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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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며칠 전에 질이 말했던 레나이의 마차가 집 앞마당에 도착해있어요.
그런데 탈리안과 레나이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마차가 한 대가 아니라 줄지어서 여러 대가 모여있네요.
마치 전쟁을 하려는 듯한 모양이에요.
마차 자체에도 고급스러운 장식이 아니라, 철판을 덧대거나 수많은 짐이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마차로는 보이지 않거든요.
게다가 황궁의 마차와는 다른 색을 띠는 마차가 있었어요.
황궁의 마차는 대개 갈색에 황금으로 장식을 해놓지만, 줄지어 선 마차 옆으로 적색의 무장한 마차가 똑같이 여러 대 서 있었거든요.
정말로 전쟁을 하려는 걸까요?
마침 질과 그 가족들이 나왔네요.
“와아…. 한쪽은 황궁에서 온 건 알겠는데요. 나머지 한쪽은 어디에요?”
엄청난 수의 마차를 보고 감탄한 질의 질문에는 라피아가 적색의 마차 앞으로 가서 목을 가다듬고 대답해줬어요.
“흠흠, 후후…. 이게 바로 황궁에도 밀리지 않는 전력을 자랑하는! 크롬웰 가문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라는 거야!”
양팔을 활짝 벌려 큰 소리로 자랑하듯이 말하는 라피아이지만, 부끄럽지 않았을까요?
마차에서 중간 점검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짐의 체크와 행선지까지의 거리를 두고 밖에서 대화중인데 말이에요.
어쩌면 크롬웰 가문의 양녀이기에 이런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은 것일 수도 있죠.
새삼 입학식에서의 연기가 계획된 것이었다는 말에 라피아가 대단해 보일 정도예요.
입학식에서 사람이 많은 곳은 힘들다며 질에게 붙어왔었잖아요?
그게 질에게 다가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니 정말 뛰어난 연기력이에요.
“언니 가문도 혁명군하고 싸워요?”
“크롬웰 가문이 황궁과 깊은 관계를 가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그런데, 라피아는 양녀라면서요. 자랑할만한 일인가요?”
“…탈리안, 시비 거는 거야?”
갑자기 끼어든 탈리안의 말은 그다지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치고 말한 것 같지가 않았어요.
몇 번의 생각을 거치고 말하는데 이번에는 그저 떠오른 감상을 그대로 입 밖에 꺼낸 느낌이었죠.
라피아가 활짝 핀 얼굴을 차게 식혀 바라보는 걸 눈치채서야 황급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변명해야 했어요.
“아, 아니, 있을 수 있는 의문이잖아요!? 나고 자란 가문이 아닌 건 사실인데요?!”
“날 거둬준 양아버지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것도 못해? 탈리안 그렇게 안 봤는데….”
“미,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됐나요?! 당신이 질한테 했던 것처럼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아니면 옷이 더러워진다고 해도 맨바닥에 도게자?! 말만 하세요! 해드릴 테니까!”
아무래도 정말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었던가 봐요.
이렇게까지 라피아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상대방을 향한 말이라면 모를까, 상대방의 부모에게 향한 말이라면 몇 번을 사과해도 부족하긴 할 거예요.
그런데 라피아는 사과보다는 다른 단어에 반응한 것 같아요.
항상 기회를 찾으면 나오는 라피아만의 버릇이 있어요.
잠깐 눈을 크게 뜨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입꼬리를 올려 웃는 것이었죠.
딱 지금이 그래요.
“오, 도게자…. 그건 보고 싶었는데…. 근데 사과할 거라면, 차라리 네가 나를 조금만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봤으면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는데.”
“뭐, 뭐라고요…? 아직 포기 안 한 거였어요?!”
이전에 한번 반쯤은 진심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반 장난이 아니라 완전히 진심이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네요.
재밌다는 듯이 웃는 라피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히 알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보다는, 이 둘이 나이에 맞지 않게 큰소리를 내며 놀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긴요, 베리아는 애초에 둘이 떠들기도 전에 마차에 올라탔으니 질밖에 없죠.
“언니들 그만 해요…. 사람들 다 보는데 부끄럽게….”
질이 부끄러워 할만하죠.
황궁이야 높은 사람들인 게 당연하고, 라피아의 가문에서 온 사람들도 꽤 대단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이라면 유독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질에게 있어 부끄러울 만한 상황이니까요.
그럴 생각은 없었다지만 라피아의 말로 인해서 부모 욕을 하게 된 탈리안, 그런 탈리안에게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라피아.
적어도 남에게 보여도 괜찮을 장면은 아닌 것 같아요.
“로니아는 먼저 마차에 탔다구요. 그만 놀고 저희도 얼른 가요!”
“그런데 넌 왜 베리아를 로니아라고 부르는 거야?”
마차에 타라며 보채는 질의 뒤를 따르는 라피아는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어요.
탈리안과 라피아에게 있어서 베리아는 그저 베리아일 뿐이니까요.
질이 로니아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겠죠.
그렇지만 질은 마차에 올라타면서, 뭘 당연한 걸 묻냐는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할 뿐이었어요.
“로니아가 베리아의 진짜 이름이니까요. 언니는 이름으로 안 불리면 기분이 좋겠어요?”
“아니, 맨날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 뭐하러 그런 노력을 들이냐는 거야.”
“로니아, 대답해봐요. 가티아에 대한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대답해줄 수 있죠?”
마차의 문을 열자마자 삐딱하게 앉아있는 베리아에게 말을 거는 질이에요.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당장이라도 자신이 타고 있는 마차를 마기로 깨부술 것 같은 표정 좀 보세요.
마차뿐만 아니라 세계를 멸망시키기라도 할 것 같아요.
“괜히 건들지 마, 질. 그러다가 저번처럼 또 뺨 맞는다?”
“그건 괜찮다고 했잖아요? 제 잘못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탈리안 언니가 혼내줬었으니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래도 베리아의 정신력에는 나름 감탄했어요. 계약을 어기면 그 자체로 온몸에 말도 못 할 정도의 고통이 뒤따를 텐데.”
이어서 마차에 올라탄 탈리안이 말하기를 계약이 보통 물건은 아니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그만큼 그때의 베리아가 화가 나 있었다는 게 아닐까요?
질이 괜히 벌집을 쑤신 거죠.
맞을 짓을 했다던가, 그런 일인 거예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10살의 여자아이를 때린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요.
“저, 저 봐! 들은 체도 본체도 안 하잖아! 저거 더 혼나야 해!”
“내버려 둬요. 뺨을 때린 것도 그렇지만 문을 고장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났었으니까요. 말하기도 싫을걸요?”
“음, 어어…. 그건 내가 생각해도 다시 떠올리기 싫을 것 같아. 설마하니 문 하나 고장 낸 일로 6시간 동안 설교를 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탈리안도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요.
가족이 아니라서? 친구가 아니라서? 아니면 정말로 단순하게 문을 고장 냈기에?
무엇이 되었든 잘못 한번 한 것으로 6시간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면 오히려 베리아가 불쌍해질 정도예요.
라피아도 그때를 다시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는데, 그를 본 탈리안이 장난기가 발동한 것 같아요.
“라피아도 설교가 필요한가요?”
“사랑의 설교라면.”
물론, 라피아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을 공격이었지만요.
라피아가 이런 쪽으로 점점 시동을 거는 걸 보면 본격적으로 탈리안과 사귈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전쟁 전이기에 시기가 약간 좋지 않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다 좋겠는데 말이에요.
실제로 이런 라피아의 장난기 섞인 말들은 탈리안에게 꽤 효과가 있었거든요.
“이, 그, 그만 좀 해요! 저 진짜 더 이상은 못 참아준다고요!”
“그래도 저는 언니들 사이가 좋아서 보기 좋은 거 같아요. 정말 친구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지? 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해. 탈리안이랑 친구가 될 줄은 나도 몰랐어.”
“…저, 그래서 말인데요? 라피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굉장히 뜸을 들이면서 말하는 걸 보니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기 힘든 내용을 말하려나 보네요.
애초에 탈리안이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해요.
그러니까 질도 라피아도 웬일이냐는 듯이 쳐다보고 있잖아요.
“…저희 친구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진짜 없지만요?! 나중에는 라피아가 저랑 애인이 되고 싶다고도 하니까!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생기거나 생기지 않더라도! 지금의 관계만 보더라도….”
“보더라도?”
부탁하는 도중에도 우물쭈물하고, 시선이 굉장히 분주해 어딜 보는지도 모를 것 같은 데다가, 손가락까지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하기 힘들어한다면 중요한 문제이긴 할 거예요.
“저희 꽤 친하니까요…. 이름, 제대로 불러주지 않을래요…? ‘아오이’라고….”
힘겹게 부탁의 내용을 말했지만, 탈리안의 말을 듣자마자 라피아가 보인 반응은 ‘뭐?’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럴 만하죠.
무슨 중대한 이야기를 하길래 친구에, 가족이라는 말까지 쓰는가 싶었는데, 그저 진짜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말밖에 하지 않으니까요.
탈리안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만, 라피아에게는 오랜 시간 뜸을 들인 것 치고는 내용에 알맹이가 없는 거예요.
“그게 다야?”
“그게 다라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야, 그냥. 이유가 궁금해서. 미안해, 말이 헛나왔네.”
라피아의 질문에 탈리안은 다시 한번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요.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지만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정말로 왜 갑자기 진짜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질에게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으면서, 라피아에게만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제 이름으로 불리고 싶으니까요…. 딱히 다른 이유는 없어요.”
“언니, 저는요? 저한테는 왜 그런 부탁을 안 해요?”
역시 가만히 있을 질이 아니죠.
기회가 생기면 항상 탈리안과 가까워질 생각으로 가득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 상대가 라피아라고 하더라도 질투심이 타올랐을 거예요.
탈리안에게 약간은 서운한 감정도 들었을 테고요.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아껴주는, 우선해주는 모습을 보였으면서.
이번에는 왜 자신보다 라피아에게 먼저 진짜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는지 말이에요.
“질은 저를 항상 언니라고만 하잖아요.”
“그래도!”
“질, 지금은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라피아의 대답이 먼저 듣고 싶어요.”
그렇지만 탈리안이 평소에 이번만큼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질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요.
라피아에게 중요한 순간을 양보해야만 했죠.
“으음, 네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해줄 수야 있는데. 정말로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는 거야?”
재차 이유를 묻는 말에 탈리안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지는 듯했어요.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주변까지 검게 물들여버릴 것 같은 분위기에 라피아는 말을 잘못 꺼냈다고 생각할 즘이었죠.
“라피아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에게는 같은 마군주인 친구가 있었어요. 정말 사이가 좋았는데…. 베리아가…. 베리아가….”
“아, 미, 미안! 어, 그렇게 불러줄게! 안 말해도 알 것 같아! 불필요한 걸 물어봐서 미안해, 아오이!”
얼마 전에 베리아를 걱정해줬던 일이 있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초점이 나간 눈으로 노려보는 탈리안이에요.
라피아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다급하게 아오이의 이름을 불러줘야 했어요.
그런데 코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린 것치고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네요.
고민 끝에 진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을 텐데, 힘들게 듣게 된 것과는 다르게 정말로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아오이…? 내가 뭐 잘못했을까, 요…?”
라피아는 탈리안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건지 두려워졌나 봐요.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존댓말까지 붙이는데, 겁에 떠는 게 이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네요.
어떤 때는 불이 붙어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했으면서요.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가요.
질마저 탈리안에게 가까이 가기는커녕,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스스로 멀리 떨어지려고 한 걸요.
베리아는 달랐을까요?
코웃음을 치다가 초점이 엇나간 탈리안의 눈동자를 보고는, 바로 조용해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어요.
이것만 봐도 탈리안이 얼마나 그 일에 앙심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번, 번만….”
“어, 응? 뭐라고…?”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이미 화는 진작에 풀려있었나 봐요.
그저 라피아가 이름을 불러줬던 것에 감동해서 기쁜 마음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것이겠죠.
이 순간만큼은 마차 안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마차가 크기는 하다지만, 이 안에서 싸움이라도 일어났다가는 마차가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는데 사고가 일어난다면 일정이 얼마나 지체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어려울 거 없지. 근데, 이름으로 불리는 게 그렇게 좋아? 아오이.”
“…고마워요. 옛날 생각나네요. 덕분에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으음, 뭐 네가 그걸로 됐다면…. 나중에 질이나 달래줘, 볼 좀 봐. 완전히 터지기 직전이야.”
바로 옆에 앉아있는 질의 볼을 쳐다본 탈리안은 답지 않게 ‘푸훗!’과 같은 소리를 내며 웃었어요.
정말 빵빵하게 볼을 부풀려서는 마차의 구석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단단히 삐졌는지 탈리안이 몇 번을 불러도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어요.
“질도 저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질. 저는 당신의 보호자라….”
“보호자가 제 아래에 깔려서 그렇게 기분 좋았던 얼굴을 했었어요!?”
“에…?”
뜬금없는 질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탈리안이에요.
방금까지 질을 귀엽게 바라보던 사랑이 담긴 시선은 어디 갔는지, 창백한 낯빛만 돌고 있네요.
라피아와 베리아의 눈치까지 살피는 게 질이 한 말을 단번에 이해한 것 같아요.
분명, 그때의 일을 말하는 거겠죠.
“언니 저번에 황녀님이 왔을 때 언니랑 저랑 화해하면서?! 우븝!! 우웁!! 읍!!”
“지, 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요?! 마, 마차가 금방 출발할 것 같은데!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얼마나 급했으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 흥분해서 일어선 질의 입을 막아 억지로 자리에 앉히기까지 했어요.
뭐, 확실히 밖이 조용해진 것을 보면 마차가 곧 출발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이미 질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라피아랑 베리아는 이해한 것 같은데 이런 행동이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푸흡! 하아! 왜 막는 거예요?! 언니 저랑 키스할 때만 해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질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것처럼 꽤 강하게 입을 틀어막은 탈리안의 손을 떼놓고 소리쳤어요.
그 날에는 분명 한두 번 한 게 아니었을 텐데, 그때마다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뜻인 거겠죠.
탈리안이 다짐했던 질의 부탁이라거나, 행동을 거의 모두 받아들여 주겠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나 봐요.
지금까지의 행동만 보더라도 탈리안이 꽤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은 조금….
부끄러운 마음에 이런 질의 흥분한 마음을 받아주기 어려운 것 같지만요.
“아, 으읏, 지일! 그만 해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뿐이었어요?! 언니 그때는 옷도 거의 벗고 있었는데, 이름으로 불려도 아무렇지 않았잖아요!”
“질, 제발…. 미안해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그만…. 언니만 붙이면 아오이든 탈리안이든 어떻게 불러도 되니까, 제발…. 그만 해요…. 잘못했어요….”
거의 울기 직전의 탈리안이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감추며 자포자기하듯 중얼거렸어요.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 전해질 정도였으니, 라피아가 킥킥거리며 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그러거나 말거나, 질은 아오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져서 기분이 좋아 보여요.
뭐, 결과가 좋으니 된 거 아닐까요?
화해했던 날의 상황을 까발려져 탈리안만 조금 부끄러울 뿐,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분위기를 달래는 것으로는 괜찮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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