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65화 (65/189)

〈 65화 〉 별거 (4)

* * *

탈리안의 선물은 나가자마자 라피아가 제일 먼저 생각해낸 것으로 사기로 했어요.

라피아가 생각해낸 것이 질에게는 벅찬 물건이었는지 계속해서 싫다며 다른 선물을 고르자며 떼를 썼지만, 질리지도 않는 라피아의 추천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야만 했죠.

그 뒤로는 질의 기분을 풀기 위한, 라피아가 실컷 놀기 위한 데이트가 이어졌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사과를 하기로 했던 다음날이 되었어요.

“질, 준비는 됐어?”

“이거, 진짜 꼭 해야 되는 거예요?”

질은 손에 든 상자를 바라보며 부끄러운 듯이 말했어요.

아마 탈리안에게 줄 선물 같은데, 건네주면서 뭔가 하기로 했나 보네요.

이렇게 부끄러워할 정도면 뭘 하기로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예요.

“어제 잠들기 전에 미리 해봤었잖아,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으으…! 보고 웃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걱정 마, 가서 세팅하는 건 도와줄 테니까!”

세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꽤 노력이 들어가는 걸 하려나 봅니다.

이렇게 준비했다면 탈리안이 삐진 것을 풀어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탈리안 언니, 지금 시간이라면 강의실에 있을 텐데….”

“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오히려 네 귀여움을 알릴 기회 아닐까?”

“…놀리는 거예요?”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서 말하는 것 같은 라피아였지만, 질은 볼을 부풀리며 짜증 섞인 말을 했어요.

완전히 빵빵해진 볼을 본 라피아는 쿡쿡 찌르는 장난까지 치고, 놀리기는커녕 진심이라고 말하면서 질을 더 부끄럽게 했어요.

신기하게도 그 말에 볼에 가득 찬 공기를 빼고는 열쇠를 집어 든 질이었죠.

“…됐어요, 언니 강의 끝나려면 10분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해요?”

“강의실 옆에 탈리안 전용 개인실이 있지 않아?”

“그래도 멋대로 들어가기엔….”

“정작 널 보면 엄청 좋아할걸? 강의 끝나면 적당히 내가 데려올 테니까, 넌 가서 준비하고 있어.”

질은 탈리안이 좋아할 거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히고는 라피아와 함께 건너편에 넘어갔어요.

앞에 보이는 강의실의 문 너머로는 한창 탈리안의 강의가 진행 중인 소리가 들려왔죠.

바로 어제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탈리안이었지만, 강의를 진행 중인 그 모습은 생각보다 무덤덤해 보였어요.

문에 달린 작은 창문 너머로 ‘그런 일이 있었던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걸 볼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빤히 보고 있으면 탈리안에게 들킬걸?”

“어쩌면 이미 들켰을지도 몰라요. 언니는 대단하니까…. 어쨌든, 저 먼저 가 있을게요.”

“같이 가야지, 혼자 할 수 있겠어? 게다가 곧 강의 끝날 시간이라 빨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아, 으응…. 네.”

결국,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라피아의 도움을 받기로 한 질이었어요.

이 둘이 열심히 준비할 동안은 탈리안이 어떤 수업을 하고 있는지 보도록 해요.

생각보다, 마녀라고 소문이 나 있는 유명세 때문인지 빈자리가 없네요.

게다가 졸고 있는 학생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일전에 뿔 3개짜리 마기노가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삼뿔이라 하지 않는군요.

나름대로 질과 사이가 좋다고 어필하고 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재앙 이래 마기노가 틈틈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뿔 3개짜리는 워낙 보기 힘든 개체이기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지역으로 의뢰를 수행하러 나가거나, 여행을 갈 때는 충분히 조심해주시길 바랍니다. …뭐, 여러분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빠를 테니 이미 알고 있겠지만요.”

답지 않게 학생들을 걱정하는 모습이 또 새롭네요.

평소에 보이는 탈리안을 떠올리자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감정을 갖지 않아 차가운 모습만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요.

의외로 타인을 걱정해주기 쉬운 성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랬기 때문에 질을 구해주었던 걸 수도 있고요.

“탈리안 선생님, 선생님이 마기노를 통솔하는 마군주라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요?”

그런데, 이 눈치 없는 학생은…. 겁이 없는 걸까요.

탈리안에게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용기가 상당하다고 해야 할지,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이것 보세요,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다 이 학생에게 집중되고 있잖아요? 수군거리는 소리는 덤이고요.

곧바로 탈리안에게 향하기는 했지만요.

“이름이…. 벨페트 하이네 학생이었죠? 만약 제가 정말로 마군주였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당신의 목숨을 앗아갔을 거예요. 조금 더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네요.”

“아니라는 거 알고 물어본 거고, 선생님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너희들?”

탈리안의 대답에도 기세가 꺾이는 일 없이, 오히려 한층 더 건방진 태도로 주변의 학생들을 둘러보며 큰 강의실이 울리도록 말하는 하이네에요.

몇몇 학생이 작게 킥킥거리는 소리는 들려왔지만, 그렇다고 하이네에게 돌아오는 대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탈리안은 작게 숨을 내쉬고선 하이네를 힘없는 눈으로 노려봤어요.

“하이네 학생, 그렇게 마군주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다음 강의 전까지 마기노 관련 샘플과 함께 레포트를 작성해서 가져오세요.”

“…예?”

그리고 예상외의 돌발적인 과제에 하이네는 당황해 웃긴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약간 갈라졌으면서도 쉰 목소리로요.

“문제없겠죠?”

“마기노 관련 샘플이라 하시면….”

“그건 하이네 학생, 본인이 알아서 구해오셔야죠.”

웬만하면 과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지만, 마기노와 관련된 샘플이라 하면 대부분 위험한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마기노와 싸운 여파로 인해 생겨난 크레이터나, 마기노가 죽어 남긴 마기의 잔재, 혹은 그 신체 일부 같은 것들이죠.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죽으러 가라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말과 같아요.

“마기노는 시체만으로도 주변 동료를 끌어들이는 특징이 있는 거로 아는데요…?”

“네, 해오세요. 오늘 강의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서, 선생님?!”

다급하게 불러세우는 그 말에도 전혀 멈추지 않고, 책상의 물건을 챙겨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탈리안이었어요.

끝까지 ‘다른 학생들에게는 안 이러셨다면서요!’라고 소리치는 하이네가 있었지만….

선생님을 놀려먹으려면 이 정도 위험은 생각하고 행동했어야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이네를 포함해서, 이 학원에는 꽤나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미 모험가 직을 하고 있다가 입학한 학생의 수도 꽤 되니까요.

어린 나이에 재능만을 가지고 입학에 성공한 질과 제르반의 경우가 특이했던 거죠.

“…응? 당신이 왜 여기에?”

그런데 강의실의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옆에 서 있는 라피아를 보고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어째선지 눈동자를 여기저기 굴려 주변을 살펴보는 듯했어요.

“뭐야, 꽤 괜찮아 보이…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질도 와있는 건가요.”

역시 날카로운 질문이에요.

보통은 라피아 혼자서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거겠죠.

라피아 역시 그럴 필요도 없고요.

“날카로우셔라, 따라와. 질이 너한테 미안하다고 선물하고 싶은 게 있다는데.”

“질이? 선물을? …으흠! 어디 있죠?”

지금까지 힘없이 죽어있던 탈리안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이에요.

언행은 평소와 다름없는 듯했는데, 질이 와있고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요.

어쩌면 지금만큼은 질보다 어린아이 같아 보일 수도 있겠어요.

“네 개인실에, 마땅히 기다리고 있을 곳이 없더라고.”

“잠가두었을 텐데…. 열쇠를 쓴 건가요.”

“물건을 훔치러 간 것도 아닌데, 뭐 어때서?”

라피아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무례한 짓이기는 하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기다릴만한 장소가 있던 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요.

탈리안이 이번만 이해해주길 바라야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웬만하면 자제해주세요.”

“질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들어가 봐. 나는 누구 안 오나 지켜볼 테니까.”

개인실의 문고리를 잡은 탈리안은 망을 본다는 말에 문을 여는 것을 멈췄어요.

라피아를 뭔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바라봤죠.

“지켜본다고요? 뭘 준비했길래…. 남이 보면 안될 거라도 있는 건가요?”

“남이 보면 닳아.”

“…닳는다고요?”

“엄청 귀엽거든.”

“하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말은 이렇게 해도 방금 내뱉은 한숨에는 약간의 기대가 들어가 있었어요.

들뜬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귀엽다는 말에 반응한 것 같았죠.

그래서인지 문을 여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어요.

“…이건, 질…? 그 모습은….”

“아, 어, 언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질의 모습을 확인한 탈리안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어요.

어떤 모습을 했는지 몰라도 탈리안이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면 꽤 볼만한 모습일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탈리안의 눈에 질이 어떤 모습을 하든 귀엽게 보일 게 당연하겠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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