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새벽의 불청객
* * *
황녀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질의 일행은 집으로 돌아왔어요.
헤어지기 전에 황녀는 며칠 후에 사람을 시켜 물건을 보낼 테니 잘 받아달라는 말만 하고는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죠.
네, 저녁을 먹으면서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뭔가 있었다면 질의 능력에 관해서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해 몇몇 질문을 주고받았을 뿐이었거든요.
이를 제외하고는 탈리안과 라피아만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했다는 것이 있겠네요.
질을 제외한 둘은 정신적 피로감 때문에 집에 틀어박히기로 했어요.
탈리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라피아도 건넌 문을 닫자마자 바닥에 엎어져서 방에 돌아갈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죠.
“언니, 이런 데서 자면 감기 걸려요.”
“내버려 둬…. 황녀님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 나한테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왜 그랬을까….”
질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검지로 볼을 찔러오는데도 엎어져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 좀 보세요.
그렇게까지 힘들었을까요? 평범한 저녁 식사였을 텐데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으면, 뽀뽀하거나…. 밤에 즐겁게 해준다는 말은 안 할 거 같은데요?”
질도 알고 있는 밤의 즐거움, 그걸 마음에도 없는 상대에게 알려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 때문인지 라피아는 질의 말에 완전히 기겁하며 자신의 외투로 머리를 감싸며 작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끝에는 억울하다는 것처럼 소리치기도 했죠.
“그, 그건 잊어주지 않을래? 진짜 돌아버릴 거 같거든, 저녁 먹을 때도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 흘끔거리면서 쳐다보는데 진짜 섬뜩했다고! 그러기만 했으면 다행이야, 말도 안 가리고 물어보는 거 못 들었어? 어딜 만져주면 좋아하냐, 자기는 어딜 만져야 좋아한다, 미친것 같았다고!”
“황녀님이 그런 말을 했던 건 의외였지만…. 아, 그래도 언니가 저 괴롭혔던 거 생각해보면 황녀님한테 그런 쪽으로 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야아…. 좀 편들어주면 덧나는 거야?”
질도 마찬가지로 의외였던 황녀의 모습에는 놀란 것 같아요.
황궁에서는 일부러 본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가족이 늘어나면 좋은걸요.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기는 게 어디에요.”
“나랑 탈리안으론 부족하다는 거야?”
질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라피아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옆에 있어 주는데도 부족하다는 듯이 말하면 서운할 수밖에 없죠.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알잖아요? 저 언니한테 정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거, 언니를 정말 좋아하고 있는 거, 그러니까 괴롭혀질 때도 가만히 있던 거라구요.”
“네 말대로 억지로 한 건 난데, 왜 내가 부끄러워지는 걸까?”
“…몰라요. 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방에 들어갈 테니까, 언니도 조금 괜찮아지면 방에 가서 쉬세요.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구요.”
질은 말을 마치며 라피아의 겉옷을 들추고 볼에 입을 맞춘 뒤, 방으로 향했어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라피아는 반응도 못 하고 있다가 질이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조용히 혼잣말을 했어요.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모두가 잠들었을 때였어요.
방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질이 나와서는 복도 끝의 작은 도서관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 거예요.
잠을 자던 도중은 아니었는지 생각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걸 보면 읽을만한 책을 가지러 가는 듯했죠.
그런데 도서관에 도착하고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탈리안의 방 앞에 가만히 서서는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 안에는 당연히 탈리안이 벽 쪽으로 드러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어요.
질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탈리안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그 침대에 한쪽 무릎을 올려 잠든 탈리안의 몸을 자기 쪽으로 돌려 눕혔어요.
“으응, …질?”
탈리안이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질을 발견하고 이름을 불러보지만, 질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라피아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위에 올라타며 탈리안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어요.
“질, 지금 뭐 하는….”
“탈리안, 이 몸과 다시 만나서 반갑지 않느냐.”
질의 바뀐 말투를 듣자마자 탈리안은 얼어붙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냉정함을 되찾고서는 말없이 질을 노려봤어요.
“하나도 반갑지 않네요. 베리아, 어떻게 나온 건가요.”
자신을 알아본 탈리안을 보자마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마기를 흘리기 시작한 베리아에요.
새빨간 마기가 질의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동자까지 물들여 갔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모습에도 탈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죠.
“어떻게 나왔는지부터 물어본다니 서운하구나. 그런데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니 무슨 생각이지? 이 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생각이라도 든 것이냐?”
“아뇨. 그저 대비를 철저히 해놨을 뿐이에요.”
“대비를 철저하게? 이것을 말하는 것이냐? 오다 주웠다만.”
베리아가 질의 몸을 빼앗는다면 사용할 계획을 미리 준비해놨던 것 같아요.
내민 베리아의 손에 쥐어진 마정석 비슷하게 생긴 것을 탈리안이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요.
“어떻게 그걸…!”
“탈리안, 네 녀석이 잠깐 잊었나 본데. 반쪽짜리 인간의 몸에 갇혔다고 하더라도 이 몸은 마군주다. 얕보지 말았으면 하는구나.”
“크읏! 그래도 막 깨어난 상태라면 약해진 당신을 상대로는…!”
“언니, 저를 상처입힐 거에요…? 아하핫, 그래야죠. 만약 저항한다면 저 스스로 상처입힐 거니까요.”
탈리안은 구속을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려고 했어요.
아쉽지만, 불가능했지만요.
베리아가 질의 목소리로 귀에 속삭이지만 않았다면 벗어나는 것도 가능했을 거예요.
“너무 험상궂은 표정 하지 마세요. 오늘은 그냥 맛만 보려고 나온 거니까요.”
“맛? 무슨 소리를….”
“이런 의미에요.”
베리아는 힘으로 구속하기를 그만두고 마기로 탈리안의 손목을 고정해 두었어요.
그러고는 탈리안의 잠옷에 달린 단추를 하나씩 풀어가며, 천천히 드러나는 속살을 눈에 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침대 밑의 바닥으로 돌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했어요.
“저항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몰래 마기를 흘려서 도움을 청하려는 거 몰랐을 것 같아요?”
“으큭!? 무슨, 짓을…!”
“말했잖아요? 맛보기로 나온 거라고요.”
베리아는 방금처럼 속삭이기보다는 가슴 쪽으로 손을 옮겨 탈리안의 가슴을 꽉 쥐었어요.
얼마 부풀지 않은 그 가슴을 쥐기 위해서라면, 쥐었다기보다는 집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몰라요.
가감하지 않은 힘에 탈리안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어요.
“벌이에요. 제 주특기가 남을 속이는 거라는 거 잘 알지 않아요? 이건 사물이나 육체에도 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흣…!”
“언니의 몸도 속일 수 있는 거예요. 조금만 만져져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게….”
베리아는 탈리안의 제일 민감한 부분의 주변을 간질이다가, ‘톡’하고 손가락을 튕기며 장난스럽게 건드렸어요.
그저 단순한 손짓 하나, 둘이었을 뿐이었는데 과민한 반응을 보여주며 몸을 비트는 탈리안을 볼 수 있었죠.
베리아는 계속해서 탈리안을 괴롭히는 손가락을 쉬지 않고 쇄골 쪽으로 입을 가져가 강하게 빨기 시작했어요.
전희도 없었는데 찾아온 알 수 없는 쾌락에 탈리안은 당황해서 계속 몸을 비틀며 저하하려 했어요.
“그, 그만…! 흡?!”
그래서인지 베리아는 저항하지 말라는 말이 소용없는 걸 알고 아예 입을 막아버린 거예요.
이전에 감옥에 있을 때와 같이 베리아가 원하는 만큼 탈리안이 지칠 때까지.
베리아는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싶으면 다시금 입을 떼고, 갇혀있을 때 하고 싶었던 만큼 탈리안을 희롱하기를 반복했어요.
자신의 아래에 깔려 저항하지 못하는 탈리안을 볼 때면, 베리아는 점점 더 달아올라 그 행위를 격하게 하는 데에 정신을 쏟았어요.
그리고 충분하게 전희 아닌 전희를 마치고 베리아가 손을 아래로 향할 때였죠.
베리아는 갑자기 손을 멈추고 얼굴을 가까이하며 탈리안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언니, 제가 몇 번이고 생각해봤는데요. 저는 언니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전부 필요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알고 싶지, 않아요…. 전혀…!”
말하는 것만 본다면 질이 말하고 있는 거라 봐도 무방한 수준이에요.
눈과 머리카락이 빨갛지만 않았다면, 연기도 이런 명연기는 더 없을 거라고 할 수 있었죠.
베리아는 손으로 탈리안의 뺨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어요.
“조금 지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갇혀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갇혀 지내면 언니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슬리브스터의 근황이 궁금하긴 하지만, 언니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면 슬리브스터 따위 없어도 되는걸요!”
인형처럼 베리아는 감옥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들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탈리안을 따로 구속하지 않고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당하는 사람이야 힘든 일의 연속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 좋을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하아…. 정말이지, 어쩌다가 이런….”
“언니도 은근히 바라고 있었잖아요? 저랑 이런 일을 하는 걸요.”
“…베리아가 아닌 질에게라면, 뭐든지 해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질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일에는 어울려주지 않을 거지만.”
“…언니는 그런 순수하면서도 올곧은 모습이, 윽…!”
탈리안은 실컷 떠들어대는 베리아의 구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얼굴에 닿고 있는 손을 쳐냈어요.
하지만 베리아가 누구인가요? 당연히 쉽게 놔줄 리가 없었어요.
마기에 다시 손이 구속되어 침대 시트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이게 끝인가요? 끝났으면 내려와 주세요.”
“설마요. 설마….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잖아요?”
베리아는 탈리안의 복부에 손가락을 대고는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어요.
간지러운 느낌을 받아 탈리안이 눈썹을 찌푸리지만, 베리아의 손가락은 점점 내려가서는, 다시 허벅지 사이로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갈라지지 않은 둔덕에 손이 닿았을 때, 마기에 짓눌린 손을 풀어 베리아의 손목을 잡았어요.
“…여기서, 여기서 더 내려가면 후회할 거예요.”
“이제 와서 위협하는 거예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완전히 저항할 힘을 되찾았는지, 탈리안은 처음으로 마기를 내뿜으며 베리아를 압도하려 했어요.
마기가 격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눌린 것인지 팔로 얼굴 앞을 가리며 마기를 최대한 막아보려는 베리아였어요.
이형의 마나가 질의 몸을 휘감아 도는 것이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최소한의 마기만으로 움직이지 못하게만 구속했어요.
단숨에 입장이 역전된 거예요.
이런 힘이 있었다면 왜 진작에 이러지 않았던 건지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또 탈리안은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질의 이름을 불렀어요.
“전혀 늦지 않았어요. 질, 정신 차렸으면 그만 해요.”
“갑자기 질의 이름을 부르다니, 어디 아픈 거예요? 아쉽지만 제가 치료에는 재능이…!”
“질, 계속 시치미 뗀다면 크게 혼나요.”
한 번으로 말을 듣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탈리안은 한 번 더 베리아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크게 혼난다는 말에 베리아는 몸을 흠칫거리고는 마기를 거둬가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죠.
“…어,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손을 쳐내기 직전부터, 그러니까 ‘언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요.’라고 질이 말하는 순간부터. 더 정확히 하자면, 질이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 으, 왜, 왜 모른 척하고 있던 거에요!”
일부러 질을 흉내를 내며 설명해주는 탈리안 덕분에 질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어요.
“말했잖아요. 뭐든지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었다고요. 질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단지…. 이런 일에는 내성이 조금, 부족해서 당황했던 것뿐이에요.”
“그, 그럼! 지금 하던 걸 나중에는 익숙해지게 당장 이어서…!”
하던 것을 이어서 하겠다니 질은 아직 뭔가 부족했던 걸까요?
라피아에게 호되게 당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탈리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좋을 것은 없을 텐데요.
탈리안이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탈리안은 아직도 자신의 위에 올라탄 질을 앞에 제대로 앉히며 말을 이어갔어요.
“하지 않을 거예요. 질은 저의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건 그거고…. 질, 저를 계속해서 속이려던 것에 대해서는 혼나야겠어요.”
“네?! 어, 어째서! 제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기로 했다면 그 정도는 그냥 소꿉놀이라고 생각해줘도 되잖아요!”
질의 말도 틀린 건 없어요.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준다고 했으면 불평을 말하면 안 되죠.
그게 탈리안의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리는 것만 아니라면요.
“질, 제가 베리아에게 잡혀있던 기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녀에게 제가 어떤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걸 안다면, 이런 장난은 치면 안 돼요.”
“아, 알았어요….”
“만약에 질이 베리아에게 심한 짓을 당했다고 가정해봐요. 근데 그걸 제가 장난이라며, 약속하지 않았냐며 똑같이 질에게 하는 거예요. 그럼 기분이 나쁠까요, 안 나쁠까요?”
“그렇게 어린애 다루듯이….”
“…질.”
“잘못했어요….”
정말 하는 수 없이 용서를 구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잘못 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용서를 구하기는 싫은가 봐요.
알고 보니 허용 가능 범위 안에서만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김빠지는 말이 어딨겠어요.
잘못했다지만 용서를 빌 마음이 들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질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는 거…. 정말인가요?”
고개를 푹 숙인 질에게 질문하는 탈리안은 어딘가 머뭇거리는 듯해요.
“그건 그냥 분위기 잡으려고…. 그렇지만 그만큼 좋아하고 있어요. 언니도 직접 봐서 알잖아요. 연기하지 않아도 언니한테는 키, 키스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그, 그랬죠. 알았어요. 어서 방에 돌아가서 자세요.”
질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상태로 멈춰 서서 가만히 있기만 했어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탈리안이 ‘아직 할 말이 남아있나요?’라고 물어봤어요.
“옛날에! 복수 말고도 다른 일이 많다고 했었잖아요. 그 말의 의미를 알 거 같아요. 그래서어…. 사실 가끔 저랑 언니, 라피아 언니만 괜찮다면…. 복수는 접어두고…. 셋이서 같이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무, 물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건 계속할 거에요!”
탈리안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 거예요.
마기노에게 복수한다는 일 자체가 위험으로 가득 찬 일인데, 그만두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복수를 하다가 질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탈리안이잖아요? 그렇기에 황궁의 명령에 따라 베리아를 처리하러 간 것이었을 테고요.
먼저 선수를 쳐서 질의 안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것이 탈리안의 생각이었어요.
질의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덕분에 질은 달빛만이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방 안에서도, 탈리안의 활짝 핀 미소를 확인하는 게 가능했어요.
“질, 오늘은…. 같이 잘까요?”
“네, 에? 가, 같이? 방금만 해도 그렇고 그런, 그런 일을 했는데…?”
“질이 생각을 바꿔준 게 너무 고마워서, 기뻐서 그래요.”
“아, 아으…. 알았어요. 저도 언니가 같이 자자고 하면 좋아요! 처음 아니에요?! 같이 자는 거! 아, 그래도 저는 아직 복수를 완전히 그만둔 게 아니니까요!”
질은 말을 마치며 바로 탈리안의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어요.
그런데 질이 탈리안도 눈치챌 정도로 노골적으로 흘끔거리며 탈리안의 몸을 훔쳐보고 있네요.
“언니, 제가 한 거라 말하기 좀 미안한데요…. 언제까지, 그거, 풀어헤친 채로….”
질의 시선이 도착하는 곳을 따라가는 탈리안은, 그 끝이 자신의 반쯤 벗은 채인 가슴이라는 것을 알고 순식간에 뒤돌아 앉아 단추를 잠갔어요.
“앗, 아!? 저, 저도 모르게…!”
“…지금 다시 보고, 만져서 알게 된 건데요. 언니 피부 진짜 부드럽더라구요. 특히 가슴이라거나….”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에요! 다, 단추 다 잠갔으니까! 어, 얼른 자요! 아침에 교회에 가야 하잖아요?!”
부끄러움에 못이긴 탈리안은 이미 누워있는 질에게 등을 보이며 누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어요.
그런 탈리안을 달래보려고 몇 번이고 질이 말을 걸었지만, 자라는 대답밖에 하지 않는 탈리안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질은 말없이 뒤에서 탈리안을 껴안고 잠들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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