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162화 (162/189)

〈 162화 〉 금방 들켜버릴 비밀 (2)

* * *

질이 바쁘게 돌아다닌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질은 공방으로 보이는 어딘가에 앉아 있었어요.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 불이 타오르는 소리.

웬만해서는 질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있으니 어색하게 보이기만 했죠.

“적당한 힘으로 여러 번 때려서 길이를 늘이는 거야. 그렇지.”

그 옆에서는 이전에 가게에서 봤던 점주가 질에게 조언을 해가며 작업 중인 무언가를 도와주고 있었죠.

질이 들고 있는 망치는 끝이 뭉툭해서는 무언가를 박는 용도보다는 두드리는 용도로 쓰는 데에 적합해 보여요.

“천천히 돌려가면서 반듯한 각을 잡고, 끝과 끝이 이어져야 하니까 둥글게.”

“몇 분째 두들기고 있는데, 더 해야 해요? 팔 아픈데에….”

“아가씨가 직접 만들고 싶다고 재료만 주문한 탓이잖아! 나는 방법만 알려줄 뿐이라고! 그 정도 길이면 됐어, 다음은 구부린 끝과 끝을 불로 용접할 거야.”

“마법 써도 돼요?”

“가게 태워 먹을 일 있어?! 안돼! 마도 토치라는 좋은 장비가 있는데 뭐하러 마법을 쓰겠다는 거야?!”

한번 잔소리를 듣고는 앓는 소리를 내며 점주가 건네주는 장비를 받아든 질이에요.

그래도 점주가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어서 다행이네요.

물건을 팔기만 할 뿐인 점주였다면 질도 꽤 번거로웠을 거예요.

아직까진 뭘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요.

“불로 계속 지지고 있으면 안 되고, 얼마나 붙었는지 수시로 확인해가며 지져야 해. 알아들었어?”

“알아요, 이렇게 하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찔끔해서 붙겠어?! 조금 더, 지잉, 지이잉! 하는 느낌이라고!”

“그, 그게 무슨 느낌인데요…. 이, 이렇게?”

아무래도 오늘 안에 만들기는 글렀네요.

질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으니까, 라피아가 뭘 하고 있는지 보도록 해요.

그렇게 드문 조합은 아니지만, 흑기사랑 같이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네요.

드문 조합은 아니지만, 드문 일을 하고 있어요.

“야, 흑기사.”

“왜 부르지.”

“넌 왜 전쟁 때 안 온 거야?”

“질이 가족이니까 위험에 처하는 건 싫다고 하더군. 그래서 가지 않았다.”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역시 이 둘이 집에 남아있으면 이런 짧은 대화가 전부겠죠.

아오이는 베리아의 감옥에서 복귀한 뒤로는 착실히 마법 학원에 강의하러 다녔었으니까요.

둘만 남아있는 지금은 다시 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에요.

“소중히 대해주는 건 좋다지만, 불만은 없었어? 너는….”

“정령은 소환 이후에는 정령왕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움과 성장만이 전부…. 라는 것이 보통이지. 그랬었지만, 그래야 했지만….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흐응~ 생각이 바뀐 이유는?”

“보통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들은 정령에게 볼일이 끝나면 소환을 끊어버리지. 불필요한 유대를 갖지 않기 위해. 하지만, 지르니트는 그러지 않았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흑기사를 본 라피아는 책을 접어두고 자리에 제대로 앉았어요.

지금껏 누운 상태로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소환 자체가 정령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진한 영향을 끼친다. 주인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나, 사고와 판단. 일부이지만 감정도.”

“자, 잠깐만…. 너 그럼 질이 누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당연히 알고 있다. 지르니트가 라피아, 널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너와 몸을 맞대고 있으면 아랫배가 찌릿하면서 간질이는 느낌을 받는 것을.”

“야! 야! 멈춰! 나 이거 못 들은 거야! 알았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는 거 질한테 말하면 안돼!!”

확실히 질이 없는 곳에서 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못해요.

질이 알았다간 아무리 라피아와 흑기사라고 해도 질에게 큰 미움을 사버릴 테니까요.

이런 반응이야 당연했지만, 흑기사는 이야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오히려 즐기는 듯이 이야기를 더 이어갔죠.

“훗, 후후. …찰나에 불과하지만 지르니트의 과거도 엿보았다. 소환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과거에 지르니트가 얼마나 밝았는지 알 수 있었지.”

“이거 계속 들어도 되는 거야…?”

겁먹은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어보는 라피아가 불쌍할 지경이에요.

흑기사가 전쟁 중에 혼자서 집 지키는 개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지만, 그 때문에 이상한 반감을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라피아에게 속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질에게 사소한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요.

“알고만 있어. 이미 한번 죽었다 살아난 몸이지만…. 내가 언제 또 지르니트를 남기고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나 대신 지르니트를 지탱해줄 사람이 필요해. 지르니트는 누구 하나를 잃는다면 그대로 무너질 테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사람을 잃는 건 누구나가 무서워하는 일이지. 그런데 지르니트는 그 정도가 누구보다도 심하다. 마음속으로 항상 누군가를 잃으면 어떡하지, 누군가에게 버려지면 어떡하지,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 이와 같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분명 너나, 탈리안 선생님…. 둘 중 하나를 잃는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다. 날마다 슬픔에 빠져 한 명이 옆에서 일으켜 세워도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겠지.”

“이상한데, 나랑 아오이는 있는데, 너는 왜 없는 거야?”

그것도 그렇네요.

흑기사도 아오이와 라피아처럼 가족으로 인정받은 인물 중에 하나잖아요?

그런데 자신만 쏙 빼놓고 이야기하다니, 이상하죠.

“으음…. 질이 나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정보를 찾아다녔던 것을 알고 있지? 그 과정에서 기적에 가깝지만 되살릴 방법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일 테지.”

“다시 되살릴 수 있으면 그래도 되는 거야? 아니 애초에 되살릴 수 있으면, 네가 이번 전쟁에 빠질 이유도 없지 않았어?”

“되살릴 수는 있어도 누군가와 헤어지는 경험을 다시 하는 것은 싫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제대로 된 이유는 나도 모른다.”

상당히 질다운 이유네요.

사실 도덕관념이 제대로 박혀만 있다면 자신도 괴롭고 상대도 괴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경험을 다시 겪는 것도 싫을 테고요.

“그렇구나. …그렇지만 의외야. 겉으로는 누구보다 잘 웃고 지내던데….”

“지금도 질은 너와 탈리안 선생님의 곁에 있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바빠 보이긴 하더라, 뭘 하고 있길래?”

“그건, 비밀이다. 이것까지 알려주기에는 선을 너무 넘는 것 같거든. 하지만, 질에게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니 부러울 정도야.”

“아, 뭔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그 뒤로도 한참을 떠들던 둘 중 자리를 먼저 일어난 것은 흑기사였어요.

어디 가냐는 질문에 흑기사는 너무 오래 대화했기에 목이 마르다고 대답했죠.

흑기사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지만, 인간형으로 성장한 탓에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이어진 대화로 지나간 시간만 두 시간이 지나가 있었거든요.

“음? 지르니트?”

“질 돌아왔어?”

흑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이 열리며 돌아온 질이에요.

라피아 역시 다시 누워있던 소파에서 얼굴만 내밀어 질을 확인했는데,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죠.

먼지는 잔뜩 뒤집어쓰고, 머리는 푸석푸석해졌으며, 손에는 이상한 가루들이 잔뜩 묻어있었어요.

옷은 마치 그림이라도 그린 것처럼, 가슴과 배 부분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더러워져 있어요.

“뭐, 뭐야 꼴이 왜 그래? 질?! 어디 아파?! 병원 갈까?!”

라피아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는 질에게 달려가 걱정의 말을 쏟아부었어요.

자신의 무릎에 안겨 질의 얼굴을 살폈는데, 힘겹게 입을 뗀 질은….

“피곤해요오…. 배도 고파아….”

…라고 말하며 라피아와 그 뒤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흑기사를 기운 빠지게 했어요.

모두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그저 피곤하고 배고프다니, 어이가 없을 거예요.

이것 보세요.

흑기사는 질이 괜찮은 걸 확인하자마자 한숨을 쉬며 바로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고 있잖아요.

라피아도 비슷한 반응이에요.

“하아…. 사람 걱정이나 시키고, 그래도 어디 아픈 거 아니라 다행이다. 씻겨줘? 밥부터 해줄까?”

씻겨준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 걸까요.

“씻겨주세요…. 정신적으로 너무 혹사당해서 움직이질 못하겠어요….”

“알았어, 가자. 근데 도대체 뭘 했길래 그래?”

씻겨달라니, 질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라피아는 또 왜 질을 안아 들어 올리는 걸까요?

정말 씻겨주러 가는 건가요? 이러다 아오이가 돌아오면 어쩌려고요?

집에 흑기사가 있는 건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건가요?

둘 다 아오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심지어 흑기사는 이를 뒤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말리려고 하지도 않고 있어요.

분명 일부이지만 질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아오이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라피아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전부 알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은 흑기사의 생각을 모르겠네요.

이후 아무런 방해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정말로, 질과 라피아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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