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황궁에서
* * *
“에윽, 엑….”
질은 심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에 헛구역질을 했어요.
탈리안의 문을 건널 때에도 괜찮았던 걸 생각하면 아직 몸이 완전히 낫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혹은 마기를 몸에 담은 탓에 전이 마법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어쨌거나 질은 몇 번의 헛구역질을 더 한 후에 일어날 수 있었어요.
“끄윽…. 흡, 울렁거려어…. 어디야 여긴…?”
질은 어둑하면서도 잔잔한 불빛에 의지하며 주변을 확인했어요.
반짝반짝 빛나다 못해 질의 얼굴이 비치는 벽, 바닥에는 매초 색이 바뀌는 마법진, 입구에는 고풍스럽게 조각된 문이 활짝 열려있었어요.
그리고 질의 바로 앞에는 긴 로브를 걸친 사람이 한 명 서 있었어요.
“이거 오랜만이구만, 입학식 이전에 본 게 마지막이던가?”
“누구…, 아, 고맙습니다.”
누군지 물어보던 질은 손을 내밀어주는 걸 보고 천천히 일어났어요.
손을 잡자마자 소름이 돋은 것처럼 몸을 떨었지만, 이내 남자의 소개를 듣고는 기억난듯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겐가? 마법학원의 이사장을 맡은 크롬웰 레이지라네.”
“아! 라피아 언니의 아버지! 안녕하세요!”
“자네 머릿속의 내 이미지는 그쪽이 더 친근한가 보군,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인가? 황궁의 워프룸에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할 텐데.”
“이번에 슬리브으…. 가 아니라! 베리아랑 싸운 것 때문에 황궁에서 불러서 왔어요.”
질은 베리아와 있던 일을 숨기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무슨 이유인지 숨기지 않고 간단하게나마 말해버렸지만요.
상대가 상대라서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흠,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솔직해서 좋구만. 마기가 자네 몸에 깃든 것도 그 때문이겠지.”
“아, 알고 계셨어요…?”
이유야 크롬웰만이 알겠지만, 질을 한번 떠본 거였네요.
“이 늙은이도 소환장을 받고 왔으니, 당연히 알지 않겠나? 라피아의 아비이기도 하고, 한 달이나 지났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데 왜 자네 혼자 온 건지…. 마녀나 피아도 같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 소환장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계약과 동시에 워프될 줄 몰랐어요.”
하기야 시골 소녀가 황궁의 소환장을 받아본 적이 있겠어요?
탈리안 덕분에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된 새로운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신기한 건 황궁에 대한 것이겠죠.
물론 마법도 신기하지만, 황궁은 상당히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거든요.
“음, 외관이야 어찌 되었든 아직 충분히 그럴 나이이지. 애초에 겉모습이 이치를 벗어난 순간부터 본래의 나이를 들먹이는 건 올바르지 않지만 말이야.”
“근데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이곳에서의 일을 처리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못한다네, 그런 계약이니까.”
“왜 그런 계약을….”
그렇죠, 이런 계약을 한다는 것부터가 황궁을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충분한 이유를 주는 부분이에요.
잠시뿐이라고는 하지만 계약으로 사람을 묶어버린다니 말이 안 되거든요.
황궁이 무슨 권리로?
“아아, 언니한테 한소리 듣겠네…. 저 길을 몰라서 그러는데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푸후흐, 이 나이에 에스코트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소환장을 보니까…. 제3 회의실로 가면 된다고 하는데요?”
“우연이군, 목적지가 같으니 같이 가면 되겠어.”
질은 대화를 마치고 크롬웰과 함께 황궁을 돌아다녔어요.
안 되겠네요.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는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걸 벌써 잊어버렸나 봐요.
심지어 크롬웰은 질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몇백은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을 텐데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자각도 하지 못하는 걸 보니 탈리안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어요.
그리고, 질이 사라진 워프룸에서는 빛이 다시 번쩍이며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마법진 위에 탈리안과 라피아가 나타났어요.
“우욱, 씹…. 진짜 적응 안 되네. 질은?”
“질은 어디 갔는지 없네요….”
바로 질을 따라온다고 빠르게 뒤따라 온 거 같지만, 알다시피 질은 이미 크롬웰을 따라갔어요.
워프룸에는 없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라피아도 멀미를 느끼는 걸 보니 둘 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게 문제인 건가 보네요.
탈리안은 왜 멀쩡한지 모르겠지만요.
“너, 소환장에 목적지가 어디라고 적혀있어? 나는 제1 알현실인데.”
“저도 제1 알현실이에요. 하지만, 알죠? 질을 찾는 게 먼저예요.”
“알지. 어차피 황궁 녀석들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질부터 찾아도 문제없을 거야.”
“좋아요. 가도록 하죠.”
탈리안과 라피아는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사이가 좋아져 있었어요.
어쩌면 서로의 출신지를 알게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세계에서 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갑겠어요.
그러니 지금도 나란히 서서 서로의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 걷고 있는 거겠죠.
“그나저나 돈 낭비도 이런 돈 낭비가 없지, 안 그래? 지구였다면 상상도 못 할 수준이야.”
“이제 와서 새삼스럽네요. 이미 익숙하잖아요?”
“응, 그냥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까.”
라피아의 말도 맞아요.
여기서 사귄 친구라고는 해도 다른 세계의 지식으로 대화할 상황이 얼마나 있었겠어요.
같은 세계에서 온 친구가 생겼다면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지는 법이죠.
아마 고향에서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든 게 아닐까요.
나라는 다를지라도 말이에요.
“찬물을 끼얹어서 죄송하지만, 라피아. 말했듯이 저는 3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어요. 이 정도로는 감흥이….”
“그냥 그렇다는 거야, 맞장구만 쳐 줘. 너도 막상 내가 지구에서 온걸 알았을 때는 엄청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봤잖아?”
“누, 누가 그랬다는 거예요?!”
눈빛이 반짝거리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들떠있던 게 겉에서 다 드러날 정도이기는 했었어요.
그걸 들킨 게 부끄러웠는지 소리치는 것 좀 보세요.
마냥 기쁘지 않았다고는 못하는 게 꽤 귀엽네요.
탈리안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질이 이곳에 없다는 게 아쉽네요.
“걱정 마, 그런 거로 놀리지는 않을 테니까. ‘탈리안’.”
지금껏 마녀로 불러왔으면서, 웬일로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네요.
탈리안도 이에 놀랐는지 라피아에게 맞추던 발걸음을 멈추고 빤히 그 등을 바라봤어요.
너무 조용하게 멈춘 터라 라피아는 탈리안이 멈춘 것도 모르고 있었죠.
“…그, 괜찮다면 라피아!”
“응?”
“더…. 편하게 불러도 됩니다. 아오이, 라고….”
“뭐라고? 작아서 안 들리는데, 왜 그렇게 뒤에 있는 거야?”
아무래도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탈리안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들리지 않았던 거야 어쩔 수 없지만, 탈리안은 다시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역시 라피아만 들떠있는 게 아니네요.
“아, 아니에요! 얼른 질을 찾도록 하죠!”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마나 감지에 집중해요! 질을 찾아야죠!!”
애써 부끄러운 마음을 티가 나지 않게 숨기겠다고 큰소리까지 내며 라피아를 탓하는데, 가만있다가 돌을 맞았네요.
한껏 억울해하는 목소리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왜 소리를 질러…. 안 그래도 여기서는 마나 감지하는 게 어려운 건 네가 더 잘 알면서.”
“아, 그으게, 네, …미안해요. 일단 제가 먼저 둘러봤는데 황궁의 동쪽에는 없는 것 같네요.”
“근데 우리 둘이 목적지가 같으면, 질도 우리가 가야 하는 곳에 있는 거 아니야?”
어쩌면 제일 처음 생각했어야 할 문제였는데 지금에서야 나오네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미리 살펴봤는데 찾아볼 수 없었어요. 아마 목적지가 다르거나, 혹은….”
역시 탈리안이에요.
미리 그러지 않았다면 마녀가 아니죠.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만 본다면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못해요.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지, 진정해요! 흔들지 말고! 납치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갔을 수도…! 진짜, 라피아! 그만 해요!”
“미안…. 그런데 만약 납치당한 게 아니더라도, 문제인 건 여전하잖아.”
맞아요.
혼자만 목적지가 다르다면 무슨 일을 당해도 탈리안이나 라피아가 알 수 없다는 것부터가 문제예요.
둘이 생각하기로는 질이 황궁에 오는 것도 처음일 테니 질이 혼자서 잘 도착할 수 있는지도 문제겠죠.
만약 다른 사람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누구인가에 따라 걱정이 될 거에요.
간단하게 말해서 갑작스럽게 생긴 사고이지만, 둘에게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사고인 거에요.
마치 개울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처럼요.
지금은 모습을 볼 수도 없으니 더욱 그렇겠죠.
“탈리안?”
그런데 복도의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누군가가 탈리안을 부르며 다가왔어요.
소리가 난 쪽으로 보자마자 탈리안의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본 라피아는 눈치를 살폈죠.
“…아비.”
아비, 한때 탈리안을 화나게 했던 인물이에요.
그 날, 질이 화난 탈리안을 보고서는 놀라서 도망쳤던 일도 있었죠.
언제는 질이 직접 아비를 찾기 위해서 기사단원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있었고요.
“벌써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당신이야말로 베리아에게 당한 상처는…. 보아하니 괜찮지 않은 거 같네요.”
“마나로 의수를 만들어 생활하는 것쯤은 익숙해졌습니다. 한쪽 팔을 잃은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비도 베리아와의 싸움에 동참했었나 보네요.
그 과정에서 한쪽 팔을 잃었는지, 아비의 오른쪽 팔은 반투명하면서도 푸른색을 띠는 의수가 달려 있었어요.
본인 말로는 마나로 만들어진 의수라는데 그 정교함이 상상 이상인 데다, 탈리안과의 악수도 쉽게 하는 모습을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온 건가요. 소환장에는 따로 기한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만….”
“사고가 일어나서 급하게 수습하러 온 거예요.”
“…옆에 계신 분은?”
짧은 인사를 마치고서야 라피아에게 관심을 갖는 아비에요.
“아스티엘 라피아라고 해요. 탈리안처럼 소환장을 받고 왔어요.”
“반갑습니다. 아스티엘이라는 성을 가졌다면 그 현자님의 딸이신 분이겠군요. 저는 아비…. 라고 합니다.”
“아비, 숨길 필요 없어요.”
손을 내밀던 아비는 다시 손을 거두고는 오른손으로 뭔가를 잡는 행동을 하더니, 어느샌가 그 손에는 짙은 녹색의 장창이 들려있었어요.
그 창으로 바닥을 세게 내려친 다음 자기소개를 시작했죠.
“…, 그렇습니까. 만물을 꿰뚫는 마창의 마군주 아비고르입니다.”
“흡! 자, 잠깐…. 잠깐만요!”
라피아는 돌연 아비고르로부터 등을 돌려 주저앉아서 어깨를 흠칫거렸어요.
한숨을 쉬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탈리안은 라피아에게로 조언을 하나 했죠.
“…라피아, 앞으로 만나는 마군주 모두에게 그런 식이라면 언젠가 큰코다칠 수도 있어요.”
물론, 마군주의 자기소개를 할 때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는 게 웃길 수는 있어요.
하지만 본인 앞에서 웃는 것은 실례예요.
웃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일반인이 아니라 마군주이다 보니까요.
“아, 아는데, 큽, 푸흡, 아! 아니, 죄송해요! 아비고르 씨, 이게, 크큭…! 제가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면 라피아가 이 사실을 알고 힘껏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나마 덜 기분이 나쁘도록 참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알기에 아비고르도 딱히 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비웃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한 존재겠죠.”
아니었네요.
그저, 라피아에게서 호감을 느끼고 있던 탓이었나 봐요.
“그런데 아비고르. 휴가 중에도 황궁에 있는걸 보니 당신도 독하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훗날을 대비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아…. 그거에 관해서 할 말이 있는데요. 아비고르, 저는 동맹에서 빼주세요.”
탈리안은 뜬금없이 아비고르와의 동맹을 파기한다고 말했어요.
이에 아비고르가 5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멍하니 탈리안을 바라보고만 있었죠.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
마군주라지만 충분히 당황할만한 말이었어요.
“네? 탈리안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네,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중요한 건 세계도 평화도 아니라, 옆에 있는 질이라는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제 죄를 용서받으려면, 더 아껴주어야…. 더 사랑해줘야 해요.”
질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기에 한 말이었던 거네요.
그런데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니, 질과의 약속에서는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요.
이것 보세요.
탈리안이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그런지, 라피아의 표정이 좋지 못하잖아요.
뭐어…. 마주 보고 있는 아비고르의 표정보다는 낫네요.
동맹이 깨진 탓인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에요.
흡사, 으르렁거리며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는 맹견처럼요.
“제정신이 아닌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욱 아가레스를 막아야 한다고요! 그래야 당신 옆에 있는 사람도 안전…!”
“그렇게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를 해보고, 깨달았기에 내린 결정이에요. 그리고 이건 아이펠슈에도 동의한 일이고요.”
전적이 있으니 탈리안의 말이 아예 틀렸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겠죠.
그게 지금 탈리안이 굳은 목소리로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이펠슈에까지?! 당신들 아가레스를 막을 생각이 없는 거군요!!”
“아비고르, 혹시나 말해두지만…. 뒤에서 질을 해칠 생각이나 행동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바래요.”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뀌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아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탈리안의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큿…!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멍청한 놈년들밖에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네요! 어찌 이리 세상을 모르는지!”
“아비, 그런 욕도 할 줄 알았나요? 처음 알았네요. 어울리지도 않고요.”
욕치고는 그 정도가 너무 약하지만, 아비가 그만큼 화났다는 게 중요한 점이겠죠.
격한 욕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만 보더라도 평소에 얼마나 욕을 하지 않고 사는지 알 수 있어요.
“세계에 위험이 닥쳤는데, 못 본 체하며 넘어가려 하는 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말은 바로 해야죠. 그 위험을 불러온 원인에 당신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책임을 지고, 위협을 막아내자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보다 중요한 게 생겼으니 그만두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멍청할 수가…! 알아서 하세요!”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아비는 그대로 탈리안과 라피아를 지나쳐 복도 끝으로 가버렸어요.
“야,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요.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이곳에 온 김에 일을 확실히 정리하고 가야겠네요.”
“어, 으음…. 그거 말인데, 질을 사랑해주겠다는 말이 가족으로서 사랑하겠다는 말…. 맞지?”
“저는 질이 바라는 게 있다면 뭐든 해줄 생각이에요. 아비랑 대화하는 동안 질을 찾았으니 얼른 가도록 하죠.”
“뭐? 야, 그게 무슨, 어디 가는데?! 대답해! 야!”
탈리안은 대답하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여주고는 라피아보다 앞서 걸었어요.
뒤따라오며 제대로 대답하라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걷는 걸 보면 아예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