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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67화 (67/189)

〈 67화 〉 저녁 식사였던 것 (1)

* * *

어느덧 해가 저물어 탈리안이 약속했던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는 질과 탈리안 이외에도 한 명이 더 있었죠.

“야, 마녀.”

이렇게 탈리안을 부를 사람이라 봐야 라피아밖에 없죠.

의자에 앉아 한쪽 팔로 턱을 괴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탈리안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 반대편에서는 탈리안이 하찮다는 듯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저는 탈리안이라는 이름이 있는데요, 뱀파이어.”

“지도 이름으로 안 부르면서…. 뭐 이름은 됐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이전부터 이 둘의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당연하다 못해 일상적이지만, 뻔뻔스럽게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이에요.

“모르는척하지 말고 설명이나 해, 내가 왜 너희 둘이 식사하는데 껴서 불편해야 되는 건데.”

라피아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요.

화해를 했다면, 둘이서만 식사를 했어도 되는 일이니까요.

“지금 질의 호의가 불편하다고 하는 건가요? 질이 속상해하겠어요.”

“너 이 자식….”

탈리안이 말을 돌리기 위해서 핑계로 댄 것은 질이었죠.

라피아를 불러들인 게 아마 질이었나 봅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불편한 이 자리에 라피아가 동석할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질이 요리를 해준다고 하니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게 당신이 할 일이에요, 뱀파이어.”

“둘이 화해했으면 둘이서 먹으라고! 난 너랑 있는 거 불편하니까!”

그렇지만 정작 질은 둘의 싸움에 안절부절못하며 제대로 요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크게 싸울까 봐 걱정이 되는 거겠죠.

라피아의 입으로 이전에 몸싸움을 한 적이 있다고 듣기까지 했으니까요.

“라피아 언니, 한 번만 참아주면 안 될까요? 요리 다 돼가는데….”

그래서인지 잠깐 하던 요리를 멈추고 앞치마의 끈을 풀러, 앞까지 와서 부탁하는 질이었어요.

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질의 부탁에 라피아의 기가 한층 꺾이는 듯했지만요….

“질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돌아가겠다고 소리나 지르고 있는 꼴이라니.”

“마녀…. 오늘따라 나한테 유독 공격적인 거 아니냐? 싸우자는 거야?”

“설마요, 질과 제 사이를 중재해준 것에는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해야 될까요.

그나마도 탈리안이 관심이 없다는 투로 완전히 싸움을 걸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게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그건 그거, 당신이 질을 맛있는 피주머니로밖에 안 보는데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러니까, 화해시켜준 건 고맙지만 질투 중이라 견제를 하고 있다는 거네요.

그 견제가 제대로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피주머니로밖에 안 본다고? 그랬으면 너랑 질이 화해하는 데 도움을 줬을 거 같아?”

“탈리안 언니! 라피아 언니한테 싸움 거는 건 그만둬요!”

보다 못한 질은 계속해서 싸움을 거는 탈리안에게 소리쳤어요.

질이 화내는 걸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지만, 그건 감정이 격해졌던 탓에 주체하지 못했던 화였죠.

하지만 이번에는 답답한 마음에 그만두게 하려고 낸 화였으니,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탈리안도 질의 말에 움찔하고는 시비를 거는 것을 멈췄어요.

“뭐,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줘야지. 누구처럼 외관이 작다고 해서 마음까지 작은 편이 아니라서. 나는 크고 넓잖아? 여기저기.”

라피아가 이상한 제스처와 쓸데없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조용히 넘어갔을 것 같은데요.

항상, 한마디가 아쉬워요.

덕분에 탈리안은 지금껏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라피아에게 시선을 똑바로 하며 눈웃음까지 지으면서 말했어요.

“…라피아? 밖으로 따라 나오세요.”

“어, 언니! 왜들 이러는 거예요?!”

탈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나가는 건 질도 막아설 수가 없었어요.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라피아 역시 마찬가지였죠.

어쩔 수 없이, 질도 따라 나가면서도 요리가 식는걸 두고 봐야만 했어요.

집의 바깥에는 언제 준비해둔 건지 모를 훈련장이 만들어져 있었어요.

질이 학원에서 탈리안과 함께 연습했던 장소와 같은 훈련장이 말이죠.

“일부러 날뛰기 좋게 마나 배리어까지 준비해두셨네.”

“질이 지낼 곳을 부숴버리면 안 되니까요.”

“말은 바로 해, 마녀. 처음부터 도발한 건 너였잖아?”

“이제 와서 그건 상관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건 그렇죠.

계속 시비를 걸어대던 탈리안의 책임도 있지만, 조금만 참으면 저녁 식사가 빨리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요.

그사이를 못 참아서 키가 작다고 놀렸으니….

탈리안은 말을 마치고는 배리어를 작동시켜 훈련장과 집을 분리했어요.

“그래서?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승패는 어떻게 가르려고?”

“당연하죠, 이 배리어 안에서는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먼저 기절하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하죠.”

“좋아, 맞고 울지나 말라고!”

한순간에 눈빛이 바뀐 라피아는 바로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날아올랐어요.

어떻게 공격할지 생각 중인 것 같았지만, 탈리안은 그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어두운 빛을 띤 마나의 탄환을 손에서 쏘아냈죠.

“그렇게 마구잡이로 쏘아댄다고 맞을 것 같냐!”

“마구잡이로 보인다면, 당신의 실력도 거기까지인 거겠죠!”

라피아는 탈리안이 손짓을 한번 하더니, 빗나갔던 마탄이 되돌아와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봤어요.

10개가 넘는 공격이 계속해서 따라다니니 이보다 더 귀찮은 건 없다고 생각해도 될 거예요.

그렇지만 그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건지, 라피아는 바닥으로 빠르게 내려와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날기 시작했어요.

뒤따라오던 마탄은 전부 바닥에 처박혀 폭발과 함께 먼지를 일으켰죠.

“마녀의 공격도 별거 없네!”

그리고는 바로 이전처럼 검을 만들어내 탈리안에게 달려들었어요.

기세 좋게 달려든 라피아는 일순간 위로 날아올라 아래로 내려치듯이 검으로 찍어누르려고 했죠.

공격은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봐도 되었을 거예요.

탈리안이 막아내지만 않았다면요.

“제가 접근전에 약하다고 생각했으면 큰 착각이에요!”

“칫…! 하지만 마녀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탈리안은 자신의 마나를 두른 팔로 검을 막아냈어요.

얼마나 단단해 보였냐면, 금속이 아닌데도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였어요.

곧이어 탈리안은 반격에 나서 무릎으로 라피아의 옆구리를 차버렸어요.

보통 마법만 쓰던 탈리안에게는 보기 어려운 육탄전이었죠.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요.

흑기사의 교육이 한창일 때, 실리아가 똑같이 교육했었잖아요.

“크흑?! 마녀 이 자식이!!”

꽤 멀리까지 차여 날아간 라피아는 바닥에 구를뻔한 걸 힘들게 자세를 잡으며 일어섰어요.

그리곤 검의 날을 맨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그어버려, 꽤 많은 양의 피를 바닥에 흩뿌리게 되었죠.

이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질뿐이었어요.

아니, 뭐….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다가 이렇게 싸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기는 하지만요.

어쩌겠어요? 사이가 나쁜걸.

“이것도 막아낼 수 있는지 보자고!”

“그런데, 라피아? 당신의 재생능력은 얼마나 좋은가요?”

한차례 도약해 공중에서 공격해오는 라피아에게 질문하는 탈리안이에요.

저 같아도 당황하겠네요.

자신이 공격당할 위기에 뜬금없이 상대방의 재생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물어본다니.

“뭐?”

“죽지 않는다고는 해도 몸에 장애를 안고 살게 되는 건 불쌍하잖아요?”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럼 사양 않고 공격할게요.”

탈리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 라피아는 공중에서 균형감각을 잃더니 그대로 지면에 굴러버렸어요.

“이 정도도 문제없다는 말이겠죠?”

“큭, 하아…! 너, 으윽…!”

자신의 뒤에 쓰러져있는 라피아에게 이래도 괜찮냐며 되묻는 라피아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몸을 하고 있었어요.

왼쪽 팔 하나가 통째로 뜯겨 나간 것처럼 사라진 상태였거든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를 상황에 라피아는 일어서려다가 고통 때문에 다시 쓰러졌어요.

바닥은 이미 라피아의 피로 흥건해져,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어요.

“언니?!”

질이 놀라 소리쳤지만, 라피아는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서 호흡을 가다듬었어요.

“후으, 흐으…. 윽. 질, 걱정하지 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지면에 굴러 온몸이 먼지와 피투성이인 사람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게 이상하겠지만요.

그럼에도 질은 라피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상처 부위에서 조금씩 살과 뼈가 자라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봤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회복 속도를 기다려줄 탈리안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수비적이었던 탈리안은 태세를 바꿔 덤벼들었어요.

라피아는 검을 고쳐 쥐고 빠르게 날아오는 마탄을 쳐내고선, 이어 탈리안의 주먹을 맨손으로 받아냈어요.

“이 꽉 물어라!!”

그리고는 이제 막 재생된 팔로 탈리안의 얼굴을 가격해버렸죠.

이번에는 탈리안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이게 사람의 얼굴이 맞으면서 나는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갈 소리가 났거든요.

아무래도, 이 싸움이 끝나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겠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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