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마녀가 없는 동안에 (4)
* * *
그로부터 4일 뒤, 여전히 탈리안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질은 여전히 탈리안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걱정하면서도 꾸준히 실력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책이면 책, 연습이면 연습, 의뢰면 의뢰….
자신이 가능한 모든 것을 해가며 돌아올 탈리안을 기다리고 있었죠.
물론 이렇게 말하면 지금 옆에서 질을 지탱해주고 있는 라피아가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과 함께하겠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라피아 본인의 선택이었어요.
무엇보다 질이 라피아의 앞에서 탈리안의 이야기를 꺼낼 만큼 안 좋은 눈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라피아와 함께 지내는 도중이라면 그 시간에 집중했어요.
“언니 들어봐요!”
“으응? 뭘 들어봐?”
지금도 앉아있는 질을 라피아가 뒤에서 껴안은 채로 이야기 중이니까요.
그동안 질이 얼마나 라피아에게 거리감을 줄여달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알마 언니를 조심하라고 했었잖아요!”
“설마 무슨 일이라도 당했어?”
“그런 건 아닌데…. 오늘은 작은 상단을 호위하는 의뢰를 해야 했거든요? 근데,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세르디어한테 너 같은 상급 정령이 왜 나 같은 애랑 계약했냐면서 시비를 거는 거 있죠?”
한 달이 지나고도 남은 시간이었을 테니 흑기사가 돌아올 시기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흑기사한테 왜 질이랑 계약했냐고 물어보는 건 그 상황을 조금 지켜봐야 알 것 같네요.
“그러니까 그때 알마 언니가 말했던 내용이, 흑기사가 미궁의 심장? 이라고 하는 둠브링어랑 1대1로 싸울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마나만 봐도 나랑 계약할만한 정령이 아니라고….”
“둠브링어면 재앙급 몬스터잖아, 미궁의 몬스터들을 이끌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내가 알기로 마기노보다 더 위험한 녀석인데, 흑기사가 그렇게 강해졌어?”
“제가 봐도 많이 강해지긴 했어요.”
아무래도 오늘이 흑기사가 돌아온 날이었나 봐요.
한 달을 약간 넘는 기간 동안 흑기사가 정령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강해지기도 한 것 같고요.
“그래서 흑기사한테 그동안 뭘 했냐고 물어봤었는데, 진짜 딱 판을 짜놓은 것처럼 상단이 습격당해서….”
“푸흐흐, 그랬어? 그런 것 치고는 몸 멀쩡히 잘 돌아왔는데?”
“흑기사 혼자서 30명 가까이 되는 적을 상대했거든요.”
“너는?”
“저, 저도 노력했어요! 싸우는데 알마 언니가 계속 시비를 걸어서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요!”
질은 손짓을 더 해 설명했지만, 표현이 어려워지자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그 당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상단을 습격한 적들은 일주일 전부터 명성을 떨치고 다니는 신생 세력, 슬리브스터라는 노예상이었다고 해요.
적들의 구성은 고기 방패 겸 전투원인 노예들이 대부분이었고, 지휘를 하는 노예상은 10명이 채 안 되었어요.
노예라면 당연히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을 테지만, 보통 전투원으로 쓰이는 노예는 그것만으로도 일반인과 강함의 척도가 다른 거예요.
그런데 흑기사 혼자서 30명에 달하는 사람을 상대했다고 하니 보통 대단한 게 아니죠.
“노예가 최소한 30명이 넘게 있었다면, 거의 소규모 전쟁이랑 다를 게 없었겠는걸….”
스케일이 상단 호위라는 꽤 큰 의뢰이니 상단을 호위하는 인원이 질과 알마, 흑기사만 있었을 리는 없었어요.
질이 더 설명을 붙이는 것을 들어보면, 상단이 미리 고용해둔 용병도 있었다곤 하지만 상단의 사람들을 지키느라 바빴다고 해요.
노예상들의 목적은 물질적인 것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름만 읽어본다면 그들이 원하는 게 하나 더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죠.
“그쵸?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후방에서 싸우는데 앞에 뛰쳐나간 알마 언니 때문에 고생했다니까요? 보조하느라 엄청 바빴어요!”
“그랬어? 다친 곳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네.”
“애 취급하지 말라구요! 저 이래 봬도 마법으로 12명 정도 잡았으니까!”
질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라피아에게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어요.
정작 그 행동은 질을 놀리기 위함이라거나,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처럼 보였지만요.
그렇다곤 해도 몬스터도 아니고 사람을 12명이나 잡았다는 건 이전의 질에 비하면 상당히 큰 성장을 이뤄낸 거예요.
‘잡았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라피아가 눈썹을 찌푸렸지만, 어차피 자세 때문에 질에게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잡았다는 표현을 쓰는 거야? 뭐…. 죽였다는 말보다는 낫지만….”
“알마 언니한테도 말했었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앞으로도 힘들 것 같아요. 무서워서, 미안해서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도 있고, 게다가 억울하게 잡힌 사람들이잖아요. 풀어줘야죠!”
확실히 질의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다짐을 고려한다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고 싶을 거예요.
게다가 질의 말대로 이번에는, 상대가 노예로 잡혀버린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라피아의 감동 포인트는 어딘가 달라 보였어요.
“싸우는 도중에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생겼구나? 꾸준히 성장 중인 걸 보니까 이 언니는 기뻐.”
“언니는 칭찬의 방식이 잘못된 거 같아요. 어떻게,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나지?”
“으흠! 그래서 이렇게 내 품도 내주고 있고, 팔도 내주고 있잖아?”
확실히 지금 라피아의 모습은 질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해도 될 거예요.
한쪽 팔로만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뿐이지, 질은 라피아의 품 안에서 나머지 한 손에다가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있었거든요.
그 모습만 보고 있자면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를 절반씩 섞어놓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정말 괜찮았던 거야? 의뢰 도중에도 네 옆에 붙어있을 수 있는데 왜 굳이 혼자서….”
“느낌이라는 게 있었어요. 흑기사가 돌아올 날이라는 그런 느낌이. 그리고 의뢰에 언니가 같이 가게 되면 저는 할 게 없잖아요. 저보다 언니가 강하고, 항상 먼저 나서니까.”
“그럼 나한테 미리 말을 해도 됐던 거 아니야? 위험할 때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으음, 그것도 좋긴 하지만, 그래서는 긴장감이라거나…. 위기감을 느낄 수 없어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죠, 의뢰에 나가서 라피아의 보호를 받으며 싸우다간 혼자서 할 때보다 성장이 더뎌질 거예요.
라피아도 말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질, 앞으로 몇 시간 뒤면 12시 지나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문제를 내듯이 아무렇지 않게 꺼낸 라피아의 말을 듣고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질이었어요.
열심히 팔을 만지던 손도 멈춰선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을 뿐이었어요.
저번에는 답답한 마음에 생겨난 용기로 어떻게든 애써 모른 척하고 들이댔었던 것이었겠죠.
“언니가 제 부탁을 들어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이렇게 흡혈할 때마다 그러는 건….”
“싫어?”
바로 흡혈하는 건 아니지만, 라피아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곧바로 질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하지만 질은 평소처럼 흡혈을 시작하려는 줄 알고 움찔거렸죠.
그게 라피아가 보기에는 꽤 귀여웠을 거예요.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까 이제는 얼굴만 가까이해도 반응해서 움찔거리는 게 얼마나 귀엽겠어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도 재촉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니까 그제야 질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어요.
“그럼 저번처럼 이 자세에서 몸만 돌려서 할까?”
“언니 저번에 불편해했던 것 같은데요….”
“응? 아냐, 처음부터 누워서 하기에는 내가 못 참을 것 같아서 앉아서 한 거였거든.”
못 참는다는 건 그런 의미겠죠.
질이 보통의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거기다, 라피아 본인이 말하기로는 자신에게 귀여운 모습만 보여줬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 말대로 처음부터 침대에서 했다가는 라피아가 이성을 잃고 질을 덮쳤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어쩌면 저번에 질이 쉴 틈이 필요해서 억지로 떨어졌던 게 적당한 타이밍이었던 거였겠네요.
“그럼 지금은 괜찮다는 거예요?”
“한번 버텼던 거, 두 번이라고 못 버틸 이유는 없잖아?”
“무슨 자신감이에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골라봐. 흡혈 먼저? 아니면 다른 거 먼저?”
질은 말없이 일어서서 라피아의 팔을 잡아 이끌었어요.
많이 이동할 필요도 없었기에 질이 금방 도착한 곳은 항상 잠을 청하던 침대 위였죠.
그리고는 먼저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게 뭘 의미하는지 라피아에게도 확실히 정해졌을 거예요.
평소처럼 흡혈을 한다면 라피아가 빨기 편하도록 어깨가 드러나게 옷의 단추를 한두 개 풀었을 테니까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오늘도 만지는 건 안 되는 거야?”
누워있는 질의 위로 천천히 올라온 라피아는 작은 희망 사항을 물어봤어요.
질의 부탁이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질의 나이가 신경 쓰이지만, 라피아도 자신의 욕망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이른 감이 없지는 않아요.
흡혈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왔다고 해도 질이 이제부터 라피아와 해갈 것들은 전부 처음이고,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니까요.
그런데 질은 갑자기 위에 올라탄 라피아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 껴안았어요.
“…질?”
엉뚱한 질의 행동에 이름을 불러보지만, 질은 대답이 없었어요.
완전히 밀착되어서 라피아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 위에 올려져 있는데도 가만히 있었죠.
다만 질이 뭐를 하는지 라피아만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킁, 킁.’거리는 소리가 작게 나는 걸 봐선 냄새를 맡는 것 같았죠.
“조금 늦었지만, 언니한테서는 꽃 냄새가 나네요.”
“그야 항상 피를 입에 달고 사니까, 향수도 쓰고…. 근데 늦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다, 언니가 원하는 건….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라피아는 여전히 냄새를 맡는 질을 내버려두고 몸을 약간 떨어트렸어요
다음엔 아까는 엇갈렸던 얼굴을, 이번에는 겹치게 해서 입술과 입술을 포갰죠.
이전과 같이 처음은 잠깐 입술끼리 맞닿기만 하다가 곧 질이 입술을 건드리는 혀끝을 느끼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질척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흐으, 응…. 언, 니이….”
그렇지만 저번과 아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이번에는 조금 더 격렬했다고 해야 할까, 배려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둘이 내뱉는 뜨거운 숨 때문에 주변이 끈적이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라피아가 잠깐이라도 틈을 주면 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쉬려고 했어요.
“하, 후우으…. 언니, 조금만…. 천천히….”
“응, 안돼.”
“으읍?!”
질이 약간의 저항이라도 하려고 해도 제일 먼저 질의 양손을 한 손으로 잡아 머리 위에 올려버렸어요.
그대로 다른 한 손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턱을 잡고 다시 라피아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계속했죠.
쉽게 놔주지 않고 계속하던 라피아는 저항하려던 질의 몸에 완전히 힘이 빠졌는지 양손과 턱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하아, 하아…. 언니이…! 저번보다, 후으…. 길잖아요…!”
완벽하진 않더라도 약간이나마 만족한 라피아는 떨어져서 질의 반응을 관찰하려 했는데, 조금은 원망 섞인 말을 하네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질의 눈이 촉촉해져서는 곧바로 울 것같이 보였으니까요.
이에 상관하지 않고 다시 접근하는 라피아를 보더니 숨을 고르는 건지, 한숨을 쉬는 건지 모를 질은 그저 가만히 있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지?”
“흐읏?! 자, 자, 잠깐만요?!”
질이 놀란 건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어요.
라피아의 나쁜 손이 또다시 원피스의 치맛자락을 젖히고 안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안, 안 한다면서요?! 언니!! 앗, 히잇?! 잠, 뭔가…. 거기 만져지니까 이상한데요!? 언, 하으…. 으응?! 이건 싫어요…!”
라피아는 그저 만지고 싶은 부분, 그러니까….
질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만지고 있을 뿐인데, 질의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예민했어요.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은 라피아였지만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몇 번을 더 괴롭히면서 키스를 이어갔어요.
“아, 흑! 아, 안대…! 진짜, 그마안…! 흐긋!? 언, 니이…!”
라피아는 질이 정말 울기 직전이 되어서야 놔줬어요.
도중에 몇 번이고 질이 몸을 떨었지만, 라피아는 전혀 신경을 써주지 않는 모습이었죠.
그래도 허벅지에서 더 올라가고 싶은데 참는 것 같이 보였으니 질의 시선에만 그렇게 보였을 거예요.
이미 라피아는 충분히 참고 있던 거예요.
여기에 더해 도중에 몇 번이고 질이 라피아를 부른 탓에,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라피아는 입과 손을 떼고 목 쪽으로 얼굴을 옮겼어요.
“하아…. 흐으으…. 언니? 뭐 하는 거…. 하읏?!”
말을 제대로 이어가기도 전에 재빠르게 라피아는 흡혈할 때처럼 목에 입을 대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어요.
조금 뒤 라피아가 얼굴을 떼고 나면 그 자리엔 빨간 키스 마크가 생겨있었죠.
질은 라피아가 뭘 했는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내 거라는 표시라도 남겨둘까 해서.”
“표시…? 또 하는, 거에요? 아까도 그렇게…. 읏! 괴롭혀놓고오….”
이번에는 목이 아니라 쇄골, 쇄골이 끝나면 그 바로 아래에도 하나.
처음 겪어보는 느낌에 질은 갈 곳을 잃은 손을 라피아의 머리와 등에 올려뒀어요.
라피아가 마크를 새기는 일이 다 끝날 때쯤에, 질은 어느샌가 다시 라피아의 품 안에 안기듯 앉아있었어요.
“안 한다고 했으면서 실컷 괴롭혀놓고 이제는 얼굴도 안 보여주려는 거에요?”
“그럼 내 무릎 위에 앉아.”
바로 자세를 바꿔 라피아의 얼굴이 보이도록 앉은 걸 보면 얼굴을 보는 게 그렇게 좋은가 보네요.
게다가 괴롭힌 것도 금방 잊어버린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였으니까요.
저번에 라피아가 안아 들었을 때는 싫어했던 것 같은데요.
“계속할 거예요? 피는 언제 빨려고….”
질은 흐름이 끊겨 호흡이 평소대로 침착하게 돌아온 김에 흡혈은 언제 할 거냐며 물어봤어요.
하긴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죠.
애초에 지금의 질은 상당히 지쳐 보이기도 하고요.
“네가 더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면 해줄게, 나는 피를 빠는 것보단 이쪽이 더 좋아서 말이야.”
“제가, 더 원하면…?”
“피를 너무 자주 빨아도 문제라서 3일에서 5일 간격으로 늘린 거였잖아?”
남 듣기에 조금 부끄러울 말처럼 들렸겠지만, 라피아의 말에는 장난기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어요.
정말로 ‘네가 원하면 더 해주겠다.’라는 의미로 들려왔죠.
“그렇지만…. 그럼 언니 방에서 지내는 대신 제가 줄 만한 게 없는….”
“이걸로 충분하다니까.”
정말 하나하나 따지자면 이제는 흡혈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라피아가 원하던 관계가 되었는데 굳이 질의 피를 빨 이유가 없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대가를 받는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상할 테니까요.
“그럼 이번엔 정말 충분하니까, 오늘도 그만 해요…. 아까처럼 괴롭히고, 장난치면 정말 화낼 거니까요!”
그래도 괴롭힘 당한 건 한동안 꽤 언급될 것 같네요.
이렇게 넘어가는 걸 보면 나쁘지 않았다는 것 같기도 하고요.
“푸후흐, 그래그래. 같이 씻을까?”
“…혼자 씻을래요. 분명히 장난쳐올 거 같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쳇, 아쉽네.”
그런데 질이 벽을 짚은 채로 혼자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어요.
이런 새벽에 누가 찾아온 걸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