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그 뒤, 아오이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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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질과 라피아와 지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오이였어요.
그런 아오이에게 부족한 2%, 1%의 자극을 채워줄 새로운 일이 있다면 대부분은 마법 학교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죠.
본인 스스로 마법 학교의 선생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가기도 했으니, 어쩌면 이 세계에서의 천직을 찾아낸 것일지도 몰라요.
질과 라피아와 함께하며 성격이 유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이상에야 마법 학교에서 오랫동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본인도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앨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도 점점 친해졌으니 마법 학교에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만 갔어요.
지금도 수업을 마치기 위해 교실에 널브러진 수업 자재들을 치우며 학생들을 기숙사에 돌려보내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이것으로 오늘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만, 제가 나눠드린 스태프는 모두 반납하고 돌아가시기를. 학교 측에서 여러분의 마나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특수제작한 것이니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선생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마무리하던 아오이를 붙잡은 학생이 있네요.
아오이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자신을 부른 학생을 올려다보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려다 말았어요.
이제는 학생들의 얼굴도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지 바로바로 알아채서 그때마다 태도를 바꿔버리는걸요.
“제가 과제를 내준 뒤로 한동안 못 본 것 같은데, 오랜만이네요. 하이네 학생.”
“칫…. 죄송, 합니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처리하려면….”
하이네라면 이전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아오이를 골려 먹으려던 학생이었죠.
그래도 부끄러운 것은 알고 있는지 그동안 아오이의 수업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나 보네요.
“그만, 하이네 학생도 알죠? 제가 그런 과제를 내준 것은 하이네 학생이 반성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반성은 제대로 하셨나요?”
비꼬는 듯한 억양이 잔뜩 들어간 말을 듣고도 하이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오이를 노려보는 것만 보면 아직 반성은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고 쓸데없는 자존심은 그대로인 것 같네요.
이를 아오이도 알고 있는지, 하이네를 대하는 태도는 점점 차갑게 식어갔어요.
“역시 아닌가 보네요. 예상했어요. 하지만, 하이네 학생? 알고 있겠지만 이곳 아스티엘 마법 학교는 순수하게 실력만을 보는 곳이에요. 제가 당신의 입학신청서를 조금 살펴봤거든요.”
“뭐, 뭐라고요!? 선, 당신 멋대로 그런걸…!”
“선생님인걸요. 보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아오이와 하이네가 대치해있는 상황을 보기 위해 아직 남아있는 학생들도 있었기에, 하이네가 받는 부끄러움은 더 커졌을 거예요.
굳이 수업을 마친 직후에 아오이를 불러 세운 것은 멍청함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입학은 2년 전에 했었죠. 벨페트 하이네. 그럼에도 아직 같은 랭크에 머물러 있는 것은 평소의 행실이 좋지 못해, 랭크 심사를 치르지도 못하기 때문이고요.”
“그,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죠. 중요한 것은 올해 봄, 당신의 가문이 마기노에 의해 멸문당했다는 것이에요.”
한순간에 교실이 웅성거림으로 인해 시끄러워졌어요.
하이네와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도 단순하게 친하기만 할 뿐, 하이네의 성격대로라면 단순히 친하게 지낼 뿐 속을 드러내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멸문당했다는 소식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겠죠.
아오이는 검지로 자신의 책상을 톡톡 두들기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그리고 하이네 학생이 그동안 무례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가문에서 당신의 어리광을 봐 주느라 학교에 뇌물을 바쳐왔기 때문이고요.”
“저는 가문 따위가 없어도…! 그것보다 당신이 마기노에게 내 가문이 멸문당한 걸 안다면 이런 취급을 하면 안 되잖아!? 마군주라면!!”
“아픈 곳을 찔리니까 바로 화부터 내는 건가요. 안타깝네요. 그래서? 이제 가문도, 뒷배도 없는 당신이 앞에 나서서 이전처럼 행동한다면…. 퇴학당하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죠? 아~ 혹시, 가문의 돈이 남아있기라도 한 건가요? 명예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격 떨어지는 가문이더라도 돈은 넘쳐났나 보네요. 분명 떳떳하지 못한 뒷세계에서 유통되던 돈이겠지만.”
“너, 너어어!!”
비아냥을 참지 못한 하이네는 결국 아오이에게 달려들어 아오이의 멱살을 쥐었어요.
둘의 체급 차이가 꽤 나는 탓에 아오이는 너무나 쉽게 들렸지만,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었어요.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졌음에도 텅 빈듯한 눈동자로 하이네를 내려다보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죠.
오히려 지켜보던 학생들이 아오이 대신 놀랐다고 봐야 할 거예요.
“아오이 선생님! 하이네! 그만두지 못, 으읏!? 뭐, 뭐야!?”
신경전이 이렇게 몸싸움으로 번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지켜보던 학생 중 앨리스가 끼어들어 제지하려고 했지만….
강의실 전체에 한줄기 섬광이 일며 스파크가 여기저기 튀었어요.
앨리스를 제외한 모두가 몸을 보호하며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죠.
오직 앨리스만이 그저 잠깐 움찔하며 섬광이 일었던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했어요.
섬광이 잦아들고, 스파크가 완전히 사그라들었을 때가 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어요.
“언니 괜찮아요? 같이 돌아가려고 기다리는 중에 평소보다 늦길래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저게…!”
하이네는 바닥에 뒹굴고 있으며, 아오이는 질에게 공주님처럼 안겨있었거든요.
아마도 질은 아오이가 멱살잡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뛰어들어 하이네를 바닥에 쓰러지게 했던 거겠죠.
“…질, 괜찮으니 내려주세요. 학생들 앞이잖아요.”
“더 이러고 있고 싶지만, 알았어요. 그렇지만 저 녀, 저 사람이 언니를!”
“정말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질은 억지로 화를 삭히며 천천히 아오이를 내려주고는, 바닥에 쓰러진 하이네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곤 하이네를 깔고 앉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천천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너 누구야? 누군데 언니의 멱살을 잡아?”
“크윽…! 저리 안 비켜…?! 갑자기 뭐야 넌!!”
처음에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도 하이네를 깔고앉는 질을 말리려고 했지만, 곧 질에게로 뻗는 손을 거뒀어요.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아오이는 하이네를 도발했어요.
“하이네? 저라면 그다지 험한 말은 쓰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아?! 넌 나한테 사과해야 하잖아! 조용히 하고 있, 읍! 그흑!? 우, 우웁…!”
하이네는 말을 이어가다가 질이 내지른 주먹을 복부 정중앙에 맞고 장 속의 내용물을 흘리기 직전인 상태의 신음을 흘렸어요.
그 얼굴은 상당히 일그러져 누가 보기에도 꼴사납다고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아오이가 가만히 당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짜증을 냈기 때문인지, 혹은 전부일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질이 하이네를 가격한 주먹에 마나까지 휘두르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무서운 사실이에요.
자칫하면 사람 한 명쯤은 단숨에 태초신 헤브니아와 영접할 수 있게 만들 위력이었거든요.
하이네가 누워있는 바닥에 금이 가서, 움푹 파인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어요. 이런 위력에도 하이네가 죽지 않고 버텨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작 여기에 제일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질이었어요.
이유라고 한다면, 자신의 주먹 바로 아래에 금이 간 상태로 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마나 배리어.
“…언니? 왜 막아준 거예요?”
“질, 한발 늦었지만 말해둘게요. 살인에 가까운 폭력은 나쁜 거예요. 그리고 하이네,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살의로 가득 찬 질한테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질의 뒤에 서서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아오이와 자신의 위에서 초점이 엇나간 눈동자로 자신을 뚫어지도록 내려다보는 질.
아직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서 ‘흡, 끄윽, 후윽….’ 같은 소리만 내는 하이네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낯빛까지 새파래져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뒤에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죠.
다른 학생 중에는 아무리 선생에게 대들었다지만 심한 것이 아닐까 고민 정도는 하는 학생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마법 학교에서는 이마저도 일상이라는 듯이 대부분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증거로 하이네를 도와주기 위해 접근하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다른 학생들의 눈도 아오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어요.
하이네의 평소 행실이 좋지 못한 건 당연하겠지만, 그를 좋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이유겠죠.
“질, 이제 그만하고 일어서세요. 조금 건방지지만, 그래도 제 학생인데 꼴사납게 울면서 토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거든요.”
“…흥.”
“그리고 여러분도 어서 하원 하세요! 구경거리가 아니잖아요?”
아오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을 재촉했어요.
앨리스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가볍게 묵례를 한 뒤 강의실을 빠져나갔어요.
분명 오늘 사건이 소문으로 퍼져 다음날이면 시끄러워질 것이 확실해요.
하지만 아오이는 특정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괜찮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소문이 돌더라도 하이네의 잘못이 크다는 쪽으로 여론이 몰리겠죠.
다음에는, 아오이가 얼마나 다른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아, 언니 이거 받으세요.”
“윽…. 또, 또 온 건가요….”
그런데 질이 건네는 것을 보고 질색하는 아오이에요.
뭘 보고 이렇게나 싫어하는 것일까요? 겉보기에는 단순한 선물 상자와 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에요.
“그냥 기뻐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도서관에서 안 받아주니까, 언니가 사용하는 개인실로 선물을 보내던데….”
“잘 알죠! 지금까지 처분한 쓰레…! 아니, 선물이 몇 개인데요! 도서관에서도 실리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회수하고 나면 들어오는 기억들이 스트레스를…!”
“근데 언니도 수도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선물을 보내면 잘 쓰기도 하잖아요. 가끔 이상한 게 섞여 있기도 하지만….”
“그게 문제에요! 가끔 이상한 게 섞여 있는 거!! 설마 제가 전생에서도 못 겪어본 일을 이 세계에서 겪어볼 줄은 몰랐다니까요! 연예인도 아니고! 아이돌도 아니고! 이 세계에 재앙을 불러온 마군주인데!”
수도에서 유명인으로 인기가 급상승해버린 탓에 선물의 처리방법에 대해 곤란해하고 있었나 보네요.
그런데 질은 아오이의 말 속에서 몇몇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야, 살아온 세계가 다르니 어쩔 수 없겠지만요.
“그, 그래도! 저는 그렇게 인기 있으면 기쁠 것 같은데에….”
“질, 질은 이번에 사람을 죽일뻔한 일에는 반성하는 게 먼저예요.”
“그렇지만 그건, 언니가…!”
“제가 질을 그렇게 가르쳤나요? 아무한테나 폭력을 행사하면, 살인과 폭력을 일삼는 다른 마군주나 마기노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아, 알았어요오….”
아오이는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면서도 질에 대한 교육을 계속했어요.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한다면, 아오이가 질을 가르친 적이라곤 마법에 대한 것과 마나 회로에 관한 것, 그리고 마군주와 마기노, 마기에 관한 것밖에 없죠.
예의나 상식에 관해서는 잘 없을 거예요.
아오이나 라피아가 관련된 문제만 아니라면 침착하게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 잘 해나가는 아이니까요.
이번에 실수로 하이네를 죽일 뻔한 일은 아오이가 관련되어 있었으니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만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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