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일상 속의 불청객 (7)
* * *
“너, 이름이 뭐야?”
“언니는 어떤 사람이에요?”
질은 아이펠슈에의 말에 답하지 않고 되려 질문을 해왔어요.
이게 그건가요? 상대방의 이름을 알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하는 게 예의라고 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으면 대답해주기는 해야죠.
먼저 움직인 건 아이펠슈에였고,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서먹하게 있으면 아쉬운 것도 아이펠슈에니까요.
“대답은 안 하고 질문을 하네, [S+] 랭크 모험가 아이펠슈에.”
“저는 지르니트 페어차일드에요.”
아이펠슈에는 질의 이름을 듣고 나서 ‘흠, 흠.’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는 얼굴을 살피더니 또 다른 질문을 해왔어요.
“그래, 지르니트. 왜 그렇게 풀 죽어 있는 거야?”
“저 때문에 제르반 오빠가….”
“제르반은 누구야? 걔가 왜?”
“절 도망가게 하고, 제르반 오빠는 마기노랑 싸우다가….”
제르반이 스스로 희생한 일은,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계속해서 언급하는 걸 보면 상당히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 되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이펠슈에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하네요.
“그래서? 그게 다야?”
“…그게 다라니, 말이 심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빈정거리며 말하는 아이펠슈에의 말에 질 역시 표정이 좋지 못하게 바뀌었어요.
사람이 죽어서 슬프다는데 그게 다냐니, 화날 만하죠.
자신을 위해 희생해준 제르반의 행동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거예요.
“슬픔에 잠겨있을 시간에 용기를 내서 일어나고, 다음에는 마기노를 만나면 죽여버릴 각오를 해. 그리고 그 각오를 이뤄낼 만큼 연습을 하는 게 낫지 않아?”
상황만 놓고 따져본다면 올바른 말이에요, 올바르기만 해서 문제가 되는 말이지만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 말이지만, 또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이 없죠.
질에게는 듣기 안 좋은 소리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일까요? 질은 약간은 가시 돋친 말을 했어요.
“언니는 [S+] 랭크니까 말로는 쉽겠죠….”
“말로만 쉽다고? 네가 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 하나 죽었다고 그렇게 침울해져서는, 복수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이야.”
그 가시 돋친 말로 인해서 두 배는 더 빈정거리는 말이 돌아올 줄은 몰랐겠죠.
아이펠슈에가 섬세함이 부족하긴 합니다.
질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 이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는 거겠죠.
“언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마기노가 다 빼앗아갔다구요! 아빠랑 엄마! 동생! 마을! 이제는 알던 오빠까지!! 저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간 그 괴물을 상대하는 무서움이 뭔지 모르잖아요!!”
질의 말대로, 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좋을 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못하죠.
그럼에도 아이펠슈에는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질을 몰아세우기 시작했어요.
키에서 나는 차이가 그 말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는데, 말을 이어감과 동시에 한 걸음씩 다가왔으니….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오~오, 대단해! 마기노는 무서워하느라 앞에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마기노를 손쉽게 때려잡는 [S+] 모험가한테는 이렇게 큰소리를 내고 말이야!”
“그, 그건…. 언니가, 제 기분을 생각하지도 않는 말을 하니까…!”
하지만 웬일인지, 평소의 그 겁 많던 질이 그 모습에 주춤거리면서도 약간 소리를 높여 반박하기까지 했어요.
처음 겪어보는 아는 사람의 죽음이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는 거겠죠.
“그래서 홧김에 저질렀다? 내가 네 목숨을 노리지 않으니까? 빼앗아간 게 없으니까?”
“…언니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지만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펠슈에에게 지친 건지, 질은 그 진의를 물어봤어요.
왜 이렇게 모진 말을 하는지, 제르반을 욕보이는 말을 하는지,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지를요.
질문을 듣자마자 아이펠슈에는 1cm의 거리를 놔두고 얼굴을 가까이했어요.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진의라기보다는, 끝에 몰린 질을 더욱 한계까지 몰아세우기만 하는 말이었어요.
“제르반이 죽은 게 과연 마기노의 탓일까? 아니! 약한 네 탓이야. 모든 게 약해빠진 너의 잘못이지. 분수에 넘치는 것을 얻으려고 했기에 생겨난 사고이고, 그 원인의 중심은 결국 너라는 거야.”
“저도, 저도 충분히 노력했는걸요….”
더 이상 대꾸를 하기에도 지쳤다는 듯이 질은 고개를 돌려 땅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그마저도 아이펠슈에에게 들렸을 거예요.
그렇기에 다음으로 쏟아낸 말도 질이 그동안 해왔던 노력의 가치를 재는 듯한 의심의 말이었죠.
“네가 말하는 충분히 노력한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너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과 용기, 그리고 재능. 하지만 모든 어리광을 받아주는 탈리안이 있으니 절실하지가 않아, 무엇보다…. 탈리안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니 곁에 있는 거겠지만….”
“뭐라 했어요?”
질은 짧은 순간, 마지막에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말을 들었으나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듣지 못했어요.
어차피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해줄 아이펠슈에가 아닌 걸 알아서 일찌감치 포기해버렸죠.
시선을 피하고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있기에 질은 모르겠지만, 아이펠슈에는 묘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어요.
“글쎄, 뭐라고 했을까? 안 알려줄 거야. 말했다간 나랑 탈리안이랑 대판 싸울걸? 그래도 네가 바란다면 네 썩어빠진…. 아아~ 돌아와 버렸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조금 더 했으면 됐을 것 같은데.”
아쉽다는 투로 말하며 아이펠슈에는 질에게서 떨어져 아무 일도 없었다는 척을 했지만, 탈리안을 속일 수는 없었어요.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살피더니 곧바로 아이펠슈에에게 달려들었죠.
그렇다고 해를 가하려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짓을 했는지 캐묻기 위해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한 행동이었어요.
“이 마나…. 아이펠슈에! 또 쓸데없는 짓을!!”
“자, 잠깐!! 이건 이 꼬마가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서 장난 좀 쳐본 거라고!”
이에 아이펠슈에가 기겁을 하며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주변에 흩날리는 마나만 보아도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어요.
질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본다면, 아마 탈리안에게만 이 마나가 보이고 있을 거예요.
랭크가 높은 만큼 질이 그 마나를 보기엔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겠죠.
“제가 없는 동안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지, 장난을 쳐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당신의 같잖은 도움을 받은 존재는 결국엔 파멸의 끝으로 달려가는 걸 지금까지 제 눈으로 몇 번을 봤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알았어, 미안해! 근데 저거 진짜 꺾이기 직전이었다니까?!”
질을 ‘저거’라고 표현하며 삿대질까지 하는 아이펠슈에를 보고 탈리안은 안 그래도 화난 상태에서 더 발끈했어요.
그러면서 질을 한번 보고는 걱정되는지 다가가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했죠.
겪어본 적 없는 격한 걱정에 질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는지 완전히 동그래진 눈으로 탈리안을 봤어요.
탈리안이 이렇듯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을 본 것은, 일전에 도서관에서 아비와 대화 할 때나 봤던 거니까요.
“질을 저거라 부르지 마세요! 질, 괜찮아요? 뭔가 듣기 싫은 말들을 듣진 않았어요?”
“조금 듣긴 했지만, 괜찮아요….”
“아이펠슈에, 당신 저랑 맺었던 동맹을 파기하려고 하는 건가요? 감히 질에게…!”
조금이라도 들었다는 말에 매섭게 노려보는 탈리안이에요.
아이펠슈에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전부 알고 있는 느낌이네요.
게다가 노려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마나를 모아 공중에 수많은 마법진을 전개했어요.
위협의 용도라고 믿고 싶지만, 기분이나 표정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에요.
“미안하다니까?!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다가 말았잖아?! 와, 와아…. 진짜 중증이네…! 어쩌다 저, 아니 어쩌다 지르니트한테 홀린 거야?”
지면부터 하늘까지 가득 메울 수의 마법진을 본 아이펠슈에는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했어요.
분명히 아까까지는 도중에 끊겨서 아쉽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만 같은 탈리안에게 겁먹는 모습은 보기 안 좋네요.
“홀린 게 아니에요! 그리고 질, 이거 받으세요.”
“이건….”
“…스플래시 밤이에요. 제르반의 옷 위에 놓여 있었어요.”
탈리안이 건넨 스플래시 밤은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어 터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어요.
마법의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이는 분명 제르반이 걸어놓은 것이 분명할 거예요.
그걸 보자마자 다시 눈가가 촉촉해지는 질이었어요.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서 스플래시 밤이 터지지 않게 마법을 걸어두었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들 거에요.
“제르반 오빠의 손에…. 오빠는요?”
“…, …저는 남은 마기노가 있는지 이 일대를 살펴볼 거예요. 질은 돌아가도록 해요. 힘들면 아이펠슈에를 붙여줄 테니까요. 그리고 아이펠슈에? 마기노의 냄새를 봐선 이번 일은 베리아의 소행인 것 같으니, 이제는 재판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탈리안은 질의 질문에 굳이 대답해주지 않고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했어요.
침묵만으로도 어떤 대답인지 알아들은 질은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죠.
굳이 대답을 듣지 않더라도 머리로는 이미 제르반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있을 때, 그 희망이 깨지는 대답을 듣게 되면 또 다르죠.
다만 탈리안은 질이 울기도 전에 아이펠슈에를 보고 재판에 다시 출석하지 않겠다 하느라 보지 못했어요.
“나를 왜 붙여? 그리고 베리아? 그럼 아비한테도 전해둬야 하잖아, 지르니트를 봐줄 여유 같은 거 없어.”
“…쯧, 어쩔 수 없네요. 질, 이리 오세요. …질?”
“저거, 아니! 흐흠! 지르니트 또 운다.”
아이펠슈에가 말한 것도 있겠지만, 질이 대답하지 않아 이상함을 느낀 뒤에야 스플래시 밤을 품에 안고 우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집에 실리아를 보내놨어요. …가서 생각을 정리해두세요.”
울고 있는 질을 몇 분간 토닥여준 탈리안은 일어서서 발로 지면을 한번 차더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문을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실리아가 건너편에 서 있는걸 보고, 질은 스스로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갔죠.
질을 실리아에게 맡긴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탈리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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