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뉴페리시니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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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하루 전 날인데도 불구하고 뉴페리시니는 그다지 바빠 보이지 않았어요.
결혼식장의 준비는 질이 이전에 반지를 만들기 전에 따로 업체에 연락을 해두었기에 이미 완성되어있는 상태이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질을 도와준다지만 고작해야 당일에 어떤 음식을 내야 할지, 준비해둔 웨딩드레스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전부였어요.
사실, 웨딩드레스도 질이 비밀리에 아오이와 라피아의 치수를 알아내어 주문 제작을 했기에 그저 잘 보관되고 있는지만 알아보면 되는 거였죠.
그러니 아오이와 라피아의 결혼식 참여 의사만 확실해진다면 모든 일이 문제 없이 풀리는 상황이었어요.
질은 이런 상황에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미소를 지은 채로 아직은 어딘가 부족한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왠지 모르게 피부에서 윤기가 나는 비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멈춰섰어요.
“비델 씨! 안녕하세요!”
“뭐, 뭐야….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는 건데?”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 가능한 질의 웃는 얼굴.
비델이 보기에는 꽤 떨떠름했나 봐요.
“기분 나쁘다니 너무해요! 그래도 봐줄게요! 아마 언니들은 결혼식에 와 줄 것 같으니까!”
“뭘 믿는 거야? 그 자신감의 근거를 모르겠어.”
“세르디어에게 대신 전해줄 때 말했었어요. 만약, 언니들이 결혼식에 불만을 느끼고 있거나 거부할 생각이라면…. 직접 찾아와서 혼내든, 설교하든 마음대로 하라구요. 근데 안 왔잖아요.”
“초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너무 일을 멋대로 진행한 게 화나서 찾아오지도 않는 거라면?”
“그땐, 잘못했다고 빌어야죠. 별거 없어요.”
생각보다 덤덤하게 넘어가려는 질이에요.
흑기사와 연습 중일 때만 하더라도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으면서요.
이것도 케이넨이 옆에서 지탱해준 덕분일까요?
그런데 갑자기 비델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어요.
“어, 야, 야! 뒤, 뒤에…!”
“네? 뒤에 뭐가아…. 아오이 언니?!”
질은 뒤에서 나타난 아오이를 보고 기겁하며 비델 쪽으로 물러섰어요.
방금까지 좋은 기분으로 있었을 텐데, 설마하니 아오이가 진짜로 찾아올 줄은 몰랐겠죠.
결혼식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거절하기 위해서 찾아온 걸까요?
불만만 있어서 찾아온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네요.
하기 싫다고 거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질, 놀랄만한 일을 벌이기는 했네요.”
“그, 그렇죠?! 놀라만 한 일이죠?! 네, 응!”
질이 당황하다 못해 식은땀을 흘리는 탓에 뒤에서 지켜보는 비델은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자리를 피하기 위해 소리 없이 슬금슬금 두 명이 있는 곳에서 멀어지려고 했거든요.
“…하아, 왜 그렇게 겁먹는 거예요? 잊은 건가요? 저는 질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모두 허락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렇겠죠, 언니도 역시 불만을…. 어, 네? 뭐라구요…?”
질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스스로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어요.
그 모습에 아오이가 작게 웃어 보였어요.
물론 그동안 아오이의 행적을 살펴보면 믿음이 잘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것들은 질의 안전에 관련된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던 문제였잖아요?
그렇다고 결혼이 가벼운 문제라는 것은 아니지만요.
“저는 라피아랑도 사랑하고 있잖아요. 이미 두 명과 사랑하고 있는데 결혼이라고 못하겠어요?”
아오이의 말도 틀린 건 없네요.
이미 질과 사랑하는 도중에 라피아랑도 사랑하게 되었잖아요.
누가 말했던 것처럼 정상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정상이 아닌 지금, 결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죠.
“그, 그으렇죠오? 잠깐만요, 라피아 언니는요?!”
“라피아는 본가에 급하게 가서 허락을 받아오겠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내로 허락을 받아오겠다고 했으니 금방 올 거라고 생각해요.”
“언니는 왜 이 마을에 온 거예요? 저 분명 세르디어한테 전해줬었어요. 언니들한테 결혼식을 거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마을에는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네에, 직접 제 귀로 들었으니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질에게 설교는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네, 네? 어째서…? 결혼은 허락하겠다면서요?”
질은 설교라는 말에 질색했어요.
이번 일에서 뭔가 아오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던 거겠지만, 질로서는 알지 못하고 있나 봐요.
“그러니까 질, 뒤에서 넋 놓고 있는 그 사람은 자기 할 일 하게 보내주겠어요? 아니면 저희가 자리를 옮길까요?”
“네? 아, 비델 씨…. 저희가 다른 곳으로 가요.”
질은 비델에게 인사하고는 빨래를 널어두었던 뒷마당으로 아오이를 안내했어요.
아직 빨래들이 완전히 마르지 않아 바람에 무게감 있게 펄럭이고 있었죠.
질은 굳이 빨래와 빨래 사이로 들어갔어요.
“이곳은 이전에 왔을 때보다 많은 게 변했네요. 특히 이 빨랫대는 저번에 본 적이 없는데, 적당히 바람이 불어오고…. 오는 길에도 잘 포장된 길이 마치 건물만 없는 황궁의 수도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상당히 괜찮은 곳이 됐네요.”
“그, 그래요?”
질은 자신의 마을이 칭찬받은 것이 내심 기쁘면서도 설교가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에 겁먹으면서 대답했어요.
“네, 질의 마을을 제가 조금 더 일찍 발견했다면…. 이런 만약이라는 건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요.”
“아하하…. 언니, 저 뭐가 불만인지 들어봐도….”
“아! 그렇지, 질? 질은 저랑 라피아에게 신뢰가 부족한 거 같아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신뢰가 부족하다니, 제가 언니들한테?”
질은 아오이의 말에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했어요.
분명 자신은 아오이와 라피아에 관해서는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비델과 함께 집에 돌아온 날만 하더라도, 둘이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도 넘어가 줬으니까요.
자신 몰래 사랑을 나누더라도 언젠가 그만큼 자신에게도 돌려줄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런데, 신뢰가 부족하다면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을 만하죠.
“저나 라피아가 언제 한번 질이 하고 싶다는 일에 토가 단 적이 있나요? 그, 너무 예전은 아니고…. 최근에요.”
말하면서도 찔리는 것이 있는지 끝에는 말을 더듬는 아오이였어요.
굳이 제 발 저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요.
다 질의 안전을 위해서 참견했던 거잖아요.
이제는 질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최근에는…. 없었죠. 미안해요….”
“놀라게 해 주려고 했던 건 이해해요. 하지만 질이 하려는 결혼…. 중요한 문제잖아요. 질에게 있어서도. 저한테 있어서도. 그리고 라피아에게 있어서도.”
“저도 알아요. 셋이서 하는 결혼이니까, 그러니까 모두에게 중요한 날이라는 것 정도는….”
“그렇다면 질도 알잖아요? 세르디어에게 시킬 것이 아니라, 질이 직접 저와 라피아의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마음은 정말 고마워요, 고맙지만…. 서프라이즈가 필요 없는, 자신의 입으로 전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질이 무슨 수로 흑기사를 설득해서 이야기를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오이의 말이 백번 옳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질이 둘의 앞에서 결혼식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아오이와 라피아를 한 번에 설득시켜야 했을 거예요.
어쩌면 마음대로 일을 진행해서 급하지만 둘을 결혼식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만드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르죠.
눈에 선하네요.
결혼식 이야기를 들은 아오이와 라피아가 지금 결혼하기에는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고, 질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는 모습이.
이는 질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기에 아오이의 말에 반박 한번 못하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었죠.
“하지만 언니, 만약…! 만약 제가 언니 앞에서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으면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거절했을 거잖아요!”
“질,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거절할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만약에 있더라도 라피아가 있겠죠. 가문과 가족, 자신의 꿈이나 장래에 하게 될 일에 끼칠 영향 같은 것 때문에. 그렇지만 그 라피아도 질과의, 저와의 결혼을 받아들였어요. 저도, 라피아도, 질을 이해하고 사랑하니까.”
“…바보같이 저만 급했을 뿐이라는 거예요? 언니들 생각은 하지 않고 제 맘대로 행동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제 실수라는 거잖아요.”
질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한탄하듯이 말했어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질이 저희를 너무 사랑한 탓에 일어난 단순한 헤프닝이었던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요.”
“제가 실수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이런 실수를 하는 질을 보고도, 반지만 주는 거로 알고 있다가 뜬금없이 결혼해달라는 말을 소환수에게서 들었어도, 저는 질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실수마저도 귀엽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거예요. 사실은 설교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질을 보고 있으면 제 감정을 숨기기 힘들어져서 위로하게 되었네요.”
아오이의 말에 질은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그저 말 한마디 없이 다가가 아오이를 품에 안아버렸죠.
일순간 놀란 아오이가 잠깐 어깨를 떨었지만, 그대로 팔을 올려 같이 안아주어 등을 토닥여주었어요.
“치사해요.”
갑자기 치사하다는 말을 전해오는 질 덕분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아오이에요.
“뭐가 치사한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언니보다, 제가 더 언니들을 사랑하니까요.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더 언니들을 사랑한다구요!!”
“그, 그렇게 화낼 일이에요?”
“당연하죠! 이럴 때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
설교가 끝났다는 안심과 아오이의 적극적인 표현 덕분인지 질은 큰소리까지 치며 아오이를 안고 있는 팔에 더 힘을 줬어요.
평소보다 아오이가 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으니 질도 기뻤을 거예요.
아오이는 좀처럼 속내를 비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질, 라피아가 오면 똑같이 말해주세요. 분명 좋아할 거예요.”
“당연하죠! 꼭 그럴 거예요!”
“그전에 사과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그건 생각해볼게요. 그래도 고마워요, 언니. 정말 고마워요!”
이때의 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거예요.
결혼도 허락하고, 사랑해준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분명, 내일이 기대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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