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마녀가 없는 동안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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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이 침입해서 질과 라피아의 평화롭던 일상이 깨질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질을 부르거나 대화하는 방식이 투덜거리며 말싸움을 하더라도 몸싸움까지 번지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그런 플랑에게 친근함까지 느낀 질은 오히려 더 잘해주려고 하기도 했어요.
의뢰를 나갔을 때는 다른 지역의 특산물을 가져와 선물해주기도 하면서요.
플랑은 그런 질을 곱게 보지 못하는 건 당연했어요.
질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아무리 험한 말을 해도 계속해서 다가왔으니까요.
당연히 그럴 때마다 라피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는 점에서 더욱 질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어요.
이런 애매한 사이가 계속되는 와중에 질이 불편한 게 있다면, 라피아와 사이좋게 있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었죠.
말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럴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플랑이 방해를 해왔거든요.
무엇보다 옆에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면 누구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아요.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언니! 벌써 일주일째에요! 플랑 좀 어떻게 해줘요!”
거의 울먹이다시피 라피아에게 매달리며 플랑을 안 보이는 곳에 가도록 명령을 해달라 부탁하지만, 라피아는 곤란하기 짝이 없었어요.
본가에서도 말리지 못했던 플랑을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럼 둘이서 밖에 산책하러 나갈까? 잠깐이니까 플랑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아가씨, 그건 안됩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고 계신 건가요? 슬리브스터들이 암약하기 최적인 시간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방해를 해왔으니 아무리 질이 친근하게 다가가려 해도 한계가 있었어요.
어렵게 동의를 얻어 밖에 나간다고 해도 플랑이 뒤따라오기에 라피아와의 행복한 시간을 갖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어요.
이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면, 이런 일도 있었죠.
“언니, 제가 걱정돼서 의뢰에 따라온 건 좋아요. 그런데 왜…. 플랑까지 따라온 건데요?! 알마 언니까지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러게, 플랑이라니 쟤는 또 누구야?”
“아, 하하…. 하, 하아….”
멋쩍게 웃기만 하는 라피아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알마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거예요.
걱정돼서 질을 따라왔지만, 도가 지나치도록 자신을 좋아하는 메이드가 따라다닌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그리고 의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플랑이 먼저 나서서 의뢰를 끝내놓기도 했어요.
의뢰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거였죠.
결국, 플랑이 한 일이라곤 주변에 있는 것뿐이었는데, 질은 친해지려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질이 무언가의 결심을 한 것은 오늘 저녁 식사 전.
라피아와 플랑이 보는 앞에서 질은 소리쳤어요.
“플랑! 저 좀 봐요!”
질의 부름에 플랑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처음 본 순간부터 한눈에 반했던 아가씨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아갔으니 이보다 더한 눈엣가시는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그동안에 정도를 지켜가며 지낸 것은 질이 친해지려고 시도를 해왔기 때문이었겠죠.
“라피아 언니를 걸고 결판을 내기로 해요! 이래도 제 말을 안 들어볼 거예요?!”
“아가씨를 걸고…?”
“나? 나를 갑자기 왜 걸어?”
라피아를 걸고 결판을 낸다.
어떤 방식으로 결판을 낼지 질만이 알겠지만, 이 말은 플랑에게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어요.
그와 동시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말이었죠.
누가 봐도 자신이 모든 면에서 질보다 뛰어날 것이 분명한데, 뭘 믿고서 이런 말을 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플랑으로서는 모르겠다는 거예요.
“저, 짧은 시간이었지만 플랑이 의뢰에서 싸우는 모습을 열심히 관찰해봤어요! 그러니까 제가 힘으로든 마법으로든 못 이긴다는 건 잘 알아요. 플랑의 수준이 라피아 언니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러니까 일주일의 시간을 주세요!”
“일주일 뒤면 달라지는 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러니까 일주일 뒤에, 제가 플랑에게 공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명중’시킨다면! 그때는 플랑은 라피아 언니의 본가로 돌아가 주세요!”
질은 뭔가 믿고 있는 비장의 수가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어요.
의뢰에서 보인 플랑의 실력은 지금껏 질이 본 적이 없는 경지의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탈리안과 비교될만한 수준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못하더라도 [A+]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죠.
플랑도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질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만약 실패했을 때는 라피아 아가씨와의 교제를 포기해주셔도 괜찮다는 말이신 거겠죠?”
플랑의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라피아는 그러지 말고 차라리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리겠다며 질에게 전했지만….
라피아의 호의를 망설임 없이 거절한 질이었어요.
그리고는 자신을 믿어보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라피아를 바라보며 말했죠.
“…이번의 저는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때보다도 필사적이고 자신이 있어요! 상대가 플랑이더라도 반드시 이번 내기에서 이겨 보이겠어요!”
지금만 해도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달려드는 질이 플랑의 눈에는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요.
그럼에도 전혀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비웃지도 못하고 그저 라피아의 방을 청소할 뿐이었어요.
라피아는 질이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요.
“질, 정말로 괜찮은 거야? 플랑은 엄청 강해.”
“언니는 제가 못 미더워요?”
질이 왜 이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 거겠죠.
“너 아직 랭크로만 따져도 [C+]잖아? 낮은 랭크끼리의 차이랑 높은 랭크끼리의 차이는 천지 차이인 걸 너도 알면서…!”
“언니, 이럴 때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저를 믿어주면 되는 거예요.”
자신을 영 믿어주지 못하는 모습에 질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어요.
하긴 이렇게까지 믿어달라고 하는데 계속 걱정하는 것도 기분을 상하게 할만한 일이에요.
보통의 친구 관계라면 모를까, 질과 라피아의 사이잖아요.
“아 진짜아! 이리 와!”
“으앗?!”
그래서 미안했는지 라피아는 질의 팔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어요.
아직, 플랑이 주변에 있는데도요.
얼마 만에 이 둘이 서로 붙어있는 모습을 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플랑의 시선도 무시하고 붙어있던 둘은 잘 시간이 되어서야 떨어지는걸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마법 학원의 훈련장에 질과 라피아, 알마와 플랑이 모여있었어요.
“넌 여기 왜 온 거야?”
내기가 시작하기 전에 맞춰 도착한 알마는 손가락으로 질을 가리켰어요.
“지르니트가 오라고 했거든요.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겠다면서.”
“질이? 그동안 질이 한 거라곤 별거 없어 보였는데, 성장했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제 시작하려는 거 같으니 보면 알겠죠.”
훈련장의 결계 안으로 들어간 질은 마나를 불어넣어 배리어를 펼쳤어요.
그러고는 바닥에 꽂아두었던 스태프를 집어 들었죠.
하지만 질이 자세를 잡고 시작하기 직전에 플랑이 말을 걸어왔어요.
“룰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직 규칙도 정하지 않았었나 보네요.
그런데 규칙을 정하는 것을 질에게 온전히 맡기는 걸 보면, 플랑은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플랑의 옷부터 처음 봤을 때랑 다른 게 없는 메이드복 그대로였거든요.
심지어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제한은 딱히 없어요. 어느 순간이든 제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포기하면 그 순간 끝나는 거예요.”
“저는 방어나 회피만 해야 하는 건가요?”
“공격해도 괜찮아요. 대신 훈련장의 배리어에 약간 조정을 해놨어요. 플랑이 저를 공격하더라도 제가 받는 피해는 반절로 줄어들게끔.”
“공격이 명중했다는 판정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막거나 튕겨내는 건 무효로 할게요. 성공했다는 판정은 반드시 플랑에게 제가 상처를 입혔을 경우에만 인정하는 거로 해요.”
“꽤 자신 있어 보이네요. 저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언제든 오세요!”
질은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며 플랑에게 선공을 내어줬어요.
언뜻 보면 질이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질의 자세에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새하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은 플랑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도 당황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죠.
플랑을 상대로 판단을 잘못한 것도 아니었고, 방심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거 괜찮은 거예요?”
“질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저러는 건 아닐 거야.”
“대단한 믿음이네요.”
그렇지만 실망하려는 알마의 말과는 달리, 질은 눈에 보이지 않을 플랑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자신의 주변에 화염의 벽을 만들어냈어요.
이걸로 플랑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목적과는 거리가 동떨어진 행동이에요.
…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쯤에 화염의 벽 앞에 멈춰선 플랑에게 화염이 집어 삼킬 것처럼 덮쳐왔죠.
당연히 가만히 당할 플랑이 아니었기에 가뿐히 피해냈지만, 화염의 벽이 사라진 뒤 안쪽에 있어야 할 질이 보이지 않았어요.
“거봐,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했잖아.”
“그건 끝까지 봐야 아는 거죠.”
플랑은 질이 사라진 것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어요.
몇 초 만에 마지막으로 플랑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하늘이었어요.
그리곤 당연하다는 듯이 공중에 떠 있는 질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미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일 만큼 충분히 빨아들인 뒤였다는 게 문제였죠.
얼마나 많이 끌어모았으면, 모여든 마나가 보호막처럼 몸을 두껍게 감싸고 있는 건지, 그 양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큰 거 한방 가겠는데.”
“그런데 소리도 없이, 티도 안 내고 저 정도를 끌어모은 건 의외네요.”
“저 정도를 모으려면 시작할 때부터 모으고 있어야 할 수준이야. 뭔가 있긴 한가보다.”
이어지는 실력 평가에도 질은 관심조차 주지 않고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냈어요.
만약 훈련장에 화염구가 떨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불바다를 만들어낼 정도의 크기였죠.
플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질에게 달려들 때와 같은 속도였어요.
이어서 곧바로 달리다가 순식간에 도약하더니 배리어를 밟고 달리는 기행까지 보여주며 벽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질이라도 이런 기행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나 봐요.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여가며 눈으로 플랑을 쫓았지만, 플랑은 순식간에 질의 높이까지 올라왔어요.
“저거 좀 위험하지 않아요? 저 위치에서 떨어진다면….”
“…진짜 얼마나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거야, 플랑.”
“아니, 저기요? 방금까지 지르니트를 걱정하지 않았어요? 감탄할 때 인가 지금이.”
“어? 어어, 그렇긴 한데 놀라워서….”
둘이 떠드는 사이에 플랑은 배리어에서 한 번 더 도약해 질에게 향했어요.
질은 황급히 작은 마나 배리어를 자신과 플랑의 사이에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허무하게 플랑의 발차기에 깨져버렸죠.
그리고 곧바로 질의 머리채를 쥐어 잡은 플랑은 그대로 지면으로 빠르게 내리꽂았어요.
땅에 충돌한 순간 엄청난 굉음이 퍼지고, 흙먼지가 일어 상황을 알 수 없었어요.
아무리 피해가 줄어든다고 해도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공격이라면 질이 무사하지 못할 것만 같았죠.
“뭔가 이상한데?”
“그러네요, 화염구가 안 사라졌어요….”
“보통 마법을 발동 중인 도중에 공격받으면 마법이 취소되거나 그 자리에서 발동돼야 하는데, 저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화염구가 계속 커지기만 할 리가 없어.”
라피아의 말 그대로예요.
화염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가 커다란 훈련장을 다 채울 만큼 거대해졌어요.
진작에 플랑은 조금은 옅어진 흙먼지 바깥으로 튀어나와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봐도 질은 자신이 땅에 처박은 이후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어요.
“질은 확실히 기절한 것 같은데…. 저거 설마 커지다가 터지는 마법인가?”
“저러면 자기도 휘말릴 텐데요?”
“…모르겠어. 공격이 명중해서 플랑을 다치게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무리를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그렇지만 제 생각에 지르니트가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쓸 것 같지는 않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도 모르겠어.”
질이 기절한 채로 일어나려 하지를 않는데도, 화염구는 계속 커지기만 하니 플랑 입장에서는 상당히 답답했을 거예요.
분명히 손에 타격감도 있었고, 환각도 아니었는데, 마법이 취소되기는커녕 아직도 멀쩡하게 발동 준비 중이니까요.
결국, 플랑이 선택한 것은 질의 상태를 다시 확인해보는 것이었어요.
기절한 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미리 해둔 마법적인 함정 같은 것이 있는지를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화염구가 훈련장의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커진 뒤였죠.
“근데 아무리 플랑이라도 저걸 맞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피할 곳도 없잖아.”
“피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저거 터지면 피할 곳도 없어요.”
그대로 내려오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인 화염구가 터진다면 플랑은 고사하고 배리어마저 깨질 것 같은 크기에요.
실제로 투명한 배리어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닿자마자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려고 힘껏 저항하기 위해 배리어가 파랗게 변했거든요.
얼마나 심했냐면, 배리어 바깥으로 화염구의 열기가 새어 나가 느껴질 정도였어요.
게다가 타오르는 소리 때문에 안쪽의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으니까요.
“플랑!! 막을 수 있겠어?!”
라피아의 외침에 플랑은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 순간, 화염구가 폭발해버렸어요.
훈련장에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배리어는 터지면서 팽창하는 화염구를 막느라 기괴하게 모양이 변형되면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죠.
배리어 안쪽에 있는 둘의 생사가 걱정될 정도였어요.
화염과 폭발이 잦아들어 서서히 배리어 안쪽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모든 게 다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그런데 질의 모습도, 플랑의 모습도 전혀 보이질 않았죠.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 하나, 지면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사람이 하나 들어갈 크기의 작은 언덕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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