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돌아오지 않는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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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와의 일이 있고 나서, 질은 며칠간 계속해서 그녀와 같이 다녔어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라는 것 때문일 거에요.
지금도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이었어요.
“흐응, 마을이랑 가족까지 전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언니는 겪은 일 없어요?”
“나는 조금 잘 사는 집안이어서, 뭔가 잃었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벌어 먹고살 능력은 됐었으니까. 굳이 있다고 한다면 제르반밖에 없지.”
재앙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나 보네요.
확실히 알마의 말대로 본인 혼자서 먹고살 정도의 능력은 될 테니 재앙으로 잃은 것이라곤 제르반밖에 없겠네요.
다만, 그 시점이 좋지 않아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게 문제였죠.
하필이면 연애 중일 때 제르반이 죽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 응…. 미안해요.”
“괜찮아, 말했잖아? 한동안 집안에 처박혀있었다고. 빈말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괜찮아.”
알마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 얼굴은 훈련장에서 처음 봤을 때로 돌아와 있었어요.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죠.
“왜 그런 눈으로 봐? 진짜 괜찮다니까. 완전히는 아니지만 너한테 어느 정도 쏟아내기도 했고.”
“아하하…. 저 그때는 진짜 때리려는 줄 알았어요.”
“때리려고 했었는데?”
“네?”
알마는 왜 안 그럴 줄 알았냐며 질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창밖을 구경하고 있던 질은 당황해서 되물었지만, 알마의 표정에는 거짓 하나 없어 보였죠.
“설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는데 안 때릴 거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눈 하나 깜빡 안 했던 거구나? 후훗, 무슨 자신감이야 도대체?”
그러니 알마는 질이 웃길 수밖에 없었어요.
알마의 시선에서 질이 얼마나 바보 같은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을지.
“아니, 그야…. 저 사람 보는 눈은 꽤 있다고 생각해서…. 그럼 왜 안 때린 거예요?”
“…그냥, 넘어뜨리고 보니까 문득 생각나더라. 흔히들 말하잖아? 이제는 만나지 못할 그 사람이 내가 하는 행동을 본다면 잘했다고 생각해줄까…. 그런 가정을 세워보라고.”
생각보다 제르반과 알마는 깊이 연결되었었나 봅니다.
다시 침울해지려고 하는 알마 때문에 질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다시 창밖을 바라봤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거친 주변 풍경이 항상 푸른 수풀과 바다만 보는 질에게 있어서는 신기하기만 했죠.
“근데 너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무슨 말이에요?”
“예를 들면, 네 개인적인 일이 없냐는 거야.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내 약속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 단시간에 이루기 어려운 약속이니까.”
알마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단순한 이유에서였어요.
질이 알마와 함께한 지 벌써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거든요.
매일 매일을 의뢰로 보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태프의 적응에 힘을 썼으니 이상하다고도 생각할 거예요.
‘얘는 자기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왜 나만 따라다니지?’ 같은 의문들이 그렇죠.
“개인적인 일이라고 해도 지금 저한테는 할 일이 없어요. 제일 친한 소환수 겸 친구도 시간을 달라고 하고…. 탈리안 언니도 임무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탈리안 언니? 선생님이 아니라 언니라 부르는 거야?”
마법학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의문을 가질 호칭이기는 해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선생님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겁이 없다거나,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이 분명할 테니까요.
당장 일전에 질과 라피아가 탈리안의 강의를 엿보았으니 알 거예요.
탈리안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자신도 똑같이 그대로 돌려준다는 걸 말이죠.
그런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본다면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아, 저….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탈리안 언니랑 같이 살아요. 일단은 가족…. 이에요.”
“음, 으음~? 아니, 음…. 마법학원에 다니는 이상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말이야…. 그 마녀라 불리는 선생님이랑 가족이라니….”
“어쨌든,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하고 자주 집을 비워서 지금은 할 일이 없어요. 예전에는 며칠 간격으로 집에 돌아왔었는데…. 최근에는 아예 안 돌아오시네요.”
어쩐지, 이상하게 알마와 오래 붙어있다 했더니 최근에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었다는 이야기네요.
눈도 안 마주치고 쓸쓸하고 외롭다는 기운을 온몸에서 뿜어내는 질을 보고 있자니 불쌍하다 느껴질 정도예요.
새로 생긴 유일한 가족이 갑자기 모습조차 안 비친다면 이런 모습을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요.
“이런 말을 하는 건 미안하지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에요! …아니어야만 해요.”
그래서 그런지 알마가 좋지 못한 말을 하는 탓에 질은 그럴 리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까지 냈어요.
곧바로 잘못했다는 걸 눈치채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알마도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기분을 알마가 모르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그래, 미안해. 솔직히 나도 그 선생님이 쉽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그 선생님이 싸우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을 갖는 게 실례지.”
“언니가 싸우는 모습을 봤었어요?”
“강의에서 선생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녀석이 있어서, 한번 봤나? 대단했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는걸. 아, 다 온 것 같은데? 오늘은 어쩔래?”
감히 마녀의 실력을 의심하는 학생이 있었다니 겁도 없죠.
그 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질이었지만, 알마는 오늘 지낼 숙소가 더 중요한 것 같았어요.
“돈은 충분하니까, 방은 따로 잡을까요?”
“뭐야, 때리려고 했다니까 이제는 같은 방에 있기 무서워?”
마차가 멈춰서자 알마가 먼저 내려 손을 내밀었어요.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겠다는 의미겠지만, 질은 그 손을 잡지 않고 마차 안에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무안해진 알마는 손을 거둬 몇 번 쥐락펴락하더니 이내 마차 뒤쪽에서 짐을 꺼내 들었죠.
“그, 그런 건 아니구요….”
“아니기는, 이제 때릴 일도 없는데 왜 겁먹고 그래?”
때릴 일이 없다는 말에 질은 더 겁을 먹는 것 같았어요.
때릴 ‘일’이 없다는 거지, 때릴 마음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말도 되니까요.
만약 그럴 일이 생긴다면 때리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그렇지만 알마에게 계속 휘둘리기만 하는 건 싫었나 봐요.
“그럼 같이 잡던가요! 사, 상관없으니까…. 솔직히 저는 방 안 잡아도 되는…. 으앗?!”
덕분에 마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삐끗해서 중심을 잃어버렸지만, 질은 바닥에 쓰러지지 않고 알마의 품에 안겨있었어요.
휘둘리기 싫어서 큰소리까지 쳤는데 도움까지 받아버린 게 부끄러웠는지 바로 품 안에서 벗어났지만, 알마의 얼굴은 이미 재밌다는 것처럼 웃음이 가득했죠.
“거봐, 위험할 거라 했지? 그래서? 방을 안 잡으면 어디서 자려고?”
“…숙소에서 보여줄게요.”
알마는 1층은 술집, 2층은 숙소인 곳에 방을 잡았어요.
방 안에 도착한 둘은 바로 문 앞에 섰어요.
보아하니 질이 알마에게 열쇠의 힘을 보여주려는 것 같네요.
“이건 언니가 준 열쇠인데, 가본 적이 있다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 선생님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어이가 없겠지만, 알마는 생각보다 쉽게 수긍을 했어요.
그렇게까지 탈리안의 전투가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을까요.
자신을 칭찬하는 것도 아닌데 질은 ‘언니가 좀 대단하죠!’라며 열쇠의 사용 방법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사용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이렇게 열쇠를 꽂아 넣고 마나를 흘려 넣으면…. 어, 어라?”
“왜? 뭐가 잘못됐어?”
항상 열쇠를 꽂아 넣으면 문의 틈새에서 빛이 새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질이 마나를 흘려보아도 똑같았죠.
당황한 질은 계속해서 마나를 흘려 넣다가, 열쇠를 빼내서 다시 꽂아보기도 했어요.
점점 불안해지려던 질은 열쇠를 꽂은 구멍에서 마나가 새어 나와 공중에 머무는걸 볼 수 있었죠.
“열쇠가, 응? 이건 또 무슨….”
질의 의문은 곧바로 풀렸어요.
마나가 공중에서 형태를 이루며 점점 글씨로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탈리안이 남겨둔 일종의 편지같이 보였는데, 내용은 이러했어요.
《갑자기 나타난 마나 때문에 너무 놀라지 않았기를 바래요. 질, 이 메시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제가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뜻이겠죠.
아, 열쇠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나오게 해둔 것이니 오해하진 마세요.
어찌 되었든 저는…. 아마 베리아라고 하는 마군주와 한참 싸우고 있거나, 혹은 그녀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흔적을 지우며 도망 중일 거예요.
동료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아쉬운 사람들을 데려갔지만, 실력은 확실한 사람들이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이 세상에 질을 혼자 남겨두고 죽지 않을 거니까요.
동시에 리니스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당분간 동쪽에서 발주되는 의뢰는 하지 말고 안전한 곳에 가 있기를 바랄게요. 예를 들어, 기숙사가 아닌 라피아의 집이라거나….
그래도 집에 가서 지내고 싶다면, 이 메시지를 다 읽고 나서 마나를 다시 열쇠에 흘려 넣으면 문을 건너는 능력이 되살아날 거에요.
마지막으로, 질.
만약, 정말 만약의 경우에, 이 메시지를 읽고 시간이 꽤 흐른 뒤…. 어림잡아 2년이라고 하죠.
그때도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따로 적어둔 편지가 있으니 도서관에 가보도록 하세요. 큰 곳이 아닌, 작은 곳으로. 제가 가지고 다니는 책의 레플리카가 눈앞에 나타날 거예요.
그 레플리카의 사용법을, 질이라면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설명은 하지 않을게요.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겠지만, 그동안 건강에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면 좋겠네요.》
메시지를 다 읽고 난 질은 당황했어요.
다른 내용이라면 모를까, 자신이 곧 죽을 것 같이 써놓은 마지막 부분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려고도 했죠.
다시 한번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이 한순간에 질을 겁먹은 아이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충분했어요.
“괜찮아? 이거…. 내가 보면 안 됐던 거 아니야?”
“어, 어쩌…. 어쩌죠? 저 어떻게 해야…. 아, 라피아 언니한테 물어보면…!”
“잠깐…!”
질은 알마에게 질문하다가도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열쇠에 마나를 불어넣고 라피아의 방으로 건너갔어요.
너무나도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알마는 반응을 못 하고 질을 그대로 보내버렸지만, 당황한 만큼 질은 문을 닫는 걸 잊어버렸나 봅니다.
게다가 문에 열쇠도 그대로 꽂혀있었으니 알마가 따라가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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