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마군주 베리아 (2)
* * *
화려하게 피를 튀기며 싸우는 라피아를 뒤로하고 질은 탈리안의 앞에 다시 섰어요.
아까와 같은 모습인 탈리안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었어요.
“…언니, 사실은 깨어있죠.”
역시 다시 말을 걸어도 탈리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질은 산발이 된 탈리안의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치우며 숙인 얼굴을 훤히 보이도록 했어요.
평소에는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어요.
긴 속눈썹부터 조그마한 입술에 작게 열린 입, 전체적으로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조금의 생기가 도는 피부.
질이 무슨 이유로 왔는지조차 잊게 할 외모였어요.
정말 몇 초간은 말도 못걸고 구경만 했거든요.
“…얼른 대답해줘요, 언니는 마군주가 아니라고…. 재앙을 일으킨 건 다른 사람이라고…. 가족이 아니라고 말해줘요….”
“…지르니트 페어차일드.”
“언니?”
라피아와 베리아가 싸우는 소리에 하마터면 탈리안이 말하는 소리를 놓칠뻔한 질이었어요.
그만큼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거든요.
얼마 만에 듣는 탈리안의 목소리인지 모르니, 질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거예요.
탈리안이 자신의 마을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라 하더라도, 보지 못하던 시간 동안 보는 사람이 안쓰러워할 정도로 간절했으니까요.
탈리안이 다시 한번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자신의 옆에 있어 주는 것을요.
그런데 천천히 눈을 뜨며 탈리안이 아무런 감정 기복 없이 말한 것은 매정한 한마디였어요.
“돌아가세요.”
“돌아가라니…. 언니는 어떻게 하고…. 그리고 제 질문에는 대답도…!”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어디에 잡혀있는지 정보를 구하고, 고생하며 이렇게 찾아왔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고작 돌아가라는 한마디였어요.
“전 언니가 보고 싶어서…!”
억울하고 서운할 거예요.
힘든 일이란 힘든 일은 다 하면서 드디어 찾을 수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탈리안은 질이 말을 걸어도 표정으로 얼굴도 바라봐주지 않고 있어요.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질은 말을 이어가다가 멈칫했죠.
“이젠 대답도 안 해주는 거예요…? 이렇게 힘들게 찾아왔는데 고맙다거나 오랜만이라는 말이라도 해줘도 되는 거잖아요!”
결국, 서러운 게 터져 나와 탈리안에게 큰소리까지 내는 질이에요.
이렇게 탈리안 앞에서 큰소리를 낸 적이 있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대답도 없이 차갑고 생기 없는 눈으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놀라지 않은 건지, 놀랐는데도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질, 제가 남긴 말은 읽어본 건가요?”
“…안 읽었어요.”
탈리안이 남긴 말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었길래 물어본 걸까요.
어쩌면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을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위험한 장소에 찾아오는 걸 바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더구나 여기서 시간이 더 오래 지났다면 탈리안이 탈출할 가능성이란 더 없었을 테고요.
분명, 작별의 인사를 써 뒀겠죠.
이런저런, 그동안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써두었을 거예요.
“그렇군요. …질? 누구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마군주에요. 당신의 마을을 잿더미로 만든 마기노들을 이끄는 마군주.”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탈리안은 질을 이 장소에 머물게 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질에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한 적이 있기나 했을까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떠나게 하도록 이런 말을 하는 거겠죠.
질은 그러거나 말거나 믿으려 하지 않고 있지만요.
“저는 마기노들이 갇혀있던 지하 세계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이 세계의 당신들이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고 넘어왔죠.”
“거짓말이야! 그런 말을 누가 믿는다고 그래요!!”
문이란 재앙을 뜻하는 거겠죠.
재앙을 일으킨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미워해도 된다고, 그러니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라는 의미로 말하는 탈리안이에요.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둘째치고, 이제는 듣기조차 거부하네요.
“말했었죠? 저는 제일 친한 친구를 그 세계에서 잃어버렸어요. 이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그래서 미련 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넘어온 거예요. 생각 없이. 누군가가 이로 인해서 상처 입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덕분에 저는, 질의 인생을 망쳤어요.”
“아니야!! 언니가, 언니가 저한테 얼마나…!”
질이 하고 싶은 말은 이해해요.
탈리안이 질을 마기노에게서 구해주고, 그동안 얼마나 잘 보살펴주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재앙을 일으켰든, 마을을 멸망시켰든, 상관없다고, 탈리안을 끌어안았지만….
그렇지만….
“질, 현실을 바라보세요. 이전에 도서관에서 제 마나…. 마기를 느끼고 도망간 적이 있었잖아요. 몇 번이고 새어 나오는 마기를 느끼고 가까이 오기를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잖아요. 마법 학원에서 강의를 훔쳐봤을 때도 학생들이 저보고 마군주가 아니냐고 했던 걸 본 적이 있잖아요. …질도 사실은, 제가 마기노라는 것을 알고 있었잖아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저, 언니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탈리안이 제시해준 증거가, 그동안의 기억이, 탈리안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군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라는 것을 질도 알고 있으니까요.
부정하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을 거예요.
생각이 정리되질 않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이런 죄가 좀먹는 몸을 구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언니가, 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무슨 말을 해서라도 탈리안을 구해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왔으니, 이렇게라도 호소하고 싶었을 거예요.
목소리가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그만 포기하라는 말만 반복하는 탈리안에게, 제발 밀어내지 말라면서.
하지만 이미 탈리안의 생각은 이곳에 잡혀있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에요.
절대 굽힐 생각이 없었던 거에요.
“그 원인을 제공한 건 결국 저예요.”
“…그래도, 그래도!”
질의 얼굴은 어느샌가 눈물로 범벅이 되었어요.
사실만을 말해오는 탈리안과는 달리, 질은 감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탈리안을 버린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이제 라피아도 있잖아요. 돌아가세요.”
“저는, 저는 언니가 없으면 안 돼요…! 언니가…. 언니가아….”
라피아를 언급하자마자 질은 이제 울고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는 것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탈리안이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수도 없이 탈리안에게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이렇게 단호하다면, 더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꽤 볼만한 촌극이구나, 탈리안.”
여러 명이 한 번에 말하는 기괴한 목소리에, 탈리안은 눈을 가늘게 떠 정면을 바라봤어요.
그 자리에는 상처하나 없이 말끔한 라피아가 서 있었죠.
질은 라피아마저 베리아에게 몸을 빼앗긴 것을 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상대가 알마이기에 지는 일은 없었겠지만, 이겨도 몸을 빼앗는 능력을 가진 베리아의 앞에서는 무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네가 그 아이와 연을 끊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이 몸이 그 아이의 몸을 빼앗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냐? 그 아이를 가지고 너를 내 손안에 넣으려는 것을 그만둘 것이라고?”
“…그 비틀린 욕망을 부딪칠 곳이 나밖에 없다는 게 정말로 안타까워, 베리아.”
“후후후, 마기노가 솔직한 욕망에 따르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이것은 탈리안, 네 녀석도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지금만 해도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파멸시킨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 않더냐.”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탈리안은 소리치면서도 질을 곁눈질로 흘겨봤어요.
그 찰나의 순간에 질의 발밑에서는 복잡한 마법진이 나타나며 보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죠.
당황한 질이 탈리안을 불러봤지만, 빛은 점점 강해지기만 했어요.
그렇지만, 그 마법진은 베리아가 핑거 스냅을 한번 하는 것으로 쉽게 빛을 꺼뜨려 버렸어요.
“미래와 과거가 적힌 금서의 주인이라는 칭호가 아까울 정도로 어리석구나, 이곳은 이 몸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이딴 격이 낮은 전송마법에 남은 힘을 모두 쓸 정도로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건가?”
“으윽…!”
탈리안의 의도는 질을 다른 장소로 전이시켜 안전하게 하는 것이었겠지만, 한순간에 마법이 파훼 되어 버리자 그 반동은 전부 탈리안에게로 돌아갔어요.
물론 베리아가 장난질을 더 했겠지만, 쇠사슬을 팽팽하게 당겨, 잘그락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래도 일단은 칭찬해주마, 마나와 마기를 모두 막는 구속구에 잡혀있으면서도 마법을 쓸 줄 몰랐으니. 다음에는 더 개선된 구속구를 마련해주지.”
“큿, 하아, 하….”
반박할 기력도 없는지, 탈리안은 조용히 베리아의 말을 듣고만 있어요.
“하지만 슬슬 알아주었으면 하는구나, 이 몸도 너에게 고통만 줄 생각은 없다. 온전한 상태의 너를 손에 넣고 싶을 뿐이니까.”
“역겨운, 소리…. 하지 마….”
“이 몸의 총애를 받을 기회는…. 호오?”
탈리안에게 다가가려던 베리아는 갑자기 멈춰 섰어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의 질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탈리안을 위해서라지만 겁도 없죠.
알마도 라피아도 아이펠슈에도 탈리안도 전부 베리아에게 당했는데 말이에요.
“언니한테 다가오지 마세요…!”
“하기야, 이 몸으로는 너의 정신을 깎기 어렵겠지? 안심하거라 탈리안. 이 몸은 네가 의지가 없는 인형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껴줄 것이다.”
베리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탈리안에게 말을 건넸어요.
질에게 손을 뻗어가면서요.
“하, 하지 마!! 질을, 질을 건드리기만 해봐!! 죽여버릴 테니까!!”
“건드리지 말라, 죽이지 말라. 그런 말은 힘이 있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질! 제발 도망치세요!”
“마음에 드는 표정이구나, 그 표정이 보고 싶었다.”
기적은 없었어요.
베리아가 질의 머리에 손을 올리자마자, 라피아의 몸을 버리고, 질의 몸으로 갈아타 버렸어요.
맥없이 바닥에 쓰러진 라피아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질은….
손에 쥔 스태프를 던져버리고는 탈리안에게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마주했어요.
탈리안을 놀리듯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평소의 질이 그러던 것처럼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죠.
“…탈리안 언니? 이제 제 이야기를 조금은 귀담아 들어주실 건가요?”
“하지 마, 하지 마…! 질의 얼굴로, 목소리로…. 나한테….”
질이 돌아가기를 거부하던 때도 탈리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어요.
자신이 행했던 잘못을 고할 때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차분히 말하던 탈리안이었죠.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표정과 흔들리는 눈동자, 그렇게 아끼던 질을 피하는 것까지.
냉정함을 잃다 못해 제정신이 아니라고 봐도 될 수준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저, 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날에는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요?”
“하지 말라고!! 질을 모욕하지 마!!!”
“언니, 언니가 보고 있는 이 얼굴, 목소리, 기억, 몸짓…. 전부 언니가 알던 질이잖아요?”
확실히 베리아가 짓는 표정은 완벽히 질의 것이었어요.
애초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일 뿐, 몸은 질의 것이니까요.
목소리도 신경을 썼는지 여러 목소리가 섞이지 않고 질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왔죠.
몸짓도 마찬가지로, 평소 하던 버릇인 말하던 도중 왼쪽 손가락을 매만지던 것도 그대로였어요.
“아니, 아니야…! 넌 질이 아니야…!!”
“언니, 슬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중요할 때는 제 옆에 있어 주지도 않았잖아요.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요? 가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도 억지로 참아야 했던 마음을 알아요?”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뿐…. 이었는데….”
“그래서 몇 달이나 저를 혼자 방치해둔 거에요?”
탈리안은 한두 번은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베리아가 질의 얼굴과 목소리, 질의 기억까지 이용해 말을 걸어오니, 눈앞에 서 있는 건 질로 보일 수밖에 없었죠.
누가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앞에서 말을 걸어온다면,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누구라도 헷갈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건 탈리안도 마찬가지였을 뿐이에요.
“아니에요, 그럴 의도로, 한 게…. 저는, 질이 위험하지 않도록, 미리…!”
“제가 위험한 건 상관없었어요. 결국, 언니는 중요할 때 제 옆에 없었잖아요. 그저, 옆에만 있어 줬으면 다 괜찮았는데.”
계속해서 약한 점을 파고든다면, 아무리 탈리안이라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기가 어려울 거예요.
게다가 탈리안은 꽤 긴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 베리아에게 괴롭혀졌을 테니까요.
서운한 표정을 짓는 질의 앞에서는 그저, 사과하는 것밖에 못 하는 거죠.
“미, 미안, 미안해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베리아는, 베리아는….”
“언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저를 위한 일이라고 하는걸요. 그런데 이런 착한 사람이, 왜 문을 열고 넘어와서, 재앙을 일으키고,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 건데요?”
“저도, 저도 사정이 있었어요! 저도, 그런 일은 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언니, 핑계를 대는 건 좋지 못한 일이에…! 아악?!”
순조롭게 탈리안의 정신을 깎아내 가던 그때, 갑자기 베리아는 머리카락을 잡혀 뒤로 던져졌어요.
“…씨발, 뭐 이딴 더러운 경험이 다 있어. 사람의 트라우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피아…?”
못 뒷부분을 부여잡은 채로 힘겹게 일어서서 천천히 몸을 풀던 라피아는 탈리안의 부름에 기가 막힌 표정을 했어요.
눈앞에서 질을 빼앗겨버린 탓인지,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눈동자는 흐릿해져 있었거든요.
명색이 마군주라는 존재가 이런 약한 면을 보여주니 라피아로서는 열이 뻗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너…! 이 머저리가, 그걸 다 들어주고 자빠졌냐?! 네가 마군주라면 더 마군주답게 행동해!! 고작 소중한 거 하나 잃어버린 게 뭐가 어쨌는데!! 이 세계에는 안 그런 사람 없어!!”
“저는 그저, 그저….”
“…답답한 년, 그러니까 질이 아닌 년이 하는 말에 넘어가는 거 아니야! 정신 차려!!”
한심한 탈리안의 모습에 라피아는 계속해서 욕을 내뱉으며 따귀를 때렸어요.
조종당하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티격태격하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욕까지 할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머리 식히고 있어, 돌아갈 때쯤엔 정리되어 있을 거니까.”
집어던지고 얼마 안 돼서 새빨간 마기를 두르고 돌아온 베리아에요.
라피아도 곧바로 싸움을 걸어올 것 같은 베리아의 모습에 준비를 했어요.
온몸에서 증기 같은 오라를 뿜어내는데, 그 색깔이 베리아와 같은 빨간색이었어요.
색만 같을 뿐 힘의 종류는 당연히 다를 거예요.
베리아는 절제 없이 자연스럽게 안에서 흘러넘친다는 느낌이라면, 라피아의 것은 억지로 불태워 뿜어낸다는 듯한 느낌이니까요.
“언니들 또 싸우는 거예요? 그립네요. 예전에 집 앞에서 싸우는 모습이 기억나요.”
“나름 온 힘을 다해 던진 거였는데…. 시끄러워! 질의 몸에서 나오게 해주마!!”
“그런데 라피아 언니, 어떻게 바로 일어난 거예요? 저는 꽤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 덕분에 기분이 상당히 언짢으시다!!”
라피아는 바로 베리아를 몰아세우며 탈리안에게서 멀어지게 했어요.
평소에 쓰던 날붙이가 아니라, 뭉툭한 무기만을 골라 베리아를 상대했어요.
그렇게 처음에 들어왔던 문의 가까이에 왔을 때, 뜬금없이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열린다면 궁금해서라도 쳐다볼 수밖에 없죠.
“뭐, 뭐야…?”
“빈틈을 보일 여유가 있나요? 저를 상처입히지 않으려는 노력은 가상했어요.”
“커흑?! 큭…. 으극….”
뭐, 싸우다 한눈을 판다면 공격당하는 거야 정해진 일이에요.
질이 마기노를 상대할 때 썼던 마나를 두른 주먹이 라피아의 배에 꽂혔어요.
베리아의 힘과 마기가 더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 위력은 라피아마저 배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게 할 수준의 파괴력을 가진 것 같아요.
아직은 라피아를 쓰러트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데다가, 마음에 들어 한 뒤로 손에 넣기 위해서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상대하는 느낌이니까요.
이어서 추가타를 넣으려는 베리아를 눈치채고는 가까스로 뒤로 물러나는 게 가능했죠.
여기까지가크리미아가 오기 전까지의 일이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