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그 뒤, 아오이는 (1)
* * *
아오이는 여전히 마법 학원과 도서관의 일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오이의 도서관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는데요.
시민권이 부여된 것을 빌미로, 황궁에서는 아오이의 도서관을 전면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마군주, 그 첫 번째로 아오이가 선택된 것이었죠.
황궁에 브기사단장으로서 몸을 숨기고 있는 아비고르나, 모험가로서 전국을 여행하며 비밀리에 황녀의 명령을 수행하는 아이펠슈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었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이 덕분에 아오이의 도서관에는 책과는 아예 관계가 없는 일도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예를 들자면 여기 이렇게 도서관의 입구에서부터 바깥까지 늘어선 기나긴 줄이라거나.
“거기 새치기 좀 하지 마세요!”
“누나! 제 선물 좀 받아주세요!!”
“네 선물은 받기 싫다잖아! 언니이! 안아주세요!!”
이 난잡한 사람들의 무리가 뭐냐면, 일주일에 한 번쯤 열리는 팬 팬미팅 겸 악수회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에요.
다만, 아오이가 아니라 실리아와 그 외 분신들이 대신하는 것이지만요.
그래도 참 놀랍죠.
마기노에게 유린당해 공포를 주입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텐데, 황궁이 안전하다고 보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몰려오다니 말이에요.
문제는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는 것이었어요.
결혼식 이전부터 호기심에 찾아온 이들이 점점 수가 많아져,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었죠.
그렇다고 그 사람들 전부가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냐면 당연히 아니었으니, 아오이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을 거예요.
황녀로부터는 ‘앞으로 수도의 마스코트로서 열심히 일해주게! 그대들의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거든요.
결국, 사람들을 쫓아낼 수는 없으니, 아오이는 직접 사람들을 하나하나 상대하면서 무슨 이유로 찾아온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어요.
“무슨 일로 왔냐니, 마군주를 찾아왔지! 시민권을 부여받은 대가로 우리를 지켜줄 거라면서?”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당신이 마군주야? 생각보다 이쁜데?”
“잠깐, 잠깐! 다가오지 마세요!”
“언니가 그렇게 강해? 나 모험가인데 한 번만 싸워봐 주면 안 될까? 내 꿈이 마기노를 전부 없애는 거거든!”
“제 말 못 들었어요?! 오지 말라니, 악?!”
빈틈없이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아오이는 결국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어요.
아무리 후일에 자신과 질이 수도를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것이 보상으로 뒤따르더라도 화가 뻗칠 거예요.
이대로라면 편히 다니기는커녕 몸을 숨기고 다녀야 할 테니까요.
터질 수밖에 없는 화였어요.
“그만, 그만하고 나가아!!”
아오이의 몸에서부터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도서관을 가득 메우는 자욱한 마기에 사람들은 놀라 도서관 밖으로 도망쳤어요.
몰려든 사람들이 찾아오기 전부터 도서관을 이용하던 손님들은 이미 시끄러운 분위기에 질려 도서관을 나간 뒤라 힘 조절을 하지 않은 느낌이었죠.
이에 질린다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오이의 생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전혀 아니었죠.
그다음 날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똑같았어요.
“누나가 그 소문의 마군주야?! 마기를 막 내뿜었는데도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힘 조절한 거 보니까 진짜 우리 편이구나!! 안티히어로 같은 거야?!”
“역시 황궁이 말하는 건 믿을 만 하다니까? 자주 지멋대로 하는 거랑, 소통이 안 된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야!”
“누나, 누나! 어제 보여준 거 또 보여줄 수 있어? 한 번만 더 보여줘!”
“거, 아가씨가 불편해하는데 자꾸 떼쓰고 그러면 돼?! 이리 나와!”
“아, 할머니이!!”
도서관에 들어와 아오이의 주변을 빙빙 돌며 시끄럽게 만드는 남자아이부터, 깍다만 수염을 매만지며 황궁에 꽤 강한 신뢰를 보이는 동네 아저씨라던가.
남자아이와 함께 와서 끌고 나가려면서도 도서관을 한층 더 시끄럽게 만드는 할머니까지.
그 뒤에도 사람들이 한 무더기, 셀 수 없이 있는 걸 보고 아오이는 현기증이 일은 것처럼 휘청였어요.
“아, 아아…. 시, 실리아! 여긴 맡기겠어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실리아를 부르자마자, 아오이의 바닥 앞은 마기가 모여 일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땅속에서 실리아가 솟아나는 것과 동시에 아오이는 자신의 방으로 향해, 문을 건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성공적으로 도서관에서 탈출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본의 아니게 화려한 마법을 보여준 탓에 사람들의 관심을 제대로 끌어버린 아오이였어요.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서관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들어, 이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실리아만 불쌍할 뿐이죠.
결국 기억이 동화되어 아오이도 생생하게 겪게 될 일이지만요.
이렇게 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가다 보니, 참다못한 아오이는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보기도 했어요.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티켓을 발행해보기도 했지만, 뒷거래를 통해 티켓이 팔리기도 했으며.
복잡한 식을 조합해서 만든 마법으로 책을 읽거나, 대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접근조차 못 하게 했지만, 이마저도 며칠 가지 못하고 파훼 당해 도서관은 금방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어요.
책도 읽는 겸, 아오이도 구경하겠다는 것으로요.
결국, 참다못한 아오이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직접 물어보기로 했죠.
“당신들…. 도대체 뭣 때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에 찾아와서 저를 귀찮게 하는 건가요!”
“마군주가 있다길래 찾아왔더니 미인이 있잖아! …키는 작지만.”
“…뭐라고요?”
아오이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마기를 내뿜었어요.
“노, 농담이야! 마군주인 네가 안전하고, 우리 편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어! 이만큼이나 귀찮게 했는데 우리가 멀쩡하잖아! 이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마군주의 기운을 내뿜는 모습에, 겁을 먹은 남자는 곧바로 장난기를 거둬 사과했어요.
아오이의 명령에 모두 바닥에 앉아있다가 겁에 질려 움찔하다가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지만, 곧바로 다시 손짓하는 아오이 때문에 앉을 수밖에 없었죠.
아오이는 다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었어요.
“귀찮은 건 알고 계셨군요. 이 철면피들….”
“아니, 들어봐! 근데 황궁에서 네가 귀찮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속으로는 좋아할 거라고 했, 흐억?!”
남자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앉아있는 바닥 바로 옆에서 연기가 일고, 돌조각이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오이가 일반인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작은 마나의 탄을 바닥에 쏘아 맞힌 것이었어요.
변명을 이어가려던 남자는 아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죠.
“당신들이 제게 원하는 게 뭔가요. 도서관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찾아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일 것 아니에요?”
너무 겁을 준 게 문제였는지 모인 사람 중에서 입을 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아오이가 직접 사람을 지명해서 물어봐야 했어요.
“…거기 당신, 당신이 말해보세요.”
“저, 저요?! 저는…. 수도의 마스코트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찾아왔었는데…. 직접 보니까 키는 조금 많이? 작지만, 진짜 아름다우셔서! 첫눈에 반해서 매일 찾아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럼 그쪽의 당신은? 당신도요…? 다른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은 없는 건가요?! 그럼, 그럼, 이건 어떤가요. 당신들이 가져오는 특별한 물건에 사인이라도 해줄 테니까, 도서관에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이렇게 팬미팅이 시작된 것이었어요.
하지만 고작 해봐야 마군주인 자신에게 왜 이런 인기가 생긴 건지 아직 의문에 싸여있었죠.
마스코트로 일한다고 하루아침에 이런 인기가 생길 리가 없잖아요?
이에 대해서 아오이가 알게 된 것은 결혼식이 끝나고 정확히 3일 뒤였어요.
황녀가 몰래 수도의 마스코트로 아오이를 지목한 일 때문에, 수도 내에서는 비밀리에 아오이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거든요.
언제 인쇄되었는지도 모를 도서관의 홍보지가 수도 곳곳에 붙여져 있고, 아오이의 얼굴이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이 홍보지에 붙여져 있었으니,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던 거예요.
이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문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도서관에 잠깐 들렸을 때, 바람에 휘날려 홍보지를 봤을 때였어요.
우연히 자신의 숨겨진 방의 창문에 날아와 착 달라붙은 홍보지가 눈에 들어왔거든요.
“뭐, 뭐야…? 수도를 지키는 마군주 탈리안이 운영하는 도서관…? 작은 키에서 엿보이는 귀여움에 모순되는 위압적인 모습의 미녀?! 이, 이 그림은 도대체?!”
평소에는 수도를 돌아다닐 일이 없는 데다가, 질도 라피아도 웬만해서는 수도에 갈 일이 없으니 알아챌 기회가 없었던 거죠.
아오이가 직접 보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요.
게다가 이런 문구도 써 있었어요.
‘수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답지만, 키가 작고 바보같이 착한 마군주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아오이가 황녀에게 따지러 갔다가, 더 좋은 보상을 빌미로 조용해진 것은 또 다른 이야기에요.
수도의 마스코트가 되어 얻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찾는 곳은 집뿐만이 아니라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아스티엘 마법 학원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선생 일에 진심이 되었는지, 아오이는 질 이외에게도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수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특히, 선생 일을 하면서 친해진 어느 귀족 집안의 따님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죠.
가볍지만 진지한 라피아, 자신만을 바라보는 질과는 달리, 조금은 딱딱하지만 예의를 아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앨리스, 스태프는 마법식을 간소화시켜 저장해두어 재빠른 발동을 돕기도 하지만…. 이렇게, 적은 마나를 흘려 넣어도 수배는 증폭해주는 역할도 해요. 그러니 섣불리 마나를 과하게 흘려 넣지는 말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제 실수였어요.”
아오이는 금발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한 소녀에게 말을 건네며, 움푹 파인 지면을 마법으로 원상복구 해 놨어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앨리스는 물론 학생들 사이에선는 전부 소문이 나 있어요.
아오이가 학생을 대하는 점에 있어서 학생에게 좋은 선생이고, 학생들이 좋아하는만큼 아오이 역시 학생들을 좋아하고 있다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좋지만, 기죽지는 마세요. 앨리스는 제가 본 사람 중에서 두 번째, 음…. 아니, 세 번째로 마법을 잘 쓰는 축에 속하니까.”
“세 번째? 첫 번째랑 두 번째는 누구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첫 번째는 아직 이 학원에 재학 중인 지르니트 페어차일드라는 학생이에요.”
질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앨리스는 ‘아, 선생님의….’라는 탄식을 내뱉으며 중얼거렸어요.
생각에 잠기며 턱에 손을 가져다 대던 앨리스는 이어서 궁금하다는 표정을 한채로 아오이를 내려다봤어요.
“그럼, 두 번째는….”
“아스티엘 라피아, 이 학원의 이사장의 딸인 하프 뱀파이어. 다른 마법은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혈마법 하나만으로도 다른 범위의 마법들을 모두 능가한다고 봐도 되겠네요. 현자는 규격 외의 인물이니 일부러 순위에는 넣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아오이가 보기에 마법을 제일 잘 사용하는 것은 질과 라피아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보니 어느 정도 판단하는 데에 있어 보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마군주이니 아오이의 생각이 아예 틀린 건 아닐 거예요.
“마군주셔서 그런지 선생님의 지인분들도 대단한 분들이시네요.”
“그러는 앨리스 양도 저 못지않게 대단한 집안에서 왔잖아요? 라피아의 가문에 버금갈 수준의.”
“저와 제 가문은 상관없습니다. 이곳에 입학한 것도 온전히 저 혼자만의 실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니까요.”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앨리스 양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겠죠. 마저 이어서 할까요. 쥐는 법부터 다시.”
“서, 선생님…?”
앨리스는 자신의 뒤에서 안듯이, 팔을 뻗어 자신의 스태프를 쥔 손을 감싸쥐는 아오이 때문에 놀란 것 같았어요.
“앨리스는 마나를 흘려 넣을 때 섬세함이 약간 부족해요. 보통 사람들은 조심성이 많아, 마법의 발동에 있어서 속도가 상당히 느리죠. 그런데 앨리스는 아니에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마나를 흘려 넣는 순간, 마법을 발동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상당히 밀착하신 건 아닌가요? 제 품에 안기듯이 이렇게 가까이….”
아오이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요.
하기야, 질의 마나 회로를 깨끗이 청소해 줄 때에도 완전히 밀착하듯이 온몸의 이곳저곳에 손을 대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마법에 관한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때라면 다른 누군가와의 스킨십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앨리스의 스태프를 쥘 때 이 자세가 아니면 불편할 텐데요.”
“…네. 죄송해요. 다시 경청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아오이의 반응에 오히려 자신만이 호들갑을 떠는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앨리스는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아 스태프에 집중했어요.
하지만 겉으로도 힘껏 참으려는 모습이 보여서 속으로는 아직 당황하고 있는 눈치에요.
“그러니까, 앨리스는 스태프의 마법식을 사용만 할 뿐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앨리스가 스태프를 사용할 때는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마법의 발동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조준도, 위력도, 효과도 좋지 못할 수밖에 없죠.”
애써 집중에 집중을 더하던 이번에는 지금껏 앨리스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스태프에서 마나가 감돌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과는 달랐어요.
마나가 앨리스의 몸에서 스태프로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 보이며 연노랑 빛으로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죠.
“요점은 과정을 한두 단계 더 추가한다고 보면 돼요. 급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는 없으니 스태프를 자기 몸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세요. 새겨진 마법식에 변형을 더해 자신의 것으로 커스텀하고, 식을 최적화하기 위해 마나의 양과 흐름을 조절하는 거예요.”
“선생님, 알았으니까 이제 저 혼자 해도….”
“안돼요. 이 과정에서 제가 빠져나간다면 앨리스가 제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자신의 손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인지, 아오이는 앨리스의 손을 더 강하지만 상냥하게 감싸 쥐었어요.
게다가 몸을 빼지 못하도록 나머지 손으로 앨리스의 다른 팔을 휘감아 손으로 깍지까지 껴서 잡았죠.
한껏 당황한 기색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지 않아도 미세하게 흔들리던 앨리스의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목소리만큼은 떨림이 없는 걸 보면 귀족이라는 신분 값은 충분히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이 더 집중하기 어렵,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지금이 더 어려운 건 당연하죠. 그동안 앨리스는 스태프를 사용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상태와 같았으니. 학원의 스태프는 특별히 제작된 것이거든요.”
하지만 계속해서 아오이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던 것이 문제였는지, 눈동자뿐만 아니라 스태프에 차오르는 마나까지 불안정해치기 시작했어요.
“앨리스, 집중하세요.”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가까이 붙어있는 게 신경이 쓰여서!? 윽?! 서, 선생님!!”
결국, 버티고 버티던 앨리스의 밝은 색의 마나가 폭발해서 한순간이지만 훈련장 전부를 휩쓸었어요.
진정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마나를 과하게 흘려 넣어 생각했던 것보다 커다란 마법을 쓰게 된 것이었죠.
개인 교습 도중이니 기초적인 마법을 위주로 썼겠지만, 그 기초적인 마법도 과한 마나가 쓰인다면 제어하기 어렵고 위력적이게 변하는 것은 다를 게 없어요.
그것도 배우는 처지의 학생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마나의 폭발과 함께, 스태프의 머리 끝부분에 질이 만들었던 것보다도 더 큰 화염구가 만들어지고 있었거든요.
“하아, 앨리스? 집중하라고 했잖아요.”
“선생님! 지금은 이 화염구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괜찮으니 그대로 공중으로 날리세요.”
“네? 하지만…!”
“괜찮으니, 저를 믿고 하세요.”
“정말, 정말 합니다?!”
아오이가 믿는 것은 훈련장의 마나 배리어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나서서 화염구를 처리할 생각인 걸까요?
뭐가 되었든, 아오이의 말대로 앨리스는 운동장만 한 화염구를 하늘로 쏘아 올렸어요.
그러자 아오이가 앨리스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화염구를 향해 손을 뻗더니 앨리스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어요.
“멈췄어…?”
“말했잖아요? 저를 믿으라고.”
앨리스의 말대로, 화염구는 공중에서 멈춰 이글거리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당황한 앨리스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오이는 하늘로 뻗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는데, 그 순간 화염구가 점점 작아지더니 붉게 발광하는 입자로 바뀌어 주변으로 산산이 흩어져버렸죠.
“왜 당황했는지 모르겠지만, 앨리스? 너무 스태프를 쓰기 편한 도구라고 여기지 않는 편이 좋아요.”
“…명심하겠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수업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아오이는 화염구가 공중으로 날아갈 때 일었던 먼지를 옷에서 털어내며, 거대한 책을 공중에 소환해서 그 위에 앉았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학생들 앞에서는 나름대로 체면을 챙기는 모습이네요.
“선생님은…. 평소에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신체 접촉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건가요?”
“…네?”
“선생님도 여자이고, 저도 여자이니까 이상할 것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소문에 의하면, 아니…. 소문이 아니죠? 선생님은 방금 말씀하신 지르니트 페어차일드, 아스티엘 라피아 씨와 결혼하셨다면서요. 여자끼리인데도. 그러면 이런 신체 접촉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앨리스의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는 아오이였어요.
공중에 띄워진 책에 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아오이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그, 그건! 그러니까…. 할 말이, 없네요…. 질이 봤다면 한마디 했을 것 같기는 해요. 앞으로는, 주의해야겠어요. 그렇지만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에요! 남자한테는 전혀 이러지 않아요!”
앨리스는 아오이의 대답을 듣자마자 한숨을 내쉬었어요.
무슨 의미가 담긴 한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안도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앨리스가 그런 곳에 신경 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관심이 있는 건가요?”
“서, 서서, 설마요! 아무리 제가 제 가문을 싫어한다지만,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질색하며 거부하는 모습에 아오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어요.
“그렇겠죠. 하지만, 저와 질…. 그리고 라피아에게는 이게 보통이고, 정상이고, 일상이에요. 불쾌했다면 미안해요, 앨리스.”
“아, 아닙니다! 선생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싫지는 않았으니까요…. 그저, 도덕적인 부분에서 마음이 걸렸을 뿐이에요.”
아오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앨리스가 마법을 쓰는 것에 있어서,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를 신체 접촉을 불쾌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봤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앨리스의 대답을 듣고 난 뒤의 아오이의 표정은 꽤 풀려있었어요.
“후훗, 하이네 같은 건방진 학생이 아니라 앨리스와 더 빨리 만나서 친해졌다면…. 앨리스와도 가족이 되었을지도 몰랐겠네요.”
“네, 어, 네?! 선생님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에요. 마저 수업을 계속할까요?”
아오이는 대답을 회피하며 스태프를 사용해 보라고 앨리스에게 명령했어요.
나름대로 아오이도 이 세계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 같네요.
수도에서는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마스코트, 마법 학원에서는 여학생들과의 친밀감을 쌓아가며 적당히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선생님.
그리고 집에서는 두 명에게 사랑받는 신부로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