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마녀의 이름은 (1)
* * *
격렬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싸움이 허무하게 질의 승리로 끝났어요.
베리아가 마기를 뿜어내며 반격을 해도 그 순간마다 전부 자신의 힘으로 흡수해버리니 베리아로서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죠.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는데도 베리아는 질에게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커녕 힘없이 웃기만 했어요.
‘어디 한번 계속 노력해봐라, 나는 입 다물고 있을 테니.’라고 하는 것처럼요.
“적당히 포기하고 알려달라고!!”
“크흐흣, 흐흐흐…! 어차피 이 몸의 힘을 쓰게 되었다면 네 녀석 스스로 풀어보는 건 어떻겠느냐? 아, 혹시 불안한 것이냐? 이곳을 나가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 이 몸이 공격이라도 할까 봐?”
그렇지만 어째선지 정신적으로 피곤해 보이는 것은 질인 것 같네요.
이미 베리아는 만신창이인데 지친 것은 질인, 이상한 상황.
보통 이런 상황을 두고 때리는 사람이 지친다고 하죠.
“그렇다면 제대로 봤구나, 이 몸은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네 녀석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뒤를 찌를 테니까 말이다.”
“당신이란 사람은 도대체 왜 그렇게 뒤틀린 거야!!”
아무리 때리고 괴롭혀도 해결방법을 말해주지 않고, 조롱만 해오는 모습에 질은 쓰러져있는 베리아의 위에 올라타 다시 멱살을 잡으며 외쳤어요.
누구나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답답하다 못해서 열불이 터질 거예요.
마기에 침식당하고 나서도 이렇게 참는 걸 보면 질이 보살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것도 아니라면 마기에 침식당하기 전의 질이 너무나 선했기에 침식당한 뒤라고 해도 이렇게 남을 때리는 정도밖에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고블린들이 제리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었던 것처럼 고문에 가까운 장난을 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여기에 잡혀있을 것을 생각하니 초조해졌느냐…? 큭큭큭, 이 정도로 뭘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 큭…!”
다만, 질의 성격이 조금 난폭해졌다고 해서 이전처럼 상냥한 성격이 그대로인 건 아니었어요.
뺨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가격하거나, 발로 차거나, 짓밟거나….
이전의 질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하기는 했으니까요.
탈리안이나 라피아가 본다면 입을 벌리고 충격을 받았을, 그런 모습이에요.
질은 숨이 찰 때까지 때리고 나서는 무저항인 베리아의 멱살을 놓아버렸어요.
지면에 털썩 쓰러진 베리아는 공허한 눈동자로 아무것도 없는 새카만 하늘만 보고 있었죠.
“하아…! 하아…! 말해, 말하라고!!”
“…말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즉 말했을 것이다. 이 몸이 네 녀석에게 잘 보여서 좋은 것이 뭐가 있다고 말해주겠느냐.”
“진짜, 질리도록 때렸잖아! 이 정도면! 말해줘도 되잖아!!”
“한 가지 좋은 사실을 알려주도록 할까, 지르니트 페어차일드?”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질을 보고 베리아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이제 와서 질에게 좋은 사실이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는 걸까요.
게다가 알려줄 거라면 진작에 알려줬어도 됐을 텐데요.
질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씩씩거리다가도 숨을 가다듬고 베리아를 내려다봤어요.
“이 몸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거야 밖에서 라피아 언니가 뭔가 해줬으니까…!”
“라피아 그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가짜 성녀가 무언가 했을 뿐이지.”
질은 크리미아를 보지 못했으니 가짜 성녀라는 말에 반응할 수 없었어요.
그렇기에 베리아가 크리미아를 탓하는 말에도 그게 뭐든 상관없다며 무시했던 것이었겠죠.
기껏 반응해봤자 ‘가짜 성녀?’라며 고개를 기울이는 게 전부였어요.
“네 녀석이 데려온 동료를 말하는 거다. 그 녀석이 어중간한 마법을 쓰는 덕분에 굉장한 일이 되어버렸지 뭐냐.”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그 가짜 성녀는 네 녀석 몸 안에 깃든 이 몸을 없애려고 했다만, 라피아의 실수로 마법이 완성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이상이 생겼지. 마법이 실패하는 걸 걱정해서 가짜 성녀가 이 몸을 네 녀석의 몸과 묶어버린 것이야.”
“…뭐?”
이건 또 질에게 안 좋은 소식이네요.
그야 크리미아가 일전에 라피아보고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질의 몸 안에 마군주를 가둬버리는 일이 되어버렸다니.
탈리안이 듣는다면 기겁해서 쓰러질만한 이야기에요.
“말 그대로다. 이 몸이 힘을 쓴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네 녀석들이 가만히 두지 않겠지. 그렇다면 몇 년이 지나더라도 하나의 몸을 같이 쓰는 수밖에.”
“거짓말하지 마! 만약 그게 진짜라고 해도 그 사람이 다시 마법을 써준다면…!”
그렇게 싫어하는 마군주를 자신의 몸 안에 두어야 한다니 질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에요.
그러니 믿고 싶지 않은 거야 당연하지만, 크리미아가 몇 번이고 마군주를 없앨 수 있는 비장의 기술 같은 대마법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인 것도 맞아요.
“지르니트, 그 부족한 머리로 잘 생각해 보아라. 마군주를, 이 몸을 없애려는 마법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무런 대가 없이?”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네 녀석이 마군주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무얼, 네 녀석의 기억 하나하나를 다 들춰봤는데 모를 리가.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차라리, 차라리 여기서 널 죽여버릴 거야!!”
“괜찮겠느냐? 이 몸을 죽인다면 여기서 나갈 방법을 영원히 모르게 될 텐데?”
확실히 맞는 말이에요.
베리아가 힘을 모으지 못하도록 신경 쓰면서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에요.
긴장을 늦추면 언제 기습당할지 모르는 일이고, 성공할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남은 방법이라고는 베리아에게 방법을 듣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탈리안 언니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에 질이 향하는 곳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탈리안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지금 상황에 질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오히려 베리아를 이만큼 몰아붙인 것만 하더라도 질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한 거라고 봐도 될 거예요.
“지금의 탈리안은 이빨 빠진 호랑이다. 이 몸이 새겨넣은 피로와 상처가 언제 회복될 줄 알고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당장에 지금 네 녀석이 이 공간에 들어온 뒤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지?”
“탈리안 언니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그렇게 성내지 말아라, 그 기나긴 시간을 기다리다 지친다면 직접 고를 수 있게 선택지를 주마. 이 몸의 인형이 되거나, 이 몸을 받아들이는 것. 기억해두도록.”
“받아들인다고?”
“네 녀석이 이 몸을 놔줄 리는 없어 보이니, 나름 타협점을 찾은 것이지. 간단하다. 네 녀석과 이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야. 탈리안의 각인도 새겨져 있고, 이 몸의 마기도 받아들였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나보고 더러운 마군…! 너랑 하나가 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더러운 마군주라고 하려다가 말을 아낀 것은 탈리안을 의식해서 그런 거겠죠.
베리아도 이를 눈치채고는 코웃음을 치며 질을 비웃었어요.
“네 녀석도 탈리안처럼 상당히 비틀려있구나. 안타까운 녀석.”
“…당신만큼은 아니야.“
“부정은 하지 않는구나.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사람은 솔직해야 하는 법이다. 더구나 마기에 몸 담근 자라면 더더욱.”
“당신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나까지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아, 헛구역질이 올라와!”
질은 모진 말을 하면서 베리아에게서 떨어졌어요.
그리곤 베리아로부터 등지고 몸을 둥그렇게 말아선 바닥에 옆으로 누워버렸는데, 베리아를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것을 말 대신 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어요.
이 모습을 보아하니 베리아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기를 포기한 것 같네요.
이에 베리아는 만신창이인 몸을 상체만 일으켜 앉아선, 질의 등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어요.
“이 몸은 슬슬 네 녀석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만, 아쉬운 일이야. 이 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에 호감을 느끼는 것이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어.”
“웩…. 그런 애정 필요 없어요.”
역겹다는 듯이 헛구역질하는 척을 하는 질이에요.
“처음보다 성격이 많이 죽었구나. 마기에 적응한 것이냐? 하기야 그만큼 화를 내었으면 진정될 때도 되기는 했지.”
“알 바에요? 신경 꺼요.”
확실히 도중부터 질의 화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고 있어요.
단순히 베리아를 더 때린다고 해서 얻을 게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아니면, 화를 내면 질 스스로만 피곤해지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베리아는 아무리 맞아도 멀쩡한데, 질은 지금껏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좋은 선택을 했네요.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다가는 이 몸에 언제 공격받을지 모를 거다.”
“당신이 얼마나 힘을 모았는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어요. 때가 되면 알아서 흡수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허나 괜찮겠느냐? 이 몸을 네 녀석의 몸 안에 계속 두었다가는 이 몸에게 탈리안을 빼앗길지도 모를 텐데. 보아하니 몸의 주도권을 되찾더라도 이 몸을 네 녀석의 몸에서 떠나게 할 생각이 없지 않느냐.”
“당신이 세상에 풀려나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까, 몸의 주도권만 찾으면 당신을 제 몸속에서 없앨 방법을 찾을 거예요. 그리고 탈리안 언니는 제 거에요.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아….”
마기에 침식되었더니 성격이 난폭해진 것뿐만 아니라, 조금 더 솔직해진 데다 약간의 집착이 생기기도 했네요.
탈리안을 자기 것이라 표현하다니,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요.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 몸에게서 몸의 주도권을 찾더라도 네 녀석이 방심하면 언제든 이 몸이 네 녀석의 몸을 빼앗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탈리안의 정신을 빼놓고 이 몸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언제든 가능하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
그래도 자신감 하나만큼은 끝내주네요.
항상 걱정이 많던 질이 이렇게 당당해진 것만 보더라도 마기에 침식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대단한 자신감이야. 그래서 언제까지고 이렇게 대화만 나눌 건가? 이 몸은 그래도 상관없지만, 네 녀석은 싫어할 것 같아서 말이지.”
“아, 진짜! 누군 좋아서 떠드는 줄 알아요?! 당신 때문이잖아요!! 누구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것참 미안하게 됐구나, 불만이라면 지금이라도 이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이….”
“진짜 조용히 하세요. 힘껏 참고 있으, 니…, 까?”
질은 툴툴거리며 베리아를 조용히 하게 하려 했지만, 갑자기 반투명해진 자신의 손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처음은 반투명했지만, 점점 완전히 투명해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가는 상황에 질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당황했죠.
손부터, 팔, 어깨, 발, 다리…. 전부 투명해져선 상반신만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까지도요.
질이 당황하고 베리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야만, 상황 설명을 해주었어요.
대답해줄 이유도 없었을 텐데, 베리아는 상당히 떠들기를 좋아하네요.
“…탈리안이 생각보다 빠르구나, 이곳에선 날이 지나가는 걸 알 수 없으니 몰랐겠지만, 밖의 시간은 꽤 흘러있을 것이다. 너무 놀라지 말거라.”
이곳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알 수 없으니까요.
질이 이곳에 갇힌 뒤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어요.
악몽 속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베리아가 기절한 뒤로 깨어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베리아를 폭력으로 위협하며 나가는 방법을 묻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단편적인 부분만 본다면 짧게 보이지만 실제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탈리안 언니가 한 거라고요?”
“그럼 이곳에서 네 녀석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느냐.”
“역시 믿고 있었다니까!”
질은 머리만 남은 상태로 기뻐했어요.
누가 보면 상당히 무서워할 만한 모습이에요.
머리만 둥둥 떠 있는데 웃으며 말하고 있다니, 전설로 내려오는 듀라한으로 착각하겠어요.
“재차 말하지만, 지르니트. 이것만큼은 허세가 아니니 새겨두도록. 방심하지 말거라. 이 몸은 언제든 네 녀석의 몸을 노릴 것이다. 그다음엔 제일 먼저 탈리안을 손에 넣고, 세상을 혼란으로 가득 채우겠지.”
“말했잖아요? 그럴 일 없다고.”
“열심히 노력해 보거라.”
질은 마지막으로 머리가 투명해지는 순간에 대답 대신 베리아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어요.
절대 그럴 일 없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는 거겠지만, 정말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에요.
질이 천천히 눈을 뜨면, 흐릿하게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상하게도 자신이 누워있을 만한 곳이라고는 딱딱한 곳밖에 없었을 텐데, 질이 느끼기로는 푹신한 무언가가 등 아래에 깔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으…. 흐, 으읏.”
몸의 찌뿌둥함을 느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질은 누군가의 방해로 다시 자리에 눕혀졌어요.
질이 아직 온전하지 못한 시야로 확인해보면 빨간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누군가가 앉아있는 걸 볼 수 있었죠.
“…베리아?”
“누구보고 베리아라는 거야? 똑바로 봐봐, 내가 누군지.”
“아, 라피아 언니 목소리다.”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질은 목소리로 라피아인 걸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어요.
“몸은 괜찮아?”
“괜찮은 거 같아요. 탈리안 언니는요?”
걱정되어 건강을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탈리안을 찾는 말이었어요.
이래서야 라피아가 꽤 서운하겠어요.
“꼬박 한 달을 내리 잠들어 있었으면서, 일어나자마자 마녀부터 찾는구나. 이해는 가지만…. 네 옆에서 자는 게 누군지 봐봐.”
역시 라피아의 말에 서운해하는 느낌이 잔뜩 묻어나오네요.
그런데 질의 옆에 뭐가 있길래 질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고 있는 걸까요.
“…와, 놀랐어요.”
“교과서 읽는 거 같네, 놀란 거 맞아?”
평소에 질이 말하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일정한 억양에 감정의 기복도 낮은 게 질답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요.
“정말 놀란 거 맞는데요? 탈리안 언니가 제 옆에서 이런 차림으로 자고 있다니, 정말, 놀랐어요. 한 달이 지났다는 것도 놀랐고요.”
질이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옆에서 탈리안이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자고 있었는데 그 옷이 상당했거든요.
검은색의 나시 파자마를 입고 있지만, 가슴 윗부분과 허벅지 쪽이 시스루라 어느 정도 비쳐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탈리안의 옷차림에도 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어요.
“너 괜찮아? 뭔가가, 조금 바뀐 거 같은데.”
그 밝은 질이 차분하게 말하는 걸 보니 불안하겠죠.
“저 정말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근데 탈리안 언니가 제가 깨어나도록 도와준 거 아니에요? 왜 자고 있는 거예요?”
“깨운 건 마녀가 맞는데, 꽤 부담이 큰 마법이었는지 바로 잠들더라. …음, 괜찮은 거 맞구나? 계속 마녀를 훔쳐보는 거 보니까 알겠다. 다행이네.”
그래도 옆에서 보기 힘든 차림의 탈리안이 자고 있어서 그런지, 질은 몇 번이고 그 모습을 훔쳐봤어요.
라피아가 그걸 알아채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것만 본다면 평소의 질과 다를 건 없었어요.
그저 기분이 약간 저조한 것뿐일지도 모르겠네요.
“…못 본 척 좀 해주세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에요?”
질은 그동안의 일을 물어보며 라피아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이유 없이 내민 손을 보고 라피아는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죠.
질이 ‘손잡아달라는 거예요.’라고 말을 해야만 그제야 ‘아, 응.’이라며 잡았어요.
“마녀는 자게 놔두고 마당에 좀 나가서 이야기하자. 최근에 널 돌보느라 너무 건물 안에만 있었더니 좀 답답하네.”
“알았어요. 저도 조금 움직이고 싶으니까….”
“그럼 가볼까!”
“읏!? 언니, 부탁인데 제발 말없이 들어 올리는 건 그만둬줄래요…?”
라피아는 질의 손을 잡은 채로 일으켜주고선, 바로 안아 들어 빠르게 침실에서 나왔어요.
일전에 라피아가 자신의 방에서 질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주었던 일이 있었죠.
그때와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안아준 거예요.
질이 그때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요.
“뭐 어때서 그래? 어차피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돼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텐데.”
“그건…. 응, 맞아요.”
“그러니까 기운 차릴 때까지 나한테 맡겨둬, 웬만한 일들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알았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