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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작은 마녀와 뱀파이어-43화 (43/189)

〈 43화 〉 이 파티원들에게 평화로운 휴식은 없습니다

* * *

“어, 뭐야 흑기사 너도 먹으려고? 다섯 명까지는 조금 양이 부족할 것 같은데….”

라피아는 다가온 흑기사를 보고선 준비된 요리의 양을 확인했어요.

곤란해 보이는 얼굴을 하면서도 더 준비할 방법이 없나 고민하는 걸 보면 흑기사하곤 나름 사이가 좋네요.

하긴 미궁에서도 같이 싸웠던 동료니까요.

“쓸데없는 걱정 마라, 지르니트가 맛만 보라고 해서 온 거다. 한 입만 먹고 나는 정령계로 돌아갈 거니까.”

“아, 그래? 그래도 자! 먹어봐.”

자신 있게 건네는 라피아의 숟가락에는 주황색의 걸쭉한 국물과 작은 고기 조각이 하나 올려져 있었어요.

얼핏 보기에는 비프 스튜 같은데 정령이 먹을만한 음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음식이네요.

조금 망설이는 낌새를 보이자 먼저 한입 먹어본 것은 질이었어요.

라피아가 흘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숟가락 아래를 받치며 손수 떠먹여 주었죠.

“…우음, 응? 와… 진짜 맛있어요, 언니! 고기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 게! 와! 국물도 고기가 들어갔는데도 하나도 안 느끼하고 진짜 담백해요!”

먹고 나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니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나 봅니다.

혹시라도 말하면서 입에 든 음식물을 흘리지 않을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한 손으로 가려놓고도 계속 말하려는 게 거짓말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흑기사 너도 먹어봐.”

“그, 고기는 빼주었으면 좋겠는데. 보니까 야채도 들어있으니까 그걸 주면….”

“뭐야 내 사역마는 잘만 먹던데, 요리한 보람이 없네.”

하지만 흑기사는 고기를 아예 못 먹는 것처럼 숟가락을 거부했어요.

아쉬워하는 라피아는 흑기사가 먹을만한 것을 살펴보기 시작했죠.

기껏 준비한 비프 스튜를 먹지 못한다는 말에 속상해하는 것 같았지만, 비프 스튜 말고도 준비한 음식이 한두 가지 더 있었거든요.

“…내가 고기를 못 먹는 것뿐이니까 야채로 주면 좋겠어.”

“비건 정령이라니…. 뭐 정령이 고기를 먹는 것도 이상한 이미지이긴 한데. 그래도 비건은 좀 그렇다.”

“비, 뭐?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입에 맞지 않아서 못 먹는 것뿐이야! 안 먹는 게 아니라고!!”

“아~ 못 먹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럼 쿠키라도 먹을래?”

고민에 고민을 더해, 라피아가 마지막에 골라 건네준 것은 작고 네모난 모양의 쿠키였어요.

여러 장식이 달린 작은 바구니에 담겨있어 먹기 좋게 보였었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먹기 좋아 보여야 맛도 좋다는 말.

그렇지만 라피아와 요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서먹한 친구 사이 같은 관계로 보였었는데 의외네요.

이렇게까지 잘한다면 질보다 더 실력이 좋을 수도 있겠어요.

“쿠키라면 먹을 수 있지, 그런데 이렇게 보니 꼭 하루 정도 자고 오려고 준비해온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군.”

“그렇게 보여? 의뢰가 힘들고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하면 되는 일이고… 좀 즐기면서 살고 싶으니까.”

바구니를 들고 있는 라피아의 손에서 흑기사는 별 모양의 쿠키를 가져가 오독거리며 씹기 시작했어요.

치아가 아프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단단함에 식감이 좋은 쿠키였죠.

“…먹을 만한데, 맛있어.”

“맛도 못 느끼는 정령에게 그런 칭찬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이는 라피아의 말대로였어요, 정령은 입이 있다고 해도 맛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 그 기능이 남아있지 않거든요.

간혹가다 입이 있어도 입으로 말하지 않고 직접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정령이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흑기사의 표정은 아주 약간, 억울하다는 듯이 보이네요.

“빈말이 아니라, 쿠키에 깃든 마나의 맛은 느낄 수 있으니까 맛있다는 거다. 마나는 만물에 존재하니.”

“그건 내 요리 실력이 좋다는 뜻이겠지?”

“물론.”

“너 임마, 은근히 착하네. 미궁에서의 모습은 싹 다 잊어버릴 것만 같아.”

엎드려 절받는 것과 다를 게 없지만, 칭찬이냐는 질문에 손쉽게 인정한 흑기사를 보고 새하얀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 라피아에요.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가 보네요.

“…흥. 지르니트, 마법진도 확실히 작동 중인 것 같고 나는 돌아가서 쉬고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다면 불러.”

“아, 응! 고마웠어, 세르디어.”

볼일을 다 봤다고 생각한 건지 흑기사는 스스로 소환을 끊고 정령계로 돌아갔어요.

점점 희미해지는 흑기사에게 손을 흔드는 질을 뒤로하고, 라피아는 텐트를 치던 두 명을 바라봤죠.

질이 마법진을 그리고, 라피아가 목책을 만든 뒤 저녁을 준비한 뒤인데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두 명은 아직도 텐트를 다 만들지 못하고 있었어요.

기껏해야 뼈대를 지면에 박아놓은 게 지금껏 이 둘이 한 일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한숨부터 나오네.”

“근데 크기를 보니까… 저 텐트 2인용 아니에요? 나머지 두 명은 어디서 자요?”

“그야 불침번이지, 설마 밖에서 사이좋게 4명이 한 번에 잠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

“그, 그건… 저희 마을에서는 캠프를 할 일이 없다 보니까… 알아볼 기회도, 생각도 없었어요….”

삐질 거리며 말하는 질의 모습에 피식 웃은 라피아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며 제리와 시멜리에게 다가갔어요.

“내가 할 테니까 가서 밥이나 먹어.”

“뭐? 할 수 있거든? 이런 것도… 아니, 됐다. 알았어.”

“정말 가도 되는 거지? 그렇지?”

“…어, 응.”

밥을 먹으라는 말에 갑자기 기뻐하며 들뜬 걸음으로 질이 있는 곳까지 가는 시멜리를 보니, 아마도 일을 대충 한 것 같네요.

아무리 전투를 하지 않았다곤 해도 텐트를 친다는 게 힘도 써야 하고, 복잡한 일이라 힘들었을 텐데 설렁거리듯 텐트를 만드는 척만 한 것 같아요.

이는 한참 동안 텐트와 씨름을 하다가 조금 남아있던 체력까지 다 써버린 제리를 보면 알 수 있었어요.

“거기 앉으면 돼요, 라피아 언니가 직접 돌을 깎아서 앉기 편하게 했으니까.”

“아아아, 살 것 같다. 이제야 진짜 쉬는 느낌이야…. 응? 아, 고마워.”

“결과가 나빴더라도… 고생하셨으니까요.”

제리에게 비프 스튜가 담긴 그릇을 내어주면서도 은근히 비꼬는 질이에요.

가시가 돋친 말에 혼나는 개가 낑낑거리는 듯한 소릴 짧게 낸 제리였지만, 바로 스튜를 흡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만큼 힘들었다는 거겠죠.

오늘 하루 사고를 많이 쳤으니까요.

“꼬, 흠! 작은 주인님, 나는?”

“시멜리 씨는 손이 없어요? 알아서 드셔야죠. 텐트도 제대로 못 세워놓고 대접받길 바라는 거예요?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주제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제리로서는 질이 지금까지 독한 성격을 숨겨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말일 거예요.

그 정도로 시멜리도 당황해 동태 눈깔로 질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펜던트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억눌려 겁먹던 소녀는 어디 가고 이런 험한 말을 내뱉는 소녀가 온 건지 당황할 만하겠죠.

“너, 성격 장난 아니구나?”

“그럴 리가요! 제가 얼마나 여린…!”

“아냐, 지르니트. 너 몸이 자라고 나서 좀 당돌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 미궁에서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땐 겁많은 어린애였는데 말이야.”

“라피아 언니까지….”

한껏 부정하려던 질의 말을 끊고 들어온 라피아였어요.

라피아의 뒤에는 정말로 딱 2명 정도만 들어갈 텐트가 만들어져 있었죠.

“앗, 차거! 이건 또 뭐에요?”

“예민하거나 기분이 나쁠 때는 달콤한걸 먹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지, 안 그래? 그러니까 내가 주는 선물. 얼른 받아, 나 팔 아프다?”

“아, 네에….”

질의 뒤에서 다가오던 라피아가 볼에 가져다 댄 것은 포장지에서부터 단내가 솔솔 올라오면서도 딱딱한 것이었어요.

멍하니 바라보던 질은 라피아의 재촉을 듣고서야 손에 든 것을 받아들었어요.

“너희도 배고플 거 아냐, 구경하지 말고 얼른 밥 먹어.”

“언니는 은근히 다른 사람들을 챙겨주려는 면이 있네요. 정작 오늘 하루 제일 고생한 건 언니인데도.”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저한테 이걸 준거라던가, 시멜리 씨한테 비프 스튜를 건네주는 것만 봐도 그런걸요. 근데 이거, 상상 이상으로 달콤하네요….”

라피아가 건네줬던 선물을 어느샌가 포장지를 다 벗겨낸 뒤, 한입 베어 물고서 말하는 질이에요.

지금은 달콤한 과자보다는 질의 말대로 시멜리는 방관만 할 뿐이었고, 제리는 사고만 쳤으니 라피아만 신나게 고생했다는 건 틀린 게 없다는 게 중요하겠죠.

질도 약간 나서서 라피아의 보조를 맞춰주기는 했어도 흑기사가 한 일이었을 뿐이고 어깨에 앉아 구경한 게 전부니까요.

그런데도 제리를 대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불만을 갖거나, 툴툴대지 않은 것을 보면 상당한 성인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라피아가 제리에게 악감정을 갖는다면 따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겠죠.

지금도 보세요, 다들 급조된 화로 앞에서 불멍을 때리는데도 라피아만은 모두의 눈치를 보며 뭔가 부족한지 살펴보고 있잖아요.

“더 안 먹어도 되겠어? 비프 스튜 말고도 아까 흑기사한테 맛보게 했던 쿠키도 있는데.”

“쿠키라면 또 내가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았지? 히히….”

“잘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또 하고 싶어지는 법이지, 그게 누구더라도 말이야. 옜다.”

의도치는 않겠지만 항상 그렇듯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혐오감을 들게 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웃는 시멜리에게 흔쾌히 쿠키를 건네는 라피아에요.

라피아 본인도 말하잖아요? 요리는 누군가가 먹어주어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라고 말이죠.

요리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보여주기 위함이니까요.

“생각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산 건 아닐 테고.”

쿠키가 담긴 바구니를 덮고 있는 천을 치우자마자 드러난 쿠키는 시멜리의 눈에도 고급스러웠나 봐요.

그러니까 흑기사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바로 받아먹은 거겠지만요.

정령의 눈에도, 귀족의 눈에도 들 정도라면 라피아의 요리 실력은 굉장한가 봅니다.

“왜, 네가 뛰쳐나온 리니아 가문에서 먹던 거랑 비슷해 보이기라도 해?”

“아하핫!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놀랐는걸….”

그렇지만 라피아의 툭 던져진 말에 시멜리는 첫 번째 쿠키를 한입에 넣고 씹고, 두 번째 쿠키를 입에 가져가려다 멈칫하고 뚫어지도록 노려보기 시작했어요.

“그냥, 아버지가 그쪽이랑 지독한 악연을 가지고 있거든.”

“악연, 지독한 악연이라~ 아아! 혹시 너… 크롬웰 가문의 양녀?”

“눈치도 빠르셔라.”

서로 살벌한 눈빛의 교환이 오가는가 했지만, 살벌한 건 시멜리뿐이었네요.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해놓고 화로만 구경하는 걸 보면 라피아는 장난식으로 던진 말이었나 봐요.

“저기… 둘이 싸우려는 거 아니죠?”

“이봐, 작은 주인님. 나는 펜던트 때문에 못 싸우는 거 알잖아?”

뭐, 시멜리가 싸울 생각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질에 의해서 저지되었겠죠.

“나도 그럴 생각은 없어.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가 해결할 일이지. 딱히 나한테까지 끌고 와서 귀찮게 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아무리 아버지한테 이쁨받는다고 해도, 입양된 나는 가문의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없잖아.”

“라피아라 했던가? 미움받는 사람끼리 통하는 게 있나 봐, 나… 네가 마음에 들려고 하는걸. 후후….”

“미안하지만 살, 으흠! 난 너하고 친하게 지낼 생각 없어.”

비꼬려다가 제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황급히 말을 거두는 라피아에요.

분명 살인자라고 부르려던 것이겠죠.

하지만 학원에서 은폐한 사실을 떠벌리는 것은 위험한 행동일 테니까요.

여기에 더해 용사의 혈통이라면, 제리의 열띤 성격을 본다면 살인자라는 단어를 듣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시멜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에요.

시멜리가 조금이라도 파티에 협력적으로 된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더 있을까요?

“야,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뭐.”

대화가 끝나 불멍을 때리던 라피아에게 제리가 말을 걸어왔어요.

지금껏 제리에게 예민했던 라피아를 떠올려보면 그다지 좋은 선택이라고는 하지 못할 행동이에요.

“왜 그렇게 용사라는 말에, 아니지…. 용사를 싫어하는 거야?”

“저, 저기 그런 건 함부로 묻는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라피아가 싫어하는 이유를 들어서 뭘 어쩌려는 걸까요.

자기반성이라도 하려고? 이유를 듣는다고 해서 제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텐데… 질도 좋은 질문이 아니라고 막아서잖아요.

“들어서 뭐 하게.”

“이상하잖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용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구해온 영웅들인데 말이야.”

“라피아 언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굳이 대답 안 해도 되니까….”

점점 험악해지려는 분위기에 열심히 중재하려 드는 질의 노력에도 제리는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어요.

이래서야 제리의 질문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혈통이 무시당해서 기분 나쁜 마음에 속사정을 캐내려는 쪽이 더 가깝겠네요.

“…하, 웃기고 있네.”

“뭐? 이게 기껏 이해하려고 하니까…!”

“제리 씨! 그만 좀…!!”

질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아서려고 하는 찰나에, 라피아가 질의 앞을 막아서서 제리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고 얼굴과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가 돼서야 멈춰서선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죠.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구해야 할 생명을 못 본 체하고, 명성을 쌓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게 용사야?”

“적이 그만큼 강했거나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겠지!! 영웅한테 명성을 쌓기 위해서라니 말이 심한 거 아니야?!”

용사를 부정하는 말을 하자, 자신이 부정당한 것처럼 화를 내며 반박을 하는 제리에요.

그렇지만 비극을 직접 경험한 일을 말하는 사람을 달래주기는커녕, 억울함이 섞인 말로 설득하려 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이러다가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용사라는 녀석 때문에 내 동족은 거의 절멸하고, 덕분에 생겨버린 지워지지 않는 이 끔찍한 흉터… 네가 아는 용사만 용사라고 생각해?”

라피아는 한순간에 목덜미의 옷 부분을 부여잡고 그대로 가슴팍까지 드러날 정도로 확 잡아 뜯어낸 덕분에, 옷소매가 떨어져 왼쪽 어깨부터 가슴 위까지 보기 흉한 상처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검붉게 물들어 화상을 입은 것 같으면서도 매끈한 피부는 마치 무언가에 침식된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제리 역시 이를 보고서 잠깐은 망설였지만 아주 잠시뿐이었어요.

더 맹렬히 달려들기 위해 주춤거렸던 거였죠.

“네가 용사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애초에 네가 용사처럼 모두를 지킬 힘이 있었다면 네 동족도…!”

“라, 라피아 언니?!”

중간에 끊긴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제리의 해서는 안 될 말은 끝까지 완성되지 못했어요.

라피아가 주제도 모르고 열심히 나불대던 제리의 입이 비틀어지도록, 강하게 뺨을 후려갈겼거든요.

얼마나 강했냐면 제리가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쓰러질 정도였어요.

게다가 뺨 한 대 맞았다고 시야가 흔들리는 건지 일어서다가 휘청이면서 다시 쓰러졌어요.

이 정도라면 질이 놀랄 만했죠.

“세계를 구하는 영웅? 한 번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다음에는 그 주둥이를 찢어버릴 거니까 다물고 있어.”

“어디 가요, 위험해요! 언니!”

인식 저해 마법진 밖으로 나가는 라피아의 뒤를 황급히 따라가던 질은 나오기 전에 시멜리에게 명령해뒀어요.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텐트 주변에서 제리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이죠.

누가 봐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어요.

이런 파티원의 구성으로 어떻게 제대로 된 휴식이 가능하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웃으며 말하는 살인자, 사고만 치고 다니는 용사 후보생, 용사를 싫어하는 하프 뱀파이어, 이들 사이에 껴서 곤란해하기만 하는 어린아이….

상식적으로 무리인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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