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교회 제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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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전 동쪽에 위치한 미카미교의 회복실.
이곳에는 크리미아가 베리아 전의 여파로 다친 파티원들을 회복에 전념하도록 이끈 곳이었어요.
슬리브스터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셌던 탓에, 최소한의 경상을 입은 사람이라고 해도 전치 2주의 시간이 걸렸기에, 이곳에는 그보다 아픈 사람들이 몸을 맡기고 있었죠.
개중에는 크리미아에게 유독 친절히 다가왔던 프로비우스도 있었어요.
당연히, 그 옆에서 극진히 간호해주고 있는 크리미아의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이 정도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제는 제가 간호해주지 않아도….”
“아니야, 나는 아직도 언니의 상냥한 간호가 필요하다니까?”
“프로비우스, 재차 말하지만 저는 당신이랑 깊은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녀 후보생이란 그런 신분이란 것을 알 텐데요.”
성녀 후보생이라는 신분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건 누구나가 아는 것이지만, 그게 개인의 연애 사정까지 제한받을 대단한 신분인 걸까요?
용사 후보생이었던 제리를 생각해보면 감시인도 없고, 생각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던 걸 알 수 있었어요.
물론, 그 덕분에 제리가 회생 불가능한 몸이 되어버리는 불상사도 일어났지만요.
“하, 참, 내, 진짜, 언니, 그게 카미라즈한테 죽을 뻔한 나를 구해내고 펑펑 울어버린 사람이 할 말이야?”
“조, 조용히 하세요!”
“아악?! 아, 아파! 아프다니까!! 나 아직 다 안 나았, 으악!!”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크리미아가 울었었다니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는 모습이에요.
지금도 그때에 비하면 표정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는 했어요.
얼굴을 붉히며 회복 중이던 프로비우스의 팔뚝을 세게 쥐는 걸 보면요.
“하으, 진짜 아파 죽는 줄 알았네…. 솔직히, 전장에서 자주 있는 일이잖아? 신분과 관계없이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이 싹트는 일은.”
“아쉽지만, 프로비우스. 저는 남자든 여자든 사랑할 수 없는 몸입니다.”
“아, 진짜! 답답하네! 그놈의 신분이 뭐라고! 조금 더 솔직해져 봐! 당장에 어제만 하더라도 내 위에서 찐한…!”
크리미아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바로 프로비우스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어요.
아직 몸 여러 군데에 붕대와 깁스를 풀지 못한 프로비우스는 부자유하면서도 몸을 힘껏 휘저으며 애 같은 모습을 보였죠.
슬리브스터의 거점에서 보여주었던 믿음직한 용병이었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요.
“아무리 공적이 커서 개인실을 쓰고 있다지만 목소리 좀 낮추세요! 그렇게 큰소리를 내면 다른 분들에게 민폐이지 않습니까. …새로운 감시인이 붙어서 크게 말할 수도 없잖아요! 조금만 참으세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크리미아는 프로비우스를 달래기 위해 마지막 말을 할 때는 귀에 속삭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어요.
프로비우스가 원하는 말은 감시인이 없을 때 하자는 것처럼요.
“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날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거잖아? 당장은 거부할 생각도 없고, 산책가고 싶은걸….”
“갑자기 산책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겁니까. 상처도 다 안 나았으면서.”
“그렇지만, 여기 창문도 하나밖에 없고 그나마도 작아서 밖이 잘 보이지도 않는걸? 언니는 안 답답해?”
“몇 년을 봐온 풍경인데요. 답답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은 참으세요.”
프로비우스의 말처럼 개인실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어요.
온통 새하얀 방의 풍경에, 가구는 정말 필요한 만큼만 있었거든요.
프로비우스가 누워있는 새하얀 침대와, 새하얀 작은 옷걸이, 새하얀 베개보다도 작은 세로로 기다란 새하얀 창문….
작게 딸린 간이 화장실까지 새하얀 색이었어요.
매일매일을 이곳에 있으려면 정신병이 들 정도로 방은 넓고 하얀데, 가구도 많지 않고, 밖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기이한 회복실의 풍경이에요.
“…오늘은? 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이게 잘했던 선택인지 모르겠어요. 교회에 큰 피해가 가게 한 건 아닌지….”
크리미아는 오늘만큼은 조용히 지내라고 말했어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듯한 모양이에요.
“무슨 일이길래 그…, 래?! 뭐야!? 지진?! 몬스터?! 마기노?!”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나왔어요. 대신전 전체가 흔들리며 밖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온 거예요.
귀가 먹먹할 정도의 큰 폭발음이.
크리미아는 이에 한숨을 쉬며 의자에서 일어났어요.
“…이럴 줄 알았습니다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건물이 튼튼하니 무너지지는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재앙의 지진을 버텨낸 대신전이니까요.”
“자, 잠깐, 언니 기다려!”
“따라 나오면, 설교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윽, 그럼,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알아들었어!?”
“그저 중재하러 가는 것뿐이니, 걱정 마세요.”
설교라는 말에 프로비우스가 얌전해지는 걸 보니, 크리미아의 설교는 생각 이상의 지루함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중재라니, 누가 찾아왔는지조차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으응…. 언니! 진짜 조심하라고!”
“언니는 그만 하세요!”
크리미아는 끝까지 잔소리를 하며 대신전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 지붕이 뚫려있는 광장으로 빠져나왔어요.
광장으로 오기까지 여러 사람….
특히 은색의 빛나는 갑주를 입은 기사 같은 사람들이 크리미아와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을 봤어요..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크리미아는 이동하는 내내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어요.
광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크리미아의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은 멈출 일이 없었죠.
은색의 기사들과 대치 중이며 있는 힘껏 마기를 뿜어내는 인물, 탈리안 때문이었어요.
주변에는 빠른 속도로 전장을 헤집고 다니는 질도 있었는데요.
신기하게도 기사들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으며, 탈리안에게 합을 맞춰주기도 했어요.
그나마 잠깐씩 다음 상대를 찾기 위해 멈춰서 주변을 살피는 질의 표정은 못마땅해 보였지만….
탈리안은 아니었죠.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서 당장이라도 대신전을 없애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저 멍청한! 그렇게 조심하라고 말을 했는데도…!”
참상도 이런 참상이 없을 거예요.
많은 수의 기사들이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며, 사제복을 입은 몇몇 사람들은 신성력을 사용해 결계를 만들어 탈리안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어요.
그 결계마저도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버티지 못해, 금이 가고 일렁이며 언제든 깨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요.
주변에는 기사들의 부러진 검과 방패는 물론, 그 잔해가 흩뿌려져 있고, 질이 애용하던 푸른 마나의 폭발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어요.
신기한 점이라면, 이곳에는 라피아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크리미아 님! 잘 오셨습니다! 축복을 사용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갑자기 마군주와 그 그릇이 나타나서는, 기습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뒤에서도 계속 쏟아져 나오던 기사 중 한 명이 크리미아에게 부탁을 해왔어요.
참 난감할 거에요.
탈리안과 질에게 정보를 준 것은 크리미아이니까요.
설마하니 탈리안과 질이 여기에 와서 싸울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이 상황에서 크리미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회피성 대답밖에 없었어요.
“그, 그게, 제가 지금은 신성력이 얼마 없어서….”
“그런, 한시가 급박한 시점인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펼쳐져 있는 결계에 도움을! 이대로면 대신전이 위험합니다!”
“아, 알겠, 습니다.”
결국, 크리미아는 어쩔 수 없이 결계에 자신의 신성력을 조금씩 불어넣었어요.
그렇지만 이미 광장을 가득 채운 마기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할 수밖에요.
탈리안의 마기는 결계의 수용량을 한참이나 넘어서서 광장 밖까지 침범하고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마기만 내뿜어내고 있었다면 모를까, 다양한 마법까지 쓰며 기사들을 해치고 있었으니 그 여파는 굉장했어요.
무엇 때문에 탈리안을 이렇게 화나게 했는지는 몰라도, 완전히 기사들을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마기가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았죠.
그런데 의외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질도 탈리안에게 못지않을 만큼 적극적이었어요.
마지못해 싸우고는 있다지만 평소 슬리브스터를 상대할 때만큼이나 전력을 내며 광장을 빠르게 휘저으며 번개보다 빠르게 기사들을 쓰러트리고 있었거든요.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그 속도는 이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어요.
이전에는 질이 마나를 머금은 주먹으로 적을 타격할 때마다 일순간이나마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은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거든요.
적을 타격해 폭발의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 순간 바로 다음 상대를 타격해버리는, 그야말로 섬광이었죠.
과거에는 타격감이 있는 천둥과 번개였다면, 이제는 제어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섬광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보니 정말 괴물이 따로 없네요…! 이러면 중재할 틈도 보이지 않아서…!”
“크리미아 님! 더 이상 성기사단이 버틸 수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8번째 심판 기관의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겁니다!”
“그들까지 나온다면 저 둘은커녕 대신전이 위험할 수도…. 이래서 마군주라는 것들은 조심성이라는 게…!”
“크, 크리미아 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겨, 결계가?! 크리미아 님!!”
크리미아는 결계에 도움을 주는 것을 그만두고 탈리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와 동시에 결계는 힘을 잃어버리고 깨져버려, 대신전의 일부를 마기가 뒤덮어버렸죠.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었으면 모를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건 수많은 기사 사이를 헤치고 탈리안 앞에 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어요.
왜냐면 크리미아를 본 탈리안은 다른 기사를 대하는 것처럼 똑같이 공격을 해왔거든요.
그래도 간신히 탈리안의 공격을 흘려내는 데 성공하고 앞에 선 크리미아에요.
역시 다른 기사들과는 뭔가 다른 힘을 보여주기는 하네요.
“탈리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정보를 주는 척하며 기습을 해온 주제에 무슨 짓이냐고요?”
“기습…?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속였던 거겠죠, 교회도 황궁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잠시만요, 뭔가 오해가…! 크읏!!”
기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탈리안은 크리미아의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그저 흉포해진 마기를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려고만 하는 것만 생각하는 듯해요.
먼저 공격해온 이상 교회 사람들은 모두 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어요.
제대로 상대방의 생각을 들을 리가 없어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크리미아에게 있어서는 곤란하기만 한 상황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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