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마녀가 없는 동안에 (5)
* * *
“이 시간에? 누구세요?”
라피아는 질을 욕실에 들여보내 놓고 문 앞에 서서 소리쳤어요.
그렇지만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고, 밖의 사람은 다시 문을 노크할 뿐이었어요.
똑, 똑, 똑똑.
일정한 간격으로 일종의 리듬같이 들려오는 노크를 듣자마자 라피아는 순식간에 놀란 얼굴이 됐어요.
“프, 플랑!?”
그리고는 바로 문을 열어젖혔죠.
문 뒤에는 고급스러운 메이드복을 입은 긴 흑발의 여자가 서 있었어요.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는 메이드복이라, 메이드를 따라 하고 싶어 흉내를 낸 것처럼 보이는 여자였어요.
그렇지만 너무나 잘 어울리기에 흉내를 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에요.
플랑이라 불린 여자는 치마 끝자락을 양손으로 잡아 한쪽 발을 뒤로 빼고선 허리를 숙여 인사했어요.
“오랜만입니다, 라피아 아가씨.”
차분한 어조로 인사를 해오는 플랑의 모습에 라피아는 욕실 쪽을 한번 쳐다봤어요.
뭔가 들키면 안 될 것을 들켜버린 것 같은 초조한 눈빛을 하면서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복도에서 말씀드리기에는 다른 분들에게 민폐가 아닐지….”
플랑은 라피아가 질문을 하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다시 손을 한데 모아 바른 자세로 답했어요.
지금 시간대에는 아무리 작게 대화한다고 해도 다른 방에 약간은 거슬릴 소리이기는 해요.
“아, 어어? 어! 그으러니까, 잠깐! 잠깐만 기다려볼래? 금방 끝날 테니까!”
아무래도 서로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라피아가 뭔가 숨기려는 것을 보면 위치는 플랑이 더 위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라피아가 하는 말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면, 메이드는 메이드인가 봅니다.
라피아가 급하게 들어가려니 문이 저절로 닫히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플랑은 아니었어요.
메이드라면 주인을 모시는 게 당연한 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메이드에게 대신 맡기면 되니까요.
“제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에게 맡겨주시는 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어쨌든 여기서 기다려!”
굳이 다시 와서는 문을 빠르게 닫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온 라피아는 곧장 욕실로 향했어요.
그리고는 다급하게 질을 부르기 시작했죠.
“질, 질! 지르니트! 아직 씻고 있는 거야?! 잠깐만 나와봐!”
욕실 안에서 물줄기가 들리고 있는데 잠깐 나와보라니, 급한 나머지 라피아의 머리가 잠시 파업을 했나 봐요.
그래도 이렇게 다급한 목소리 덕분에 질이 물을 잠그고 대답할 수 있었겠죠.
조금은 당황했겠지만, 라피아가 급하다는데 어쩌겠어요.
“무슨 일이에요?”
“대충 물기 닦고 나와봐, 할 이야기가…!!”
하지만 급하게 욕실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느라 주변을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뒤에서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오는 플랑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라피아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확실하게 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한 플랑은 까치발을 들어 최대한 라피아의 귀 가까이에 입을 가져다 대고는 작게 속삭였어요.
“…아가씨, 욕실 안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흐아악?! 악! 아파라…! 너, 너! 플랑 너 어떻게 들어온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라피아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는데도 방 안에 소리소문없이 들어온 게 더 신기했었나 봐요.
그럴 만해요, 미스테리하네요.
“어, 언니?! 왜 그래요?!”
라피아가 넘어지면서 소리치니, 당연히 질도 놀라서 욕실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다행히 수건을 걸치는 걸 잊지는 않아서 남에게 알몸을 보이지는 않았네요.
“…언니는, 누구세요?”
“플랑이라고 합니다. 현자 레이지 크롬웰 님의 종자이며, 라피아 아가씨의 시중을 드는 몸이지요. 라피아 아가씨의 친구분이신가요?”
“저는 지르니트 페어차일드라고 해요. 라피아 언니랑 친구…, 라고 하기에는….”
플랑의 질문에 질은 라피아의 눈치를 봤어요.
다만, 라피아는 고개를 젓는 것도 위험하다 생각했는지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기만 했죠.
‘우리 사이를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된다.’라는 의미가 담긴.
그렇지만 플랑은 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미리 선수를 쳤어요.
“흐응…. 알겠습니다. 어떠한 관계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아가씨가 꽤 아끼시는 분으로 보이니까요.”
“플랑 우선 여기 있을 게 아니라 거실로 가서 말하는 게 어때? 질 너도 얼른 마저 씻고!”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당황해있는 질을 다시 욕실에 억지로 밀어 넣은 라피아는 플랑을 거실로 끌고 갔어요.
라피아가 왜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후우…. 앉아, 차라도 내줄까?”
“제가 해드려야죠. 아가씨는 앉아계셔도 좋습니다.”
플랑은 라피아가 일어서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어요.
멋대로 찬장을 열어 찻잔을 꺼내두고, 서랍에서 찻잎이 담긴 통을 열어 적당량을 채에 덜어낸 뒤,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준비했죠.
이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고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라피아에겐 어이가 없었을 거예요.
“너 설마 여기에도 뭔가 해놓은 건 아니지?”
“아가씨를 시중드는 몸으로 이 정도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능글맞게 웃지 마! 칭찬하는 거 아니야!”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말조차 익숙한지 플랑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의 라피아를 바라봤어요.
이런 플랑을 라피아가 곱게 볼 리가 없었어요.
“내가 왜 본가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한몫해서 그렇다고 너도! 말했잖아?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난 딱히 너한테 마음이 안 간다니까, 넌 그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야!”
어쩐지, 자신의 메이드를 이렇게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거부해도 계속해서 좋아한다며 다가오는 메이드라면 누구라도 불편해할 거에요.
“아가씨, 저는 아가씨가 레이지 가문에 처음 오셨을 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 그 이야기야? 진짜 질린다….”
플랑이 늘어뜨려 놓는 이야기는 누구나가 그렇듯 처음 본 라피아에게 푹 빠져버렸다는 이야기였어요.
보통 첫눈에 반했다고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현자의 명령으로 라피아를 보살피며 지내는 동안 그 마음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런 이야기였죠.
“현자님과 저에 의해서 활기를 찾아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었습니다.”
“플랑, 나 진짜 그 이야기만 들으면 잠이 온다니까. 용건이 뭐야? 내 말에 대답 좀 해봐.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하지만 라피아가 보이는 반응만 보자면 지금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수백 번을 들었겠죠.
외워두기 위해서 복습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플랑을 볼 때마다 한 번씩 들어왔다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라피아의 차가운 태도가 플랑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했어요.
“아가씨, 제가 아가씨의 맞선이 실패하도록 도운 것이 어째서인지…. 아가씨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현자님께 그동안의 일을 모두 말씀드리고 본가로 소환되길 바라시는 건가요?”
“크읏…! 아버지는 어째서 플랑을 이런 위험한 아이로 키워버린 거야….”
지금까지의 맞선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는 플랑의 도움이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 것 같네요.
확실히 라피아의 힘만으로는 귀족을 상대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재앙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하프 뱀파이어였을텐데, 혼자서 맞선을 자연스럽게 실패로 몰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겠죠.
자칫하면 원치 않는 상대와 이어져야 했을지도 몰라요.
비록 플랑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라피아가 플랑에게 한마디도 못 하는 걸 보면 꽤 큰 도움을 준 거겠죠.
“하지만 아가씨, 원하시는 대로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에 대답해본다면…. 이번에는 현자님의 명으로 온 것이니 너무 박하게 대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뭐 때문에?”
“아까는 반 장난식으로 본가에 소환되고 싶으신 것이냐고 물어봤지만…. 리니스로부터 생겨난 신생 세력 슬리브스터, 노예상이 활개를 치고 있기에 현자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가씨를 본가로 들이고 싶으시다고 하세요.”
슬리브스터라면 라피아도 알고 있을 거예요.
질이 이번에 의뢰를 할 때 상대했던 게 그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질이 말하는걸 들어볼 때 질이 12명을 잡아내는 게 가능했다면, 라피아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거겠죠.
라피아는 플랑의 말을 듣고 검지와 중지를 펴 보였어요.
“조건을 두 개 정도 붙여도 될까? 네가 굳이 나에게 말을 전하러 온 거라면 명령이 아니라 부탁 같아 보이는데.”
“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신다면 그에 맞춰 현자님을 설득해드리겠습니다. 저는 항상 아가씨의 편이니까요.”
약점까지 잡아가며 협박하던 모습을 보여주던 플랑이 맞는지 의심이 됐었는데, 이런 때엔 또 확실하게 힘이 되겠네요.
라피아도 지금의 플랑에겐 믿음이 가는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어요.
“첫 번째로 지금 욕실에 있는 지일…. 지르니트를 같이 데려가고 싶어.”
“아가씨! 분명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했지만, 저는 그분과의 교제를 허락할 수 없어요!”
그런데 진지하게 경청하기 시작한 지 몇 초나 지났다고 벌써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라피아를 좋아하니까 질에게 질투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방금 분명히 도움이 되겠다고 했을 텐데요.
첫 번째 조건부터 이러면 앞으로 뭐가 나와도 더 힘들어질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본가에서 네가 날 감시하려고 하면 그 순간 나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올 거야.”
플랑이 발끈하거나 말거나 무시해버리고 이어서 두 번째 조건을 말하는 라피아에요.
그렇지만 그 내용이 생각보다 무시무시해요.
라피아의 감시라니, 본가에서는 자주 감시당하며 살았나 봐요.
“아가씨!!”
“이 두 조건만 허락한다면, 언제든 본가로 돌아가 줄게. 너는 어때, 질.”
“아, 들켰어요…? 중요한 대화를 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숨어있었는데.”
질은 욕실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머리를 긁적였어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었다면 질도 어느 정도는 알 거예요.
이 조건은 모두 플랑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걸요.
게다가 이미 현자는 질과 라피아가 같이 지내는 것을 허락해주었잖아요?
그것도 플랑에게는 라피아를 신경 쓰지 말고, 간섭하지도 말라고 전해두기까지 하면서요.
“저 발칙한…!”
“플랑, 명령이야. 조용히 해.”
라피아가 정색하며 목소리를 내리깔아야 그제서야 조용해지는 플랑이에요.
오죽하면 질까지 같이 위축돼서 멋쩍게 웃었을까요.
플랑은 명령에 거스를 수는 없으니 조용히 뒤에 있던 주전자에 찻잎을 넣었어요.
화는 나도 할 일은 하는 게 메이드는 메이드라는 건가 봐요.
“제가 언니를 따라가면 한동안 의뢰를 못 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너 혼자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아니면 아버지한테 양해를 구하고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 일이니까.”
질이 불편할 거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네요.
질이 라피아의 본가에 가게 된다면 의뢰만 못 하게 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간다고 가정한다면, 보호받는 처지가 될 테니 조금이라도 행동에 제약을 받겠죠.
“아가씨, 그건 제가 허락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마법학원 내부라고 해도 슬리브스터라는 자들은 어느 곳이든 그림자만 있다면 그곳에 숨어드는 자들이에요! 여기 계시겠다면 차라리 저도 여기 남아 아가씨를 지키겠어요!”
“그러던지, 질만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
한껏 소리치면서도 찻잎이 충분히 우러난 주전자를 들고 거실의 테이블로 옮겨오는 플랑이었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라피아는 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쟁반에 담아오는 찻잔의 수가 3개였거든요.
방금까지 질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질의 몫까지 가져온 게 의외였을 거예요.
“저는 상관없어요. 언니랑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누가 있더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러면 여기서 지내, 대신에 침대에서는 질이랑 같이 자야 하니까 미안하지만 바닥에서 자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다면.”
“예? 아가씨…. 진심이신가요?”
억지를 부리던 플랑은 너무나 쉽게 떨어진 허락에 얼떨떨해 했어요.
그럼에도 차를 따르는 그 손은 흔들림도 없었고, 찻잔을 넘치게 하는 일도 없었죠.
정말 제대로 된 전문가 같아요.
“생판 모르는 남이 감시하는 시선을 느끼느니, 너만 있어도 충분해. 질도 불편할 거고.”
“저만 있어도 충분하다니…! 아가씨…!”
역시 사람은 쉽게 칭찬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플랑은 갑자기 이상한 부분에서 정신을 놓고 차를 넘치도록 따라 테이블을 적셔버렸거든요.
“아! 플랑! 넘치잖아! 얘는 맨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니까?!”
“핫?! 죄송합니다! 메이드장이라는 직책을 달고서도 이런 실책을…!”
“메이드장? 이 언니 엄청 젊어 보이는데, 메이드장이에요?”
질의 의문은 당연하였어요.
메이드장이란 그 집안의 모든 메이드를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게다가 오랫동안 쌓아 올린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하죠.
그에 따라 보통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메이드장의 모습은 무게 있고 늙은 할머니의 모습일 거예요.
그런데 플랑의 얼굴은 최대한 늙었다고 봐도 30대가 안되어 보이고, 오히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외모는 메이드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죠.
“아, 상세한 소개가 아직이었네요. 본심은 라피아 아가씨를 빼앗아간 도둑고양이라서 단지 소개를 하기 싫었을 뿐입니다만.”
“아하하…. 그래도 언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걸요.”
그렇게 적대적인 시선과 말을 했는데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라피아가 눈치를 줘도 독설을 멈추지 않던 플랑이 잠깐 멈칫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어요.
한 3초 정도를 빤히 쳐다보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그제서야 말을 다시 이어갔죠.
“아까는 대략적으로 설명했기에 그저 시중을 드는 몸이라고 했으나, 이제는 같이 살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레이지 가문의 메이드장인 플랑이라고 합니다. 메이드들을 관리, 통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현자님이 직접 명령만 하신다면 전투도 암살도 마다하지 않는 몸입니다.”
메이드장이라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현자도 뒤에서는 꽤 무서운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전투와 암살이라니 가문에 속해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중 하나이겠지만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거나, 방어를 위한 수단이라거나….
보통의 사람들은 모르는 복잡한 문제가 여러 가지 있을 거예요.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알면 잔소리할 것 같은데.”
“기선제압입니다.”
“그럼 그것도 말하지 그래? 아직까지 내가 너를 한 번도 못 이겨본 거.”
“이 언니가 그렇게 강해요?”
“라피아 아가씨가 진심을 내지 않으셔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지르니트, 당신은 가뿐히 제압 할 수 있죠.”
“거짓말 하지 마, 인간이면서 내 비장의 기술을 버텨낸 녀석은 하나도 없었어. 너만 제외하고는.”
이 셋의 대화는 조금 길어졌어요.
의외로 제일 먼저 플랑이 하품을 하고 졸린다고 하기 전까지는요.
질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라피아가 자자고 하는 말에는 조용히 따랐어요.
그야 모두 다음날에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게 있네요.
시멜리 때도 그렇고, 아이펠슈에 때도 질은 탈리안 곁에 누군가가 있으면 화를 냈었어요.
그런데 왜 이번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조용히 있는 걸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