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일상 속의 불청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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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이 집에 돌아간 뒤로 황궁에 출석하기 위해 문을 건넌 탈리안.
혼자 집에 남아있을 질을 생각하면, 탈리안은 그것만으로도 무거워진 발걸음을 쉽게 떼는 것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온 세계의 사건·사고에 간섭할 힘과 영향력이 있는 황궁에서 부른 만큼, 탈리안이 질의 옆에만 붙어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탈리안이 도착한 곳이 어디냐면, 황궁의 열린 도서관이라는 장소였어요.
황궁에 들어올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들어와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에요.
그 규모는 잠깐의 변덕으로 있을 곳을 만들어두기 위해서 만들었던 탈리안의 도서관보다 훨씬 컸어요.
어림잡아 3배에서 5배까지.
뭐 탈리안이 마음만 먹으면 황궁보다도 더 큰 도서관을 짓는 거야 무리도 아닐 테니, 이렇듯 크기에 관심조차 주지 않고 책을 보러 가는 거겠죠.
집에서도 책, 도서관에서는 낮잠 시간 외에는 책, 강의실에서도 책장 빼곡하게 정리되어있던 책.
어지간히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은데, 이곳에 와서도 책을 읽으려 하다니 대단해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여기에 마암석에 관련된 정보가 실린 책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이 도서관이 크기가 꽤 커서 그런지, 한참을 찾아도 탈리안이 원하는 책은 찾기 어려웠나 봐요.
결국에는 도서관의 사서에게 가서 물어보네요.
“저기 계단 뒤에 약간 어두운 복도가 보이시나요? 그곳에서 특히 큰 책장의 두 번째 칸에 있을 거예요.”
“황궁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인데 어두운 복도라니, 재앙 때문에 돈이 부족한가 보죠?”
“말도 마세요,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다고 다 거절당하고 있으니까요. 이러다 문 닫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니까요? 여기서 쫓겨나면 또 쫓겨났냐고 어머니한테 등짝 스매시 당할 거 같은데…. 완전히 잘못 취직했어요….”
“아, 그렇군요….”
약간은 상대방이 기분 나쁠 정도의 말투로 말했는데도, 사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황궁의 관계자가 듣는다면 좋지 않을 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에 빠르게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는 탈리안이었어요.
어두운 복도의 책장 앞에 선 탈리안은 책을 집으려 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내쉬었어요.
‘차라리 아까 그 여자가 하는 불평불만이나 더 들어줄 걸 그랬네요.’라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죠.
“뭘 그렇게 중얼거려? 타알~리안.”
왜냐면 탈리안의 옆에는 그림자 속에서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성인 남성 뺨치는 키의 여자 때문이었어요.
일전의 아비처럼 탈리안을 숨겨오던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친근하다는 듯이 이름을 불러왔으니까요.
그나마 탈리안의 머리에 얹어지는 그녀의 손이 완전히 틀어진 관계는 아니라는 걸 증명해줬어요.
“제일 보기 싫은 얼굴 중 하나를 또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죠, 아이펠슈에.”
“그렇게 또 튕기기는, 반가우면 반갑다고 말하는 게 어때?”
“제 질문에나 답해주세요.”
질문에 답하지 않아서인지, 바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펠슈에의 손을 쳐냈어요.
탈리안이 따가울 정도의 세기로 쳐냈기에 아이펠슈에는 다른 손으로 문지르면서도 웃음기를 잃지 않았어요.
오히려 탈리안을 귀엽다는 듯이 쳐다봤죠.
“그야 이번 심판대에 올라갈 그, 누구더라?”
“시멜리.”
“그래, 그 시멜리라는 여자애! 걔가 날뛰지 못하도록 경비를 서는 역할을 맡게 되었거든. 내가 여기서는 무려 [S+]급 모험가라니까?”
“뻔뻔스러운 얼굴로 거짓말을 하다니…. 그게 전부가 아닌 거 알고 있어요.”
“뭐야, 내 모험가 랭크에는 신경도 안 써주네…. 하긴~ 네가 언제 나한테 관심이나 있었을까. 들어가서 설명해줄게, 따라와.”
그리고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어, 다른 빈자리에 다시 꽂아 넣는 아이펠슈에에요.
그 행동에 탈리안은 의문 하나 제기하지 않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마치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책이 꽂히자마자 책장이 크게 진동하며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더니 오른쪽 공간으로 비켜섰어요.
황궁이니 이런 기능을 가진 비밀의 문 하나쯤은 있어도 문제가 될 건 없죠.
책장 안쪽으로는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이 있었는데, 나선의 형태로 되어있어 끝이 보이질 않는 지하로 이어져 있었죠.
먼저 아이펠슈에가 먼저 내려가고, 탈리안이 그 뒤를 따라 내려갔어요.
“리니아 가문은 도착해있나요?”
“아아, 아…. 그게 좀 골치 아프게 돌아가서, 마암석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게 리니아 가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확증은 없지만 ”
“리니아 가문에서?”
“황궁이나 다른 가문에서도 그렇듯이 그동안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던 건 아닐 테니까, 뒤로는 뭐 마군주 중에서 하나가 리니아 가문의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고도 하던데?”
“만약 정말로 마군주가 배후에 있다고 한다면, 그녀밖에 없겠네요. 마암석은 그렇게 쉽게 만들 물건이 아니니까요.”
“응, 뒤에서 가문을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어쨌든 가주인 크리스 리니아는 이 지하의 방 어딘가에서 정상회담에 출석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은 결백하다며 열심히 반론 중이라던데?”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혐의를 벗어냈겠죠.”
“그래도 만년 이인자 신세인 가문의 위세를 떨어트리지 않으려면 그렇게 발악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뭐 이미 가주의 딸이라는 게 큰 사고를 쳐서 이미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겠지만.”
“그래서 더 의문이네요. 이런 일에 굳이 저를 부를 필요가 있는 건가요? 시멜리는 여타 귀족들의 자제를 살인한 죄목만으로도 그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텐데요.”
“그거에 대해서는 일개 모험가인 내가 해줄 말이 없어, 알고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봐.”
한참을 더 내려가야만 할 것 같던 계단의 중간에 멈춰선 아이펠슈에는 자신의 옆에 있는 문을 열었어요.
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것은 환한 불빛이 반겨주는 기다란 복도였죠.
“벌써부터 뚫린 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하는 돼지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탈리안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펠슈에에요.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소란스러운 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거든요.
“이해는 하는데, 사고만 치지 말아 줘. 나는 아직 안 들켰으니까 말이야.”
“속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겠네요.”
아이펠슈에는 탈리안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아주 살며시 토닥거렸어요.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라며 말을 덧붙였지만, 조용히 한숨만 내쉬는 탈리안이었어요.
“어? 뭐야, 이번엔 손 안쳐내는 거야?”
“쳐냈으면 좋겠나요?”
“아니아니!! 손 닿는 게 괜찮다면, 한 번만 껴안게 해줄래?! 너 진짜 인형같이 생겨서 한 번쯤은 안아보고 싶었거든!!”
“그건 거절할게요. 들어가기 싫어서 시간 좀 끌었지만, 슬슬 가도록 하죠.”
부탁을 거부당한 아이펠슈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탈리안의 뒤를 따라갔어요.
먼저 간 탈리안이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재판소가 자리 잡고 있었죠.
그 중앙에는 시멜리가 팔과 다리, 눈마저 가리개로 구속되어 쓰러져있었어요.
탈리안이 들어가자마자 반겨주는 건 시멜리의 안쓰러운 모습과 귀가 떨어질 것 같은 고함이었어요.
“그저 한 나라를 통치하는 가문의 자식이라고 해서 살인을 했는데도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것입니까!!”
“이미 결정 난 사안이오! 황궁의 명에 불만이 있다면 따로 이의신청을 하면 될 일 아니오!”
“결국은 지금 윤리를 떠나 권력에 굴복하시겠다는 말이 아니십니까!?”
“뒷돈을 처받고 이런 판결을 내린 게 분명하다!!”
“말조심하시오!! 감히 성스러운 황궁의 재판소에서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하다니 반역의 죄를 물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다시금 마녀에게 맡겨놓는다는 그 선택이! 도대체 어디가 죄를 씻을 기회가 된다는 것인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리니스 가문에게서 부당한 거래로 저 살인자를 살리려는 게 분명하다!!”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소!! 경비!! 당장 저자를 끌어내시게!!”
탈리안은 일전의 시장판의 재연과도 같은 현장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져 왔는지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어요.
게다가 자신에게 맡겨놓는다는 판결을 미리 내려놓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겠죠.
자신이 자리에 없는 사이에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이런 결정을 내놓았다는 것은… 마녀라고 불림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대놓고 모욕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어요.
“타, 탈리안! 참아! 참아!”
그렇기 때문에 탈리안은 짜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검은 마나를 줄줄 흘리기 시작했어요.
제어가 되지 않는 거겠죠.
뭐어… 그래도 다행히도 다시 이성을 붙잡았는지, 탈리안은 마나를 다시 주워 담았어요.
이게 가능한 일이라는 게 참 대단하네요.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이펠슈에에게는 신경 써주지도 않는다는 것도 대단하고요.
그래도 이제는 제대로 이성을 붙잡기도 했고, 감정에 지배당할 일도 없을 테니 잘 알아서 하겠죠.
마녀라 불리는 탈리안이잖아요?
그러니 걱정은 접어두고, 질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가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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