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벨루아 알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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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다 벗고있어서 추워지려는 때가 되어서야 질은 알마와 함께 따뜻한 욕조 안에 들어가는게 가능했어요.
둘이 들어가도 욕조는 비좁지 않을만큼 컸었는데,여기서 마법학원의 대단함이 약간 드러났죠.
고작 욕실인데 보기만해도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놨으니까요.
그렇지만 알마는 매일 쓰는 곳이다보니 욕실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더 갔었어요.
질의 가슴이었죠.
“언니이,그만 노려보시면 안될까요…?”
질은 팔로 가슴을 가려놔도 포기할줄을 모르고 계속 노려보는 알마가 부담스러웠어요.
욕조에 몸을 전부 담그고도 입까지 담궈 거품까지 내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데,목욕이 아니라 벌을 받고 있는거라고 해도 믿겠어요.
“하아….언니,가슴에 귀천은 없어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아직 사회에 나가본 적도 없는 꼬맹이가.”
“으….그래도 작은게 수요가 있을수도 있잖아요?”
질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분명히 어떤 크기,어떤 모양의 가슴이라도 수요는 존재합니다.
다만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알마는 완전히 잠긴 몸을 어깨까지 물 밖으로 빼내고는 질을 보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너는 틀렸다.’고 말이죠.
“그래,수요는 있었어.내 어린아이같은 몸을 노리는 수많은 로리콘이라던가,이상하게 살만 뒤룩뒤룩 찐 돼지 새끼에!어쩌다 멀쩡한 사람을 만나도 이 몸으로는…!주변의 시선이 온통 상대방한테 집중될 거라고!!”
“앗,아….그으건….”
실제로 겪은 것 같은 경험담과도 같은 말에 질은 할 말을 잃고 매서운 알마의 눈빛을 피해 엉뚱한 곳을 바라봤어요.
이 상황에서 알마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절대로 불가능할 거에요.
그래서 조용히 상황을 회피하려는 질이 얄미웠는지,알마는 나이에 맞지 않게 손으로 애꿎은 욕조의 물만 쳐대며 다시 성질부리기 시작했죠.
그 기품이 넘치던 알마는 어디갔는지 궁금하네요.
“차라리 가슴이라도 컸으면!그런 비틀린 성욕과 관심,또 시선을 안받을 수는 있었겠지!너처럼말이야!”
“그,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분이 안좋았던 거에요…?”
얼굴까지 튀어 날아오는 물방울들을 손으로 막아내며 겨우겨우 물어봤으나,알마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무릎을 끌어모아 우울한 표정을 했어요.
훈련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미궁에서 너랑 만나고 몇일이 지났지?”
“세달 가까이 됐을거에요.”
“그럼 못해도 두달이구나.”
알마는 지금까지 그렇게 성내며 가슴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은 어디갔는지 모를 정도로 차분한 얼굴을 하며 욕조에 턱을 괴었어요.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아 조용히 있다가,고개를 기울여 질을 바라보고서는‘듣고싶어?’라며 속삭이며 말했죠.
욕조에서 한방울,두방울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질이 고민하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어요.
한참이나 말없이 알마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들어도 되는거에요?”
“제르반이랑 잘 알고지내던 사이잖아?정작 제르반은 너랑 인사하고도 매번 자기를 까먹는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말이야.”
열심히 고민한 끝에 들어도 되는 이야기냐며 물어본 질은 제르반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르반 오빠랑 관련된 일이에요?”
“응.관련 없는게 이상하지,두달정도지만 제르반이랑 몰래 연애중이었는걸.”
“…네?어?정말요?”
제르반과 비밀 연애를 하고있었다는 말에 질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야 이렇게 놀랄 수밖에 없었겠죠.
그를 자주 잊어버리고는 했지만 질은 학원 내에서 어쩌다 한번씩 제르반을 만나 인사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누가 달라붙어 애정어린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면,질이 모를 리가 없잖아요?
특히나 질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그 묘한 감정의 선을 놓칠 리가 없어요.
슬슬 관심이 동할 나이니까요.
“우리 둘 다 집안에 비밀로 하고 있어서,남들 눈에 띄면 안되니까 같이 있을수 있는 장소는 서로의 방밖에 없었거든.네가 모를 수밖에 없지.제르반이랑 같이 있는걸 본것도 아니고.”
“그렇지만,언니….미궁에서는 제르반 오빠랑 엄청 싸웠었잖아요.”
질의 말도 맞는 말이죠.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미궁의 모든 싸움은 경쟁이었어요.
이 마법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약간의 오해도 있었으니,그 오해만 풀린다면 문제될건 없죠.
“아~흐흥,약간 오해가 있었던걸 눈치채고는….겉으로는 틱틱대면서도 속은 귀여운 모습에 반해버렸지 뭐야?뭐,성격은 고사하더라도 걔가 워낙 잘생겼어야지.”
“제르반 오빠가 좀 잘생기기는 했었죠….”
질의 눈에도 잘생겼다고 보일 제르반의 얼굴이었다면,다른 이들의 눈에도 똑같이 보일 것이 분명했어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그만큼 제르반의 얼굴이 대단했다는 거죠.
“아무튼,좀 짧은 기간의 연애이기는 했어도 통하는게 많더라.성격도 성격이지만….서로 배려해주는거라던가,일상적인 부분이라거나,몸의 궁합이라거나,응….그런것들.”
“몸의 궁합…?”
“뭐야,이제와서 모르는 척이라도 하려고?밖에서‘나는 꼬마 아닌데요~’라고 했으면서.”
순진한 얼굴로 애매한 표정을 짓는 질이 못마땅했는지,시치떼는 거냐며 놀리는 알마였어요.
알마의 말처럼,꼬마가 아니라며 엄청 소리질렀었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정말 모르는 척을 하려는건 아닌건지,질은 말을 더듬으면서 알마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했어요.
“꼬,꼬마….아니에요….그렇지만 아직,부끄럽다고 해야할까….책으로는 읽어봐서 알지만,비슷한걸 겪어보고 나니까,알던거랑은 너무 달라서….”
따뜻한 물의 온도 때문인지 질은 얼굴부터 어깨까지 빨갛게 물들어있었어요.
알마는 그런 질을 보고 귀엽다는 듯이 볼을 살짝 꼬집었죠.
“비슷한거말이지…?그럼 벌써 혼자서 해봤겠구나?그럼 내가 참견할건 아니지.”
“그,그래서!오빠랑은 어땠는데요?”
제르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는지 황급히 말을 돌려버리네요.
정말 궁금해서 그런거겠죠.
갑자기 이야기하다가 다른 길로 새버리면 그만큼 김빠지는게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온 이상 다음에 나올 말은 불보듯 뻔합니다.
두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몸의 궁합도 확인해보는 좋은 관계를 가졌던 둘이었지만,결국에는 이별의 시간에 치여버렸다는 이야기일 거에요.
“어쨌든 제르반하고 잘 사귀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떠도는거 있지?직접 보기 전까지는 진짜 소문인줄 알았어.”
직접 보기 전까지라고 말한다면,장례식을 봤다는 말일 거에요.
하지만 질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던가요?그렇다면 알마를 보지 못했을 수가 없을 거에요.
이런 이상함을 질도 눈치챈거같아요.
“장례식에 왔었어요…?저 몇일이나 거기 있었는데도 언니는 못본거같은데요?”
“나는 장레식 마지막날에 잠깐 갔던거라….응?너도 장레식에 참석했었던거야?”
장례식은 몇일간 계속 이어졌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서로 말하는 것을 보니까 얼굴은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장소가 엇갈렸다거나,잠시 쉬는 사이에 왔다 갔다거나,그런 우연이 일어났을 거에요.
만약 봤었다면 훈련장에서 봤을 때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요.
아니면 장례식에서 스쳐지나가듯 본 적이 있었기에,훈련장에서 익숙하다며 말을 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저는 당연히 제르반 오빠의 장례식에 빠지면 안되는….저는,오빠한테….구해졌었던 일이 있으니까요.…미궁에서.”
자신이 장례식에 왜 빠지면 안되는지 설명하는 질이지만,그 이유가 한참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일부러 마기노로부터 구해졌던 사실을 숨기는 거네요.
“너도 참,수상할 정도로 착한 아이네.”
알마는 고개를 뒤로 젖혀 욕조에 기대고선 눈을 감았어요.
자신만의 감상에 빠진듯한 모양이었죠.
“…착한,아이일까요?”
질은 아까부터 말을 더듬었는데,고개가 이리저리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어요.
이마를 오른손으로 짚는걸 보니 현기증이 온거같아요.
쌓여있다기에는 많지 않지만,그동안의 일로 대화를 하느라 너무 오랫돈안 욕조에 잠겨있기는 했어요.
“충분히 착하다고 생각해,몇 달 전에 구해진 일로 장례식까지 참석할 성격이라면.”
비슷하게 감상에 젖어있는듯한 질의 모습에 알마는 위로하듯이 말을 건넸어요.
그야,알마의 입장에서는 질이 착하다고 보일 수밖에 없을 거에요.
자신의 남자친구의 장례식에 자기보다 오랫동안 있었다고 하는 아이가 착하지 않게 보일 리가 없어요.
오히려 자신은 마지막날에만 잠깐 얼굴을 비췄을 뿐이니까요.
“…해요.저는,오히려….”
“응?작아서 안들리는데.”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도 못하는 질의 상태에 알마는 고개를 들어 질을 바라봤어요.
대충 보더라도 욕조에 완전히 기대 팔로 눈을 가리는 질이 위태하게 보였을 거에요.
그런데도 작은 소리로‘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대답하는 질이었어요.
“너무 오래 있었지?슬슬 나가자,천천히 일어서 넘어진다.”
“고마워요….앗?!”
먼저 욕조에서 나간 알마가 손을 뻗어 질을 꺼내주려 했지만,바닥의 물기 때문인지 질은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발이 미끄러져버린 거에요.
“…조심하라니까,넌 내가 힘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돼.”
다행이라면,알마가 제르반과의 싸움에서 마법에 몸의 힘으로만 대항했을 정도의 실력가였단 사실이었어요.
자신보다 약간 더 큰 키를 가진 질을 다치지 않도록 끌어당겨 중심을 잡은 뒤에 욕조에 걸터앉게 했거든요.
욕실만 아니었다면, 질이 알마에게반할 모습이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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