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결혼식, 그 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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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마친 뒤의 어느 날, 질의 집은 이전에 비해서 크기가 한층 작아졌어요. 작은 숲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저택이 이전의 모습이었죠.
이제는 1층과 2층의 구분을 없애고, 쓸데없는 복도를 줄여, 작은 도서관과 셋이서 함께 공유하는 하나의 커다란 방, 거실, 부엌, 화장실 두 개와 창고까지.
필요한 것만 남겨두어 조금 더 동선을 아낀 듯한 단독주택처럼 변했어요.
사실 동선을 아꼈다기보다는 셋의 거리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의 표현이었어요. 질의 제안이었죠.
결혼까지 한 마당에 각방을 쓸 이유가 없고, 지금처럼 넓은 집을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집의 정리는 아직이었는지 내부는 한창 이사 중인 것과 다를 것이 없었어요. 셋이 함께 쓸 방 안에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셋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오래돼서 버릴 물건은 따로 현관에 모아두세요. 태워서 없애야 하니까요.”
“아으! 벌써 이렇게 안 쓰는 물건이 나올 줄 몰랐어요!”
“그건 뭐야?”
질이 집어 든 물건은 언젠가 수도의 거리에서 샀었던 작은 수정구였어요.
“이건아오이 언니의 분신인 실리아 언니랑 외출했을 때 샀던 거예요. 이렇게 흔들면….”
질은 수정구를 마구 흔들다가 탁자 위에 올려놨어요.
수정구 안에 들어있는 작은 장식물, 작은 마을을 구현해놓은 것들 위로 흰 눈 같은 것이 흩날리기 시작했죠.
“아, 스노우볼이구나. 근데 봄에 스노우볼을 파는 곳이 있었다고? 그리고 이 정도 퀄리티의 스노우볼은 파는 거라기엔 너무….”
“라피아,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넘어가 주는 게 예의라고요!”
“응? 뭐야, 뭔데 숨기려고 해?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 진짜! 이리 오세요!”
멀리서 지켜보던 아오이는 급하게 라피아의 손목을 잡고 질에게서 떨어뜨려 놨어요.
그러곤 귓속말로 뭔가 속삭이기 시작했죠.
“응, 응…. 응? 흐흥~ 그런 거였단 말이지이?”
“미리 말해두겠는데, 질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알겠나요?”
“뭐어~ 나한테도 비슷한걸 ‘사’준다면 생각해볼게.”
“아, 알았다고요! 대답이나 해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역시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랑을 주는 마군주 아오이답다니까~?”
생각보다 쉽게 얻어낸 대답에 아오이는 다시 정리하러 돌아가기를 망설이면서도 천천히 라피아에게서 멀어졌어요.
하지만 질이 둘의 비밀 대화를 보고서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바로 틈을 노려, 아오이가 이쪽을 신경 쓰지 못하는 순간에 라피아에게 가서 물어봤어요.
“무슨 말을 한 거예요?”
“응? 아~ 아오이가 글쎄에! 네가 보여줬던 수정구를 사준 게 아니라? 만들어서 줬던 거라는 거 있지!!”
“하, 하아?! 라피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꽤 넓은 방인데도 불구하고, 라피아가 일부러 크게 소리치며 말한 탓에 저 멀리에 있는 아오이가 전부 듣게 될 정도였어요.
일부러 준비한 선물이라는 것을 들켜버려, 부끄러운 마음에 달려오며 소리치는 아오이의 모습이 꽤 안쓰러워 보였죠.
쉽게 라피아를 믿은 것이 아오이의 실수였던 거예요.
“너랑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오이는 너한테 진심이었다는 건가 봐? 질.”
“아오이 언니….”
“조, 조용히 해요! 라피아!!”
“푸하핫! 무서워라! 거실 정리하러 가야겠다!”
“라피아!!”
재빨리 도망치는 라피아를 잡으려고 그 뒤를 쫓으려는 아오이였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달려나가려는 자세 그대로 멈칫해버렸죠.
바로 뒤에서 질이 아오이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잡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봐오고 있었거든요.
“저기, 언니? 있잖아요…. 정리는 나중에 하고, 잠깐만 쉬면…. 안될까요?”
결혼식을 마친 뒤로는 어울리는 대상만이 바뀔 뿐, 대체로는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오이도 눈치가 늘어나, 지금처럼 질이나 라피아가 신호만 준다면 같이 어울려 침대로 가서 앉아주기는 했거든요.
오는 것을 굳이 마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부터 아오이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였어요.
가끔 부끄러운 상황이 찾아오면 소리를 치더라도, 금세 화를 풀어주고는 라피아와 질의 장난을 받아주는 모습도 보였죠.
결혼식이 아오이를 변화시킨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겠지만, 천천히 아오이가 이렇게 변해왔던 것은 틀림없었어요.
아오이도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변한 것은 아오이뿐만이 아니었어요.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라피아 언니도 불러올 테니까!”
“라피아도…? 알겠어요.”
질은 곧바로 거실에서 난잡하게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하던 라피아에게 다가갔어요.
“언니바빠요?”
“응? 아니, 바쁠 게 뭐가 있어? 왜?”
“지금 아오이 언니랑 방에서 쉴 거라서…. 언니도 같이, 어때요…?”
“그런 거라면 당연히 같이 쉬어야지!”
이렇듯, 아오이와 둘이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라피아까지 끌어들여 함께 즐기는 모습. 이전의 질이라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모습이에요.
분명히 질은 라피아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아오이를 대하는 것에서만큼은 근본부터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새인가, 아오이를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라피아와 아오이를 함께 사랑하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질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어요.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라피아만큼은 커다란 변화가 없었어요. 이전에 질과 아오이를 대하던 것처럼 매일을 충실히 지내는 것.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죠.
억지로라도 변한 점을 찾아내자면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릴만한 장난이 줄어들고,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횟수가 늘었다는 것이었어요.
질과 아오이가 그랬듯이, 라피아도 자신의 마음에 더 솔직해졌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휴식 시간이 끝난 지금, 라피아는 침대의 한가운데에 누운 상태에서 양옆에 질과 아오이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어요.
이불을 덮고 있다고는 하나, 대낮부터 이렇게 밀착해있는데 아무렇지 않다니 대단하죠.
새로 쓰게 될 방이 1층에 있기에 창문 너머로 누가 볼까 걱정될 만도 한데요.
하기야, 숲속에 있는 집에 누가 찾아오겠어요.
“있잖아, 아오이.”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딱 달라붙은 아오이의 이름을 부르는 라피아였어요.
이에 아오이는 대답 없이 고개만 들어 라피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죠.
“마기노가, 마군주가 되고 나서. 지금처럼 가족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
“…아뇨, 없어요. 저는 질과 라피아를 만나기 전부터, 전생에서부터 글러 먹은 사람이었거든요.”
“나중에 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아오이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좋은 추억이 아니라면서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어요.
언젠가는 말해줄 거라는 사실에 라피아는 작은 목소리로 기다리겠다고 했죠.
이번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질을 바라보며 아오이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말을 했어요.
질은 아오이보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어요.
“예전에 아오이 언니가 저를 구해줬을 때부터 예상했었어요. 아오이 언니나, 라피아 언니를 만나고, 가족이 될 거라는 거.”
“그래? 그만큼 아오이가 잘해줬다는 거지?”
“부끄럽게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 잘 대해준 건 맞지만…!”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라피아를 탓하는 아오이였어요.
혹시라도 이불이 벗겨질까 봐 손으로 잡고 가슴팍에 꽉 붙이고 있는걸 보니 전부 보이기는 또 싫은가 보네요.
“칭찬이잖아? 어쨌든, 나는…. 난 전혀 생각 못 했어. 솔직하게 말해서 질, 너랑 이어가던 관계도 얼마 가지 않아서 깨질 것 같았거든. 나는 아오이에 비하면, 너에겐 이렇다 할 매력이 없었으니까.”
“언니가 왜 매력이 없어요! 아오이 언니가 없을 때 저한테 얼마나 힘이 되어줬는데요!”
“초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거 말고 나한테 다른 매력이 있던가?”
정말, 기껏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망치는 발언을 해버렸네요.
이 말이 라피아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뭐라 할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요.
이에 대답하듯, 질 역시 아오이처럼 침대에서 일어나 앉고선, 라피아에게 적당한 크기로 소리쳤어요.
“있어요! 항상 저를 걱정해주고, 옆에 있어 주고, 저를 배려해서 억지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았잖아요! 또 제가 흡혈해달라고 하면 항상 거부하는 척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는 이쁜 걸 넘어서 아름답잖아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외모에 관해선 말하지 마! 외모는,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서….”
이번에는 라피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에 바빴어요.
이래서 한 침대에 이불만 3개가 놓여 있었나 보네요.
침대도 보통 사이즈보다 3배가 큰 것에도 이유가 있었고요.
“의외로 라피아도 질에게 약하네요. 제가 없는 동안의 질의 상태를 고려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시, 시끄러워! 너도 흡혈 당해봐서 알 거 아냐?! 질은 어려서 쉽게 흡혈의 쾌락에 중독될 수도 있으니까…!”
하찮은 핑계를 대는 모습에 아오이는 작게 소리 내 웃고는 말을 이어갔어요.
“그렇겠죠. 질도 라피아를 이해해주고 있잖아요. 그리고라피아가 억지로 질에게 무언가를 할 생각이 없다는 건, 진심이라는 건 제가 잘 알고 있어요. 몇 달이라는 어중간한 교제이기는 해도 사람을 관찰하는 눈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요.”
“하아….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바로바로 행동에 옮기는 게 나다운 거지…. 그냥 지금을 즐길란다! 너희 떠드는 거 보니까, 아직 부족한 거 맞지? 각오해!”
“잠깐, 라피,윽?!”
“언니! 아오이 언니보다 저랑 먼저 해요! 아까는 아오이 언니랑 제일 먼저 시작했었잖아요!”
억지로 아오이를 침대에 눕히는 라피아, 그걸 보고 자신의 차례라며 끼어드는 질.
이것이 셋이 갖는 보통의 휴일이거나, 집에서 할 일이 있어 셋이 모이는 날이 있다면 벌어지는 일상이었어요.
주로 누가 상황을 이끌어가느냐, 누가 이끌려가느냐만 달라질 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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