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벨루아 알마 (7)
* * *
질이 보기에는, 알마의 싸움은 육체적인 힘에 의지하면서도 세세한 부분에서 절도가 있어 파괴적이면서도 수려한 모습이었어요.
지금껏 여러 명의 싸움을 지켜봐 온 질이었지만, 저마다 다 달랐으니까요.
탈리안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힘을 가진 절대자와도 같은 모습이라면, 라피아는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항상 전력을 내는 광전사의 모습이었죠.
항상 보게 되는 전투방식이 다르니, 질이 때마다 머리에 흡수하는 그 종류의 가짓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르반도 있었고, 마법학원에서 사귄 몇몇 친구도 그렇죠.
그렇기에 배리어를 벙커처럼 쓰는 방식의 전투를 하는 것도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어요.
이런 쪽으로 질의 머리는 이상하게 잘 돌아갔거든요.
“혼자서 몇 마리를 상대하는 거야?”
다만 이런 질도 알마가 여러 마리의 고블린을 혼자 상대하는 것에 놀라고 있었어요.
혹시라도 위험할까 봐 릴리아를 붙여주었던 자신의 배려가 쓸모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허무해진 거겠죠.
한 손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잡아 나무에 처박는 것으로 단번에 숨이 끊어지도록 으깨버리는 걸 보면 굳이 다른 표현이 필요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릴리아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씨뿌리기로 열심히 자연이 더 푸르게 되도록 도와주고 있었거든요.
“전부 나에 비하면 대단하네, 탈리안 언니를 따라잡으려면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알마와 릴리아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지만요.
그 둘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질도 상당히 많은 수의 고블린을 쓰러트렸어요.
배리어로 달려들었던 고블린의 수만 12마리.
과거형인 이유는 이미 그 고블린들이 모두 마나탄에 맞고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에요.
결론만 말하자면, 얼마 안 가서 리더를 제외한 모든 고블린은 죽거나 빈사 상태에 빠졌어요.
고블린들이 운이 안 좋았네요.
“자, 너만 남았는데 이제 어쩔래?”
그리고 알마와 고블린 리더가 마주 보고 섰어요.
알마의 질문에 리더는 분한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등에서 거대한 검을 꺼내 들었죠.
마법을 쓴다고 해서 근접전을 못 할 거라 얕보지 말아라, 그런 의미인 것 같네요.
“참교육, 해준다. 인간…. 암컷.”
“참교육? 저기 엎어져서 자고있는 네 부하처럼?”
“긴 말, 필요 없다. 암컷 결국, 장난감…! 그 이하의 것!”
짧은 신경전이 오가고 먼저 공격을 한 것은 고블린 리더였어요.
리더가 다른 고블린보다 몸집이 더 큰 거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휘두르는 대검은 그의 몸집보다 더 거대했어요.
그런 대검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휘두르는데 속도마저 상당히 빨라 피하기 어려워 보였죠.
그렇지만, 알마가 누구던가요?
보이지 않던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피하던 실력 좋은 전직 모험가예요.
알마는 대검이 자신에게로 향하던 때, 가뿐히 점프해서는 모습을 순식간에 감춰버렸어요.
정정해서, 고블린 리더의 눈에서만요.
갈 곳을 잃어버린 대검은 알마가 서 있던 자리 옆의 나무에 강하게 박혀버렸어요.
리더는 바로 알마를 찾아내기 위해 눈을 열심히 굴리다가, 자신이 휘두른 대검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챘죠.
“기어오르는 것도, 거기까지다. 암컷!”
“말할 때마다 암컷, 암컷! 짜증이 나게 하는 데는 세계 최고라 해도 되겠어!!”
바로 대검을 놓고 알마를 잡으려 했던 리더지만, 알마가 대검보다 느린 그 손길에 잡힐 리가 없었어요.
가뿐히 피해버린 알마는 곧바로 반격에 나서선 리더의 얼굴을 발로 차버렸어요.
리더가 맞을 때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졌다는 생각이 드는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지만….
몬스터잖아요? 저런 치명상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더라도 바로 일어서서 달려들게 뻔해요.
“멍청한, 일어서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쏴라! 쏘…! 크아악!!”
“아, 시끄러워! 별거 아닌 녀석이….”
발악하는 리더의 얼굴을 몇 번이고 짓밟고 차는 알마에요.
몇 대 안 맞았는데도 기진맥진해서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하는 리더를, 이렇게나 괴롭히다니.
그만큼 알마가 강했고, 몬스터가 약했다는 거겠지만….
조금은 불쌍해지기 시작했어요.
“푸훗, 후후흐! 더 발악이라도 해보시지! 응? 아까처럼 건방지게 나불거려 보라고!”
아마 알마에게는 상대방을 괴롭힐 때 제일 높은 쾌락을 얻는, 그런 성향이 있나 봅니다.
그렇지만 곧 반응이 사라진 리더에게 흥미가 식은 것 같은 모습으로 알마는 조용히 나무에 박힌 대검을 뽑아 들었어요.
“그래도 리더라서 이만큼 버틴 거겠지, 애썼…. 으큭?!”
“언니?!”
멀리서 배리어를 풀지 않고 구경하던 질이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대검을 내려찍어 목숨줄을 끊어내기만 한다면 모든 게 끝나는데,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선 대검을 들고 있던 알마의 팔에 박혀버렸거든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검이 무게가 있는 덕분인지, 리더의 목을 살짝 베어내곤 지면에 떨어졌어요.
“분명히 다 죽여놨는데…! 어떤 녀석이…!”
불시에 공격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알마는 화를 내지도 않고 침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봤어요.
화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지만, 그곳에는 활을 쥐고 있는 채로 엎어져 있는 고블린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죠.
리더의 명령을 듣고 마지막 힘을 쥐어짠 최후의 일격이었을 거에요.
급소에 맞지 않은 게 어디에요.
그래도 화가 나긴 했던 건지, 죽어있는 고블린을 보고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어요.
“지르니트! 돌아가자!”
말을 마치며 알마는 대검으로 리더의 목을 베어버렸어요.
혹시라도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덤벼들면 좋은 것이 없잖아요.
질은 모포에 말린 소녀를 업으려다가 잠깐이지만 모든 행동을 멈췄어요.
그야, 악취 때문이겠죠.
포션으로 샤워를 했다지만 포션의 냄새도 장난이 아닐 텐데….
온갖 냄새가 다 섞였다고 생각해본다면,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알마가 다가와서 대신 업겠다고 하니까 바로 업어 드는 질이었어요.
질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괜찮겠어? 힘들지 않아?”
“언니야말로 포션도 다 써버리셨다면서요, 그런데 화살에 다치셔서는…. 제 것 쓰세요. 아, 손이 부족해서….”
“내가 빼서 쓸게, 고마워.”
이 둘이 마차로 돌아간 뒤로는 모든 게 다 빠르게 지나갔어요.
구출 의뢰인데 고블린까지 토벌해버린 성적을 인정받아, 질과 알마는 의뢰 포인트를 두 배로 받아버렸고요.
구출한 소녀는 바로 마법학원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죠.
알마가 고블린의 화살로 인해 얻은 상처도 포션 덕분에 금방 나아버렸으니, 이만큼 잘 풀린 일은 없다고 봐도 될 거예요.
그리고 하루 뒤, 구출한 소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질은 바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알마와 함께요.
그런데 병실의 문 앞에 서서 고민하고 있으니, 갑자기 방 안에서 소녀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어요.
“들어가도 되겠죠…?”
“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식을 되찾은 소녀가 질과 알마를 바라봤어요.
그리곤 어딘가 얼빠진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죠.
방금까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는데,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오니 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오랜만이네.”
“오랜만이에요, 제리 씨….”
구해낸 소녀는 이전에 한번 같은 파티에 속해서 의뢰를 함께했던 제리였어요.
그렇지만 질은 막상 의식을 되찾은 제리와 마주하려니 불편했나 봐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한때는 용사 후보생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며, 자신감 넘치던 모습을 잃어버렸으니까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버린 모습에서 오는 차이가 무서운 거예요.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변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어서.
“날 구해줬다며, 고마워.”
그런 질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건네오는 제리에요.
예전이었다면 구해줘도 쓸데없는 오지랖이라며 한 소리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이런 변화에도 질은 어색한 것 같았지만, 질의 관심이 가는 곳은 구출할 당시 보지 못했던 한쪽 눈을 가리는 붕대였어요.
“그 눈은….”
“이거? 실명은 아닌데,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실명은 아니라니 다행이에요….”
실명은 아니라는 말에 질은 안도의 한숨을 아주, 아주 작게 흘렸어요.
눈까지 실명되어버린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지금도 질이 제리를 대하기 어려운데 신경 써야 하는 게 점점 더 늘어만 가네요.
“왜 그렇게 서 있어? 여기 와서 앉아. 옆에 있는 그, 이름이?”
“벨루아 알마.”
“응, 벨루아 씨도 서 있지 말고 앉아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상냥함과 배려에 질은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제리가 맞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자신을 구해주었기에 이렇게 잘 대해주는 것이라곤, 이전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절대 납득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제리의 말에 조용히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제리 씨, 몸은 괜찮아요?”
“너랑 벨루아 씨가 구해준 덕분에, 그 지옥 같던 곳에 있을 때보단 훨씬 나아. 다시 한번 말할게, …고마워.”
이미 팔이랑 다리가 한쪽씩 없는데, 괜찮냐는 말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하는 제리였어요.
“아니에요, 그런…. 입장이 반대였더라도 언니였다면 구하러 왔을 거잖아요.”
“…응, 그랬겠지. 그랬겠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없어. 정말로…. 고마워….”
하지만 그 미소도 점점 옅어지며, 제리의 얼굴이 어두워지려고 했죠.
그래서였는지, 알마가 치고 들어와 제리에게 질문을 했어요.
좋은 어시스트에요.
“갑자기 미안하지만, 의뢰 관련해서 물어봐야 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데…. 괜찮을까.”
“아, 어,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구해줬는데 어떤 질문이든지….”
덕분에 제리의 얼굴은 다시금 약한 미소를 되찾았어요.
물론 의뢰에 관한 내용을 물어본다고 했으니 곧바로 어두워질 것은 예정된 기정사실이지만요.
“고블린들에게 잡힌 이유랑 고블린 리더가 있던 이유.”
“…그건, 그냥 내가 모자라서. 그뿐이에요.”
역시 바로 고개를 떨구고, 손으로 이불을 꽉 쥐는 제리에요.
그곳에서의 일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거겠죠.
하지만 알마는 그런 제리를 배려하거나,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오히려 더 몰아세웠다고 봐도 될 거예요.
“자세하게 말해줘야….”
“어, 언니! 일단 제리 씨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
보다 못한 질이 말리려고 했지만요.
그 도움이 무색하게, 제리가 질의 손을 붙잡았어요.
제리는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지 약간 휘청이며 쓰러지려 하길래, 질은 마음을 졸이며 다시 침대로 몸을 기대게 해주었죠.
“괜찮아! 대답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괜찮아….”
“제리 씨….”
“조금 길어질 거니까, 저기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 마시세요. 몸이 이래서는…. 꺼내줄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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