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외전 고아와 마녀가 쉬는 날에 (1)
* * *
“언니! 탈리안 언니!”
질의 몸이 성장한 뒤의 어느 휴일, 질은 급하게 탈리안을 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어요.
질이 부르면 항상 그렇듯 거실의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탈리안은 책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질, 계단에서 뛰는 건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죄송해요,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중요한 것?”
“집 앞에 마당! 너무 허전하잖아요!”
질의 말에도 탈리안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있었어요.
이런 반응은 당연해요.
집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큰 크기를 자랑하는데, 마당까지 굳이 꾸며야 하는지 의문이 들 테니까요.
게다가 숲속에 몰래 숨어 사는 탈리안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리도 없고요.
집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을 거예요.
애초에 탈리안이 다른 사람과 친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으니까요.
지낼 집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예요.
그런데 뜬금없이 질이 마당이 허전하다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수밖에요.
“허전하다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그러니까, 조금 더…. 이것저것 꾸며도 괜찮지 않을까요? 작은 농사를 한다든지! 마당에서 쉬고 놀 수 있게 작은 테이블이나 의자를 놓는다든지!”
“반대하거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라도 있나요?”
부탁이야 들어주겠지만,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네요.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할 시간이야 많았지만 ‘왜 지금에 와서? 무슨 이유로?’라는 거겠죠.
“저, 마을이 괜찮았을 때는 집 마당에 그렇게 꾸며놨었거든요! 동생이 잘 걷지 못해서 멀리 나가거나 뛰어놀지 못하니까…. 마당에 그런 게 있었어요. 그리고 이건 언니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라는 말에 당황하네요.
“언니 항상 집 안에서 책만 읽고, 운동은 안 하니까요! 가끔은 밖에서 운동도 해줘야 해요! 격한 운동은 시키지 않을 테니까, 작게 농사라도 짓기로 해요!”
“그, 질, 저는….”
평소에 탈리안이 잘 안 움직이기는 해요.
강의가 있는 날이 아니면….
아니, 강의가 있는 날이라도 조금 걷고 난 뒤라면 강의실이나 개인실에 틀어박혀 책만 읽으니까요.
운동 부족이라면 일상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물론, 탈리안은 마녀이니까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질의 말이 완전 틀린 것도 아니거든요.
“언니, 조용히! 제 말 들어요!”
“하, 아…. 으음, 알겠어요. 그럼 바로 준비를…. 질?”
질이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지, 탈리안은 바로 마법으로 뭔가 만들어낼 생각이었나 봐요.
하지만, 질이 손목을 잡아 이끄는 것으로 저지당했죠.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언니 기다려주세요! 저랑 같이 수도에 가서 쇼핑해요!”
“쇼핑…?”
“라피아 언니한테 듣게 된 건데, 수도에 재밌는 극장이 있대요! 저 가서 구경해보고 싶어요!”
본심이 숨어있었네요.
그렇다고 탈리안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거짓인 건 아니겠지만, 질에게는 극장도 꽤 중요할 거예요.
산골 마을에서 즐길만한 것이라고는 질이 지겹도록 읽었던 책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극장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을 테니, 탈리안의 건강이나 마당을 핑계로 이야기를 꺼낸 것일 수도 있겠어요.
질과 탈리안, 둘 모두에게 찾아온 모처럼의 휴일이니까요.
“극장이라…. 그럼 장 보는 건 집에 돌아올 때 해야겠네요.”
“가는 거예요! 진짜로!? 저 그럼 바로 옷 갈아입고 올게요!!”
너무 쉽게 얻어낸 허락 때문인지 질은 재차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들뜬 나머지 바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던 질이에요.
그러다 탈리안이 한번 이름을 부르자마자 몸을 한번 떨더니, 살금살금 조심히 올라가기 시작했죠.
계단에서 뛰지 말라는 것을 잊고 있었나 봐요.
준비를 마친 질이 방에서 내려왔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옷차림에 신경을 쓴 질을 볼 수 있었어요.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에 약간은 짧은 치마를 입어 평소의 편한 차림과 반대되는 세련된 모습에, 파티라도 가는 것인지 의심을 할 정도로요.
질이 기뻐하니 탈리안도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지만, 품에서 열쇠를 꺼내던 질을 불러세웠어요.
“질,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마당이나 제 운동은 핑계였었죠?”
“앗, 으, 아…. 아니, 아닌데요?!”
“혼내려는 게 아니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가능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줄 테니까요.”
“무엇이든지…?”
“네, 무엇이든지.”
뭐가 문제였는지 질은 탈리안의 말을 듣고 나서 볼을 빨갛게 물들였어요.
달아오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양손으로 볼을 매만지며 가리기 바빴죠.
탈리안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웠나 봐요.
아니면, 탈리안을 보기 부끄러운 상상을 했다거나.
아쉽지만 이런 쪽으로 이상하게 눈치가 없는 탈리안은 질 대신에 현관문을 수도의 도서관과 연결했어요.
“자, 갈까요.”
“아, 어, 손…?”
“안 잡을 건가요?”
“아, 아니에요! 자, 잡을 거예요!”
혹시라도 탈리안이 내민 손을 다시 거둬갈까 봐 재빠르게 손을 잡는 질이에요.
질이 놀랄 만도 하죠.
실리아라면 모를까, 탈리안이 먼저 손을 잡아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까요.
모처럼 질과 보내는 휴일이라서 먼저 나서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질과 탈리안은 문을 통해 수도에 도착했지만, 어째선지 극장에 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질의 표정이 좋지 못한 걸 보니까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수도가 워낙 넓으니 미아가 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라지만, 탈리안이 같이 미아가 되어버렸다는 게 조금은 신기할 일이네요.
“질, 혹시 구체적으로 극장이 어디 있는지 들은 적은 없나요?”
“수도 북서쪽에 동그란 지붕을 가진 엄청나게 큰 건물이 있다고 했어요. 그 외에 자세한 건….”
“하…. 뱀파이어 하나 때문에 이 고생이라니, 알려줄 거라면 제대로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았다면….”
라피아를 탓하는 말에 왜인지 모르게 질이 사과를 하네요.
극장을 가자고 권했던 것은 질이었으니까,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요.
뜬금없는 사과에 탈리안은 아무도 모르게 질을 한번 흘겨보더니 멋대로 주변의 벤치로 이끌었어요.
“질, 오랫동안 돌아다녀서 다리 아프지 않나요? 조금 쉬어도 괜찮아요.”
“그렇지만…. 극장이….”
“괜찮아요. 쉬는 날이잖아요. 조금은 느긋하게 지내도 되는 날인걸요. 아니면…. 제가 배고프다는 걸 핑계로 부탁 좀 들어줄래요?”
무슨 부탁이냐며 물어보는 질에게 약간의 돈을 쥐여주며 건너편에 보이는 빵집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것을 사다 달라는 탈리안이에요.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해요.
탈리안은 뭔가를 먹거나 마실 필요가 없는 마녀라는 것을요.
너무 걸어 다녀서 지쳤을 질을 배려해서 정말 ‘핑계’를 댄 거예요.
“돈이 좀 많은 것 같은데….”
“저에게 있어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돈이든 뭐든, 제가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만들다니, 그거 범죄예요….”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얼른 갔다 오세요.”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질이 사 온 빵은 질의 취향이 가득 담긴 빵이었어요.
핏츠 열매를 잼으로 만들어 부드러운 빵 사이에 발라놓았다거나, 핏츠 열매를 다른 과일들과 함께 얇게 썰어 식빵에 올려놓았다거나.
핏츠 맛이 나는 크림을 빵 속에 가득 담아놓은 것이라거나…. 빵을 콘처럼 말아서 그 안에 핏츠 열매를 포함한 여러 과일을 담아놓았다거나….
하여튼, 달다 못해 이가 썩을 것 같은 그런 빵만 사 왔어요.
다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될 양으로요.
“…질? 이전에 저한테 한 말 기억나나요? 편식은 좋지 못해요.”
“아, 어, 마, 맛있는 거잖아요!”
질도 탈리안에게 편식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예요.
평소에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지만, 질의 핏츠 열매 사랑은 끝이 없으니까요.
질이 군것질을 한다고 가정하면 빠지지 않는 게 핏츠 열매에요.
눈 깜짝할 새에 벌써 하나를 먹어 치운 빵도 그러하며, 과자, 사탕, 음료수, 심지어는 음식에도 들어가죠.
그만큼 대중적이고 맛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너무 한 가지만 좋아하니 탈리안으로서는 걱정도 됐을 테니까요.
한창 성장할 나이인 질에게 있어서 영양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 중일 거예요.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혹시 리칸 열매도 좋아하나요?”
“마을에선 없던 거라 책에서만 본 건데…. 주황색 과육에 새콤달콤한 그거, 맞죠? 핏츠만큼은 아니지만 좋아해요!”
“그럼 다음엔 그걸로 요리를 해줄게요.”
그래서인지 웬일로 탈리안이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고 말하네요.
빵 두 개째를 베어 물려던 질은 놀란 눈으로 탈리안을 바라봤어요.
지금껏 요리라고는 매일 자신이 해왔던 데다가, 탈리안은 요리하는 걸 너무 귀찮아했거든요.
애초에 뭔가를 먹을 필요가 없으니, 요리할 바에는 차라리 굶겠다는 심정으로 질이 먹자고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굶었던 전적도 있거든요.
“질에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꽤 하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믿어요! 언니는 뭐든 잘 할 테니까!”
뭐든지 잘할 거라는 말에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일부러 다른 곳을 바라보는 탈리안이었어요.
칭찬 한번 들었다고 부끄러워 하는 건가 봐요.
“어디서 나오는 믿음인지 모르겠네요…. 다 먹었으면 슬슬 다시 극장을 찾아보러 갈까요.”
“네!”
다만, 자리에서 일어난 탈리안은 지나가던 사람 하나를 붙잡아서 극장의 위치를 물어봤어요.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슬슬 지려고 하니 더는 헤매기 싫다는 거겠죠.
다행히도 중년 남성은 친절하게 따라오라며 극장까지 둘을 이끌어주기도 했어요.
거리가 꽤 되었기에 해가 거의 저물기 직전이었지만, 도착한 게 어디에요.
극장에 도착한 질이 살펴보기로는 진행 중인 공연은 5개였지만 시간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은 1개밖에 없었어요.
마기노가 나타난 이후로 새롭게 생겨난 공연으로 내용이야 뻔할 뻔 자였죠.
신탁을 받고 모험 중인 용사가 재앙을 일으킨 마기노와 마군주를 물리친다는 내용이었어요.
어쩌면 질에게 이보다 더 취향을 저격한 공연은 없을 내용이었어요.
“저 이거 볼래요!”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네, 이거 한 달에 두 번밖에 하지 않는 공연이거든!”
매표소의 아저씨는 질이 가리킨 공연을 보고는 한마디 했어요.
그렇지만 질로부터 팜플렛의 내용을 훑어본 탈리안은 썩 표정이 좋지 않았죠.
“아, 으음…. 다른 선택지가 없긴 하네요. 하지만, 음….”
“안된다는 건 아니죠…? 언니, 저희 이거 보려고 엄청 걸어 다녔는데에….”
“읏…. 아, 알았어요….”
곤란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질이 하는 말에 어쩔 수 없이 표를 끊는 탈리안이에요.
내용이 탈리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질 혼자서 공연을 보고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다는 행운에 하나의 행운이 더 따라준 게 있다면, 좌석이 꽤 앞자리였다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시간이라 사람이 꽤 적었거든요.
좌석에 앉은 질과 탈리안이 보기에도 수많은 좌석의 절반이 비어있었어요.
둘이 자리에 앉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됐어요.
막이 올라가는데도 탈리안은 아직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아요.
‘이런 것보다는 조금 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랑이 오고 가는 그런 내용의 공연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며 질을 회유했거든요.
싸우고 평화를 찾는 모험심을 자극하고 로망을 가진 이런 내용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오가는 그런 공연이 낫지 않냐는 거겠죠.
“언니는 별로예요? 아, 용사님 나왔다!”
“싫다기보다는…. 질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됐지만….”
“으응, 그래요? 근데 용사님이 여자인데도 엄청 멋지네요! 반할 거 같아요!”
“공연이니까요.”
질은 용사가 마기노를 혼자서 상대 할 수 있기에 실력적인 측면에서 반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이겠죠.
하지만 탈리안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다른 눈치는 좋더라도, 질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는 게 탈리안인걸요.
그러니 약간은 탈리안이 삐진 투로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언니는 감성이 너무 메마른 거 같아요.”
“그만 떠들고 집중해서 보세요. 보고 싶어 했던 거잖아요?”
“네에~”
공연이 시작해도 이렇게 둘이 떠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는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욕먹어도 싼 행위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적은 거야 당연하고….
무엇보다 둘이 떠드는 게 들리지 않을 만큼 공연의 소리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에요.
어떤 마도구를 써서 목소리나 음악 소리를 증폭시키는지는 몰라도, 둘의 대화 소리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할까요.
게다가 질과 탈리안이 소리까지 지르면서 대화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저 귀에 대고 속삭였을 뿐이에요.
“신탁도 받았고, 이제 마기노랑 싸우려는 건가 봐요.”
“질, 일단 말해두는데 놀라지는 마세요.”
“네? 제가 왜 놀라요?”
그럴 리 없다며 태연한 표정으로 공연을 보던 질은, 도중에 용사가 상대하는 마기노가 나타나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공연에 등장하는 마기노가 진짜 마기노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뭐, 이 극장에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요.
적어도 질은 처음이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랄 수밖에요.
“어, 언니! 마기노, 마기노!! 마기노 저거, 지, 진짜잖아요!! 싸, 싸워야! 아니, 어떻게, 어떻게 해요!?”
“질, 저 마기노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니까 앉으세요.”
“그렇지만 언니! 저거! 가, 갑자기 여기에 마기노가 나타나다니 위험하잖아요! 배우들도!!”
“진정해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그래도 질만 놀란 게 아니었어요.
몇몇 사람들이 질과 같이 놀라며 도망치기도 하고, 바들바들 떨기도 하고, 겁먹어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돌발 상황에도 나머지 관객들은 놀라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구경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도 이 극장의 포인트 중 하나였다는 거였죠.
무력화된 마기노를 무대 위로 끌어 올려, 용사나 다른 배우들에게 처형시키는 그런 공연.
갑자기 등장한 마기노에 놀라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관객.
일부러 그럴 수밖에 없도록 장치를 설정해놓은 이 극장만의 매력이었던 거에요.
물론, 이는 극장과 수도에서 특별히 안전에 안전을 기해서 무대에 특수한 마도구를 설치해놨기에 가능한 것이었어요.
혹시라도 마기노가 날뛰지 않도록, 날뛰어도 안전하도록 약화의 마법을 거는, 마기를 99.9%를 차단하는 마도구를요.
질이 놀랄 포인트는 한 가지 더 있었는데, 마냥 배우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 모험가였던 것이었어요.
그것도 [B]부터 [A+]까지의 수준급 실력을 갖춘 모험가들 말이죠.
혹시 있을 사고에 대비해서요.
사실 이를 미리 알 수 있게 표를 끊는 곳에서 팜플렛을 나누어주던 것이었지만, 질이 미리 알고 보는 건 재미 없다며 탈리안에게 건네줬었거든요.
맞아요, 그렇기에 탈리안이 질에게 몇 번이고 괜찮겠냐고 물어본 것이었던 거에요.
혹시라도 질이 마기노를 보고 놀라지 않을까, 무서워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지, 진짜 괜찮은 거예요…?”
가까스로 진정한 질은 자리에 앉고 나서도 계속 불안에 떨었어요.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던 거겠죠.
뭐, 사람이 없는 것도 진짜 마기노가 등장하다 보니 두려움에 보러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수도 한 가운데에서 마기노의 처형식을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니,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재앙을 일으킨 원인을 말이에요.
두려워서라도 못 볼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제가 있잖아요. 무서우면 손을 잡아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손보다는, 안기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알았어요, 이리 오세요.”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걸까요.
지금은 질이 성장한 뒤라서 탈리안보다 더 클 텐데요.
실제로도 질은 탈리안의 품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탈리안이 질의 무릎에 앉아 안기는 형태가 되었어요.
“…질,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 아닌데요? 저, 지금 굉장히 좋은데요….”
부정하면서 탈리안이 혹시라도 빠져나갈까 걱정돼서 더 꼭 끌어안는 질이에요.
무심결에 본심이 튀어나온 것 같지만, 탈리안은 질이 안심한 모습에 불만이 있어도 빠져나가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이상한 것 같은데요….”
“어어! 언니가 이러고 있어야 괜찮을 거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요….”
무대만 밝고 주변이 어둑하니 누군가가 본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을 테지만요.
본다고 하더라도, 탈리안이 더 체구가 작으니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겁먹은 아이를 언니가 안아주는 정도로 알고 다시 공연에 집중하겠죠.
“저기, 질? 손 좀 가만히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그런데 질은 탈리안을 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품에 안긴 탈리안의 손을 만지작거렸어요.
“네, 에?! 아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에요.
이미 마기노로 겁먹고 당황했던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탈리안을 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연에는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제, 제가! 제가 언니한테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질은 계속해서 탈리안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시선은 들키지 않게 공연을 보는척하다가 흘끔거리며 탈리안을 내려다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헛된 시간을, 아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찬 시간을 보낸 질이었죠.
공연은 마기노를 몇 마리 처형하고 난 뒤에야 끝이 났어요.
질은 아무래도 용사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인지 끝나고 나서는 용사의 이야기만 했죠.
마기노의 목을 베는 용사가 멋있었다던가, 용사처럼 되고 싶다던가….
“그렇게 재밌었다니 다행이네요. 마기노를 보고 겁먹은 채로 끝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직 안 끝났어요! 씨앗이랑 마당에 놓을 가구도 사야죠!”
“완전히 핑계는 아니었나 보네요.”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두워져 있었어요.
찬 밤바람에 몸을 떠는 질을 보고는 탈리안이 손가락을 튕겨 마법으로 가디건을 만들어 걸쳐주었죠.
탈리안의 마법은 역시 만능이네요.
“그, 사실, 언니, 저어…. 핑계…. 맞아요.”
“알고 있으니까 따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즐거웠나요?”
질이 망설이며 이실직고했지만, 탈리안은 혼내는 기색 없이 오늘 하루가 즐거웠는지 묻고 있어요.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그것도 언니랑 같이 산책한 거 같아서 좋았어요!”
질의 말대로, 극장을 찾는 데만 꽤 시간을 쓰기는 했죠.
마냥 길을 헤매었다면 모르겠지만, 요리 약속도 받아냈으니 완전히 시간만 낭비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탈리안에게 운동이 부족하다고 끌고 다니고 싶어 했으니 어느 정도 부가적인 목적도 달성한 셈이고요.
과정은 조금 무시하더라도….
탈리안마저 길을 잃는 의외의 모습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다행이에요. 앞으로 휴일에 어딘가 가고 싶거나, 뭔가 하고 싶다면 말하세요. 문을 건너기 전에도 말했었지만, 질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 테니까요.”
“다음부터는 바로바로 말할게요! 이제 씨앗 사러 가요! 에글란트 씨앗이랑 쿠번 씨앗 살 거예요!”
“에, 네…? 아니, 그 에글란트랑 쿠번은 조금, 죄다 비린 물 냄새가 나는 채소잖아요…?”
“언니가 채소 쪽으로는 영 지식이 없네요! 요리하고 나면 얼마나 맛있는 재료인데요!”
질이 잘 놀았다니 다행이지만, 탈리안은 잘 놀고서 마지막이 아쉬운 하루가 되겠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