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이상한 방어구
* * *
빠른 준비가 가능했던 덕분에 질의 가족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실라에 도착하는 게 가능했어요.
질이 몇 번이고 옷을 잘못 갈아입는 바람에 지연된 상태임에도 이렇게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빨라도 너무 빨랐죠.
아마 레나이가 심어둔 사람이랑 만나게 된다면 질의 가족이 아니라, 그 사람이 준비가 안 되어있을 수도 있었어요.
설마하니 서신을 받고 나서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찾아올지 누가 알았겠어요.
그나마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다행이라는 점은 질의 기분이 여전히 나들이 나온 아이의 기분과도 같았다는 거였어요.
몇 걸음 뒤에서 뒤따라오는 탈리안을 신경 쓰지도 않고, 라피아와 함께 여러 상점에 정신이 팔려 구경 중이었거든요.
콜로세움의 수입으로 벌어먹고 있는 국가이다 보니 상점도 대부분이 장비와 관련된 것들이 대다수였어요.
당연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물건들을 보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탈리안의 한숨이 늘어만 갔지만 질이 원한다니 따라갈 수밖에요.
게다가 탈리안이 마냥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질도 거리낄 게 없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면….
“우, 우와…. 이걸 실제로 볼 줄은 몰랐는데, 질? 이거 어때?”
바로 라피아가 가리킨 방어구였어요.
한쪽 구석에 전시되어있는 그 방어구는 갑옷 중에서도 가벼운, 활동성을 중시한 경갑이라고 하더라도….
중요 부위만 가리는 것도 못하면서 부끄러운 부분만 아슬하게 가리는 경갑이라 불리지도 못할 물건이었죠.
질과 라피아는 가게의 간판을 잘못 본 건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밖에 나갔다가 왔지만, 가게의 이름은 너무나도 정상적이었어요.
‘펠스미스’라는 이름의 간판, 누가 보더라도 장비와 관련된 것을 파는 곳이라고 볼 간판이었죠.
게다가 쇼윈도우로 여러 무기를 포함해 모험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멀쩡해 보이는 가게에 외설적인 물건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와아…. 이거 실전에서 쓸 수는 있을까요?”
“탈리안은 이게 어떤 건지 잘 알걸? 보통 이런 건 노출도가 많을수록 방어력이 높거든. 그렇지? 탈리안.”
“…저는 모르겠는데요. 라피아가 뭘 보고 그렇게 말하는지 대충 예상은 가요. 책 속으로 납치되기 전에 동생이 그런 쪽에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공부하기에 바빴던 몸이었어요.”
“어쨌든 맞다는 말이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비키니 아머라고 해서 노출도는 상당한데 방어력은 이상하게 높은 그런 방어구라고 생각하면 돼.”
“그런 게 가능한 거예요?”
한창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에 상점 안에서 들려오던 망치 소리가 멈췄어요.
상점 안에는 즉석에서 장비를 만들어내는 꽤 큰 크기의 대장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점주가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멈춘 그 소리에 대화도 같이 멈춰버렸어요.
점주가 다가와 ‘꽤 자세하게 알고 있지 않냐! 이런 건 우리 가게에서만 다루고 있는데!’라며 소리쳐왔거든요.
그 커다란 목소리와는 반대되는 모습을 한 점주는, 완전히 까무잡잡한 피부에 백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진, 짧고 몽땅한 근육질의 드워프였어요.
“누구…?”
그런데 질은 아무래도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하기야 키도 작고 입은 옷도 꼬질꼬질한데, 본인의 몸집보다도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요.
누가 봐도 점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습이에요.
“이 가게의 주인 플로라다 라인발트! 언니들이 보고 있는 장비를 만들었지!”
“흐, 흐응…. 그래서 이거 방어력이 그렇게 뛰어나요?”
“당연하지! 언니가 한번 입어볼래? 그쪽의 빨간 머리 언니가 이름을 바로 말해버렸지만, 다시 소개하자면! 이건 비키니 아머라고 하는 물건이야.”
질을 바라보며 비키니 아머를 마네킹에서 제외해 꺼내오더니 대뜸 질의 몸에 가져다 대는 플로라다에요.
강하게 거절하는 질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비키니 아머를 건네고는 멋대로 설명을 시작했어요.
가슴 부분의 소켓에는 방비의 마법이 담겨있는 마정석이 달려있어 물리 공격에 강하다느니, 아래의 소켓에는 민첩성을 올려주는 바람의 가호가 담겨있다느니 같은 설명을요.
얼떨결에 장비를 받아든 질은 멀뚱멀뚱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탈리안과 라피아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죠.
분명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었을 텐데, 제일 믿음직스러운 아군이었을 라피아가 배신해버린 거였어요.
“나는 네가 이거 한번 입어봤으면 좋겠는데?”
“네?! 이런 걸 어떻게 입어요!?”
아무리 마기의 침식과 베리아의 기억과 동화를 이루었다고는 해도 이런 장비는 입지 못할 것 같은가 봐요.
하기야, 가슴과 하반신을 제외하고는 신체 전부를 드러낸 장비를 어떻게 입겠어요.
플로라다의 설명을 들어보면, 방어력을 위해서 본 장비 말고는 아무것도 입으면 안 된다고 하는걸요.
당연하지만, 속옷까지 포함해서요.
“탈리안, 너는 어때? 질이 입은 걸 보고 싶지 않아?”
“입기 싫다고 하잖아요. 그만 해요.”
“이럴 때 아니면 네가 언제 질을 이겨보겠어.”
“이긴다고요? 언제는 제가 지는 것처럼…! 그런, 것처럼…. 질, 입고 와보세요.”
탈리안은 라피아의 말에도 꿋꿋하게 질을 보호해주려는가 싶더니 끝에 가서 말을 바꿔버렸어요.
평소에 자신이 지고 있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을 텐데, 어느 부분에서 라피아의 편을 들게 된 걸까요.
지금의 질에겐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는지 무작정 따지기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언니까지?! 저 진짜 싫어요!!”
“방어력은 좋다잖아요. 플로라다라는 이 분도 설명하면서 만약에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하면 보상을 주겠다고도 하고 있고요.”
“보상 때문이 아닌 게 너무 뻔히 보이는데요?!”
탈리안도 그렇고, 라피아도 그렇고, 플로라다까지 보채고 있으니 질은 더 이상 버티는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는 아예 반대로 흘러가 버리니 억울했는지 눈물까지 고여갔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그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죠.
어쩔 수 없이 질은 울상인 표정으로 옷을 들고 피팅룸에 들어가서 갈아입어야 했어요.
사락, 스르륵 하는 옷을 한 꺼풀씩 벗어가는 소리가 아주 천천히, 피팅룸 안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죠.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걸 보면 질은 정말로 비키니 아머로 갈아입기 싫은 거 같아요.
그야 속옷도 입으면 안 된다는데 입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아무리 몸을 지켜주고, 목숨을 지켜주는 장비라고 해도 말이에요.
“…기대되지?”
“조금 너무한 건 아닐까 싶은데, 괜찮은 걸까요.”
“또 엉뚱한 대답이나 하네. 넌 그게 문제야. 벽보고 대화하는 느낌이라니까?”
“네에, 네! 기대돼요, 기대되네요! 됐나요?”
옆에서 들려오는 핀잔에 탈리안은 짜증을 내면서 기대된다며 말했어요.
그 소리에 피팅룸 안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지만, 별다른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제 갈아입지 않는다는 말도 못 하게 되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질이 안 좋아지는 상황 속에서 발을 굴렀다거나, 벽을 주먹으로 때렸다거나, 그 뿐인 이야기에요.
“그래, 그렇게 좀 솔직해져. 황, 레나이님한테 들어보니까 너는 그런 솔직함이 많이 부족하다더라. 딴말도 많이 하고.”
“역시 레나이가 도와줬군요.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런 게 중요해? 너도 질이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을 거 아니야. 목욕탕에서 김 때문에 뭐 제대로 보이긴 했었어? 게다가 안기자마자 바로 기절했던 주제에.”
목욕 도중의 일을 들춰진 탓에 탈리안은 언성을 높이며 비상식적이라며 따졌어요.
라피아는 조금이라도 질의 사랑을 더 차지하겠다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그런 탈리안을 비꼬았죠.
그렇게 안일하게 행동하다가는 질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면서요.
“야, 그렇게 상식이랑 비상식을 따지다가는 질은 나를 더 사랑해줄걸?”
“저는 질이 누구를 사랑하든 저를 마음에 품어주고 있기만 하다면 상관없어요. 그 대상이 정말 어디 하나 쓸 곳 없는 구제 불능의 사람이 아니라면요.”
“하, 하항~. 또 이렇게 나를 쓰레기로 만드시겠다?”
“제 말은, 당신이 구제 불능이 아니라는 의미도 돼요. 저도 제 친구를 구제 불능이라고 말하기 싫고요.”
“…치사하게 구네, 정말로.”
이번에는 탈리안의 방어 기술이 꽤 뛰어났네요.
날이 갈수록 라피아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평화적으로 상황을 끝내는 기술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노리고 친구라는 단어를 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 것은 라피아도 알 거예요.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고요.
“다 갈아입었나 본데요. 소리가 멈췄어요.”
“나오기 부끄럽겠지, 그럴 때는…!”
“…어쩜 저렇게 미움받을 짓만 골라서 할까.”
라피아는 피팅룸과 매장 안의 경계를 나누는 커튼, 그 끝자락을 힘껏 움켜쥐고는 단번에 열어젖혔어요.
피팅룸 안쪽에서 나타난 질이 ‘앗, 아아…!’같은 소리를 내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다가, 곧바로 라피아가 쥔 커튼을 낚아채 몸을 가려버렸죠.
이후 라피아에게 돌아온 질의 설교는 덤이었어요.
뭐어…. 그래 봐야 여전히 커튼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혼내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생각되지 않지만요.
“뭐 하는 거예요! 제가, 제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서 입은 건데! 그걸! 그걸 못 참아서!! 얼른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요! 이번에 언니는 좀 혼나야 해!”
그렇지만, 라피아를 혼내는 이 순간에도 질은 알아둬야 하는 게 있었어요.
커튼이 활짝 열린, 몇 초라는 짧은 순간에도 탈리안과 라피아, 점주의 눈에 비키니 아머를 입은 질의 모습이 전부 보였다는 것을요.
오죽했으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질인데, 탈리안이 얼굴을 붉히고 있을까요.
“미, 미안해…. 잘못했어! 하지만, 엄청 잘 어울리던걸!!”
“시, 그런 말을 한다고 넘어갈 줄 알아요?! 언니가 이번에 얼마나 잘못했는지…!”
“질! 그, 잘 어울렸다고, 생각해요…. 많이 컸네요.”
불쌍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혼나는 라피아의 모습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탈리안이었어요.
산책하러 가든지, 쇼핑하러 가든지, 의뢰하러 가든지, 질이 어떤 옷을 입더라도 웬만해서는 칭찬해주지 않았던 탈리안인걸요.
이번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질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어요.
“아, 아니, 아니에요! 이번에는 탈리안 언니도 라피아 언니랑 같은 편이잖아요! 모를 거 같아요?! 언니가 만약 내 편이었으면 라피아 언니를 막아줬겠지!”
“아니야! 탈리안은 잘못 없어!”
“탈리안 언니를 왜 감싸는 거예요? 평소의 라피아 언니라면 맞다고 했을 것 같은데…?”
“어, 그게, 그러니까…. 어! 친구잖아! 친구! 게다가 진짜인걸! 이번엔 내가 멋대로 그런 거야!”
탈리안을 감쌀 이유라고는 한 가지도 없지만, 이대로 탈리안도 공범으로 몰린다면 그만큼 억울한 것도 없겠죠.
감싼다고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탈리안에게서 좋은 이미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나중에 어떤 식으로라도 라피아에게 도움이 되겠죠.
질은 이런 라피아를 보고 진짜인지 탈리안과 시선을 맞추고는 눈치를 살폈어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탈리안을 본 질은 마저 설교를 이어갔어요.
“어쨌든 다음부터 이러지 마세요!! 언니가 그러지 않았어도 어차피 보여줄 거였단 말이에요!”
“그래…? 그럼 이번엔, 제대로 보여줄래?”
혼나는 와중에도 장비를 착용한 모습을 보고 싶은가 봐요.
한껏 풀이 죽은 얼굴로도 이렇게 부탁을 해오는 걸 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잖아요?
화를 내던 사람도 그렇게 보고 싶은 걸까 고민하며 결국에는 보여주게 될 그런 불쌍해 보이는 얼굴이었거든요.
이런 간절함이 질에게 닿았는지, 다시 혼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여전히 큰 목소리로 대답해줬어요.
“우, 웃으면 안 돼요! 웃으면, 바로 다시 갈아입으러 들어갈 테니까…!”
“그럴 리가, 탈리안도 어울린다고 했잖아. 그치?”
“어, 네? 네, 잘 어울렸었어요.”
“우으, 진짜아! 그런다고 제가, 막, 좋아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질을 설득하려는 모습에도 우물거리던 질이었지만, 탈리안의 칭찬을 듣고 나선 손에 힘을 들여 커튼에 주름이 잡히게 했어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튼을 잡는 손에 힘을 빼는데, 스르륵 질의 몸에서 멀어지는 커튼은 마침내.
테두리가 백금으로 장식된 면적이 좁은 비키니 아머를 입은 질의 모습을 드러냈어요.
상체도 그렇지만, 하체 역시 가릴 부분만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장비라서 입으나 마나인 장비예요.
고정성이 좋지 못한지 질은 계속해서 비키니 아머를 손으로 고정하며 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어요.
자칫하면 움직이다가 장비가 벗겨질 것 같은 그런 모양새였거든요.
질은 어지간히 부끄러운지 뺨이 붉어지다 못해, 얼굴은 물론, 몸에 열이 오르는 듯한 모습이에요.
날씬한 몸매라고는 해도 살집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장비와 장비를 고정해주는 끈이 살을 파고든 것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죠.
특히나 옆 가슴과 골반 쪽이 더 그러했어요.
오히려 그 부분만을 더 유심히 보라는 듯이 강조된 장식물이 붙어있었죠.
라피아도 탈리안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어요.
분명 나이는 10살일 텐데, 이제 막 11살을 향해가는 어린아이인데 이렇게 어른스러워 보여도 되는지 고민되는 거겠죠.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는 질의 몸만 본다면 이미 성인과 다를 게 없어 보였으니까요.
탈리안과는 다르게 몇 배는 더 육감적인 몸을 하고 있는걸요.
“음! 내가 봐도 잘 만들었어! 언니 몸매도 꽤 좋은데!”
적막만이 흐르는 감상 시간을 방해한 것은 플로라다였어요.
모두가 흠칫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질은 다시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가리려고 했죠.
노출되고 있는 몸의 부분을 생각한다면 가린다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는 짓이었지만요.
팔로 가려봤자 얼마나 가려지겠어요?
오히려 팔로 비키니 아머가 가려진 덕분에 알몸과 같은 모양새만 되어, 모두의 눈을 즐겁게 할 ‘미학’이 더 증가했을 뿐이에요.
“그럼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곧 그 장비의 위대함을 알려줄 테니까!”
“…네? 무슨 말, 어…?”
“질! 피해!”
플로라다의 꼼짝말라는 의미 모를 말에 되물어보려는 질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어요.
등에 메고 있던 무언가를 잡아, 다리를 크게 벌려 자세를 잡고선 몸무게를 힘껏 실어 크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휘둘러지는 무언가에 시선이 가 있을 때는 이미 질의 얼굴 옆에 와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도 질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뒤로 재빠르게 물러나 피해버렸죠.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이걸 피했다고…? 언니, 누구야? 아니지! 콜로세움에 나가보지 않겠어?! 이런 실력이라면 챔피언의 자리도 노려볼 만하겠는데!!”
언성을 높이며 따지는 질을 보고도, 플로라다는 자신이 휘두른 거대한 망치의 끝부분을 만지며 크게 말했어요.
느닷없이 공격해온 뒤에는 콜로세움에 참가하라고 말한다니, 플로라다는 무슨 생각인 걸까요?
탈리안도 라피아도 언제 넋 놓고 질을 구경했냐는 것처럼 질의 앞에 서서 지켜주려고 하는걸요.
“묻잖아요! 이게 뭐 하는…!”
“장비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했잖아. 그 장비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이 숨겨져 있다고. 이번에는 피하지 말아봐.”
“저, 저기요?! 히익?!”
이번에는 크게 점프해서 위에서 내려찍으려는 플로라다에 겁을 먹고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질이에요.
라피아의 몸보다도 큰 망치를 휘둘러오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죠.
이번에는 겁을 먹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기만 하네요.
처음의 공격을 피한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해서 피한 거라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망치가 질을 때리는 일은 없었어요.
“…어? 이 배리어, 언니가 한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질의 머리 위에는 몇 겹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를 배리어가 망치를 막아주고 있었어요.
공격이 막혔는데도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플로라다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마저도 몇 초 지나자마자 튕겨 날아가 버렸어요.
망치를 놓치고, 벽에 처박히다시피요.
“끄윽, 으….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잘 만들었네…. 흣차!”
“괜찮아요!?”
자신을 공격한 플로라다가 걱정되었는지 질은 급히 달려가 일으켜주었는데요.
탈리안은 시선을 피하고, 라피아는 빤히 바라볼 뿐이었어요.
잊으면 안 돼요.
비키니 아머의 고정성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걸요.
아무리 그래도 흘러내렸다거나, 벗겨졌다는 최악의 상황은 나오지는 않았지만, 무방비하게 흔들리는 모습 때문이었어요.
그뿐이었을까요.
뒷모습은 거의 가려주는 부분이 없어 끈만이 지나가고 있기에 알몸과 다를 게 없었거든요.
등골부터 시작해, 엉덩이골까지 보여주는 질은….
“저기, 질! 일단, 갈아입고 오는 게 어떤가요…?”
“네? 아, 으응…. 하지만 이분, 조금 다치신 거 같은데….”
“나는 괜찮아, 언니야말로 그렇게 부끄러워했었잖아? 얼른 다녀오라고.”
질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갈아입으러 가면, 플로라다는 탈리안과 라피아에게 설명을 시작했어요.
궁금하지도 않았던 장비의 기술을 들어야 했던 둘은 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어요.
계속해서 사가라며 강매를 당하니 질이 빨리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죠.
질의 보기 힘든 모습을 본 대가로는 싼 편이겠지만요.
“라피아? 일단 그 사람을 만나기야 하겠지만, 저는 미리 레나이와 연락을 해야 해서요. 질이 다 갈아입고 나와서 저를 찾으면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알려주세요. 먼저 지하에 가 있으세요.”
“자, 잠깐! 너만 도망치는 거야?! 야!!”
혼자 남겨지게 된 라피아만 불쌍하네요.
라피아가 소리치든 말든, 문을 건너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탈리안이에요.
마침 타이밍 좋게 질이 나오면서 탈리안이 사라진 걸 눈치챈 것 같아요.
“탈리안 언니는요?”
“플로라다의 질긴 강매에 도망쳤어. 지하에 먼저 가 있으래. 그리고 비키니 아머, 잘 어울린다더라. 내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 같았어. 너무 성숙해 보여서.”
“이, 잊어줘요….”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쓰기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사갈까?”
“언니 제정신이에요?!”
칭찬을 들어 기쁜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돌리는 게, 라피아의 말대로 성숙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인 아이 같은 모습이에요.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이러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해요.
어쨌든, 점점 나갈 준비를 하는 질과 라피아의 모습에 플로라다도 강매를 포기한 것 같아요.
“아, 아아! 이봐 언니들! 거리를 돌아다녀 봐서 알겠지만, 홍보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쉽게 따라가지 말라고! 가면 못 돌아오니까!”
“홍보지? 그런 건 못 봤는데.”
의미심장한 말에 질과 라피아는 문을 열다 말고 돌아봤어요.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에 플로라다는 ‘그걸 모른다고?’ 같은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어요.
“못 보는 게 당연하지, 보이는 족족 위병들이 잡아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잡아들이고 있는데도 은밀하게 계속 나눠주고 있단 말이야.”
“그 홍보지, 어디서 받을 수 있는데요?”
“홍보지를 받을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막을 권리까지는 나에게 없어도, 홍보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잡아갈 권리가 위병에게는 있거든. 그런 위병들 모르게 홍보지를 흩뿌리고 다니는 게 녀석들이지만 말야.”
“아, 네에….”
가게를 완전히 나설 때까지도 플로라다의 친절은 계속되었어요.
마지막까지 ‘절대로! 절대로라고! 위병에게 잡혀가지 마!’라면서요.
강매하려는 것만 아니었다면 친구로 삼아도 될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