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뒤바뀐 입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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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라파르의 도발적인 말에 참지 못하고 베리아는 곧바로 마기를 뿜어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방을 채워버렸어요.
붉은 안개처럼 방 안에 가득 찼을 때, 이변은 갑자기 시작되어 바닥이 일그러지면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어요.
당연하지만 손으로 끝이 아니었죠.
손은 바닥을 짚고 파묻혀있던 자신의 몸을 끌어 올렸는데, 마기노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비틀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 수는 하나, 둘 늘어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어요.
“라파르! 잊은 것이냐?! 네 녀석이 누군가와 그런 모습으로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뭘 잊어? 내가 가티아를 가지고 논 거?”
“…찢어 죽여도 모자랄 년이.”
같잖은 도발에 베리아는 이를 갈았어요.
이가 깨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요.
이에 라파르는 정도를 모르고, 다르크에게 더 달라붙으며 도발하기 시작했죠.
“다르크는 가티아라는 잡년과는 다르게, 대의가 있어! 그 년은 힘만 바라다가 죽었었잖아? 대의에도 급이 있다고!”
“…대의에도 급이 있다?”
“당연하지, 가티아라는 년은 마군주의 힘만을 얻기 위해 발악하기만 했을 뿐이야. 연옥을 바꾸고 싶다고? 주변에 따르는 추종자를 만들 성품도 카리스마도 없이 그랬다간 개죽음 뿐이야.”
베리아는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었다가 라파르를 향해 뻗었어요.
이 수신호에 베리아가 소환했던 모든 마기노가 일제히 달려들었죠.
“아하핫! 베리아! …건방지다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어버린 라파르의 손짓 한 번에 모든 마기노가 움직임을 멈췄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베리아는 기습의 기회를 너무나도 쉽게 내어주었어요.
몇 마리의 마기노가 달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베리아를 구해준 것은 당연하게도 질이었죠.
“로니아! 정신 차려요!”
“지르니트, 네 녀석….”
“상대는 다시 살아 돌아온 마군주잖아요!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모른다구요!”
“…쯧, 잠시 놀란 것뿐이다. 이런 상황이라고 이 몸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느냐.”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처럼 흩뿌려놓은 마기를 다시 거둬들이려 했던 베리아는 뭔가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행동을 멈췄어요.
이를 그저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라파르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죠.
“왜 그렇게 쳐다봐?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알 게 뭐야, 곧 죽을 년이. 그래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다르크는 가티아에 비해 모두를 따르게 할 힘이 있지! 난 여기에 반한 거야. 네가 다르크보고 하등종이랬지? 그 하등종이 혁명군이라는 세력을 만들고 따르게 한 거라고, 멋지지 않아?”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라파르를 보고 화를 삭이고는 있었지만, 언제 또 폭발할지 모르는 베리아에요.
지금도 충분히 잘 참고 있기는 해요.
적어도 무슨 수로 베리아의 부하들을 제어하에 뒀는지 알아내야 자기 손으로 라파르를 죽일 테니까요.
“게다가 다른 마군주들한테 힘을 받고 되살아난 내가 반한 남자라고! 가티아 따위와 비교 당하면 안되는게 당연하지!”
“하등종이 하등종을 이끄는 게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구나. 네 녀석은 다른 마군주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이야기겠고. 하긴, 도둑년 주제에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 리가 있나.”
“…야, 말조심해. 아니, 조심할 게 아니지. 혁명군 리빌더의 리더인 다르크, 이 마군주 라파르의 연인 다르크 앞에서 그 걸레 같은 주둥이 열지 마.”
다르크의 앞에서 자신을 욕하는 것은 보이기 싫은지 라파르는 대화를 그만두고 싸우기 위해 왕좌와 남자의 품에서 내려왔어요.
마군주다운 기분 나쁜 마기를 내뿜으면서 그 걸음걸이는 너무나도 가벼워 보여, 베리아는 그를 보고 비웃으며 말을 건넸어요.
“다르크, 그래. 그 하등종이 그렇게 중요하더냐.”
“당연한 거 아니야? 왜, 복수라도 하려고? 손가락 하나라도 대게 할 줄 알아?”
“네 녀석 때문에 이 몸은 갖지 못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네 녀석만큼은 가지면 안 되지. 지르니트, 네 녀석에게 라파르를 맡기마.”
“저, 저한테요?”
라파르는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베리아의 말을 잊지 않았던 질은 당황하며 대답했어요.
자신에게 라파르를 맡기고 다르크를 죽이겠다는 말은 몇 번을 다시 살펴봐도 이상한 말일 테니까요.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베리아의 말에 질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몸은 라파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이 몸과 똑같은 고통을 안겨줄 생각이다. 다르크라는 하등종도 죽인 뒤에 가지고 놀아야겠지.”
“아, 으으…. 무리하지 마세요!”
질은 앞으로 나서며 움직임이 멈춘 마기노를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베리아를 막을 수 없었어요.
분명히 말은 차분하게 하지만, 그 눈동자는 라파르 어깨너머의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거든요.
이런 올곧으면서도 분노에 집어 삼켜진 눈을 보고서 어떻게 막겠어요.
“뭐야, 내가 알던 베리아 맞아? 누군가를 믿다니…. 하지만 말했잖아? 금방 까먹다니 머리 아픈 거 아니야? 가만 놓아둘 것 같냐고!”
“이 몸을 따르는 추종자의 군세는 무한하다.”
라파르가 소리치자마자 달려든 마기노들은 새로 나타난 마기노들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아까 들었던 말대로라면 베리아의 지금 상태는 전성기 때보다 몇 배는 더 약하다는 뜻일 텐데, 소환해내는 마기노의 수가 끝이 없었죠.
게다가 붉은 안개가 더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을 수준이 되었는데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쓸모없는 것들, 이래선 빼앗아도 쓸모가 없잖아! 차라리 내가 직접, 으윽?!”
“방해하게 두지 않아요!”
답답한 마음에 덤벼들려는 라파르를 막아선 것은 푸른 마나를 전신에 두른 질이었어요.
발로 바닥을 깨부숴, 파편을 라파르에게 튀게 해 움직임을 멈추게 한 것이었죠.
질의 주먹과 발에는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어, 그 몸에 닿기만 해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때문에 라파르도 쉽게 질에게 반격을 하지 못하고 파편만 손으로 쳐내 뒤로 물러섰죠.
하지만 그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로 화를 내는 것은 참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건방진 꼬맹이가!! 너 때문에 다르크가 다치면 어떻게 할 거야!!”
“소리만 질러대고, 반격은 하지도 못하는 게 마군주가 맞긴 해요? 저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데.”
“너, 너어…! 수백 년도 못살아본 것 같은 주제에!!”
그렇다고 아예 공격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 라파르는 나풀거리는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고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덤벼들었어요.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일순간 당황한 질은 뒷걸음질 치면서도 베리아의 상황을 곁눈질로 한 번씩 확인했어요.
마군주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진 여유가 있는 것 같네요.
그 와중에도 공격을 전부 피해내고서 라파르의 손에 전류를 흘려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기까지.
이런 모습을 보면 질이 라피아나 탈리안보다 약하다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는데요.
어쩌면 질의 마음가짐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요?
“이게 촐랑촐랑 피해대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발이?!”
한순간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발에 놀라 틈을 보인 질은 라파르에게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는 듯했어요.
그렇지만 이 위기마저도 베리아가 얇게 늘어뜨린 마기가 라파르와 질의 사이를 날카롭게 가르며 지나가는 것으로 해결되었죠.
“방심하지 마라! 네 녀석이 다치면 안 된다는 것, 잘 알잖느냐!”
“이 건방진 년들! 그런다고 다르크한테 가게 둘 줄 알아?! 당장 네년의 몸을 찢어버리고…!”
“시끄러워요!”
마기가 사라지자마자 발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질은 바로 반격에 나섰어요.
공격할 때마다 주먹에서 튀는 스파크가 커져 거의 번개에 휩싸인 모습을 했어요.
속도도 라파르를 상회해, 확실하게 유효타를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방해가 들어왔어요.
“으큭!? 마법? 마나도 안 느껴졌는데…!”
한순간, 날카로운 돌풍이 불어 질을 라파르에게서 멀찍이 떨어뜨리다 못해 저 멀리 날려 보낸 것이었죠.
질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면 베리아가 같이 옆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로니아?! 이게 무슨 일이에요!”
베리아를 흔들어 깨우던 질은 베리아가 움찔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흔들기를 멈췄어요.
“…어지러우니 흔들지 말거라. 저 다르크라는 남자,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거늘.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베리아의 말에 남자를 바라보면, 자신보다도 거대한 칠흑색의 거대한 검을 뽑아 들어 바닥에 꽂고서는 둘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남자의 주변에는 마나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죠.
질이 강한 돌풍을 느꼈을 때 마법이라고 했던 것은, 마법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은 한가지, 검압만으로 그만한 돌풍이 불었다는 것이었어요.
마나를 전개해 몸에 두른 질을, 전성기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마군주라고 불리는 존재를 날릴 수준의 검압이었다는 거죠.
마군주의 애인이나 되는 만큼 그 존재도 보통이 아닌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정도로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인 것은 의외네요.
“죽인다고 하지 않았나? 덤벼라.”
“다르크! 여기서 힘을 쓰면 앞으로의 계획에 지장이…!”
“비장의 카드는 쓰지 않을 거다.”
워낙 다부진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기에 거대한 검을 잡고 있어도 어색할 것은 없지만, 검을 휘두른 것으로 둘을 제압할 힘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질과 베리아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가득해졌는걸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것도 충분히 신경 쓰이겠지만, 완전히 힘을 쓰지 않았다는 게 더 와닿고 있을 거예요.
“베리아? 지금이라도 재정비를 하고 언니들이랑 같이 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 몸을 물로 보는 것이냐. 저런 남자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방심했을 뿐이니.”
“…일단 보조는 해주겠지만, 그러다 라파르를 죽이지 못해도 제 탓은 하지 말아주세요.”
질은 등에 매여진 스태프를 꺼내 베리아의 뒤 편에 섰어요.
아무래도 베리아가 다르크를 혼자서 처리하기 어려워 보이니 전황상 도와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라파르의 방해를 걷어내는 것도 더해서요.
힘든 싸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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