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너무 적극적이어도 문제
* * *
다음날 새벽, 어째서인지 라피아는 다시 한번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 중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종족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밤을 눈뜬 채로 보내놓고 막상 자려고 하면, 잘 수 없다는 것을요.
“배고파진 거 같은데….”
누구나가 그렇듯, 한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천천히 잠에서 멀어지는 라피아를 볼 수 있었어요.
배고프다부터 시작해서, 심심하고, 지루하다.
방 천장의 무늬 개수를 세는 것부터 시작해서, 손톱을 보더니 정리할 시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고민까지.
어떻게든 손톱의 정리를 빠르게 끝내고서 다시 잠들려고 하면, 흑기사와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렇게 라피아가 잘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어요.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이미 밖에서는 질과 탈리안이 일어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거든요.
“아아, 젠장…. 졸리는데 잠을 못자겠어어…! 세르디어어어어!!”
짜증 섞인 목소리로 괜히 이야기를 들어준 건가 싶은 라피아는 크게 소리쳐버렸어요.
탈리안의 큰 집이 떠나갈 만큼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곧바로 질이 찾아와버렸죠.
“언니?! 무슨 일이에요! 세르디어는 왜…!”
“아, 아니…. 그냥, 잠을 못 자서…. 미안, 양치 좀 하고 올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질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잠옷 상태 그대로 방을 나서는 라피아에요.
방을 나가는 그 뒷모습만 보더라도 힘이 없는 게, 꽤 불쌍해 보이네요.
그래서인지 질도 라피아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혹시라도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서,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 거 아닐까요.
“언니 괜찮은 거 맞아요?”
“으응, 괜찮아. 그리고 하나 제안이 있는데, 세르디어 말이야….”
“역시, 세르디어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아니, 걔는 잠을 안 잔다길래…. 복도에서 계속 걸어 다니니까 신경 쓰여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 나만 불편하면 괜찮은데, 세르디어 걔도 좀 불쌍하고 너도 잠에서 깰까 봐, 방에 들여서 얘기좀 했거든.”
“둘이서 대화하느라 밤을 샌 거였어요? 그럼 이따가 세르디어가 돌아오면 말해둘게요. 새벽에는 큰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정령계에 돌아가 있어도 된다고….”
“미안, 괜히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괜찮아요!”
말하는 사이에 화장실에 도착한 라피아는 바로 칫솔을 들어 양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대화를 마친 뒤에도 질은 라피아의 뒤에서 떠나질 않았죠.
아직 볼일이 남아있는 걸까요.
“왜? 뮤흔 일잇서?”
“…기다릴 수 있으니까, 양치 다 하고 말해요.”
“으응, 하는 도안, 드를게 마래.”
입에 잔뜩 거품을 물고 말하는 걸 보고 질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작게 웃었어요.
“언니, 요즘은 피 안 빨아요?”
“케흑?! 컥, 쓰읍…. 에윽…. 너 그게 갑자기 무슨….”
갑작스러운 흡혈 이야기에 라피아는 입안 가득했던 거품을 세면대에 뱉어버렸어요.
잘못해서 삼킬뻔했는지 몇 번이고 기침하며 입을 헹군 뒤에야 질을 바라보는 게 가능했죠.
물론, 빤히 쳐다보면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라피아를 보고도 질의 말은 계속 이어졌어요.
“제가 잠들어있게 된 뒤로 한 달이나 지났고, 언니도 은근히 바라고 있을 거 아니에요. 맛있다고 좋아했었으면서.”
“네 피가 맛있기는 한데, 그렇긴 한데…. 그건 잠깐의 거래였을 뿐이잖아?”
“저를 좋아해서 했던 거잖아요. 왜 거짓말을 해요? 그동안 옆에 못 붙어 있어서 언니도 부족했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당장 닥친 상황을 피하고자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지만,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해온 적이 없으니 당황스러울 만 하다지만, 생각보다 라피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하기야 언제 이렇게 질이 면전에서 물어 봐오는 일이 있었어야죠.
“뭐라는 거야?! 맞긴 한데! 좋아했던 거 맞는데, 지금도 좋아하고!! 근데 너 설마 지금 탈리안도 집에 있는데, 여기서 빨아달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질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네요.
부정할 리가 없지만요.
“조용히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질이 날이 갈수록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탈리안이 한집에 있는데도 소리를 억누를 수 없는 흡혈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라니.
변하기도 많이 변했네요.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이유로?!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
“아침부터라니, 언니 지금 몇 시인지 알아요? 점심시간 지났어요.”
“시간은 상관없잖아! 왜, 왜 지금이야? 그것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지금…”
그것도 그렇네요.
휴일이니 점심시간에 일어난 거야 괜찮다지만, 중요한 것은 왜 지금 흡혈을 해달라고 조르는가에 대한 거니까요.
“저, 몸에 갇혀있는 동안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언니가 옆에 있어 줬으면 했어요. 그래서 부탁하는 거예요. 이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한마디로 온기가 그리웠다고 말하는 거네요.
그렇다면 질이 갑자기 탈리안에게 키스를 했던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에요.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 그건, 그러니까! 어제도 가능했잖아! 왜 하필 오늘…! 아니,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해줘요. 부탁할게요.”
라피아도 베리아의 능력을 한번 겪어봤기에, 질이 그 안에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고통받았는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기에 라피아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질이 물에 흠뻑 젖은 강아지 같은 눈빛을 하고서 부탁해 온 것이 결정타였어요.
“하아…. 돌아버리겠네, 네가 조금만 덜 이뻤어도 안 들어줬을 부탁이야. 알아?”
라피아는 다시금 입을 깔끔하게 헹구며 남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냈어요.
그리고는 항상 하던 것처럼, 질의 목으로 입을 가져다 대었죠.
“탈리안이 보면 네가 대신 설명해, 난 네가 부탁해서 해주는 거야.”
“걱정, 윽…! 하으…. 걱정 마요.”
라피아는 질이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에 송곳니로 질의 목을 물었어요.
탈리안이 이 모습을 볼까 봐 걱정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하는 걸 보면, 그동안 질의 피를 빨지 못했던 게 한몫했나 봐요.
본인이 말하기를 질의 피가 다른 피보다 맛있다고 했었으니까요.
라피아만 그랬다면 모를까, 질에게도 변화가 있었어요.
이전에는 조금이나마 저항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의 질은 스스로 해달라고 했기 때문인지 완전히 몸을 맡기는 듯한 모습이었거든요.
“…언니, 그만. 충분해요.”
그런데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찰나에 갑자기 질이 라피아를 밀어내며 흡혈을 거부했어요.
자신으로부터 부탁해놓고 한 모금, 두 모금 빨 때쯤….
질의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라피아가 아쉬워하기에 딱 좋을 타이밍에 말이죠.
“뭐? 나는 아직…!”
당연히 한창 좋아지려는 때에 방해받으니 라피아가 짜증을 내려고 했지만요.
탈리안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입을 맞춰오는 질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요.
그 일을 지켜보지 못했겠지만, 라피아는 단번에 알아차렸을 거예요.
탈리안이 질과의 첫 키스를 경험했다는 것이 지금 상황과 똑같을 거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 당연하기에, 곧바로 주도권은 라피아에게로 넘어갔어요.
빠르게 질에게서 떨어지고 나선, 질을 다치지 않게 바닥에 넘어뜨려 버린 거예요.
저항도 못 하게 손목을 세게 잡는 걸 보면 쉽게 놔줄 생각은 없는 거겠죠.
“오늘 좀 건방지게 구네, 질. 그렇게 격하게 하면 상대방이 힘들기만 할 뿐이야.”
“그래도 좋았잖아요. 아니에요?”
“부정은 하지 않을게, 네가 먼저 나서서 해줄 줄 몰랐거든. 탈리안도 이렇게 꼬신 거야?”
“…언니가 말했어요?”
“첫 키스는 자기가 가져갔다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던데, 열 받아서 그 자리에서 싸울뻔했다니까. 그러니까 내 쪽에서 더 분발해야겠지.”
말을 마친 라피아는 질의 목에 입을 대는가 싶더니, 흡혈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살짝 힘을 들여 깨물고는 잇자국을 남겼어요.
잠깐 찾아온 고통에 팔에 힘이 들어간 질이었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라피아는 더욱 힘을 줘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어요.
“읏…! 아프잖아요. 흡혈할 것도 아니면서 왜 깨무는 거예요?”
고통만 주는 그 행위에 질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어보는데, 라피아는 입꼬리를 올리고 소리 없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내 거라는 표시,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게.”
“굳이 이런 표시를 안 남겨도, 저는 다른 사람하고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건데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하는 질이지만 라피아는 쉽게 믿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탈리안과 화해했을 때의 전적이 있으니까 그럴 만도 하죠.
“다른 사람하고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아. 하지만, 탈리안이랑 있을 때의 너는 약간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얼마 전에 알았거든. 넌 바람둥이 기질을 타고난 녀석이라는걸.”
그래서 라피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어깨를 물어 표시를 남겨도, 질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 거였어요.
두 번째로 찾아온 고통에 질은 눈을 질끈 감았어요.
참기 힘든 고통은 아니더라도 그 부드러운 피부를 물어 상처를 내는 게 아프지 않은 건 아닐 테니까요.
라피아가 한 번 더 잇자국을 남기려고 하면, 그제야 약간의 발버둥을 치는 것으로 시간을 벌고는 눈물이 고인 얼굴로 말을 걸었어요.
“…언니는, 제가 탈리안 언니하고 붙어 있는 게 그렇게 싫어요?”
“가족이랑 키스하는 녀석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래도, 긴 시간 동안 못 봤으면. 그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니에요?”
“…, …그렇게 말하면 질투하는 내가 뭐가 되는데.”
“그렇게 고생했는데, 조금은 붙어 있어도 되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탈리안 언니도 중요한 거…, 알잖아요.”
평소라면 통했을 말이었을 거에요.
라피아가 질을 가엾게 여기는 데에 있어서 이만한 말이 없죠.
그런데 어째서인지 라피아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는 잠옷 셔츠의 단추를 두 개 정도 풀며 차분히 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질, 잊은 건 아니지? 나랑 단둘이 있을 때는 나만 생각하라고 했잖아. 유혹도 네가 했으면서, 이러기야?”
“…언니가 그렇게 만들어줘야죠.”
“하, 하하, 아~ 그래? 해주면 되잖아! 해주면! 지금만큼은 탈리안 같은 거 잊어버리게 해줄 테니까 각오해!!”
“그게 무슨…. 자, 잠깐만요! 언니 손이 이상한 곳에 있는 거 같은데요?!”
질은 라피아의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짜증을 내던 라피아의 손은 아래로 내려가 질의 옷을 내리고 있었어요.
잠옷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 안에서 입는 옷이라면 비교적 편안한 옷을 입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게 문제였던 거에요.
벗기기 쉬운 고무줄 반바지, 질이 손으로 저지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너무나도 쉽게 무릎까지 벗겨져 버린 거였죠.
당연히 가만히 당할만한 질은 아니지만, 라피아의 힘은 이겨낼 수 없었을 거예요.
반바지가 벗겨지자마자 드러난 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의 레이스 속옷이었는데, 라피아는 그걸 보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다가 그대로 살그머니 손을 집어넣었어요.
갑작스럽게 손을 대니 아무리 마기의 침식 이후로 적극적이고 당당해진 질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아으, 흑?! 자, 잠깐만요! 어딜 만지는 거예요?!”
“조용히 해, 집중하라고.”
“어, 언니?! 그건, 지금 하면 안!? 하앗…! 언니, 아, 안대애…. 흐윽!”
강하게 거부하려 드는 질을 제압하기 위해서인지, 라피아는 멈췄던 흡혈을 다시 시작했어요.
이미 만들어두었던 잇자국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반대편 목에다가 한 것은 일부러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질은 몸 안쪽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열기에 더해, 민감한 부분까지 만져졌기 때문에 답지 않은 소리를 내는 건 불가항력이었어요.
이미 라피아의 무릎이 다리 사이에 껴 있기에, 질은 다리를 오므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저 마음껏 농락당할 뿐인 신세에요.
그렇다고 라피아의 만지는 방법이 서툰 것도 아니었어요.
굳이 정정하자면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강약조절이 절묘해 절대로 절정에 다다르게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무의미하지만 만져질 때마다 피하려고 몸을 비틀다가도 흠칫거리는 걸 보면 그 실력만큼은 진짜였어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추잡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그 증거였죠.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도 못하면서도 그만해달라며 애원하는 질을 보고도 라피아는 쉽게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어느 정도 달아올랐을 것 같다 싶었을 때가 되면, 질의 애달픈 소리를 듣고 탈리안이 올까 봐 입을 맞춰, 혀를 섞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질이 하던 것과는 달랐죠.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에 떨고 있는 질의 몸과 밀착해서는, 남은 손으로 바닥을 지탱함과 동시에 머리를 받쳐주면서 아주 차분히, 부드럽게 키스를 하고 있었어요.
“언니, 제, 제발…. 그마안….”
“안돼, 너도 바라던 거잖아. 네가 이렇게 만들어 달라며.”
확실히 질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지만요.
이렇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라피아는 말하면서 질을 괴롭히던 손을 꺼내 손가락에 묻은 액체를 길게 늘어뜨리며 일부러 과시해 보였어요.
“미안, 해요…. 잘못했어요….”
“아직 어딘가 부족한 거 알아. 내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렇지만 부탁하면 특별히…! 발소리?!”
“에…. 헤? 으븝?! 읍!!”
짓궂은 얼굴로 질을 괴롭히려던 라피아는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황급히 질의 입을 막았어요.
문제라면, 그 손이 방금까지 질을 한껏 괴롭히던 손이었다는 것이었죠.
“누가 들어가 있나?”
“어, 어어! 세르디어 돌아왔구나?! 잠이 안와서 세수하러 왔어!”
“음, 알겠다.”
다행히도 세르디어의 발소리는 화장실 문을 지나쳐 그대로 멀어져갔어요.
안심한 라피아는 손에 들어간 힘을 서서히 뺐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이 입에서 손을 치워버렸어요.
“푸하! 하, 하으…. 언니…. 이게 뭐예요….”
“…음, 미안. 탈리안일 수도 있어서 급하게 막으려다 보니까….”
한창 이어가던 행위가 도중에 방해를 받아서 그런지, 라피아는 실컷 괴롭히던 기세를 잃고 질의 위에서 일어나 물러섰어요.
질도 숨을 돌리고 나서야 상체만 일으켜 앉아서는 입가에 묻은 액체라거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에 기분이 상했다는 티를 누구나가 알 수 있게 투덜대기도 했죠.
“이렇게 당한 건 기분 나쁜데…. 이렇게, 당하는 건…. 근데 진짜, 부족해서…. 짜증 나….”
“아니, 어음, 그게, 도와…. 줄까?”
“도와준, 다고요…?”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말하는 라피아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돌려주는 질이에요.
지금까지 했던 일을 이어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라피아의 표정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았죠.
그랬다면 라피아의 표정에 약간의 장난기가 들어가 있었을 테니까요.
“네가 도발하니까 정도를 못 지킨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상냥하게 해줄게.”
“상냥, 하게…. 정말 아까처럼 안 할거죠?”
“믿어 봐, 네가 화장실에서 숨어서 하던 거랑은 다를 거야.”
“그, 그 얘기는 그만 해요!!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을 건데요!? 잊어달라구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질은 라피아가 이끄는 대로 다리 위에 앉았어요.
들려오는 발소리에 걱정했던 라피아는 어디 간 건지 궁금하네요.
“화장실에서는 샤워기로 했었지? 모서리에 비비거나. 샤워기는 몰라도 모서리는 안 좋아.”
“언니, 제발…!”
질은 부끄럽다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라피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어요.
옷을 모두 벗겨 대충 던져놓고는 한 손은 질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허벅지 사이에 두면서요.
“순서가 잘못되긴 했는데, 이건 널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제대로 알아둬야 좋은 거라서 말해주는 거니까 잘 들어. 몸이 다 큰 상태라 다행이지, 성장기의 몸이었으면 큰일 났을걸?”
“아우으…. 차라리 아까가 더 나았어….”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흐읏?! 으으! 진짜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질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일 거예요.
부끄러워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죠.
이 뒤에는 당연하지만, 라피아의 마음대로인 완급 조절에 완벽하게 농락당하는 일이 질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결국,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다시금 질을 괴롭히는 데에 열중해버린 라피아에요.
“조금만 더 버텨, 아직 반도 안 왔잖아? 설명 들으면서 시간도 지나고, 부끄러워하느라 조금 식었을 거 같은데. 아니야?”
“하아, 흑! 언니가…. 지금, 후으…. 몇 분째 만짓, 읏?! 만지고 있다고 생각, 해요…? 그마, 앗?! 그만해 달라구요….”
이미 충분하다 못해 과하게 만져진 덕분에 질은 저항할 생각도 못 하고, 라피아의 손목만 세게 잡고 있을 뿐이에요.
떨리는 목소리로 애타게 부탁하는데도 놔줄 생각이 없는 라피아는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속도를 높여 질을 몰아붙였어요.
절묘하게 달하지 못하도록 조절을 했던 탓인지, 질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며, 힘껏 참는 모습을 보였어요.
“참을 필요 없어, 혼자서 하는 거랑 다르지? 평소에는 이렇게 참았던 적도, 오래 했던 적도 없었으니까.”
“싫엇…! 하앗…?! 그마, 그마안….”
빨라지는 손의 속도에 따라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소리가 울릴 때마다 바닥에 흘러넘치는 물은 이미…. 남이 해주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을 텐데도 바닥에는 흥건하다 못해 쏟은 게 아닌가 싶은 정도였어요.
라피아는 일부러 발로 바닥을 살짝씩 건드리며 질의 수치심을 더 자극했어요.
발이 바닥과 닿을 때마다 나는 찰박거리는 소리에 더해, 귓전으로 작게 속삭이기까지 했죠.
“이렇게 야한 몸으로 먼저 유혹해놓고, 이제 와서 그만하라고? 자기가 한 말의 책임은 져야지. 이건, 교육이기도 하지만 벌이기도 해.”
“이상, 햇…! 이런, 이런 거엇, 몰라아…. 으흑, 읏?! 하윽!”
버티다 못한 질은 소리 없이 몸을 떨었어요.
새빨개진 귀, 한껏 오므린 발가락, 쭉 펴진 다리, 이상할 정도로 떨고 있는 몸, 누가 봐도 절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라피아는 질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줬어요.
당연하겠지만, 손을 천천히 움직이면서요.
끝까지 제대로 쉬게 해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하아, 하아, 읏! 하아….”
“고생했어,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충분하게 여운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괴롭히는 걸 멈추지 않는 라피아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이 없는 질은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다가도 눈물이 흐르는 얼굴로 라피아에게 부탁하기 시작했죠.
“하, …헤? 어, 언니…. 잘못, 잘못했어요…. 이렇게…. 괴롭히는 거, 안 한다면서…! 흐윽! 부, 부탁이에요…. 그만….”
“이번엔 가볍게 가는 걸 연습해보자.”
“언니,언니…잇?! 정말, 부, 부탁이, 니까….하응!? 거짓말쟁이…! 절대, 용서 안 하앗…! 용서 안 해…!”
둘은 결국 삼십 분이 지나고 목욕까지 함께 마친 뒤에야 화장실에서 나오는 게 가능했어요.
이날을 기준으로 질이 라피아에게 아주 약간 더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나중의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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