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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63화 (163/189)

〈 163화 〉 금방 들켜버릴 비밀 (3)

* * *

“앗, 하응…!”

“여기가 좋아?”

“조, 좋아요…! 거기잇, 조금만 더…! 아읏, 흐으….”

욕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때, 흑기사의 머릿속은 너무나도 평온했어요.

둘의 말소리가 밖으로 다 울려 퍼지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아오이가 항상 마시던 녹색 차를 홀짝이고 있었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요.

샤워는 이미 끝내고도 남은 것 같은데 안에서 뭘 하고 있길래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요.

“조금만 약하게 할까?”

“아, 아닛…. 아니에요, 이대로옷?!”

“어때, 나의 기술이!”

“닿자마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에요….”

손기술이 좋은 건 이미 저번에 있었던 일로 자세히 알고 있겠지만요.

역시 이번 일도 그때 화장실에서 있던 일의 연장선인 건가 봐요.

시간이 흐르면서 라피아와 같이 있던 시간이 늘어났기에 그런 것인지, 약간은 라피아의 손기술에 적응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네요.

그런데 갑자기, 욕실의 문이 열렸어요.

“질, 라피아? 뭐 하는 거예요?”

활짝 열린 문 때문에 욕실을 가득 채우던 수증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며 안쪽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줬는데요.

아오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본 그곳에는 손을 질의 머리 위에 향하고 있는 라피아가 돌아보며 인사해오고 있었어요.

“어, 아오이! 이제 온 거야?”

“네, 그런데 라피아는 욕실인데 옷도 안 벗고….”

“질이 너무 피곤해해서 씻겨주고, 이제 막 두피 마사지해주고 있었어.”

“두피, 마사지…?”

말을 끝마치자마자 손가락으로 욕탕에 잠겨있는 질의 머리를 꾹꾹 마사지해주는 라피아예요.

아오이가 와서 인사를 하고 싶은데도 너무나 기분 좋은 감각에 참지 못해, ‘잠, 깐마아앗, 하아….’라는 소리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죠.

아주 여유만만인 라피아에 비해서 질은 말 그대로 손기술에 농락당하기만 하는 모습이었어요.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와봤는데, 이런 거였다니….”

“나중에 너도 해줄까?”

“에? 아뇨. 질의 표정을 보니까 기분은 좋아 보이는데 괜히 받기 싫어지네요. 적당히 해주다 나오세요. 오래 목욕해도 좋지 않으니까요.”

아오이가 나가고 나서도 라피아의 두피 마사지는 한동안 계속되었어요.

질의 몸이 녹아내린 슬라임처럼 흐물거리게 된 뒤가 되어서야 두피 마사지가 끝이 났죠.

“어땠어? 다음에도 또 해줄까?”

“실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아오이 언니 앞에서 그런 표정으로 있게 하는 건 너무했어요!”

“몸의 피로는 확실히 풀리지 않았어?”

“그거야! 그렇지만….”

“아오이도 말했지만, 적당히 잠겨있다가 나와. 나도 너 씻겨주느라 조금 힘들었다니깐.”

“저기, 언니! 언니도 씻고 가는 건 어때요? 그때처럼, 아오이 언니도 같이….”

뜬금없는 목욕의 권유에 라피아는 영문모를 표정을 짓다가도, 아오이와 함께라는 말에 작은 숨을 내쉬고는 알았다고 대답했어요.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욕실을 나가 아오이를 데려왔죠.

저번에도 그랬지만 질과 똑같이 몸에 수건을 두른 채로 들어온 아오이는 라피아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몸을 하고 있어요.

질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 꽤나 다양한 음식을 먹어 왔기에 영양 면에서도 부족한 것은 없었을 텐데요.

어쩌면 옛날 옛적에 빈약해 보이는 몸, 이 상태 이대로 성장이 멈춰버린 걸까요.

“무슨 바람이 분 거예요? 같이 목욕하자고 하다니.”

“그냥 오랜만에, 셋이서 씻고 싶어서요.”

“뭐어…. 셋이서 씻은 건 그때 이후로 기회가 잘 없었지? 굳이 셋이서 씻을 이유도 없었고.”

“그런데 질은 이미 오랫동안 욕탕에 있지 않았나요?”

“앞으로 10분! 그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니까요!”

“10분…, 그럴 거면 굳이 셋이서 목욕하는 이유가 없지 않아요? 질만 괜찮다면 상관없지만요.”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아오이는 먼저 씻기 시작한 라피아의 옆으로 가서 몸에 두른 수건을 풀었어요.

그리곤 물을 틀고 몸부터 씻기 시작했죠.

“질? 씻는 사람을 빤히 보는 건 좋지 못해요.”

“어, 언니는 뒤에도 눈이 달린 거예요…?”

질이 놀라며 되묻는 말에 아오이는 시선이 다 느껴진다고 대답했어요.

덤으로 전생에서 그런 시선을 자주 느껴봤다고 하기까지 했죠.

아오이의 외모라면 분명, 그럴 일이 많기는 했을 거예요.

그 누구보다 이목을 끄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많이 겪어봤다고 하니까요.

그 느낌을 잘 알고 있겠죠.

“질은 아직 어려서 모를 거야. 최근에야 좀 커서 알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 모험가 길드에 가면 가끔 누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긴 하더라구요.”

“…어떤 놈이 본 거야? 위병한테 다 일러바쳐! 그런 놈들은 다 감옥에 들어가야 할 놈들이라고!”

라피아가 과민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질은 위병까지 불러야 하냐며 되물었지만요.

라피아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을 만한 것이 아니었어요.

“범죄라고, 범죄! 네가 몇 살인지 기억해!”

“그, 그건 그런데, 설마 저랑 잘돼보려고 그러는 거겠어요? 그리고 나이를 생각하면 언니도….”

“나, 나는! 괜찮아, 나는!”

“뭐야 그게…. 근데 언니들은 액세서리 같은 거 안 해요? 귀걸이나, 목걸이나, 반지 같은 거요.”

질의 말에 라피아도 아오이도 고개를 돌려 질을 쳐다봤어요.

시골에서 벗어나 번화한 곳에 살게 되었으니 질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긴 했죠.

그게 아니라면 모처럼 아오이와 라피아, 둘과 함께 사랑하게 되었으니 같은 것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이야기를 꺼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전생에 실컷 즐겨봤거든, 그래서 그런 거에 딱히 관심은 없는데. 있으면 하지 않을까?”

“저는 예전에도 말했었지만 그런 것과는 담쌓고 지내던 부류의 사람이었기에….”

“그럼 이 기회에 해보지 않을래요? 커플링이라던가!”

“질, 설마 저번에 준다고 했던 게 이 이야기였어요?”

“네?! 아닛, 아닌데요!”

“근데 네가 우리 손가락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준다는 거야?”

“아니라니까요?! 아니, 아닌데….”

이런 말이 있어요.

강한 부정은 긍정과 다를 것이 없다고요.

게다가 질은 유난히 이런 쪽으로 무언가를 숨기거나, 잡아떼는 재능이 없으니까요.

질도 스스로 그 사실을 아는지 몇 번 물장구를 치다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어요.

이미 빠르게 눈치채버린 둘에게 숨기기를 포기한 거겠죠.

“알았어요. 저희는 모르는 거로 할게요. 그래서 필요한 건 더 없는 건가요?”

“제건 다 만들어가는데요…. 손에 끼우는 거랑 목에 거는 거, 뭐가 더 좋아요?”

“저는 목에 걸고 있는 건 이미 있으니까 손에 끼우는 게 좋겠네요.”

“나는 목에 걸고 싶은데, 손에 뭔가 끼는 건 불편하거든.”

그런데 대답을 마친 라피아가 뭔가 이상한지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거품기를 씻어 흘려내고는 질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잠깐만, 만들어간다니? 사는 게 아니었어?”

제대로 짚어냈네요.

이에 아오이 역시 ‘아!’ 같은 짧은소리를 냈죠.

마치 머리 위에 느낌표 하나가 생긴 것처럼요.

“셋이서 같은 걸 쓰는 거잖아요? 제 나름대로 의미가 담긴 물건이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사는 것보다는…. 직접 만들어서 주고 싶었어요.”

“그으래? 기특한걸~”

라피아의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욕탕에 오래 잠겨있는 질의 머리를 이렇게 마구 흔들어도 되는 걸까요?

질도 그만하라며 힘없이 대답하고 있는 걸요.

부끄러워서 그런 것인지, 어지러워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나도 너한테 뭔가 줘야 할까? 아오이, 넌 어떻게 생각해?”

“저는…. 이전에 목걸이를 이미 선물해줬었어요. 지금 보니까, 라피아와 사귀는 사이가 됐으니…. 라피아에게 하나 만들어줘야 할까 싶네요.”

그랬었죠.

아오이는 훨씬 오래전에 질에게 목걸이를 선물해준 적이 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그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질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만요.

라피아는 질의 목에 걸린 것을 보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어요.

그 사이에 아오이 역시 샤워를 마치고 라피아를 따라 물에 들어왔어요.

“아, 어…. 그럼 나만 준비하면 되는 건가….”

“뭔가 바라고 준비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라피아 언니는…!”

“잠깐, 질. 좋은 게 떠올랐어.”

“좋은 거…?”

“응, 좋은 거. 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일 호화스런 곳에서….”

라피아의 말은 완성되지 못했어요.

흑기사가 욕실의 문을 두드렸거든요.

“잠깐 괜찮나? 레나이 황, 황녀라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고? 음, 미안하군. 어쨌든 레나이가 찾아왔다.”

이러다가 레나이는 물론, 흑기사까지 욕실에 들어오게 생겼어요.

뭐가 됐든 레나이가 왔다는 말에는 질이 몸에 수건을 두르고 문을 열어줬어요.

슬슬 질이 나올 때가 되기는 했으니까요.

“레나이 언니?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무슨 일이냐니? 올 시간이 되었으니 온 것이지. 본인도 바빠서 할 일이 있었으니 원래 와야 할 때 보다는 늦어졌지만…. 일단 추워질 테니 들어가도 될까?”

“아, 네 들어오세요. 저는 발만 담그고 있다가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벌써 그런 시간이 지났나 보네요.

황녀의 준비성은 얼마나 뛰어난지 이미 옷을 전부 벗고, 수건을 몸과 머리에 모두 두르고 있어 목욕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말리려고 해도 이미 때가 늦었던 거죠.

무엇보다 누군가가 말린다고 해도 말려질 레나이가 아니었지만요.

그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레나이 언니, 잠깐만.”

그런데 레나이가 안쪽으로 더 들어가, 아오이와 라피아 곁에 가기 직전에 불러세운 질이에요.

뭔가 할 말이 남아있는 걸까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레나이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걸 보면 둘에게는 들리게 하고 싶지 않은 거겠죠.

“음, 알겠다. 그대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는데 안될 것도 없지. 그렇지만 지르니트, 나중에는 본인도 그 자리에 있길 바라겠어. 그리고 오늘 밤, 대가를 받으러 찾아가지.”

“대가요…? 어떤…?”

“밤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알 텐데?”

“너,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무얼, 본인 앞에서 탈리안과 화해도 했었으면서. 별거 아니니 밤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그럼 이번에는 언니의 그, 능력은 쓰면 안 돼요….”

머뭇거리며 아오이와 라피아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질에게 미소짓는 레나이였어요.

용건을 마친 질은 레나이와 함께 다시 욕탕 가까이에 갔는데, 이상하게 레나이가 물에 들어가지 않고 빤히 셋을 구경하고만 있었어요.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진 아오이가 물어보면….

“본인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대들은 항상 이렇게 셋이서 목욕하고 있나? 그렇다면 목욕 후에 항상 침대 위로 향하는 것인가?”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요?”

“미인이 셋이잖나, 이성이 어떻게 버티냐는 말이지. 분명 목욕 후에…. 아니지, 목욕 도중에라도 서로가 서로를 탐할 것 같은데.”

“그, 그럴 일은 없어요!”

언제쯤이 되어야 아오이에게 내성이 생길지 궁금해지네요.

이런 진실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레나이는 쉽게 믿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아오이를 부추기기 시작했죠.

“정말인가? 용기가 부족한 것이라면 본인이 도와주겠다만.”

“필요 없습니다!”

“아쉽지만, 그대가 그렇다면야. 잡담은 여기까지 하지. 바로 본제로 들어가자고. 데이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레나이가 아무런 소식 없이 찾아올 리가 없죠.

데이트라니, 레나이치고는 평범해 보이는 일을 가져왔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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