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94화 (94/189)

〈 94화 〉 마녀 구출 작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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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의 소동과 변장을 거부하는 일의 뒤에….

질이야 탈리안이 걸린 일이니 바로 마차 뒤편으로 가서 갈아입고 나왔지만, 파티원들은 그러지 못했어요.

파티원들은 플랑과 라피아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옷을 완전히 갈아입을 수 있었죠.

기사들이 가져온 노예복에서는 퀴퀴한 냄새도 나고, 뭔지 모를 액체로 얼룩져있으며, 목걸이는 묘하게 목에 달라붙어 숨을 쉬는 것을 힘들게 했어요.

게다가 여기에 더해 ‘더러워짐’을 연기해야 했으니 일부러 먼지나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죠.

덕분에 마차에 올라탄 내내 파티원들은 불편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노예에 어울렸어요.

적어도 지금껏 질이 봐왔던 붙잡혀버린 노예의 모습에는 한없이 가깝다 못해 똑같다고 봐도 될 정도였거든요.

“그럼 짐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짐은 저희가 같이 들어가서 적당한 장소에 숨겨두었다가, 한산한 시간을 노려서 다시 돌려드릴 겁니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도 질은 라피아가 몰래 짜둔 작전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기사들과 대화 중이었어요.

정말 대단한 집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파티원은 마차가 구식이라 흔들려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거든요.

요즘 세상에 마차를 정말 말이 끌 거라고는 누가 생각했겠어요.

그동안 슬리브스터가 이런 방식으로 잘도 노예상 짓을 해왔다고 느껴질 거에요.

“그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저희가 특별히 준비한 마도구도 있으니 너무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어요. 라피아 언니의 기사님들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요.”

질은 기사의 말에도 믿고 기다리겠다고 말하네요.

예전이라면 보지 못할 모습이에요.

언제 어디서든 탈리안만을 믿었으니까요.

그 범위가 늘어나 믿는 사람에 라피아까지 추가되었다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라피아도 그걸 알고 있는지 눈물이 고이지도 않고, 흐르지도 않는데 눈물을 닦는 척을 했어요.

“지일…. 언니는 감동했어….”

“가, 감동? 제가 그런 감동할만한 말을 했어요?”

질이야 그 사실을 모를 거예요.

원래 본인의 변화는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거니까요.

“응, 그리고 뭐…. 질, 너도 그렇고 알마도, 전부. 걱정하지 마. 잠입은 문제없을 거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명령하지 못할 거야.”

“궁금한데 어차피 물어봐도 안 알려주겠지…. 한두 번도 아니고….”

“맞아, 잘 알고 있네!”

거점에 도착하기까지 별 시답잖은 이야기가 쭉 이어졌어요.

작전에 대해 물어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면 알마와 파티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하지 않게 마음을 다잡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큼지막한 성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음, 성이라기보다는 정말 크고 널따란 지하 감옥이 성벽에 둘러싸여 지상에 튀어나와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좋겠네요.

그 모습이 보이자마자 모두가 조용해졌어요.

바로 표정을 굳혀 잡혀 온 노예를 연기했죠.

처음이라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마차의 짐칸에는 질의 파티원 말고도 진짜 노예가 하나 구석에 처박혀있었거든요.

겁도 제대로 먹은 게 도망치다 걸린 것 같았어요.

“다시 들어가는 게 그렇게 떨려요?”

“당신들은 노예로 잡혀본 적이 없어서 몰라…! 어떻게 빠져나왔는데 거길 다시 들어가라니!”

“이번 일이 성공하면 노예 신세에서 풀려나는 거라니까요?”

“이미 낙인이 찍혀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불안에 떠는 이 노예 덕분에 표정 연기, 몸짓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따라 할 수 있었어요.

어색하게 보이면 그만큼 교육이 덜 된 잡힌 지 얼마 안 된 노예라고 둘러대면 될 일이었고, 너무 잘 해내면 저번에 파괴된 거점에서 피신 왔다고 하면 될 일이니까요.

그렇기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의 검문도 보기 좋게 통과해버린 거였어요.

그들의 입장에서 약간의 신체검사를 위해 문지기가 다가오려고 했지만, 플랑이 변장한 인물을 보자마자 그만둬버렸죠.

성벽 안으로 들어와서도 검문은 계속되었는데, 그때마다 플랑은 탈주했던 노예를 잡아 왔다며 자랑하고는 나중에 즐기라고 말하며 마차를 더욱더 깊은 곳으로 옮겼어요.

깊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마차가 이동하기 어려운 지형이 나오면, 그때서야 수갑에 줄을 이어 질의 파티를 마차 안에서 내리도록 했어요.

어느샌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질의 파티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어요.

흐느껴 우는 소리, 고통에 허덕이는 소리, 절망에 섞인 앓는 소리, 기력이 없어 나오는 쉰 소리, 단발적으로 끊겨 들리면서도 쾌락이 섞인 소리까지.

게다가 건물이 분명 지상에 있는데도 습도가 장난이 아니고 덥기까지 해서 가만히 있어도 몸에는 땀방울이 맺혔어요.

그런데 여기에 열을 맞춰서 끌려다녀야 했으니 좋지 못한 질감의 노예복이 달라붙어서 몸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냈죠.

한마디로 건물 안의 상태는 최악이었어요.

그리고 질이 이 가라앉을 듯한 감옥의 상황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으려고 할 때에 자신의 앞에서 걷던 라피아의 발걸음이 멈췄어요.

덕분에 앞에서 걷던 라피아의 등에 머리를 살짝 박아버렸죠.

“도착했다, 들어가!”

기사가 들어가라고 한 곳에는 7명이 전부 들어가도 좁지 않을 감옥이 있었어요.

특별한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은 감옥이었죠.

있는 거라고는 감옥의 끝자락에 흐르고 있는 하수와 바닥에 깔린 침대 대용의 천 조각이 전부라는 것뿐.

불빛도 철창 바깥의 것에 의지해야 해서 감옥의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더 어두웠어요.

여기에 더해 냄새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역해서 헛구역질까지 하게 만들었죠.

“에윽…! 흐으….”

“내일까지 꼼짝 말고 있어라! 내일이 네 년들을 경매에 올리는 날이니까. 그때까지! …조용히 있어 주세요. 이 앞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망보고 있을 테니까요.”

“네…. 아니, 알겠습니다.”

큰 소리로는 내일이 경매 시작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작은 소리로는 안전을 보장하면서 기사는 감옥의 앞에 섰어요.

다행히 질의 감옥은 구석인 데다 막다른 길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한동안은 아무도 감옥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성공적으로 적의 거점에 들어온 것 같아요.

환경은 정말 최악이지만요.

질의 파티는 이대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할 테니, 지금은 다른 파티를 보도록 해요.

이전에 질이 슬리브스터의 거점에서 구했던 사람을 기억하시나요?

맞아요.

백색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가진 교회에 소속된 인물.

이름은 크리미아 화이트하임, 여자, 27세, 인간, 전직 노예.

전직 노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그럼에도 다시 빛나는 은색의 스태프를 손에 들고 슬리브스터의 거점으로 뛰어드는 용맹무쌍의 전희.

그녀는 지금 다섯 파티의 리더를 맡고 있었어요.

노예로 잡혔던 경력이 있으니, 길 안내는 물론 노예상들이 어떻게 싸움을 걸어올지 알 것 같다는 이유 만으로요.

그렇다고 크리미아가 이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냐면, 그건 또 아니었어요.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그런 면을 보면, 크리미아는 상당히 용감한 인물이었어요.

…흑기사한테 겁먹은 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가항력이었던 일이었으니 넘어가도록 해요.

마침 몬스터들과 마주쳐 싸우고 있으니 그 용맹한 모습을 보기로 하죠.

“좌익이 허술합니다! 프로비우스! 적이 파고들 틈을 주면 안 됩니다!”

“말이야 쉽지! 갑자기 이런 수의 몬스터를 만날 걸 누가 예상했겠어!”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싸움이에요.

파티 당 최소 4명에서 많으면 7명까지 있는데, 그 수를 압도할 몬스터가 몰려들었다니 프로비우스라는 인물이 불평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게다가 상대가 하필이면 인간형이 아니라 식물형의 적이라 공격방식도 변칙적이었거든요.

그러니 실력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은 파티라고 해도 이렇게 고전할 수밖에요.

조금은 격렬한 가지치기 하듯이 적들을 마구 베어나가는 프로비우스지만, 그를 포함한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어요.

“여유가 될 때마다 축복을 걸어드리고 있으니 진형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후방 파티에 기습! 이 주변에 둥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희 목적은 이 몬스터와 둥지의 토벌이 아닙니다! 정면의 적들을 처치해 돌파하겠습니다! 전방이 기습받지 않도록 후방은 방어에만 집중하며 천천히 전방으로 퇴각을!”

그렇지만 이런 몬스터의 거센 공격에도 파티가 전멸하지 않았던 것은 크리미아의 지휘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초반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작은 성역을 만들어 몬스터를 태워버리고, 파티원들을 지켜냈거든요.

프로비우스는 크리미아의 실력 하나는 정말 대단한데, 왜 노예로 잡혔던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어요.

이러는 순간에도 크리미아는 파티 대부분을 우글거리는 몬스터 속에서 탈출시켜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큰 상처만 포션으로 치료하고, 나머지는 이동하며 제가 축복으로 치유해드릴 테니 서둘러 이동하도록 하시죠.”

“당신의 축복은 대단해. 상처는 당연하고 피로까지 없애주니까. 그러니까 순순히 따르겠지만, 왜 굳이 중앙 거점의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다시 한번 이런 대단한 힘을 가지고도 노예로 잡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프로비우스였어요.

축복은 교회의 수녀만 되더라도 아무나 사용할 수 있지만, 성역은 아니거든요.

곧 성역에 관한 이유도 나오겠죠.

“간단합니다. 그저 한 마리의 벌레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파티들은 정면이나 옆으로만 들어가려고 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적의 거점이 기이하게 앞뒤로 길기 때문에.”

“나는 돈 받고 움직이는 용병이니까 그렇다 쳐, 다른 녀석들은 네 생각에 아무 이견이 없는 거야?”

“여기 모인 자들은 전부 슬리브스터를 잡고 복수하겠다는 일념 아래서 모인 자들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무릅쓰고 가겠지요.”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지만, 크리미아는 겁도 없네요.

풀려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다시 복수하러 가는 걸까요.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저만 하더라도 슬리브스터에게 한번은 잡혀서 더러워졌던 몸…. 때문에 성녀 후보에서 탈락해버렸으니 그에 대해 복수를 하러 가는 겁니다.”

“당신 성녀 후보였어?”

“…이젠 아닙니다.”

어쩐지, 성녀 후보였다면 작더라도 성역을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것도 이해가 되죠.

나이는 성녀에 약간 맞지 않는 것 같지만요.

교회 인물치고 묘하게 생기 없는 눈빛을 하고 있더라니, 자신의 실력 부족이 아니라 성녀가 될 기회를 타의에 의해서 잃어버렸다면 당연해요.

아니, 어쩌면 슬리브스터에게 잡혀버린 것도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인해 잡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하니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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