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77화 (177/189)

〈 177화 〉 뉴페리시니 (7)

* * *

이날 저녁, 회관 앞의 광장에서는 커다란 캠프파이어를 만들어 거의 축제와도 같은 것을 열고 있었어요.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을 가운데에 놓고 수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어울리는 중이에요.

아직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을 준비해, 안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보였어요.

이 연회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질과 비델이었어요.

질은 이 마을에 잠깐씩만 들렀다 갔을 뿐이었으니 환영하는 의미에서, 비델은 이번에 새로운 짝을 찾아 맺어졌기에 축하한다는 의미에서의 주인공이었죠.

질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람들과 꽤 잘 어울렸어요.

일대일로서의 감사는 받아봤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은 탓일 거예요.

그에 비해서, 비델은 질보다도 더 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어요.

자신의 옆에 여자아이 하나를 옆에 끼워두고서요.

다른 사람들도 배려를 해주었는지 처음에만 어디서 왔느냐, 뭘 했었느냐, 취미는 무엇이냐 같은 친해지기 위한 말을 쏟아내다가 눈치껏 둘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거든요.

주변은 시끌벅적하지만, 둘의 주위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어요.

둘은 만나고 얼마 안 된 몇 시간 사이에 서로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진 느낌이었죠.

“루리엔, 정말 괜찮아?”

“우리 드라이혼 종족은 쉽게 상대를 고르지 않아, 뿔은 항상 정직하잖아. 너야말로 나로 괜찮아?”

루리엔이라 불린 비델의 짝은 이마의 정 중앙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뿔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노예로 잡힌 이유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아요.

귀 뒤쪽에서 뿔이 두 개는 더 나 있지만, 빛나는 것은 이마의 것뿐인 걸 보면 특별한 능력이 담겨 있는 것은 이마에 난 뿔만이겠죠.

“괜찮지,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는 거잖아?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무엇보다 이쁘고.”

“너는, 읏흠! 알아. 내가 좀 이쁘지.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한 외모 하는걸. 무엇보다 고양이 같은 그 눈매가 좋아.”

“아, 부끄럽게 진짜. 그만하자. 어차피 임시 식당에서 물어볼 건 다 물어봤잖아? 서로 마음에 들어서 사귀자 한 거고. 그러니까 자리 좀 피할까.”

비델은 말을 마치며 슬며시 루리엔의 손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어요.

자리를 피하자니 분명 둘이서만 있고 싶은 마음이겠지만요.

루리엔은 생각보다 빠른 진도에 당황한 것 같아요.

“어…. 벌써?”

“벌써라니? 여긴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네 방을 좀 구경해보고 싶거든.”

“아, 아아~ 방 구경! 그래, 구경, 응. 조금 허름할 텐데….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보여줄게.”

그렇게 연회의 자리를 떠난 둘이에요.

저 멀리서 질이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사라져버렸죠.

사실 질 뿐만 아니라 이곳 모두가 그 둘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지만, 둘만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지르니트 언니, 저 둘…. 어떻게 생각해?”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케이넨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어요.

어쩐지, 오늘 질이 사냥을 나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케이넨이 옆을 떠나는 일이 없는 것 같네요.

“앞으로 싸우지만 않는다면 누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면서 웃고 떠들고 할 것 같아요.”

“그치? 내가 생각해도 잘 이어진 것 같아.”

“그런데 언니는요? 언니는 혼자여도 돼요? 안 외로워요?”

“나, 나아? 나야 뭐…. 이 마을에 들어올 사람들을 봐줘야 하는 일도 있고, 이래 보여도 일단은 뉴페리시니의 촌장인걸.”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이었네요.

질이 만든 마을의 촌장인 사람이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촌장님은 지르니트한테만 상냥한 거,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케이넨의 뒤에서 엘프가 한 명 치고 들어왔어요.

평소에 약간 불만이 쌓여있던 것 같은데요.

심지어 한 명이 시작하니, 다른 한 명이 나서서 한마디를 덧붙였어요.

이번엔 아까 식당에서 봤던 케인이네요.

“맞습니다! 누님 너무 폭력적인 거 스스로 자각은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 너희들…!”

지르니트가 옆에 있다는 것을 보고 평소처럼 대할 수 없는 케이넨의 모습을 눈치챈 건가 봐요.

이때가 아니라면 케이넨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게다가 케인의 뒤를 잇는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지르니트가 구해준 사람들인 저희에게 이렇게 막 폭력적으로 대해도 돼요?! 촌장님!! 저 엘데린트는 마음이 아프다고요!!”

여기에 추가타를 넣은 것은 제일 먼저 나섰었던 엘프, 엘데린트였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지르니트! 귀를 잡아당기고, 뿔이나 꼬리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심하면 막 등을 때린다니까! 말 안 듣는다고! 자기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르면서!”

이번에는 주방장이었던 케인이 한번 거들었죠.

“촌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도 평소에는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셨으면….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델의 첫 번째 후보로 지목되었던 데르미안까지 합세했어요.

그 뒤로도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아붙인 탓에 케이넨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있었죠.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시선으로 질을 봤지만, 질은 이미 인파에 밀려나 저 뒤에서 따뜻한 우유를 홀짝이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 이 녀석들이…! 그, 그만하지 못해?! 다 너희를 위해서였던 거잖아!! 너희들 내가 채찍질하지 않으면 마을이 제대로 굴러가기나 했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지르니트 언니!!”

“네?! 저, 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헤헤….”

“언니까지?! 어, 어어!? 왜 다가오는 거야 너희?! 오지 마! 오지 말라니까?!”

“저, 잠깐만 다른 데에 가 있을게요! 케이넨 씨, 힘내세요!”

질의 옆이라고 평소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탓에 케이넨은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어요.

무엇을 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질은 자리를 피해서 아직은 아픈 사람들이 요양 중인 곳으로 들어왔어요.

평소에 비하면 조용했을 곳인데 오늘만큼은 조용함 속에서도 약간의 들뜬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질은 그 사람 중에서도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어쩌면 질과 같은 나이이거나 더 어린 소녀 옆으로 가서 앉았어요.

침대 옆의 간이의자에 앉자마자 그 아이는 질을 바라보고는 눈만 깜빡였죠.

“피네, 잘 지냈어?”

“….”

피네라고 불린 소녀는 고개만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어요.

그럼에도 질은 불쾌해하지 않고 작게 미소지으며 피네의 손을 잡아주었어요.

“다행이다. 몸은 어때?”

“….”

이번에는 손에 있으나 마나 한 힘을 주어 한 번 쥐었다 폈어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질은 곧바로 한숨을 쉬었죠.

“미안해, 피네한테는 조금 더 신경을 써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질의 반응을 보아 피네라고 불린 소녀와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질이 특별히 더 신경 써주고 싶은 인연일 수도 있고요.

그저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겪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부모도 없이, 상처 위로 감은 붕대가 가득한 모습의 소녀를 본다면 누구라도 없던 동정심이 생겨날 테니까요.

그렇지만 피네는 질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은 싫었던 것 같아요.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던 피네가 작은 미소를 지어주었거든요.

“피네는 나보다 더 강한 것 같아. 나는 힘만 세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지 않으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두 번 쥐는 피네예요.

목에도 붕대를 감고 있는걸 보면 당연하게도 힘든 일을 겪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상당히 애틋한 감정을 품는 것 같네요.

“지르니트 씨? 언제 오신 거예요? 밖에서 더 즐기다 오셔도 되는데.”

“아, 제리 씨!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라니, 아까 명부 작성할 때 봤었잖아요?”

“에헤헤…. 그냥 반가워서…. 몇 번이고 인사하고 싶은 거예요!”

“여전히 특이하네요. 피네는 오늘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고요.”

“피네, 이따가 다시 올게.“

질은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해주며 피네와 눈인사를 했어요.

발목을 짚은 제리와 걸음 속도를 맞춰주며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기다란 복도의 후미진 곳이었죠.

서 있는 것이 힘들었는지 곧바로 주변의 의자에 앉아 발목을 옆에 세워두는 제리였어요.

“제리 씨는 어떻게 지냈어요?”

“지르니트 씨가 소개해준 일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명부 작성을 돕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했지만, 꽤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이 몸에도 적응해서 나름, 불편한 것도 없고요.”

“그, 팔다리에 관해서인데요. 혹시 새로운 팔과 다리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질은 새삼 조심스럽게 제리의 의견을 물었어요.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새로운 팔과 다리를 얻는다면 다시금 용사 후보생으로서의 제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제리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 왼손으로 절단된 팔꿈치 위쪽을 어루만졌어요.

“지르니트 씨, 저는 지금의 몸으로도 괜찮아요. 여기 사람들도 저한테 잘해주니까, 이 마을을 떠나기도 싫고…. 너무 친해져서 이제는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후회나 미련 같은 건 없는 거예요? 다시, 용사 후보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괜찮아요. 이제는 용사 후보생이라는 신분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니까. 이런 몸이 됐을 때부터 진작에 그런, 후보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접었었고요.”

제리의 말에 질은 잠깐 놀라는 듯했어요.

용사보다 마을 사람들을 더 좋아하게 된 제리라니,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어요?

“제리 씨도 정말 많이 변했네요. 일을 소개해줄 때만 하더라도 눈에 용사 후보생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보면 잊게 돼요. 용사보다는 성녀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라면 알 것 같아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직한 거예요.”

성녀라는 뜬금없는 단어에 질은 다시 한번 놀라, 밖을 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제리를 돌아봤어요.

그랬더니 뭐가 문제냐는 듯이 똑같이 시선을 맞춰오는 제리는 말을 다시 이어갔어요.

“아, 수녀에 가까우려나? 성녀는 조금 더 성스럽고…. 저랑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어쨌든 다른 아픈 사람들을 돌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제리 씨에게는 성녀도 어울릴 것 같긴 해요.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섰으니까. 어, 이건 용사도 비슷한 것 같은데…?”

”너무 입에 발린 말 같지만, 넘어가 줄게요. 지르니트 씨는 어떻게 지냈어요? 최근에 마을에 오지 못했던 걸 생각해보면 바빴던 것 같은데.”

“저는, 그렇네요. 저도 많은 일을 겪었어요. 최근에 전쟁이 한번 일어났었는데, 그때는 저 대신에 다른 모험가분이 대신 왔었죠?”

그렇다면 이전에는 한 번씩 자신이 꼭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 뉴페리시니에 들렀었다는 말이네요.

전쟁 도중이나,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질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마을을 향한 애정과 노력이 대단하네요.

하지만 질이 자리를 비웠던 동안은 꽤 큰일이었던 것 같아요.

제리의 표정이 그땐 그랬었지만, 곤란했었다는 표정이었거든요.

“알마 씨였나? 최근 한 달 좀 넘게 그랬죠. 마을 사람들이 지르니트 씨를 보고 싶다고 얼마나 입에 달고 살던지…. 사람들이 일하는데 완전 죽상이라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까지 해야 했어요.”

질을 보지 못했다고 일의 효율까지 떨어진다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의 수준을 넘어선 존경과 경외심까지 가진 것 같아요.

보통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떠받들진 않을 텐데, 도대체 질은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걸까요.

질도 자신이 없어서 마을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작게 웃어 보였어요.

자신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랬어요? 그건 조금 곤란한데….”

“그러니까, 자주 얼굴 좀 비춰요. 오랜만에 왔다고 오늘 연회까지 열 정도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네, 네에…. 피네에게도 미안하긴 하니까, 시간 나면 자주 올게요.”

거의 세계를 구한 용사 취급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질은 말을 더듬이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굳이 피네의 이름을 들먹이며 핑계를 대면서요.

“피네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피네는 이 마을에서도 제일 극진한 간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지르니트 씨의 부탁도 있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요. 그 아이는….“

“케이넨 씨는 금방 회복해서 촌장직까지 맡게 되었는데, 피네는…. 너무 심한 일을 당해서 같은 날에 구출된 케이넨 씨보다 더 오래 누워있잖아요.”

“이전에는 고개를 까딱이던 것도 못 했던 걸 생각하면 많이 나아졌죠. 지금은 이제 정말 힘겹게 말 몇 마디가 가능해졌거든요.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조용히 있지만.”

어쩐지 이 마을에서 케이넨과 함께 제일 오래 있던 멤버 중의 하나가 피네였나 보네요.

처음 구해졌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하니, 피네의 상태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에요.

“피네가 어떻게 구해졌는지 알아요?”

질은 제리의 옆에 앉으며 물어봤어요.

당연히 자신보다 먼저 마을에 온 피네의 이야기를 알 리가 없던 제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죠.

“케이넨 씨도 그렇고, 피네도 그렇고 노예상에 잡혀있었어요. 저는 그날 슬리브스터의 거점을 부수러 간 게 전부였는데. 다른 거점에 비해서 노예로 잡힌 사람들을 괴롭힌 정도가 심했던 거예요. 케이넨 씨만 보더라도 지금은 완벽하게 회복했다지만, 양쪽 전부 밑동만 남기고 잘려나간 뿔이라던가…. 꼬리는 반쯤 잘려나가고 비늘이 거의 다 벗겨져서….”

질은 창문 밖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사지를 붙잡힌 채로 구속당해,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여지는 케이넨을 보며 말했어요.

먹기 싫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음식을 눈앞에서 직접 만드는 걸 보여주기도 했어요.

예를 들자면, 그렇네요.

노란 과육의 열매를 얇게 썰어 빵 위에 올려 굽는 것이라던가.

질은 그 모습을 웃으며 보고 있었어요.

“케이넨 씨가 회복하기 전에는 촌장 자리도 비어 있었으니까, 마을도 꽤 분위기가 무거웠어요. 케이넨 씨는 정말…. 저한테 고마운 분이에요. 그런데 피네는 아직…. 어떻게 어린아이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요. 제가 고블린 소굴에 잡혀있을 때랑 별반 다를 게 없겠죠. 제가 생각해도 피네는 버텨낸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제리 씨, 다시 한번 물어보겠는데요…. 정말 필요 없어요? 새로운 팔과 다리.”

고블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질은 다시 한번 물어보는 질이에요.

타인의 아픔에 익숙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파 보이는 상처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물론 동정하는 마음으로만 말을 꺼낸 것은 아닐 거예요.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마음가짐이니까요.

그렇지만, 제리는 질의 호의를 거절했어요.

“…당분간은 이 몸으로 살아보려고 해요. 나중에 지르니트 씨가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주세요.”

“알았어요. 이제 저, 피네가 기다릴 것 같아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네, 괜찮아요. 저는 여기서 조금 더 구경하다가 갈게요. 저 속에 섞이는 건 너무 시끌벅적해서 싫지만, 구경하는 건 괜찮아서….”

“곧 여름이지만, 밤이라 쌀쌀할 수 있으니까…. 감기 조심해요. 먼저 가 볼게요.”

“일을 소개받았던 이후로는 잘 못 봤었죠? 물자만 주고는 바로 돌아갔었으니까. 반가웠어요, 지르니트.”

질의 호의는 거절했지만, 그래도 제리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망가진 몸 때문에 일도 구하지 못하고, 그대로 좌절해 길바닥에 나앉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렇게 다시 회복해가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이 마을에 온 뒤로 질의 표정은 밝아지기만 하네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