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교회 제압 (2)
* * *
“오해입니다! 저는 정말 순수하게 당신들에게 정보만 건네준 것으로…!!”
“심판관을 대동한 대행자까지 숨겨놓고 목숨을 위협한 주제에,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어요.
공격을 흘려내는 것도 무리가 갔는지 크리미아는 성역을 펼쳐 마기를 튕겨내며 방어를 하고 있었지만, 방어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뒤에서는 성역에 의지하는 기사들이 있었기에 함부로 성역을 지울 수도 없었고, 빈틈을 보이면 질이 다가와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탈리안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질에게 말을 걸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크리미아가 처음 발견했던 순간부터, 질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탈리안을 방해하려 드는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었어요.
크리미아로서는 질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거예요.
“대행자…? 심판관…? 그런, 그렇지만, 저는 정말…! 윽!? 땅이…!”
탈리안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손을 한 번 휘둘렀어요.
그러자 지면에서 거대한 벽이 솟아오르며, 대신전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지진이 다시 한번 일어난 거예요.
벽은 탈리안과 크리미아, 기사들을 가둘 만큼 넓은 범위를 봉쇄해버려, 바닥을 흙과 돌이 아닌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으로 바꾸어버렸어요.
벽 위로 뚫려있던 천장은 어느샌가 끝을 알 수 없는 길이의 책장으로 가득 채워졌고, 기사들을 가두었던 벽들도 사람보다 거대한 책들로 가득 찬 책장으로 변해있었어요.
여기에 탈리안이 핑거 스냅을 하면 기사 뒤쪽에서 책들이 스스로 벽에서 빠져나와 펼쳐져서는….
펼쳐진 책의 한 장, 한 장에서 스며나온 마기로 기사들을 낚아채 책 속으로 끌고 가버렸죠.
책에 박제당한 기사들은 그 속에서 악몽에라도 시달리는 것처럼 표정이 죄다 어두웠어요.
“정말로 교회를 적으로 돌릴 겁니까! 지르니트 씨도 멈춰보세요! 대화로 해결하는 게 나을 겁니다!!”
“대화? 먼저 대화를 거부한 건 교회라고 몇 번을 말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이대로는 정말 수많은 대행자가 오게 됩니다! 위험하다고요! 하나쯤은 당신 혼자서도 괜찮았겠지만…! 으윽!!”
“진심을 다하면, 대행자 따위…!!”
탈리안은 책 속으로 기사들을 납치하면서도, 마기로 계속해서 성역을 짓눌러 크리미아에게 부담을 줬어요.
이대로 모두가 탈리안의 마기에 침식되어버리는 결말이 나는 것이 되어버리는가 했지만….
성역이 완전히 짓눌려 깨지기 직전에 누군가가 벽에 구멍을 내고, 마기를 가르며 나타났어요.
흡사 기적이라고 불릴 수준으로 깔끔하게, 그가 나타나는 곳은 마기가 저절로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마군주 단탈리안, 그만하십시오.”
상당히 근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요.
황녀보다는 덜하지만, 그 말에는 말의 힘이 있다고 믿을 무언가가 느껴졌죠.
그 때문인지 탈리안도 최소한의 견제로 마기를 주변에 짙게 깔아두며 공격을 멈춰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질도 공격을 멈춘 탈리안을 보고는 나란히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나 봐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최소 100명이 넘어가는 기사들을 상대하고 다녔으면서 하나도 지치지 않은 모습 좀 보세요.
이제는 정말로 웬만한 모험가들은 질의 상대도 되지 않겠네요.
“막스 부주교님…!”
크리미아가 말하기를 막스 부주교.
그 남자는 크리미아를 지나치며, 어깨에 손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성역이 한순간에 커지며 주변의 마기를 몰아낸 거예요.
성역을 키우는 것 그 자체는 신성력이 더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놀랄만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다음이 문제였어요.
부주교씩이나 되는 사람이라면 기사들을 구하고 난 뒤, 싸움을 걸어올 줄 알았는데 탈리안에게로 허리를 숙이는 게 아니겠어요.
부주교라기에 바로 공격해올 것을 상정하고 견제를 한 탈리안을 무안하게 만든 거였죠.
“이는 성녀 후보생인 크리미아 씨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화를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던 저희, 교회의 잘못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요. 지금까지 성기사단을 동원해 저와 지르니트를 처리하려고 했으면서, 뭘 하다가 지금 나와서!”
탈리안의 말투는 아직 날이 서 있었지만, 부주교의 낮은 자세를 보더니 싸우려는 것은 일단 멈추려는 생각인가 봐요.
활발하게 꿈틀거리며 기사들을 책 속으로 납치해 가던 마기가 천천히, 부주교 주위에 모여들어 견제를 시작했거든요.
손의 형상과 비슷한 마기가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마군주를 상대로 겁먹지 않는, 속을 내비치지 않는 부주교의 무미건조한 표정에 탈리안의 신경은 더 날카로워져 가기만 했지만요.
“이번 문제로 인해 입으신 피해가 있으시다면, 모두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단탈리안, 그리고 지르니트 양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회 측에서도 여러분을 적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교회는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고요? 저들이 저와 지르니트를 이단이라며 공격해온 것을 직접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요?”
“그렇습니다.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대행자들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겠지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해서는 그렇습니다. 대행자가 속한 8번째 심판 기관은 미카미교에서도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이니까요. …그런데, 제 말을 믿어주시는 겁니까?”
부주교는 공중의 거대한 책 속에서 튕기어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고는 슬며시 탈리안의 눈치를 살폈어요.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탈리안은 저항할 힘이 있는 적, 없는 적을 떠나서, 모든 적을 납치하고 있었으니까요.
기사들의 상태가 죄다 중얼거리며 넋이 나가 있거나, 아예 기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냥 괜찮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책 속에서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온 것은 다행이에요.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하는 말에서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왜, 전투가 일어나는 걸 알았으면서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오지 않은 건가요.”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라니, 베리아에게 잡혀있던 동안 거짓말에 대해서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요.
듣기만 하고도 거짓말과 진실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나 봐요.
“…이래 보여도 바로 달려온 겁니다. 피해를 입힌 쪽에서 물어보는 것이 되어 죄송합니다만, 단탈리안. 대행자에게 어떠한 피해를 보았는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막아주었지만, 질이 공격당했어요. 마군주의 팔이 날아갈 수준의 공격을. 그렇다면 교회가 입게 된 이 정도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그 말대로 부주교가 시선을 옮겨 탈리안의 왼쪽 팔을 보면, 소매가 무언가에 찢긴 듯한 모양이었어요.
확실히 질이 공격당했다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을지도 몰라요.
잘못된 판단 한 번으로 인해서 질과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 뻔했었으니까요.
이미 교회의 광장은 흙먼지와 크게 파인 구멍, 수많은 부상자, 건축물의 잔해로 어지럽혀져 있지만, 어쩌면 대신전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 다행인 거죠.
“실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대행자와는 다르게, 교회의 성기사들은 그저 전투가 일어났기에 교회를 수호하려고 싸웠다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기사들이 어땠는지 상관없어요. 책임을 어떻게 지겠다는 건가요.”
“마군주 베리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건 어떠십니까?”
부주교가 교섭 카드로 꺼내 든 것은 은백색을 띠는 작은 날개 모양의 장식이 달린 귀걸이였어요.
색깔은 다르지만, 분명 크리미아도 부주교 막스도 함께 착용하고 있어요.
무언가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탈리안은 무엇인지 눈치를 챘는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어요.
“…제정신이에요? 그런 물건을 교회 소속도 아닌 저희한테, 아니, 사소한 건 넘어가죠. 그걸 받는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다고…!”
“그렇기 때문입니다. 8번째 심판 기관이 멋대로 행동하기는 하나, 교회가 인정한 대상을 건드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반감을 사기야 하겠지만, 그뿐입니다. 머리라는 것이 있다면….”
교회 소속일뿐 생각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봐요.
하지만 부교주가 건네주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기에 막스가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도록 자신이 차례를 빼앗아 온 거예요.
“같은 교회 소속이라는 것을 알리면 공격해오지 않을 것이라고요? 같은 교회 소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이단이라고 판단되면 처단하려 하는 암살집단이?”
“이것을 받지 않는다면 앞으로 마찰은 더 심해져만 갈 것입니다. 은백색의 귀걸이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실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물건이니. 원하신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항상 수호자가 상주하여 대행자로부터 지켜드리기도 할 겁니다.”
“한마디로 감시하겠다는 말이랑 똑같네요. 아니면 대행자도 일부러 공격하게 만든 건가요? 마군주와 마군주를 몸에 담고 있는 질을 감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들리셨다면 저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나 지금만큼은 거짓 하나 없는 말을 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단탈리안과 지르니트 양을 돕고 싶은 마음은 진실 된 것입니다.”
거의 애원하는 듯한 부주교의 태도에 두통이라도 일었는지, 탈리안은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어요.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린듯한 탈리안은 마기를 유지한 채 부주교에게 다가가 귀걸이를 낚아챘어요.
냉정함을 되찾은 탈리안이 생각하기를, 이러는 편이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겠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받아두긴 하겠지만, 이런 장난은 치지 마세요. 알겠나요?”
탈리안은 귀걸이 두 쌍을 손에 쥐고서는, 마기로 휘감아 귀걸이에 담긴 신성력을 모두 날려버렸어요.
상황을 보면 부주교가 귀걸이에 무슨 짓을 해놓았다고밖에 할 수 없죠.
“하하, 역시 마군주답다고 해야 할지….”
탈리안은 부주교가 하는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이어서 자신이 만들어낸 마기와 교회보다 높고 넓은 크기의 거대한 책장을 모두 사라지게 했어요.
신기루처럼 일렁이다가, 원래부터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면 그저 황폐해진 광장만이 보였어요.
“어서 안내하세요. 이런 하찮은 귀걸이보다는 베리아의 처리 방법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네요. 밖에서 이야기할만한 주제는 아니잖아요? 질도 쓰러진 사람은 그냥 놔두고 오세요.”
어느 순간 탈리안의 옆에서 사라진 질은 쓰러진 기사들을 바닥에 편하게 눕혀주어 크리미아와 함께 돌봐주고 있었어요.
탈리안이 부르자마자 빠르게 달려오는 걸 보면, 마치 주인이 이름을 불러서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보였지만 질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해요.
그래도 대신전에서 한바탕 일을 벌여 놓고 이 정도 선에서 끝내 놓은 게 다행 아닐까요.
대화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부주교도 일이 마무리되어서 그런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잖아요.
“좋습니다. 평화가 찾아왔다면, 앞으로 그대들에게도 그란스리의 가호가 함께 할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마군주에게 그란스리의 가호가 있으라니, 제정신이 아니냐는 말을 또다시 듣는다고 해도 부주교는 할 말이 없을 거예요.
탈리안의 말에 부주교는 실눈을 동그랗게 뜨면서까지 놀라며 사과를 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사소한 기쁜 일에도 나오는 버릇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크리미아 씨는 기사분들의 치료가 끝나면 저에게 찾아오세요. 최근에 프로비우스라는 여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계시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성녀 후보생을 계속하실 거라면 해명하셔야 할 겁니다.”
크리미아는 부주교의 말에 기사들을 돌봐주다가도 고개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알겠습니다.’라며 대답했어요.
크리미아도 찔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죠.
프로비우스의 말에 따르면 침대 위에서 둘이 뭔가 한 것은 확실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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