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89화 (189/189)

〈 189화 〉 그 뒤, 라피아는 (2)

* * *

마법 지부에 들어서자마자 라피아의 눈에 밟힌 것은 모험가 랭크가 적힌 카드를 입구의 기계에 삽입해야 하는 입구였어요.

라피아의 지식을 빌려 말하자면, 지하철의 개찰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출입을 막는 칸막이가 투명한 마나의 장벽으로 바뀌어있을 뿐이었죠.

“오오! 신문물! 좋아! 낯설어!”

“목소리 좀 낮추세요!”

평소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은 해보지 못했는지, 라피아는 한껏 들떠 마치 어린아이처럼 변해있었어요.

역시 부끄러움은 오로지 아오이의 몫이었죠.

“뭐 어때? 우리 말고도 시끄러운 사람들도 많은데?”

“라피아만큼 목소리가 크진 않잖아요!”

“오! 저기 봐! 저 투명한 관은 뭐야? 뭐 들어있는데?! 키메라인가?!”

“그건 마법 생물이네요. 아니, 듣고 있어요? 조금만 진정하라니까요?”

얼마나 기뻐 보였으면 아오이도 모르는 새에 라피아의 질문에 대답하게 했을까요.

투명하고 거대한 유리관 속에 잠들어 둥둥 떠 있는 미지의 생명체, 아오이가 말해주기로는 마법 생물이라는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외관이었어요.

당연히 라피아의 눈에는 ‘마법’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이래도 신기하게 보이겠죠.

그렇다면 반응 역시….

“와, 입이 어디 달린 건지도 모르겠어! 몸이 완전 투명해! 팔다리가 8개야!”

“으, 후우, 후후. 여기 안내 책자를 보니까 알겠네요. 비상시에 마법 지부를 지키는 마법 생물이래요. 이름은 없는데 능력만큼은 대단하다고 적혀있네요.”

결국, 아오이도 그렇게 기뻐하는 라피아를 본다면 말리는 것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도 불쌍하잖아요?

물론 아오이가 말린다고 멈출 라피아였다면 진작에 멈췄을 테니, 지금 포기한 것이 현명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학원에서는 진짜 막, 안전을 위해서 쓰이는 몬스터들도 약한 녀석들밖에 없으니까. 아, 물론 신기하긴 했거든? 근데 자주 보니까 조금 질리기는 하더라고. 너나 질을 만난 뒤로는 안전을 따져서, 의뢰도 거의 같은 지역으로만 갔었고.”

“약하고 자주 보이는 녀석들이라면…. 젤리빈이죠? 통통 튀는 투명한 축구공 크기의 몬스터.”

“맞아! 슬라임 닮은 그거! 그건 좀 적당히 봤으면 좋겠어. 입에서 뿜는 물도 기분 나쁘고 끈끈한데 마르면 미끈거리기까지 하잖아!”

“저도 실험을 목적으로 다뤄본 적이 있는데, 라피아 말대로 좋은 느낌은 아니더라고요. 라피아? 이건 어때요?”

유리관에 딱 붙어서 구경하던 라피아에게 자신이 보던 책자를 건네주는 아오이였어요.

라피아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책자 전체를 훑어보는 탓에 아오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줘야만 했죠.

“갑자기 뭐야? 응? 마도구 시험작을 체험해 볼 기회를 가져보라고? 33층에?”

“궁금하지 않아요? 좋아할 것 같길래 말해봤는데요.”

“당연히 궁금하지! 근데, 어디로 가?”

“손 좀 잡아줄래요?”

“어, 어? 여기….”

“마법 지부가 왜 마법 지부겠어요? 이렇게 하면 길이 없어도 갈 수 있거든요. 뭐, 마법사를 동반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은 단점이지만요.”

아오이의 손을 잡자마자 라피아는 순식간의 주변의 풍경이 바뀌면서, 어느샌가 다른 장소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평소에 문을 건너면서 장소가 바뀌는 것은 경계를 나눠 공간과 공간을 잇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장소에 장소를 덮어씌웠던 장막을 지워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약간의 현기증도 겪었는지 라피아는 이마를 짚으면서 가까이의 벽에 몸을 기댔어요.

“라피아? 괜찮아요?”

“으, 으응. 10초만….”

이동 중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을 아오이도 알고 있는지 라피아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10초만 기다려달라는 라피아를 바닥에 앉히고는 이마에 손을 얹어주었죠.

“…뭐야, 그렇게 걱정됐어?”

“이동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거든요. 몸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아픈 건 제때에 고쳐줘야죠.”

“응? 고친다니, 무슨….”

말을 마치자마자 라피아의 이마에 얹어진 아오이의 손에서는 밝은 빛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라피아의 눈썹과 눈썹 사이에 생긴 미간의 주름이 펴졌죠.

“뭐야, 뭔데? 뭐 한 거야?”

“아픈 걸 낫게 해줬을 뿐이에요. 이제 안 아프죠?”

“안 아프긴 한데, 어, 으음…? 몸이 뭔가 한 번에 몸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막, 응, 그러더니 안 아프네…. 어쨌든 개운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에 라피아는 말 고르기를 어려워했어요.

“그럼 괜찮아진 거네요. 마저 구경할까요? 여긴 이 세계의 역사를 뛰어난 시각적인 효과를 사용해서 보여준다고 해요.”

“어, 응, 뭘 한 건지는 안 알려주는 거야?”

“그렇게 궁금해요? 제가 라피아한테 나쁜 짓이라도 했을까 봐?”

“그럴 리가! 네가 나한테 나쁜 짓을 할 리가?! 그냥 궁금해서 그래, 궁금해서!”

짓궂은 말장난에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하는 라피아였어요.

눈빛 자체가 평소에 잘 보지 않았던 장난기가 담겨있었으니, 성격이나 언행이 좋은 쪽으로 계속 변해가는 아오이를 눈앞에서 본다면 라피아도 대응이 어색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흐트러진 마나의 흐름을 원래대로 돌려놨을 뿐이에요. 제가 실수로 이동과정에 마기를 사용했거든요. 덕분에 원래의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도착했잖아요. 저는 괜찮지만…. 어디서 비슷한 걸 한번 겪어본 적 없어요? 제가 문을 처음 건넜을 때라던가.”

“그러고 보니까 문을 처음 건넜을 때 약간 어지러운 게 있긴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거야?”

“간접적으로 마기와 접촉하거나, 영향을 받게 되면 그렇게 돼요. 침식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야 될까요. 체내의 마나가 거부반응을 세게 일으켜 순환이 잠깐동안 엉망이 되거든요. 제가 만들어낸 문은 질과 라피아에게 조정을 해놔서 괜찮지만, 이 마법식은 아니니까.”

아오이가 설명해주는 동안 라피아는 ‘음, 음.’ 거리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어요.

라피아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마법으로 전이해오는 곳은 둘이 있는 곳에서 꽤 거리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라피아가 마나에 대해서는 상식으로서 배운 게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라도 하겠지만, 마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질이라면 또 모르죠, 로니아가 가지고 있던 베리아의 코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런 친절한 설명에도 아직 궁금한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응?’이라는 짧은소리를 내며 아오이에게 다시 질문했어요.

“그래서 원래대로 돌려놨다는 거구나. 근데 난 네 마기에 적응한 지 좀 오래됐잖아?”

“말했듯이, 이번에는 제가 만든 이동마법식이 아니라서 그래요. 마법 지부는 마법 지부라는 건지, 나름대로 마법식을 이리저리 꼬아놨던데요. 그런 식에 마기가 사용되었으니 식이 멋대로 변형된 거예요. 저한테 맞춰서. 제 불찰이에요.”

“그럼 네 잘못이 아니라, 마법식을 이렇게 만든 마법 지부가 나쁘단 거네! 나쁜 놈들!”

장난스러운 표정과 더불어 손짓까지 더해, 마법 지부 탓을 하는 라피아의 모습에 아오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어요.

그런데, 이어서 자신의 잘못도 있지 않냐며 더 말하려던 아오이의 말을 끊은 사람이 나타났어요.

“곧 시작합니다! 체험하실 분들은 미리 입장해주세요! 시작 이후에는 추가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마법 지부의 협회원이었어요.

이 소리에 주변에서 다른 시험작들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시간 맞춰서 왔나 본데?”

“그렇네요. 그런데…. 혹시 라피아, 일부러 시간에 맞춰온 건 아니죠? 갑자기 마법 지부에 온 것도 그렇지만, 반년에 한 번 있는 이 행사를 운 좋게 보게 된 건….”

“응? 그럴 리가. 마법 지부에 온건 단순히 너랑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

아오이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라피아였어요.

반년에 한 번이라니 이상할 정도로 딱 들어맞기는 하네요.

먼저 계획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런 반년에 한 번 있는 행사 같은 것들은 보통, 예약을 잡아놓아야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 여러 가지를 꾸며놓은 듯한 미소가 마음에 걸리는데요.”

“아니라니까? 가자!”

“티켓 확인하겠습니다.”

“아, 티켓이 필요해요? 그런 거 없는데, 라피아라고 이름 들으면 알 거라서.”

“라피아…? 아! 옆에는 일행분이신가요? 미리 전해 들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입구를 지키는 협회인이 라피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티켓도 필요없이 들어가는게 가능했어요.

아오이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지만, 라피아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죠.

대신 협회인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어요.

“잠시만요. 저기, 혹시 티켓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얼마인지도 알려주세요.”

자기 돈으로 티켓을 사려고 하는 걸까요?

“티켓은 저쪽 창구에서 한 달 전부터 구매하실 수 있었는데, 이미 기간이 지나서 다 팔리고 없습니다. 다시 예약하시려면 3달 뒤부터, 티켓을 구매하시려면 5달 뒤부터 가능하세요.”

“그렇구나…. 고마워요.”

아쉽지만 아오이도 이미 이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물어봤겠죠.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완벽한 증거가 필요했던 거예요.

다만, 라피아가 질이 아닌 아오이랑만 이곳에 올 생각을 했다는 것만큼은 의외네요.

최근의 행보로 보아, 온다면 셋이서 함께 왔을 텐데요.

“으휴…. 꼭 그렇게 확인을 해봐야만 직성이 풀려?”

협회인에게 물어보고 난 뒤 따라 들어오는 아오이를 보자마자 뚱한 얼굴로 맞이해주는 라피아였어요.

그냥 넘어갈 줄을 모르는 점에서는 아오이도 한소리 듣는다면 할 말이 없겠죠.

그래도 활짝 웃어 보이는 아오이의 얼굴에 대고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할 수 없었나 봐요.

“네,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3달이라니…. 결혼식이 지난 지 아직 두 달도 안 됐는데요?”

“너랑 조금 더 깊어질 뭔가가 필요해서 꽤 오래전부터 예약해뒀던 거야. 싫었어?”

아니면 라피아가 아오이와 깊어지기 위한 노력을 스스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기에 말이 없었던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럴 리가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저, 라피아한테서 항상 느끼고 있는 게 있는데.”

“중요한 거라면 사람 없는 구석으로 가서 들어도 될까?”

“아뇨, 괜찮아요. 잠깐 귀에 속삭이면 될 정도로 짧은 거니까.”

“뭐, 으앗?!”

귀에 속삭인다더니, 갑자기 라피아를 힘껏 끌어안은 아오이였어요.

“라피아가 질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저를 생각해주고 사랑해준다는 게 느껴져서 기뻐요.”

“무, 으, 으아! 간지러! 좋, 좋긴 한데?! 어!! 좋긴 한데 뭐 하는 거야?! 놀랐잖…!”

귀에 아오이의 입김이 닿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몰라도 라피아는 황급히 아오이의 곁에서 빠져나왔어요.

하지만 라피아의 이 발버둥도 무의미했어요.

멀어진 만큼 다가서선, 까치발을 들어 얼굴을 가까이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해줄 말은, 해줄 건 이런 거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사랑해요, 라피아. 저도…. 라피아를 위해 더 잘해보도록 노력할게요.”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이게 뭐하아아…! 으, 으응…. 사랑한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저희를 볼 수 없게 해놨으니 괜찮아요. 그럼 이렇게 하더라도 문제없죠?”

“어, 응….”

어느샌가 주변이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라피아는 점점 더 가까이 밀착해오는 아오이를 거부하지 않았어요.

반기다 못해 아오이의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에게 몸을 완전히 맡기도록 했죠.

미술관처럼 여러 마나의 잔상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역사를 설명해주는 복도, 이곳에서 둘이 키스를 나누고 있는데 정작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 수조차 없어요.

어쩌다 한번 지나가는 사람이 아오이가 만들어둔 마나의 벽에 부딪혀도 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대단하네요.

다만,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지 둘은 키스 이상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도 선은 지킬 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 대신에 조금 오래 붙어있기는 했지만, 뭐 어때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만 않는다면 폐를 끼치지도 않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라피아는 약간 생각이 다른 것 같네요.

즐길 거 다 즐겨놓고, 왜 이런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요?

“하아…. 큰일이야.”

“뭐가 마음에 안 들었나요?”

“아니, 응…. 있지.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너랑 키스하다니…. 내 정조관념이 어떻게 돼버린 것 같아.”

“무슨 소리에요? 라피아 이전에 질하고는 뒷골목에서 흡혈한 적도 있다면서요. 저랑은 못하겠다는 거예요?”

이건 또 언제 들킨 걸까요?

결혼식 전에 스스로 말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질이나 라피아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서로 간에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 응? 그건, 할 말이, 없…. 네. 죄송합니다. 아니 근데! 이건 좀 그렇잖아!”

“라피아.”

“네, 네…?”

“제가 중요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해요?”

아빠와 엄마 중 누가 더 좋냐는 식의 질문이네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라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마이너스가 되겠네요.

“아, 아오이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뭘 해야 할지 알겠죠? 자.”

“으으…! 시, 신경 쓰이는데…!”

“방금 잘해놓고 뭘 망설이는 거예요? 빨리해주세요.”

눈을 감고 얼굴을 가까이하는 아오이의 모습에서, 바라고 있는 것이 라피아가 해주는 키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평소에 둘만 있거나, 질이 같이 있는 곳에서의 키스는 익숙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에서 하는 거라면 어렵긴 할 거예요.

아오이에게는 잠깐의 기다림이었지만, 라피아에게는 이 잠깐의 망설임이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을 거예요.

이렇게 여러 말을 늘어놓아도 결국, 아오이가 라피아한테서 진한 키스를 받아내었다는 사실만큼은 바뀌지 않았어요.

키스의 뒤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치를 살피는 라피아 덕분에 아오이만 이번 행사를 즐겼다는 것만 제외하면, 둘은 이번 데이트를 꽤 잘 즐겼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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