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벨루아 알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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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는 굴의 입구에 고블린 파수병 대신, 다섯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어요.
그렇게 높은 나무는 아니라 어느 정도 자라난 묘목이었지만, 그 굵기가 고블린 하나씩은 들어갈 것 같은 크기였어요.
나무에는 몇 가닥의 넝쿨이 걸려있었다는 것과 사람의 얼굴 비슷한 것이 달려있었다는 것만 뺀다면 보통의 나무와 다를 게 없겠네요.
“…넌 소환수 관리 잘해야겠다.”
“그으렇죠? 어쨌든 들어가요, 얼른 구해내야죠!”
“잠깐만, 소환수가 넝쿨로 굴의 입구를 막는 것도 할 수 있어?”
알마가 먼저 들어가려는 질을 불러세우더니 이런 말을 하네요.
아마 밖에 나가 있는 고블린을 막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을까요?
의뢰를 끝내거나, 도망치다가 굴 밖에 나왔는데 공격당하면 그것만큼 곤란할 게 또 어디 있겠어요.
“가능할 거예요.”
“입구를 완전히 막진 말고…. 우리가 나갈 구멍은 만들어줘, 위쪽에.”
“할 수 있지, 릴리아?”
자신 있냐는 질의 부름에 릴리아는 세차게 고개를 상하로 흔들었어요.
그리고는 손의 넝쿨을 땅속으로 박아넣고는 곧 무수한 넝쿨을 굴의 입구 주변에 만들었죠.
알마의 주문대로 위쪽으로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뚫어놓고요.
“이렇게 작은데도, 대단하네….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될 소환수야.”
알마는 잘했다는 의미로 릴리아의 머리에 해당하는 꽃잎 부분을 쓰다듬어 줬어요.
그 행동에 질이 놀라서 알마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 손은 꽃잎에 닿아있었어요.
“어, 괜찮…네? 다른 사람이 만지면 화내고 그러던데….”
그리고 질의 예상과도 달리 릴리아가 화내거나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죠.
질이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라피아나 다른 누군가가 만지려다 화를 입었었나 보네요.
그렇지만 알마에게는 오히려 그 손길을 더 오랫동안 받으려고 하는 몸짓을 했어요.
“나는 마나를 가지고 있어도 평소에 힘을 쓸 때 아니면 묵혀두기만 하니까, 이럴 때 가끔 나눠주면 좋아하더라고.”
“괜찮아요? 고블린들하고 싸우기 전일 텐데….”
“나는 싸울 때 마나를 쓴다고 해도 조금씩만 쓰니까 괜찮아, 이래 보여도 양 조절도 해가면서 나눠주고 있는 거고…. 너한테도 좋잖아? 그렇지, 릴리아?”
이번에는 스스럼없이 이름까지 부르는데, 릴리아는 거부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어요.
마나를 릴리아에게 넘겨주는 것도 별로 상관은 없어요.
알마나 릴리아나 어찌 되었든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이고, 마나를 누가 어떻게 사용하든지 일단 전투에 사용될 테니까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가자.”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처음 봐요.”
“그래? 내 마나가 좀 맛있나 봐.”
“마나에도 맛이 있어요?”
“잡담은 그만하자, 이제 굴 안이니까 조용히 움직여야 해.”
알마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정석을 들어 빛을 내고 앞을 비췄어요.
실라보다 현격하게 좁고 기다란 굴이 빛에 밝혀지며, 상당히 더러운 것까지 눈에 다 보이게 됐어요.
비단 더러운 것만 있는 건 아니기에, 질이 보기에는 조금 자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힘들다면 나 혼자 가도 돼.”
코와 입을 틀어막는 질을 보고서는 배려의 말을 건네는 알마였어요.
원래부터 혼자 하려던 의뢰였으니 알마가 질을 밖으로 보낸다고 해도 문제없는 일일 거예요.
오히려 질이 없는 편이 알마에게 편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질은 끝까지 해보겠다며 말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젓는 거로 대답을 대신 했어요.
“그래, 조금만 더 참아. 만약 고블린을 조우한다면 마차에서 말해줬던 대로 대응하면 돼.”
질은 마차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끄덕였어요.
이후 둘은 갈림길에 마주했죠.
한쪽은 엉성한 표지판이 있고, 한쪽은 피와 뼈가 굴러다니는 길이었어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예요?”
“…구출이 목적이니까, 이쪽.”
알마가 선택한 길은 표지판이 있는 곳이었죠.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갈림길은 세 차례나 계속되었어요.
마치 산 하나를 통째로 쓴 것처럼 일종의 미궁과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죠.
이게 진짜로 고블린 50마리가 만들어낸 굴인지 의심이 갈만한 수준이었어요.
그리고 잘만 걸어가던 그때, ‘틱!’하는 소리가 나더니 금속 여러 개가 서로 부딪히며 굴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죠.
알마인지, 질인지 누구 한 명이 고블린들의 경보 시스템 중 하나를 건드린 거예요.
“…들킨 것 같은데요?”
“…어, 그런데 이상해. 지금까지 오면서 고블린 한 놈 못 봤어.”
알마의 말대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처럼 굴 안은 조용하다 못해, 벌레 한 마리 기어 다니지 않았어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었죠.
“그래도 구출해야 할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찾은 것 같네, 혹시 모르니까 릴리아보고 우리 뒤를 봐달라고 해.”
“…알겠어요.”
질은 눈빛만으로 릴리아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알마는 릴리아가 뒤도는 것을 보고 바로 앞의 문을 살며시 열었어요.
그러자마자 악취가 스멀스멀 풍겨 오는 것이, 알마가 ‘으….’같은 신음을 내게 할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 악취라도 풍겨 오지 않았다면 알마의 예측이 틀렸다는 의미이니까, 힘들어도 참아야 해요.
“…윽, 지르니트? 너는 안 들어오는 게 좋을 거 같아.”
방과 굴 사이를 막고 서있는 알마는 방 안의 풍경이 질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어요.
방 안쪽이 질이 본다면 안될 정도로 상당히 처참한 꼴이라는 거겠죠.
“네? 어째서….”
“말 들어, 금방 데리고 나올 테니까. 착한 아이잖아?”
알마의 단호한 명령에 질은 조용히 대답하고는 릴리아의 곁으로 갔어요.
방에 들어온 알마는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 기절해있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어요.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악취는 심해져만 갔죠.
특히 몬스터들이 번식기에 들어가면 나는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났어요.
“심하게 당했네, 차라리 죽여주길 바랬을 텐데….”
알마의 말대로 쓰러져있는 소녀의 모습은 처참했어요.
오른쪽 팔은 팔꿈치부터 손까지 잘려 나가 있었는데, 고블린들이 장난삼아 한 일 같았죠.
그런데 고블린들이 어디 제대로 된 치료 방법을 알고나 있겠어요?
아니, 치료해준다는 발상 자체가 없을 거예요.
과다출혈로 죽지 않게, 불로 잘라낸 부위를 지져버린 거예요.
덕분에 피와 고름이 한데 모여 굳어서는 사람의 팔이 맞는지 의심이 들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죠.
“…무식하기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문제는 팔만 그랬다는 게 아니라, 왼쪽 다리마저 무릎 아래쪽으로는 비슷한 꼴이었다는 거에요.
이걸로 모험가 생활은 더 이상 해내지도 못할 거라고,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죠.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응급처치를 하려고 해도 기절해있어서 포션을 마실 수도 없는 상황.
“마시는 것보다 효율은 나쁘겠지만…. 포션이야 나중에 다시 사면 되는 거니까, 아까워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알마는 허리춤에 달린 작은 가방에서 포션을 전부 꺼내더니, 그대로 기절해있는 소녀에게 쏟아부었어요.
잘려 나간 상처 부위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맞아서 생긴 피멍이 있는 부분들.
포션이 닿자마자 소녀는 기절한 상태에서도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어요.
그냥 전신을 포션으로 샤워를 했다고 표현해도 될 거예요.
그래도 포션 샤워 덕분인지 소녀의 몸에 말라붙어가던 고블린의 여러 타액이 씻겨져 나갔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포션을 그만큼 많이 썼다는 이야기겠지만, 살려냈다는 사실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죠.
시간이 10분 정도 흘렀을까요.
방의 문을 닫고 들어갔던 알마는 의식이 없는 소녀를 모포에 둘러 업고 나왔어요.
“파, 팔이…. 다리가….”
질이 그 소녀를 보고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은 이게 전부였어요.
알마가 봤던 소녀의 몸 그대로를 전부 봐버렸거든요.
“걱정하는 건 무사히 탈출하고 난 뒤야, 나가자.”
질과 릴리아는 알마의 신호에 맞춰 들어온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어요.
릴리아의 능력으로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바닥에 넝쿨을 만들어두어 표식을 만들어뒀었거든요.
이는 혹시라도 있을 기습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어요.
묘한 각도로 세워져 있어 안쪽으로 들어올 때만 함정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게 헛수고라고 여겨질 만큼 굴은 조용했어요.
경보가 울리고 나서도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이 작은 문제는 굴 밖을 나와서도 변하지 않았어요.
“밖에서 매복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렇게 이상한 거예요?”
“당연하지, 고블린들이 자기들 둥지에 뭔가 남기고 떠날 리가 없잖아. 아예 처음부터 파수가 없었다면 몰라, 그것도 아니었고….”
질은 알마의 말에 이런 적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어요.
뿔 3개짜리 마기노가 나타났을 때였죠.
이상하게 조용하던 늪지의 기억이 되살아난 거였어요.
지금처럼 풀벌레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숲의 상태와 똑같았거든요.
“…마기노가 있는 거라면요?”
“불길한 소리하지 마, 이런 곳에 마기노가 있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저번에….”
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어요.
갑자기 날아든 커다란 화염구가 소리도 내지 않고 날아와서는, 주변의 땅에 떨어져 폭발했거든요.
뒤늦게 질이 커다랗게 모두를 감싸는 마나 배리어를 펼치며 마법을 막아냈지만, 화염구가 끝이 아니었죠.
작고 큰 돌멩이부터 촉이 녹슨 화살, 던지거나 쏘아낼 것이 없다면 냄새나는 오물이나 썩은 고기까지.
말 그대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어요.
“…다행히 마기노는 아니네.”
“어떻게 할 거예요? 이렇게 방어만 하다가는…!”
어찌어찌 질의 빠른 방어로 인해 다치지 않은 파티이지만, 이대로 방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게다가 마법을 써오는 걸 보면 고블린들을 통솔하고 있는 리더가 있는 것이 확실하니 쉬운 적도 아니죠.
분명 마나 배리어를 공략해내고 파고들 틈을 발견해낼 거예요.
“어떻게 하기는? 싸워야지, 이 녀석 좀 지켜주고 있어.”
“적어도 릴리아랑 같이 가세요!”
“…배려 고마워. 가자 릴리아!”
질은 공격이 뜸한 뒤쪽으로 배리어에 구멍을 내서 나갈 곳을 만들어주었어요.
알마와 릴리아가 빠져나가는 걸 본 질은 곧바로 배리어의 구멍을 메워내고선, 마법의 준비를 했어요.
준비라고 해봐야 있는 대로 주변의 마나를 전부 끌어모으는 게 전부였지만요.
곧바로 탈리안의 마나탄을 따라 한 마법을 사용했죠.
그대로 썼다가는 배리어에 막힐 게 뻔하니 쏘아낼 곳으로 구멍을 낸 뒤, 쏘아내고 다시 구멍을 닫는 식으로 사용했어요.
마냥 구경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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