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온실에 두고 왔구나, 하고. 내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권이도가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별로 안 궁금했나 보군요.”

“……정신이 없어서요.”

가끔 눈치가 정말 귀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표정에 티가 나는 편은 아닐 텐데.

“액정이 다 깨졌길래 새 걸 사 오라고 했어요. 백업은 다 해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뇨, 그러실 필요는…….”

“정세진 씨.”

“…….”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입을 꾹 다문 채 권이도와 시선을 마주했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나는 그가 불만스러워한단 느낌을 받았다.

“……잘 쓰겠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진 자신이 주는 모든 걸 받으라고 했던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냥 조금 의아해서 그렇지.

권이도에겐 별거 아닌 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고, 백 원짜리 사탕을 양보하는 것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다만, 그런 것들이 마치 대가 없는 친절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일까.

“알아들었으면 잠깐 같이 내려가죠.”

권이도는 그리 말하며 먼저 식탁에서 일어났다. ‘어디를?’ 그런 의미로 고개를 들자, 그가 턱을 까딱했다.

“줄 게 있어서.”

* * *

중문 밖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장 지하에 있는 차고로 연결된다. 자주 쓰는 차 몇 개만 주차해 놨다는 공간은 내가 이 집에 들어와 단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는 곳이었다. 뭐, 내 방과 온실을 제외한 대부분은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권이도는 나를 데리고 차고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널찍이 주차된 차들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그의 개인 차량이었다. 자동차 수집이 취미라더니, 종종 아버지가 탐내던 한정판 모델들도 세워져 있었다.

“일주일 전에 정세진 씨가 했던 말 기억합니까?”

권이도 특유의 음성이 차고 내부에 울렸다. 그는 나를 흘긋 바라보곤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기사 없이, 내가 좋아하는 차종으로, 딱 한 대만.”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권이도 씨가 좋아하는 차로 한 대만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기사도 필요 없고요.’

“예, 기억합니다.”

차를 주려고 그러나?

권이도가 원하는 차를 말하라고 한 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원래라면 내일이 히트 사이클이었고, 나는 오늘 저녁 즈음 방에 틀어박힐 예정이었다. 워낙 여러 가지 일이 많았던 데다, 그 이후로 따로 언급한 적이 없어 잊고 있었다.

“마침 M사에서 신모델이 나왔는데, 보니까 정세진 씨한테 잘 어울리겠더군요.”

M사라면 독일에 있는 유명 승용차 브랜드의 하나였다. 안정성과 편의성을 모두 챙겨 마니아층에게 극찬받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부하직원 중 하나가 침을 흘릴 기세로 카탈로그를 보던 기억이 있다.

“사실 마음에 드는 건 다른 라인이지만, 정세진 씨가 운전할 거면 세단이 나으니까.”

그러면서 권이도가 가리킨 건 좌측에 주차된 스포츠카였다. 민재가 보면 눈에 불을 켜고 탐낼 차종이었으나,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저렇게 납작한 자동차는 승차감이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걸 주려는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탁, 권이도가 멈춰 섰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비스듬히 나를 내려다봤다.

“최대한 빨리 빼도 대기가 한 달이라네요.”

“한 달이요?”

“정확히는 3주 정도.”

“그 정도면…… 빠른 편 아닙니까?”

브랜드에서 새로운 차종이 나오면 적게는 반년, 길게는 2년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보았다. M사 같은 경우엔 애초에 개수가 많지 않으니 예약을 걸기부터 쉽지 않을 거다. 아마 권이도의 이름으로 순번을 앞당긴 게 한 달이겠지.

“날짜만 보면 빠를지 몰라도, 차가 없는 상태에서 한 달은 길죠.”

정확히는 3주라고 했으면서, 권이도는 마치 터무니없는 기간을 들은 사람처럼 눈가를 찌푸렸다. 계획이 어긋났단 사실에 유감을 표하는 듯했으나,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어 보였다.

이내 모양 좋은 입매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죠.”

한 발짝 옆으로 비켜 선 그가 제 뒤편에 주차된 자동차를 눈짓했다. 나란히 주차된 차 두 대는 참으로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검은 건 선호에서 출시한 것이었고, 하얀 건 M사의 경쟁사인 B사에서 출시한 것이었다.

“내가 고른 차가 나올 때까지, 여기 두 대를 번갈아서 쓰는 걸로.”

“……네?”

멍하니 권이도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보다 권이도가 빨랐다.

“기간 내에 못 주게 됐으니까 임시방편으로 주겠습니다. 신뢰의 바탕은 시간 약속인데, 그걸 그르칠 수는 없잖아요.”

그 말과 함께 그는 주머니에서 차 키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누구나 알 법한 상표가 조명을 받아 번쩍번쩍 빛났다. 차 키를 한 번, 자동차를 한 번 돌아보는 내게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랬다.

“쓰던 거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도 됩니다.”

“…….”

쓰던 거라니. 아무리 차에 관심이 없어도, 저게 선호에서 지난달에 출시한 차종이라는 걸 알고 있건만. 온갖 매체에 요란스럽게 광고하던 무광 블랙이 여기저기 얼마나 화제였는데.

“……기간을 따로 정하진 않았죠.”

키를 받는 대신 권이도를 바라봤다. 나도 웬만해선 올려다보는 경우가 없는데, 그는 가까이 있으면 고개를 들어야 할 만큼 눈높이가 높았다. 어쩐지, 기자들 틈에 있을 때도 홀로 머리 하나가 튀어나와 있더라니.

“일주일은 차를 고르는 기간이었으니까, 한 달 뒤에 주셔도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받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권이도도 내 의도를 알았을 텐데, 차 키를 거둬들이긴커녕 손을 까딱이며 재촉했다.

“그냥 받죠. 어차피 거절 못 하는 거 알 텐데.”

“…….”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내가 거절할 걸 알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마치 사약이라도 받는 양 두 손으로 차 키를 건네받았다. 조그만 흠집조차 없는 걸 보면 ‘쓰던 거’라는 말은 정말 거짓인 듯싶었다. 하긴, 차를 ‘수집’하는 사람이니 갖고만 있었어도 사용했다고 쳤을 거다.

그래서 이걸 어쩌면 좋지…….

사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 잘 보관해 두었다가, 한 달 뒤에 권이도에게 돌려주면 그만이다. 그때는 새 차가 있을 테니, 이걸 돌려줘도 뭐라고는 못할 거다.

그러나 눈치가 귀신 같은 권이도는 딱 한 마디로 내 계획을 무산시켰다.

“참고로 전 남의 손에 들어갔던 건 안 씁니다.”

“…….”

차 키를 쥔 손이 움찔 떨렸다. 단순한 빈말이 아니라는 건, 지금껏 봐온 권이도의 성격으로 알 수 있었다. 말로는 차가 나올 때까지 쓰라고 했으면서, 결국 세 대를 모두 줘버릴 요량이었나 보다.

“나중에라도 기사가 필요하면 얘기해요.”

“아뇨…… 그건 정말 괜찮습니다.”

턱까지 차오른 한숨을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이게 무슨 억지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얼굴을 보면 반박할 마음이 사라졌다. 미묘하게 들뜬 눈빛이 어린아이의 것처럼 신나 보였기 때문이다.

“부담스럽습니까?”

권이도는 입을 꾹 다문 내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이상하다고, 네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반만 솔직할 필요가 있었다.

“예, 좀…… 그렇네요.”

뭐가 그리 좋은지. 그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입꼬리를 올렸다. 잘 웃지 않는 사람이라더니. 다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보다. 내가 보기엔 이 사람이 김 실장보다 더 잘 웃는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할까요.”

아직 웃는 낯으로 권이도가 입을 열었다. 짙은 눈동자에 답지 않게 장난기가 엿보였다. 그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눈가를 찡긋했다.

“일주일.”

“…….”

“그 안에 정세진 씨가 진짜 갖고 싶은 걸 골라 오면 차 키는 다시 생각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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